중국
서쪽변방의
주나라
1122년
지금의
감숙성에서
활동하던
동이족이
새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
했다고는하나
조그만
성읍도
안되는곳을
점령해놓고
통일했다고
요즈음말로
대서
특필을했다
지금도
입만벌리면
뻥인데
그때는
오죽했으리라
생각이든다
주나라는
기원전11세기
중엽에
서쪽의
웨이허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하여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의
천자로서
중원을
지배했다
주나라의
청동기문화권
영향력은
중원에서
더욱남쪽
지방인강소
안후이
호북등
장강유역까지
미친것으로
추정되고
역사책에도
그렇게
장황하게
덧붙여
후세인들에게
중국인들은
떠벌신다
한편은나라는
기록에의하면
전설상인물인
황제의후손
탕왕이
세웠다고
전하고있다
탕왕은
하나라의
마지막왕이자
폭군인걸왕을
나가레시키고
상나라를
개국
하였다고한다
마지막왕은
무희
달기와함께
백성을
잔혹하게다룬
30대주왕이며
주나라시조인
서주
무왕에의해
멸망하였다
이은나라를
침략하여
멸망시킨
사람은
강태공이란
산동사람인데
이공략을위해
무려
몇십년을
물고기도
잡지못하는
곧은낚시
바늘로
무상의
세월로보낸
줄생이었다
은나라를
조금설명하면
고조선의
초기에
한일파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세운나라로
나중의
흉노족의
기원이되는
나라이기도
하다고
중국중생들이
기록으로
남겼다
은나라
이전당시
유통되는
글자는
가림토
문자였는데
농사를짓기에
표준어로
쓰기에는
좀어려운
글자이었다
글자인
가림토로
비석에새긴
천부경을
한자로
해석한게
천재
고운최치원
이다
당시은나라
족속은유목을
주로하는
북방
우리계통의
민족임을
나중에
밝혀지게된다
바로
그들이살던
왕의영이라
하는
한농부에의해
1899년대
은허에서
발견된
상형문자에서
그유래를
알수있다
남방의
농사를짓는
사람들의
관념으로는
도저히
만들수없는
문자의형태가
한족들것이
아님을
알수있고
북방의
유목민들에
의해
만들어진것이
바로
상형문자다
북방민족이
얼마나
무서운지
진나라
시황은
장성을쌓아
북방의세력을
막아볼라꼬
무진애를쓰고
웬만한
백성들은
장성을쌓는데
동원되어
싸움에서
죽은사람보다
성을쌓다가
진시황을
욕하며
죽은이가
더많았다고
하니
진시황은
북방의민족을
무척두렵게
생각
했던것이다
이때
성을쌓다가
도망친자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일부가
우리조상이
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럴것
같았으면
가져다
줄것주고
얻을것얻고
하면서
융화로
갈것이지
진시황은
말로만듣던
배포가
큰사람은
아닌것같다
또만리장성은
북방의용맹한
민족과
국경을같이한
한나라의
애환이
서려있는곳
이기도하다
한편
시골뜨기
유방은
나라를우습게
집어삼키고
또통일
했다고한다
지금도
그땅덩어리에는
56개민족이
살고있는데
그땅에
한번가보면
산중의산
그렇게
멀리까지
통치력을
발휘되는것도
아니건만
지금의
국경선을
이루었다고
참으로
소가웃을일이다
지금의
국경선은
중화민국은
1948년
여진족
청나라즉
동이족의
일파가
통치하던
시절을
마감하고
그때
그모양으로
유지되는
국경이다
좌우지간
지금의중국은
공산당
창건을도운
조선족의
이야기를
쏙빼버린채
현대화를
맞은이상한
나라다
일당체제의
우수성이랄까
그러니
나라의역사는
아무리
뒤집어보고
산술적으로
계산해 봐도
채100년이
되지않는다
이런북방과의
관계를중화의
입장에서
사마천은
기술하고
있지만
뒤집어보면
벌거없었다
본격적으로
기구만장한
여인의
이야기를
하려고한다
점점더위가
식어가고
북에서오는
찬바람이
살살불기
시작한다
좌우지간
한나라가
통일되고
환원이란
왕때
찬바람이
불던때
북방과의
싸움에서
허구헌날
패배를당하니
오죽하면
패배
북쪽과싸우면
무조건패한다
라는
이야기가
발달려
돌아다녔을까
싸우기
좋아하는
한나라
7대황제
무제는
특단의조치로
월지국의
한헐말을
들여오게되어
7차례싸우고
8번째이상한
전략으로
이기는
참비굴한
승리를
거두게된다
이장면도
신통치않은
승리였다
초한의
쟁패에서
나오는
영웅호걸의
영화같은
한나라였지만
북방으로
항상
금은보배를
실어다
흉노족에게
바치기
시작한다
또미녀까지
수없이
착출하여
보내는신하의
노릇을했다
그들은
언제그랬냐고
그들에게
불리한
역사이야기는
남긴것이
별로없다
하물며
사기를지은
그진실한
사마천조차도
그이야기를
쏙빼버린
새가슴의
중생들인것이다
이런관계에서
한나라
원제때
공출되어가는
한미녀가
있었는데
그이름은
왕소군
얼핏들으면
남자이름으로
보이나
중국발음으로
하면
왕시아오쥔
흉노로
보낼여인을
착출하던중에
여인들의
초상화를그려
황제의
재가를받았다
그런데보내는
여인들이
하도많아
일일이
면접을
보지못해
우선그림을
통해보았다
이때사람을
잘그리는
인물화에
능한화가가
있었는데
그의이름은
모연수
옛기록을보면
두보의시
왕안석의
글에도나오는
인물로
아주금품을
좋아하는
중생이었다
자기에게
금붙이나주고
알랑거리는
궁녀들은
기가막히게
날조하여
예쁘게
탈바꿈시켜
그리고
그러지않은
여인에게는
그저그렇게
그렸던
모양이다
그렇게그려진
초상화는
북방의흉노로
떠나가기전
최종심사를
황제가하는데
맘에들면
황제가먼저
접수를한다
하하
중생좋겠다
좌우지간
그렇게그려서
황제에게
올렸는데
왕소군은
뛰어난
용모를가지고
있었지만
그놈의
돈이없어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않아서
입궁한지
수년이
지나도록
황제에게
간택되지
못했다
암튼
원제경녕
원년에
흉노의왕
호한야가
한나라와
혼인화친을
청하게된다
그때호한야의
흉노집권은
어렵사리
성사되었다
또흉노는
한나라에
정치적복속을
들어냈지만
남쪽에서
들어오는
물자가
어마어마
했다는
이야기다
호얀하에
시집보내진
왕소군도
흉노에대한
한나라의
아부에지나지
않았으며
일부문인들의
기록에나오는
이야기는
그저그들의
주제거리에
지나지않는다
좌우지간
한나라에서는
왕소군을
시집보내기로
하였다
날을잡아
예쁘게
단장시켜
왕소군을
흉노로
시집보내는
날이
다가왔다
그날황제는
왕소군의
용모를
처음보았다
그모습에
홀딱
반하게된다
그간봤던
초상화하고는
영다른
모습이었다
기가막힌
여인의
용모였다
중국
역사에서
서시,초선
왕소군,양귀비
4명의
미인이
있었는데
왕소군을
그중한명으로
치고있다는
미인이었다
미인을
묘사하는
폐월수화
침어낙안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달이숨고
꽃도
고개숙이고
물고기가
가라앉고
기러기가
날아가다
떨어진다는
소리다
서시의
별명이바로
침어로
물고기가
그녀의
미모를보고
가라앉았다고
한다
왕소군의
별명은
낙안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을보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초선의별명이
폐월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달도
부끄러워
숨었다는
뜻입니다
양귀비의
별명은
수화다
꽃이부끄러워
고개를
숙일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여인들은
남성본위의
사회에서
모두
피해를본
아리따운
여인들이었다
한의원제는
왕소군을
흉노로보내기
싫었지만
이미결정된
일이라
크게
후회하였지만
돌이킬수가
없었다
후에원제는
크게노하여
그림을
왜이따위로
하면서
모연수를
죽이고
그의재산을
몰수했다
왕안석의
기록에는
마음씨는
본래
그리려해도
못그리나니
일부러그림을
잘못그렸다
하여
당장에
모연수를
참하여라
하고
그래서
모연수는
죽여시체를
거리에버리는
기시라는
형벌을
받게된다
바로
황제를속인
죄였다
오죽
아까웠으면
화가를
죽였을까
그렇게
여차저차하여
흉노로시집간
왕소군은
영호알씨로
봉해졌고
아들인
이도지아사는
뒤에
우일축
왕이되었고
호한야가
죽은후
그녀는
한나라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한성제는
흉노의풍습을
따르라고
거절했다
왕이죽으면
그본처의
자식이자
다음
후계자가
될이와
결혼해야
한다는
흉노의
풍습에따라
왕소군은
호한야의
배다른아들인
복주루약제
왕과결혼하여
다시딸둘을
낳았다
왕소군은
죽은후지금의
내몽골
자치구의
호화호특
남쪽에
묻혔으며
무덤이름은
청총이라
불리고있다
그풍상을겪은
그시절이
바로
먼하늘높이
날아가는
기러기가
북으로가던
하늘높은
가을이었던
것이다
가을이
거의끝나고
삭풍이불던
시절이었다
한아리따운
여인의고초가
시작된것은
말도
말이었지만
당시의
그지방에서
일어난
풍습이었던
것이다
그무서운
추위를겪고
다음
봄이되니
추위가
간것같은데
아직
봄이아니고
이기막히고
애처로운
여인을두고
당나라
동방규라는
중생이
시를썼다
오랑캐땅에는
꽃과풀이
없으니
봄이와도
봄같지않구나
자연히
옷의혁대가
느슨해지니
야윈
몸때문만
아니라네
이시를보면
산설고물설은
호지의땅으로
팔려간
왕소군의
처지가
가련해보인다
올해
이가을은
유난히맑아
애처로울만큼
파란하늘
때문에
살이빠지고
고민이
들것같은
너무
맑은날씨다
황량한
대륙에서
홀로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수없이
흘린눈물이
가슴속에
적시며
어쩔수없이
살아
가야했던
여인의모습은
애처롭게
느껴진다
인간사흥망의
세월이
무상한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