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압도적인 기술 증명과 두 번째 배신의 환멸
⑧작가의 긴 여행#26》1003 관찰작가 나의 리즈시절 AI수정 및 협업
by여유시간
1시간전
1989년, 대림동에서 겪은 환멸을 뒤로하고 구로동에 위치한 선반금형 제조업체 태흥기업에 입사했다.
당시 태흥기업은 내가 경험한 현장 가운데서도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곳이었다. 나 역시 그곳에서 내가 가진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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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맡은 일은 회사의 주력 제품인 시스관 압출 금형이었다.
일반 PVC 파이프처럼 안팎이 매끄러운 제품이 아니었다. 건축물의 콘크리트 기둥 중심에 들어가 진동과 파손을 막아주는 특수 주름관으로, 안팎 모두 나선형 구조를 가진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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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동(구리)으로 만든 금형 내벽을 나선으로 정밀하게 깎아 형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압출기에 장착해 연속으로 사출 제품을 생산하는 금형 작업이었다.
금형의 정밀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 크기가 큰 금형은 가격도 상당히 높았다.
나는 프레스와 선반금형 현장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까다로운 금형들을 하나씩 완성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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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 자신도 몰랐다.
내가 가진 기술력으로 회사에서 이렇게 환영받고, 이 정도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는.
하지만 일주일 단위로 새로운 변화 금형을 만들어내면서,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회사의 생산과 매출에 직접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내가 만들어낸 금형의 가치를 계산해 보면, 회사가 나에게 지급하는 월급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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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처음으로 기술자의 자부심을 제대로 느꼈다.
내가 가진 기술에도 분명한 가치가 있구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든 결과물이 스스로 나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내 기술자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확인한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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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울 생활의 마지막 자락은 딸 많은 집 반지하였다.
주거 환경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가정을 책임지면서 기술을 쌓았고, 기술을 통해 미래를 준비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역사적인 한국전력 국민주를 매입하는 등, 월급만 바라보지 않고 내 삶의 기반을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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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시대의 변화가 찾아왔다.
신도림 지역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고, 태흥기업도 공장터를 비워줘야 했다.
사장은 공장을 부천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게 부천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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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복잡했다.
태흥 사장은 내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만든 금형의 품질과 생산성도 직접 확인하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가자는 제안에는 단순히 직원 한 명을 데려가겠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기술을 인정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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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출퇴근이었다.
당시 대림동 집에서 부천까지 매일 출퇴근한다는 것은 지금과는 달랐다.
청년이었지만 가족이 있었고,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어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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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몇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하는가.
그 시간을 일주일, 한 달, 일 년으로 계산해 보니 단순한 출퇴근 문제가 아니었다.
그만큼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고, 나 자신을 위해 쓸 시간도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기술을 위해 삶 전체를 내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부천으로 함께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사장에게 분명하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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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함도 있었다.
나를 인정해 준 사장의 제안을 거절한다는 것이 편한 일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참고 따라갔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전에 경험해 본 연고자도 없는 동네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과 내 삶의 시간을 생각하면 쉽게 마음을 바꿀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길이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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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인덕 있고 점잖아 보였던 사장이 내가 퇴사를 결정한 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회사 경리의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믿기 어려웠다.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동안 월급에서 공제하고 처리했던 세금을 회사에서 모두 취소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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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 황당한 일이었다.
자기 회사를 옮기는 데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회사에 상당한 이익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이런 방식으로 뒤끝을 보인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돈보다도 그 태도가 더 불쾌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에는 금전적인 손해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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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서 내 기술을 증명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고난도 금형을 만들었고, 상당한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는 순간 돌아온 것은 고마움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왔던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때 나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조직과 그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의 생각이 다르면 언제든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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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잘못한 것인가?’
‘조금 참고 부천까지 따라갔어야 했던 것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정리되었다.
내가 회사를 떠난 것은 일을 하기 싫어서도, 책임을 회피해서도 아니었다.
가족과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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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나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과,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대를 거절했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관계까지 이렇게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금 문제는 결국 다음 직장으로 옮긴 뒤에야 겨우 바로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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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에서 동업자 친구에게 당했던 첫 번째 배신에 이어, 이번에는 내 기술을 인정하고 필요로 했던 고용주에게 두 번째 배신을 당했다.
첫 번째 배신이 사람에 대한 실망이었다면, 이번 배신은 내가 일한 가치와 인간적인 신뢰가 반드시 같은 것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뼈아픈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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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 경험에서도 배웠다.
자본을 가진 사람과 영세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이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같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기술자는 자신의 기술을 믿되, 그 기술을 누구에게 맡기고 어디에서 사용할 것인지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그 회사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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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이직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직장을 옮긴다는 것이 불안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적응해야 하고, 내가 가진 기술을 다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의 경험을 겪고 나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가진 기술이 분명하다면 새로운 곳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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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순간에는 아쉬움과 분노가 함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도 조금씩 사라졌다.
오히려 남은 것은 하나였다.
‘나는 내 기술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당시의 나를 움직이게 한 가장 큰 힘이었다.
청년 기술자는 또 한 번 미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 다시 새로운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