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르시시스트는 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할까
◇실용인문학#26》0816 AI수정 및 협업》연재 나르시시스트 이야기
by관찰작가의 여유시간
6시간전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타인과 깊은 연대를 맺기 위해 필요한 인문학적 역량 가운데 하나가 자기 객관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던 이유 역시 스스로의 한계와 결점을 직시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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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자기 객관화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타인을 통해 반사되는 찬사와 인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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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단순히 ‘자기애가 강해서’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안에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취약성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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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진짜 모습이 실수하고, 부족하며, 때로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이 만들어온 ‘완벽한 나’라는 이미지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는 성찰의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싶은 자아상을 위협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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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기 객관화의 어려움은 개인의 내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 사람이 가진 자기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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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인에이블러(Enabler)’는 갈등을 피하거나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실수를 덮어주고 합리화할 수 있다. 그 결과 당사자는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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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플라잉 몽키(Flying Monkeys)’라는 표현으로 설명되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당사자의 왜곡된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을 오히려 공격자로 규정하면서 갈등에 개입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주변 사람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반복되면 당사자가 자신의 행동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확인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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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 자기 객관화의 부재는 단순한 개인의 성격적 특성을 넘어 하나의 관계적 생태계가 될 수 있다.
실용인문학의 시선에서 보면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나르시시스트를 진단하거나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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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고, 타인을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부족함 역시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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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기 객관화는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으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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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나르시시스트의 자기 객관화 어려움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떤 관계에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 주변 사람들이 그 현실을 덮어주고 있는지, 비판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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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 자신까지 그 왜곡된 세계관 안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 보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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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야말로 나르시시즘적 관계에 휘말리지 않고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인문학적 방어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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