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만나는 문(門)이다. 이 문은 산문(山門)이라고도 하고 일주문(一柱門)이라고 부른다.
오른쪽 운길산(雲吉山)은 이 사찰이 위치한 장소를 밝혀준다.'구름이 가다가 걸려서 멈춘다'는 610m의 운길산이다.
수종사(水鐘寺)는 이 가람의 이름이다. 일주문은 역삼각형의 불안정한 건축물이다. 어떤 강풍에도 잘 견뎌온 일주문이다.
단단하게 지은 '그랭이 공법'이 일주문을 안정하게 지탱하여온 장점으로 들고 있다. 이와함께 한국의 사찰 일주문이
바람을 기가 막히게 잠재우는 장풍(藏風)이 뛰어난 곳에 있기에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사찰로 들어가는 호젓한 오솔길을 만난다.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게 산사의 맛이 제법 난다.

불이문(不二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한다. 생(生)과 사(死)도 둘이 아니라 하나란다.
만남과 이별도 둘이 아니라 하나다. 자연과 인간도 둘이 아니라 하나요,속계(俗界)와 진계(眞界) 역시
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가파란 돌계단이다. 숨을 몰아쉬며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저 멀리 반가운 문(門), 해탈문(解脫門)을 만난다.
불교 수행자들이 참선 기도를 하면서 종국에는 그 해탈의 경지를 갈망한다. 그 해탈문이 눈앞에서 중생을 반긴다.
우리나라 궁궐과 사찰 향교 등은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왕이나 부처를 만날 수 있다. 일주문과 불이문은 이미 통과했다.
저 해탈문을 지나면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남양주 봉선사의 말사(末寺)다. 운길산 8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 초기에
중창한 사찰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두물머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1458년 세조가 신병치료차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올 때 밤이 되어 이수두(二水頭=兩水里=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운길산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와
다음 날 숲 속을 둘러보게 하니, 천년고찰의 폐허 바위굴에는 18 나한상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 바위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렸던 것을 알게 되었다.이에 세조는 감동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복원하게 하고
절 이름을 수종사라 부르도록 하였다. 조선 시대의 명문장가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이라 했을 정도로 절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북한강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팔각오층석탑만 당시 모습을 갖고 있다.

수종사를 찾는 이들에게 늘 열려있는 찻집 삼정헌(三鼎軒)이다. 삼정(三鼎)은 詩와 禪 그리고 茶다. 이 셋은 서로 통한다.
날이 맑으면 통유리를 통해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연출하는 두물머리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오늘은 최악의 미세먼지로
그 아름다움은 희미하게 가렸다. 참으로 아쉬었다.


두물머리에 살고 있던 다산 정약용이 자주 찾던 수종사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이 절경이다.
"동남쪽의 여러 봉우리들이 때마침 석양빛을 받아 강위에서 햇빛이 반짝여 창문으로 비쳐 들어왔다.
여러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즐기는 동안 달이 들어왔다."-여유당전서 문집 권 13 유수종사기(遊水鐘寺記)에서-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南陽州 水鐘寺 五層石塔)은 고려 시대 팔각 석탑의 전통을 이어 조선 시대에 건립된 석탑이다.
출토된 사리장엄(舍利莊嚴)과 명문(銘文)을 볼 때 건립 연대는 늦어도 1493년에 건립된 이래 1628년에 중수(重修)했음을 알 수
있으며 왕실 발원의 석탑임을 확인할 수 있다.또 양식을 보면 기단부는 불상대좌(佛像臺座)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다.상륜부는 팔작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아랫부분은 4각의 지대석이 받치고 있으며, 그 위로는 8각의 중대석·상대석·지붕돌이 층층이 쌓여 있다.
특히 꼭대기 부분에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처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각부의
부재가 완전하게 유지된 조선 시대 팔각오층석탑으로서 역사적·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다.
2013년 보물 1808호로 지정되었다.그 옆에 있는 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7호)는 태종의 다섯 번째 딸 정의 옹주의 부도다.
가운데 부분은 항아리처럼 둥글고 1439년(세종 21) 왕실의 발원으로 제작되었다.원통형 탑신의 둘레가 218cm로서 운룡문이
화려하기 새겨져 있고, 두 마리의 용은 여의주를 움켜쥐고 구름을 뚫고 힘차게 비상하려는 자세가 금방이라도 움직이는 듯 생생하다.





세조가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높이 35m, 가슴높이 둘레 6.5m에 이르는 만큼 수많은 가지가 두 팔을 벌리고 북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