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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 마태복음 25 장 < 1 > )
성경말씀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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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지막이나
끝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슬픔이 있고, 허무함이 있고 서운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소유 본능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것, 자기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놓치지 않고 계속 소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유의 대상이
자기를 떠나고 그것으로부터 결별될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아쉬움과 고통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던 것,
사랑하던 것, 즐기던 것으로부터 마지막이라면
아쉬워하고,슬퍼하고,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하다 못해 자기가 좋아하던 T.V 드라마가
끝나는 것까지도 못내 아쉬워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인데.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 달가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 자기 소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끝난다면 현재의 자기 소유로부터 결별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지막을 용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끝내버리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불변의 계획이십니다.
마지막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이 땅에는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이 없습니다.
결국 세상은 끝나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이란 세상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마지막 때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에겐 신랑을 맞을 등불과 기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우리가 지혜로운 신부인가 미련한 신부인가 결정 될 것입니다.
1. 열 처녀의 비유
.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태복음 25 :1)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은
정혼한 후부터 1년 후에 신랑이 신부
집으로 와서 혼례식을 행하고 일주일 동안 잔치를 했습니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올 때 신랑의 친구들은
피리를 불고 춤을 추며 동행합니다. 그리고 신부의
친구들인 처녀들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하셨습니다.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태복음 25 :2-4)
열 처녀는 미련한 자와 슬기 있는 자로
나누어 집니다.미련한 자는 등을 가졌으나 기름을
가지지 않았고 슬기 있는 자는 등과 함께 기름을 가졌습니다.
등만을 가지고 불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을 밝힐 수 있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화려한 등일지라도 기름이 없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기름은 신앙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사람은 언제나 상령의 충만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태복음 25 :5-9)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집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더디 오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시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밤중에
신랑이 오고 있으니 맞으러 나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기치 않은 시간 번개가 번쩍이듯 오십니다.
미련한 처녀들의 등
불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자들은 함께
쓰기에 부족하므로 나누어줄 수 없으니 가서 사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에 의해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믿음을 빌려올 수 없고 부모가 자녀의믿음을 빌려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도 그 믿음을
빌릴 수 없습니다. 각자는 각자의 믿음에 의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지혜 자는 믿음의 기름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
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태복음 25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여
준비한 자들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2. 때를 놓친 불행한 신부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 :11-13)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소서.
애원해 보지만 그러나 신랑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합니다. 깨어서 항상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3. 달란트의 비유.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태복음 25 :14-15)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시며
타국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종들은 주의 종들입니다. 소유는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 하나님이 맡기신 소유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주의 종들에게 은사를
주셨는데 이런 은사를 주신 것은 장사해 이윤을 남기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각각 재능대로 소유를
맡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 한 달란트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금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며 . 당시 일꾼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태복음 25 : 16-18)
다섯 달란트를 받는 자는
바로 가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달란트를 맡긴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열심히 장사하여 이윤을 남기라는
뜻을 알고. 그들은 순종하여 주인의 마음을 흡족히 해드렸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었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실패할것같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개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주인이 이르되 잘하였
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 :19-23)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남긴 종들은 주인에게
자랑스럽게 자신이 이윤을 남긴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잘했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일을 맡기십니다. 그들에게 주인은 더 많은 것을
맡기는 은혜를 주시고 주인의 줄거움에 참여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신앙 상식)
'기도 받는다`는 표현 옳지 않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이른바 영력이 있다는 목회자나 기도원 지도자들을
방문하거나 초청하여 기도하거나 의뢰하는 일을 흔히 ‘기도 받는다’,
기도 받으러 간다’,기도 받았다’ 로 표현하는데 이는 잘못된 말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기도를 들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신데,사람이 ‘기도 받는다’라고 하는 말은 부적절한 말입니다.
남에게 특별한
기도를 요청할 때는 '기도 의뢰',
'기도 부탁',도고'(禱告;딤전2:1) 등으로 표현해야 옳을 것입니다.
소위 '선포 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지
다른 존재나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며 대화한다는 성경적 기도 개념에
충실하면 기도에 '선포'라는 발상 자체를 섞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 예배 용어 연구 전문위원회)
(교훈)
깨어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삶,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의 것으로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는 충성된 삶,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께 사랑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심판을 면제받고 천국의 삶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여
우리는 깨어 있고
충성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신랑이 오는데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는 신부나
기름을 예비하지 못해 등불을 밝히지 못하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을 생각하면서
과연 주님이 지금 오신다면 부끄럽지 않고 두려움 없이
주님을 맞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하루 되게 하시옵소서.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예수님을 더 알고자 힘쓰는
영적 갈급함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성령충만하기를 간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날마다 말씀으로 깨닫고 결단하며 천국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 6. 22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
첫댓글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을 생각하면서
과연 주님이 지금 오신다면
부끄럽지 않고 두려움 없이 주님을 맞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하루 되게 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