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인터넷공개강좌 강석호평론가 2022년 4월 2주(13일(수))
수필제목,
어떻게 붙일 것인가
문학평론가 강 석 호
제목은 표제라고도 한다.
제목은 단편의 글에 붙이는 것이고 표제는 책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크든 작든 모든 문학작품에는 제목이 있다. 제목은 곧 그 작품의 얼굴이요, 내용의 요약이며 독자의 시선을 끄는 요인이 된다.
세상 만물에는 이름이 있고 만사에도 제목이 있다. 사람의 이름을 비롯하여 음식점의 옥호, 상점의 상호, 대회명, 연제, 직명, 지역명 이 모두가 제목에 해당한다.
이름을 중시한 나머지 동양에서는 일찍이 인명이나 옥호, 상호를 짓는데 음양오행을 ᄄᆞ져 지었고 악운을 막기 위하여 꺼꾸리, 막둥이, 돌쇠, 마당쇠, 고만이 등 역설적으로 작명을 하기도 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이름에 유의하여 그 성품과 장래를 예견케 했다. 아브람은 우상을 만드는 자의 아들이었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남으로써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꿔주었고 야곱도 쌍둥이 형에서의 뒤꿈치를 잡고 나온 뜻이었으나 그가 얍복강변에서 회개함으로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꿔주었다. 신약성경의 대표적 저자인 바울도 처음 기독신자들을 핍박하고 다닐 때는 사울이었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 회심한 이후에는 바울이란 이름으로 그 생애가 역전되었다.
이와같이 사람은 물론 만물이든 사건이든 존재하는 것에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문학작품이나 작품집의 제목도 그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신문기자도, TV 제목도 그 표제(타이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이렇게 중요한 제목이기에 제목 붙이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산뜻하고 멋있는 제목이라도 어느 정도 내용과 사리에 맞아야한다. 허황되게 미사여구만을 붙여서는 독자는 곧 실망하게 되고, 지나치게 거창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딱딱하고 진부하게 붙여도 거들떠보기조차 싫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간혹 가는 한 식당의 옥호는 ‘우가촌’이다. 뜻을 풀이하면 소의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쇠고기 음식을 주로 파는 집이란 뜻이겠지만 거기에 오는 손님들을 소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가와 촌이 겹쳐 이중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중국의 어느 무협소설에서 딴 것 같지만 손님을 받는 음식점 옥호로서는 적당하지 않은 이름인 것 같다.
제목은 처음부터 정해놓고 쓰는 경우가 있고 다 쓰고 나서 붙이는 경우가 있다. 세계 대문호들이 소설의 제목을 붙이기 위해 고심한 일화가 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 뒤마는 피렌체에 망명 중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과 함께 엘바섬에 갔다가 괴상한 바위섬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그 바위섬은 13세기 승원이 있었고 터키군의 침공 시 승려들이 달아나면서 많은 보물을 감추어 두었다는 전설과 함께 그 이름이‘몬테크리스토’ 였다.
뒤마는 그 어감이 마을에 들어 자신의 방문을 기념으로 소설을 쓰고 그 제목을 그것으로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막상 소설을 써놓고 제목을 ‘몬테크리스토 섬’이라고 붙이려니 ‘섬’이라는 말이 거슬려 섬 대신 ‘백작’이라는 말을 붙였는데 그 어감이 독자들에게 먹혀 멋있는 여인만 봐도, 기이하게 재미있는 일만 봐도 ‘아! 몬테크리스토’라고 감격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또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써놓고 제목 때문에 고심하다 어느 음식점에 가서 ‘햄’이 든 ‘오믈렛’을 먹게 되었는데 햄과 오믈렛을 붙여 ‘헴릿’이란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세계적 명작도 의도적인 제목이 있는가 하면 우연한 것도 있다.
나의 경우 최근의 수필집 ‘은행나무와의 사연’은 처음 ‘은행나무’ 또는 ‘은행나무의 추억’ ‘하늘에서 내리는 황금조각’ 등으로 고민하다, 그 당시 ‘은행나무 침대’라는 영화가 화제가 되고 또 ‘사연’이란 말은 뭔가 그 내용을 궁금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은행나무와의 사연’으로 정했다. 그랬더니 독자들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 같은 사연인가 싶어 호기심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그런 호기심을 갖게 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으나 반면에 영화제목을 모방,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어 성패는 반반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의 경우 ‘한자’이란 작품은 처음에 ‘어머니가 안 계시는 고향은 고향이 아니다’라고 붙였다가 너무 주제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길어서 좀 더 독자에게 생각하는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자’이라 했는데 어느 소설이나 유행가 제목에서 따온 것도 같고 생기를 잃은 가사의 조립같이 생각되기도 하나 간결해서 좋다는 의견도 있다.
나의 경우 등단 추천작품을 심사하거나 수필집을 만들 경우 제목이 마땅치 않아 불만이거나 고심한 작품이 많았다. 그 주된 불만은 한 편의 수필에다 너무 포괄성이 강한 단순한 제목 ‘나의 인생관’ ‘나의 학창시절’ ‘인생의 윤리’ ‘성공의 길’ ‘진리의 샘’ ‘고향’ ‘어머니’ 등 거창한 상위개념의 제목을 붙이는 경우였고, 그 반대로는 1권의 수필집에다 너무 구체적이거나 긴 제목 ‘인생은 괴로운 것’ ‘사랑이란 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내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을 때’등이었다.
책이나 작품의 제목도 유행이나 시류를 타는 것 같다. 한때 수필집의 제목이 긴 문장으로 된 것이 유행하더니 요즘은 짧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서정적인 긴 제목은 세리프 같은 설익은 감정의 표출을 강요하고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을 짐작할 것 같으며 저자의 역량이나 취향이 깔끔하지 못한 인상을 주게 된다.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단순한 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이 표출된 제목을 접목시켜 간명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서정적이며 보다 참신한 의미의 용어를 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제목들의 경향을 유별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주제를 집약한 것(추상적)
2. 주제를 풀이한 것
3. 문장의 줄거리를 압축, 집약한 것(구상적)
4. 문장의 목적을 내세운 것
‘아버님께 드리는 글’ ‘두만강 7백리’ ‘어느 비오는 날의 서정’ ‘이사를 하고’ ‘사랑하는 님의 영전에’
5.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
‘피서지에서 생긴 일’ ‘교단생활 40년의 회상’ ‘비에 젖은 소풍’ ‘뒷골목을 주름 잡는 사나이’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6. 명사 하나만 붙인 것
‘나무’ ‘보리’ ‘달밤’
7. ~과, ~의 나란히 꼴
‘꽃과 바람’ ‘사랑과 믿음’ ‘돼지의 미소’ ‘황혼의 오솔길’ ‘고독의 반추’
8. 계절명이나 지명을 붙인 것
‘봄이 오는 소리’ ‘가을의 전령’ ‘여름날의 소나기’ ‘지리산 철쭉’ ‘평촌일기’
9. 적당한 제목이 없을 때
10. 인상적인 것, 시적 효과를 노린 것
‘사랑의 파도를 넘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사랑 그리고 생명의 무늬’ ‘사랑으로 다가오는 영상’
11. 작은 표제 중의 하나를 택한 것
정병옥의 수필 ‘물과 기름의 대화’는 ‘올빼미의 눈’ ‘옷이 날개라고는 하지만’ ‘음식보다 보약으로’ ‘온돌 문명의 영토’ ‘물과 기름의 대화’ 등 소제목 중에서 하나를 뽑았다.
12. 매혹적인 것
‘그녀와 나는 이렇게 헤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안개는 나를 유혹한다.’ ‘아우의 누드’ ‘부딪히며 사랑하며’ ‘새벽을 위한 밤의 연가’
13. 불연속적 용어의 결합
‘잉크와 안경’ ‘돌과 바람’ ‘책과 가위’ ‘미녀와 강도’ ‘전쟁과 평화’ ‘사랑 과 마음’ ‘어항 속의 도시’ ‘산속의 피아니스트’
14. 한자로 된 제목
이상은 지금까지 대개 통용되고 있는 제목을 유형별로 나눠 본 것이다.
어느 유형이 좋고 나쁘다기보다 그 주제와 소재 또는 표현기법에 맞는 제목을 택해야 할 것이다.
무슨 유형이든 제목을 붙일 때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문장의 내용을 제목만 봐도 대강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제목은 미사여구나 매혹적인 것을 붙여놓고 내용이 빈약하거나 동떨어지면 독자는 실 망하고 만다. 반점만 봐도 얼룩말인 줄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정성으로 제명을 해야 한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다. 그러므로 사랑스러운 것, 부드러운 것, 아름다운 것, 인상 깊 은 것을 붙이기 위하여 작자는 많은 고심을 하고 자녀를 아끼듯 작품을 아끼고 사랑 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는 제목뿐 아니라 내용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남의 제 목이나 비슷한 것을 모방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제목자체도 개성적이고 창작적 이어야 한다.
넷째, 논문이나 학술적인 것, 실용적인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문학은 상식적이어야 하고 미적이고 쾌락적이고 상징적이어야 하므로 지나치게 전문 적인 용어, 평범한 실용어는 그 자체가 적합하지 않고 매력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쉽고 구체적인 것이 좋다.
지나치게 쉬운 것만 찾아도 안 되고 너무 구체적이어도 안되지만 이해하기 어렵거나 무겁거나 광대하거나 생경한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작품의 분량에 맞는 제목 이어야 한다. 10매, 15매짜리 글에다 거창한 철학적 명제를 붙여도 안되고 1권의 수 필집에다 가냘픈 제목을 붙여서는 안 된다. d는 파리채로 소등을 치고 도끼로 파리를 잡는 경우와 같은 결과라 하겠다.
=프로필=
문학평론가 강석호 (수필의 날 제정, 2018년 작고)
◉ 이 력
․1973.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 등단(수필)
․1988. 월간문학 신인상 평론부문 당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월간 수필문학발행인 겸 편집주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회장
․ ◉ 수 상 : 한국수필문학상,
수필의 날 제정 공로상(한국문협),
문학평론비평가상,
올해의 수필문학상,
원종린문학상, 외
◉ 저 서: 수필집: 이 후회의 계절에, 새벽을 적시는 내 가슴은,
평촌일기, 은행나무와의 사연,
세월이 흐르는 소리, 고마운 착각,
나 의 窓門 등
◉ 평론 집: 한국수필문학의 새로운 향방,
지성과 정서의 이미지,
우리 수필의 정체성을 찾아서 등
◉ 이론 서: 새로운 수필문학 창작기법,
수필쓰기의 포인트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