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壬癸歎 (임계탄)
임계탄은 가사작품이다. 1732년과 1733년, 임자(壬子)와 계축(癸丑)년의 장흥 관산과 대흥(大德) 등 해안지방주민들의 참상을 쓴 가사(歌辭)이다.
이 가사를 발굴한 이는 성균관대 임형택(林熒澤)교수이다. 임교수는 문제의 임계탄 가사는 장흥군 관산의 선비가 쓴 작품임은 확실하나 저자를 알 수 없다며 영이재공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 가사는 간암공의 작품임이 거의 확실하다. 아직 학계의 고증(考證)을 받지 못해 다소 성급한 면이 없지 않지만 간암공의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상소문과 함께 여기서 소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계탄의 내용으로 미루어 간암공이 1734년에 영조(英祖)에게 올린 상소문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가사의 내용은 조정의 관료들을 질타하고 있다. 임계탄과 상소문에서 왕까지도 신랄하게 꾸짖고 있다. 이런 표현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최악의 경우 사약까지 받을 각오가 아니면 결행하기 어렵다.
죽음까지 각오하고 상소문을 올리는 용기와 뱃장을 가질 수 있는 주인공은 유고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간암공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필자 주)
壬子癸丑 無前凶年 介介히 이로이라 임자계축① 무전흉년 개개히 이로이라②
듯고보는 이景色을 三尺童도 알건마는 듣고보는 이 경색을 삼척동도 알건마는
刻骨한 이시졀을 銘心하야 닛지말자 각골한 이 시절을 명심하여 잊지말게
無識한 眞諺文을 才助업시 매와내니 무식한 진언문을 재조없이 매와내니
句法은 보쟌하고 時不見만 젹어다가 구법은 보잔하고 시불견③만 적어다가
슬프다 百姓드라 이내말 드러스라 長安 大道市예 붙이로다 백성(百姓)들아
가업는 이時節을 無興하나 보아스라 가 없는 이 시절을 무흥하나 보아스라
슬프다 古老人아 일언時節 보안느냐 슬프다 고노인아 이런 시절 보았느냐
이時節 만난百姓 네오내오 다를손냐 이시절 만난 백성 네오 내오 다를 소냐
無罪한 이百姓이 無遺히 다죽거나 무죄한 이 백성이 무유히 다 죽거나
이世上 나온듯은 三代興 만나거나 이 세상 나온 뜻은 삼대흥④ 만나거나
(각주)
① 임자계축(壬子癸丑): 1732(영조 8)~1733(영조 9)
② 이로이다: 이르리다(謂)의 뜻으로 보임.
③ 句法: ~시불견(時不見)만: 문맥으로 미루어 문장의 구성은 따지지 않고 시대상의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한 정경을 기록한다는 뜻으로 풀이됨.
④ 三代興: 하․은․주 3대의 일어남. 즉 태평시대를 만나고 싶었다는 뜻.
百歲를 살작시면 道不拾遺 보옵고저 백세를 살작시면 도불습유 보옵고저
太平乾坤 無事時를 긔뉘아니 원할넌고 태평건곤 무사시를 그뉘 아니 원할런고
天地 삼긴후의 古今歷代 생각하니 천지 삼긴 후의 고금역대 생각하니
治亂興亡 다바라고 豊凶歲만 니르잔들 치란흥망 다 바리고 풍흉세만 이르잔들
古跡의 누니업서 記述할말 업거니와 고적의 눈이 없어 기술할 말 없거니와
兩岐麥穗 못바시니 一莖九穗 언제일고 양기맥수못봤으니 일경구수 언제일고
九年水(8) 支離하나 凶荒歲 되랴하면 구년수 지리하나 흉황세 되랴하면
塗山의 뫼혼諸侯 玉帛을 자바시며 도산의 뫼혼 제후 옥백을 잡아시며
七年旱 異甚하나 殺年니 되랴하면 칠년한 이심하나 살년이 되랴하면
桑林禱 六事責의 數千里 大雨할가 상림도 육사책의 수천리 대우할가
녜날의 天災地變 史冊의 실녀시니 옛날의 천재지변 사책의 실렸으니
泛然히 지나보고 等閑히 혜엿더니 범연히 지나보고 등한히 혜였더니
人相食 이말씀은 오늘날 解惑하나 인상식 이 말씀은 오늘날 해혹하나
아모리 혜어바도 이時節 비할넌가 아무리 혜어봐도 이 시절의 비할넌가
病아닌 病乙알코 杜門不出 안자시니 병 아닌 병을 앓고 두문불출 앉았으니
時序은 때올아나 春陽조차 길게한다 시서는 때를 알아 춘양조차 길게 한다
이리혜고 저리혜니 살라날길 전히업네 이리 혜고 저리 혜니 살아날 길 전혀 없네
(각주)
⑤ 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지 않는다. 정치를 잘해 인심이 순후한 상 태를 이른다.
⑥ 兩岐麥穗: 보리에 이삭이 둘씩 생겨나는 풍년을 지칭.
⑦ 一莖九穗: 한 줄기에 구홉 개의 이삭이 달린 벼.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냄.
⑧ 九年數: 요임금 시대 9년 동안 홍수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음. 이때 禹가 치수함.
⑨ 塗山의 ~잡이시며: 우왕시대 도산에 제후들이 모였는데 옥백 같은 조공물을 바치러 온 나라가 만국에 이르렀다 함. 도산은 중국 안휘성 회원현 동난 회하동 안에 있다.
⑩ 七年旱: 은나라 탕왕시대 7년 가뭄이 들자 왕이 몸소 기도하자 큰 비가 내렸다 함.
⑪ 殺年: 흉년이 심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
⑫ 桑林禱 六事責: 은나라 탕왕이 상림에서 비를 빌 적에 여섯 가지 일을 들어 스스로 책임을 물었다는 고사 즉 징세․노역․사치․시기․뇌물․참소 등.
⑬ 人相食~解惑: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글을 보고 그럴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그 의문이 이제 풀렸다는 뜻.
(144-042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41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41일차에서도 '간암공(세옥)의 유작(임계탄)'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 주) 41-46일차에는 간암공의 유작 중 '임계탄'이 계속이어집니다.
[본문내용- 선조님들의 유시 등(간암공의 임계탄) 계속]/ 무곡
임계탄은 임자와 계축년(영조 8년과 9년, 1732-1733)에 연이어 흉년이 들다가 기근이 발생한 참상 및 관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한 가사인데, 그 내용과 비판의 강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무곡
"七年旱 異甚하나 殺年니 되랴하면
칠년한 이심하나 살년이 되랴하면"
殺年이란 글귀가 눈에 번쩍 들어오네요. 당시 백성들의 참상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통제불능사태로 봐야겠습니다.
"이리 혜고 저리 혜니 살아날 길 전혀 없네"
결국 대책없는 생활고의 연속이네요./ 벽천
위윤기 님
살인적인 흉년이었던 것 같네요
전남의 곡창지대가 그 정도라면 다른 곳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닐까요/ 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