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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 1-12절. 유대인의 구원에 대한 말씀
로마서 11장은 유대인의 구원 문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즉 오늘 11장 1-12절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음을 말씀합니다.
즉 이방인 구원자의 수가 차면, 구약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say then, God has not rejected His people, has He? May it never be! For I too am an Israelite, a descendant of Abraham, of the tribe of Benjamin.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Λέγω οὖν, μὴ ἀπώσατο ὁ Θεὸς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
I say then, did reject the God the people of Him?
‘말하노니’(Λέγω)는 현재형이고(I say), ‘버리셨느냐’(ἀπώσατο)는 부정과거형으로서 단호하게 버려버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μὴ γένοιτο·
Never may it be!
여기 동사(γένοιτο)는 부정과거 기원법 동사로서(may it be) 결단코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καὶ γὰρ ἐγὼ Ἰσραηλείτης εἰμί,
and for I Israelite am
‘이요’(εἰμί)는 현재형입니다(am).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ἐκ σπέρματος Ἀβραάμ, φυλῆς Βενιαμείν.
of seed of Abraham, of tribe of Benjamin
1.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지 아니하신 이유를 여러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로다
그렇습니다.
바울 자신도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불신하고 교회를 핍박하였으나,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사 구원해주실 뿐만 아니라, 사도의 직분까지 감당케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1:13-14.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긍휼을 입었노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15-16.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불신하고, 박해하던 바울 같은 지독한 유대인도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받은 것을 보면, 지금 완악하게 예수님을 대적하는 다른 유대인도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바울이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받은 것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인데(마태복음 1:21),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겠냐는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서 ‘자기 백성’이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민족을 초월해서 이방인이나 유대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2.둘째, 성경을 상고해볼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실 것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 하시며, 버리지 아니 하시리라.
여호수아 1:5.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며, 버리지 아니 하리라.
사무엘상 12:22. 하나님께서 너희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고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 하실 것이라.
시편 94:14.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 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 하시리로다.
성경의 결정적 증거를 열왕기상 19장의 엘리야 사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God has not rejected His people whom He foreknew. Or do you not know what the Scripture says in the passage about Elijah, how he pleads with God against Israel?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οὐκ ἀπώσατο ὁ Θεὸς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 ὃν πρνωοέγ.
not did reject the God the people of Him, whom He foreknew
‘미리 아신’(προέγνω)은 부정과거로서(He foreknew) 의도적으로 미리 아신 것을 뜻하고, ‘버리지’(ἀπώσατο)도 부정과거로서(did reject) 단호하게 의지적으로 버리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ἢ οὐκ οἴδατε ἐν Ἡλείᾳ τί λέγει ἡ γραφή,
or not have known you in Elijah what says the scripture
‘말한’(λέγει)은 현재형이고(says), ‘알지’(οἴδατε)는 완료형입니다(have known you).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ὡς ἐντυγχάνει τῷ Θεῷ κατὰ τοῦ Ἰσραήλ;
how he pleads with the God against the Israel
‘고발하되’(ἐντυγχάνει)는 현재형입니다(he pleads).
1.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란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란 말씀(시편 94:14)을 인용한 것인데, 사무엘상 12장 12절에도 “여호와께서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같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이고(에베소서 1:4),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로마서 8:30),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디도서 3:5), 은혜로 구원하신 것입니다(에베소서 2:5).
이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도 모두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이것이 최초 예루살렘 총회(AD 50년)의 결론입니다.
3절.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Lord, THEY HAVE KILLED YOUR PROPHETS, THEY HAVE TORN DOWN YOUR ALTARS, AND I ALONE AM LEFT, AND THEY ARE SEEKING MY LIFE."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Κύριε, τοὺς προφήτας σου ἀπέκτειναν,
Lord, the prophets of you they have killed
‘죽였으며’(ἀπέκτειναν)는 부정과거로서 역사적으로 이사라엘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단호하게 의지적으로 죽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τὰ θυσιαστήριά σου κατέσκαψαν,
the altars of you they have torn down
‘헐어버렸고’(κατέσκαψαν)도 부정과거형으로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이 주의 제단을 단호하고 의지적으로 헐어버린 사실을 뜻합니다(they have torn down).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κἀγὼ ὑπελείφθην μόνος, καὶ ζητοῦσιν τὴν ψυχήν μου.
and I have been left alone, and they are seeking the life of me
‘남았는데’(ὑπελείφθην)는 부정과거 수동태이고(have been left), ‘찾나이다’(ζητοῦσιν)는 현재형으로서 현재도 계속 찾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they are seeking).
1. 바울은 엘리야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남은 자가 구원 얻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열왕기상 19장 10절에서 엘리야는 여호와의 백성이 자기 혼자만 남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마저 죽이려 한다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 고발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상 19장 18절에서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엘리야는 자기 외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다 타락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엘리야 외에도 7천명의 하나님의 백성이 남아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바울 당시에도 유대인들 중에 바울이나 믿은 성도들 외에 모든 유대인들이 버림받은 백성이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지만, 엘리야 시대처럼 유대인들 중에도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2. 믿는 유대인들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엘리야처럼 불신 유대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송사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남을 정죄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는 범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고, 순수한 신앙을 가진 7천인을 남겨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hat is the divine response to him? "I HAVE KEPT for Myself SEVEN THOUSAND MEN WHO HAVE NOT BOWED THE KNEE TO BAAL."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ἀλλὰ τί λέγει αὐτῷ ὁ χρηματισμός;
But what He speaks to him the divine answer?
직역하면 ‘그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그가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냐?’는 뜻입니다.
‘대답’(χρηματισμός)이란 ‘하나님의 응답, 계시의 말씀’( divine response, oracle)을 가리킵니다.
‘말씀하신’(λέγει)은 현재형입니다(He speaks).
내가 나를 위하여---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Κατέλιπον ἐμαυτῷ ἑπτακισχιλίους ἄνδρας,
I have left to Myself seven thousand men
‘남겨두었다’(Κατέλιπο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I have left) 단호하게 의도적으로 남겨두신 것을 표현합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οἵτινες οὐκ ἔκαμψαν γόνυ τῇ Βάαλ.
who not bowed knee of the Baal
‘무릎 꿇지’(ἔκαμψαν)는 부정과거로서(bowed) 단호하게 의지적으로 무릎 꿇지 아니 한 것을 가리킵니다.
1. 그러므로, 엘리야처럼 불신 유대인을 비난하고, 송사할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스데반처럼, 불신자 원수라도 불쌍히 여기며, 저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262장. 어둔 죄악 길에서 목자 없는 양같이, 모든 사람 길 찾아 헤멘다. 자비하신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사, 너를 지금 부르니 오시오. 이 때라 이 때라 주의 긍휼 받을 때가 이때라. 지금 주께 나아와 겸손하게 절하라, 구원함을 얻으리 얻으리.
2. 성경 역사를 볼 때, 어느 시대나 하나님을 믿는 <남은 자>가 있습니다.
홍수 심판 때도, 노아의 가족이 남은 자였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 시에도 롯의 가정이 남은 자였습니다.
5절. 그런즉 이와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the same way then, there has also come to be at the present time a remnant according to God's gracious choice.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οὕτως οὖν καὶ, ἐν τῷ νῦν καιρῷ, λίμμα κατ’ ἐκλογὴν χάριτος γέγονεν·
thus then also, in the present time, remnant according to erection of grace there has been
‘있느니라’(γέγονεν)는 현재 완료형입니다(there has been).
1. ‘이제도’가 중요합니다.
여기 ‘이제도’란 바울 당시를 가리킵니다.
바울 당시에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 하고,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많은 신자들이 유대나라를 떠나서 외국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사도행전 8:1)
이처럼 유대인들이 국가적으로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믿는 자가 수만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1: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고 구원받은 남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이 국가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하나님의 긍휼로 믿는 백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실 때, 미리 우리의 선행을 내다보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를 보고, 택했다면, 은혜가 아닙니다.
6절.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it is by grace, it is no longer on the basis of works, otherwise grace is no longer grace.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εἰ δὲ χάριτι, οὐκέτι ἐξ ἔργων,
if now by grace no longer from works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ἐπεὶ ἡ χάρις οὐκέτι γίνεται χάρις.
otherwise the grace no longer would be grace
여기 동사(γίνεται)는 현재형입니다(would be).
1. 바울을 비롯해서 ‘남은 자’에 해당하는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로운 행위를 보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만일 구원이 우리의 공로로 된 것이라면 자랑할 수 있을 것이나, 오직 나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은혜로 천국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고 감사할 뿐입니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2. 이처럼 남은 자 즉 선택된 소수 외에는, 완악하여져서 불신앙으로 떨어졌습니다.
7절.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at then? What Israel is seeking, it has not obtained, but those who were chosen obtained it, and the rest were hardened;
그런즉 어떠하냐?
Τί οὖν;
What then?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ὃ ἐπιζητεῖ Ἰσραήλ, τοῦτο οὐκ ἐπέτυχεν,
what is seeking Israel, this not it obtained
‘구하는’(ἐπιζητεῖ)는 현재형으로서 ‘구하고 있는’(is seeking)의 뜻이고, ‘얻지(ἐπέτυχεν) 못하였고’는 부정과거로서 ‘얻지 못했고’란 뜻입니다(obtained).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ἡ δὲ ἐκλογὴ ἐπέτυχεν·
the but elect obtained
‘얻었고’(ἐπέτυχεν)는 부정과거입니다.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οἱ δὲ λοιποὶ ἐπωρώθησαν,
the now rest were hardened
‘우둔하여졌느니라’(ἐπωρώ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이고(were hardened), 원형(πωρόω)는 ‘굳어지다, 경직되다’(harden, petrify)는 뜻입니다.
1. 본절의 ‘남은 자’는 택하신 백성 외에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5절에서 택한 백성 중에 ‘남은 자’를 가리키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2.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로마서 9:31)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즉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려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의를 얻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오직 예수님의 속죄를 믿음으로 의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 여기서 ‘우둔하여졌다’(ἐπωρώ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이고로서 ‘우둔하여졌다, 완악해졌다’(were hardened, were rendered callous, were petrified)는 뜻이고, 이것은 의학용어로서 <굳은 살이 박혀 암덩어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택한 백성 외에 남은 불신자들은 마음이 우둔하게 되고 완악해져서, 주님의 용서와 긍휼과 은혜를 거역하고, 예수님의 크신 구원을 완악하게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100일간 일할 빚을 용서받아도 감사무지한데도, 일만 일(30년간)의 품삯을 용서받고서도 감사 감격하지 못한 것은 그 마음이 완악하고 우둔하기 때문입니다.
8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just as it is written, "GOD GAVE THEM A SPIRIT OF STUPOR, EYES TO SEE NOT AND EARS TO HEAR NOT, DOWN TO THIS VERY DAY."
기록된 바
καθάπερ γέγραπται
as it has been written
여기 동사(γέγραπται)는 현재분사 수동태입니다(has been written).
하나님이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을—-- 주셨다
Ἔδωκεν αὐτοῖς ὁ Θεὸς πνεῦμα κατανύξεως,
gave them he God spirit of stupor
‘주셨다’(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 단호하게 주어버린 동작을 가리킵니다.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ὀφθαλμοὺς τοῦ μὴ βλέπειν καὶ ὦτα τοῦ μὴ ἀκούειν,
eyes of the not to see and ears of the not to hear
‘보지’(βλέπειν)와 ‘듣지’(ἀκούειν)는 둘 다 부정사형(to see, to hear)입니다.
오늘까지
ἕως τῆς σήμερον ἡμέρας.
unto the today day
1.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해지고 완악해져서 자기 의만 주장하고, 예수님을 믿는 의를 얻지 못한 것은 결국 성경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는 신명기 29장 4절 말씀과 이사야 29장 10절 말씀에 예언된 것이 성취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신명기 29장 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다”고 하시면서, 4절에서는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29장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혼미한 심령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크신 기적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의 크신 십자가 구원을 보고도 믿지 못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만드신 것은 보고 깨달으라는 것이고, 귀를 만드신 것은 듣고 믿으라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의 크신 십자가 구원을 보고, 복음의 전도를 듣고도, 믿지 않고 거역했다는 안타까운 탄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시면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이사야 6:9-10).
예수님과 사도들도 이 말씀을 인용했습니다(마태복음 13:14-15. 마가복음 4:12. 누가복음 8:10. 요한복음 12:40. 사도행전 28:26-27).
2. 9절과 10절에서는 다윗이 한 말을 인용합니다.
9절.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David says, "LET THEIR TABLE BECOME A SNARE AND A TRAP, AND A STUMBLING BLOCK AND A RETRIBUTION TO THEM.
또 다윗이 이르되
καὶ Δαυεὶδ λέγει
and David says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입니다(says).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되게 하시옵고
Γενηθήτω ἡ τράπεζα αὐτῶν εἰς παγίδα καὶ εἰς θήραν
Let be the table of them for snare and for trap
‘되게 하옵시고’(Γενηθήτω)는 부정과거 명령형 수동태입니다(Let be).
거치는 것과 보응이
καὶ εἰς σκάνδαλον καὶ εἰς ἀνταπόδομα αὐτοῖς,
and for stumbling block and for retribution to them
10절.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LET THEIR EYES BE DARKENED TO SEE NOT, AND BEND THEIR BACKS FOREVER."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하옵소서
σκοτισθήτωσαν οἱ ὀφθαλμοὶ αὐτῶν, τοῦ μὴ βλέπειν,
let be darkened the eyes of them, of the not to see
직역하면 ‘그들의 눈이 보지 못하도록 흐려지게 하옵소서’란 뜻입니다.
‘흐려지게 하옵소서’(σκοτισθήτωσαν)는 부정과거 명령형 수동태이고(let be darkened), ‘보지’(βλέπειν)는 부정사형입니다(to see).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καὶ τὸν νῶτον αὐτῶν, διὰ παντὸς σύνκαμψον.
and the beck of them, for ever bent over
‘굽게 하옵소서’(σύνκαμψον)은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nt over) 단호하게 확 굽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1. 이 말씀은 시편 69편 22-23절을 인용한 것인데, 의로운 사람을 박해하는 악인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 25절에서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시편 69:4)을 인용하셨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 말씀은 인용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둔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거역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우둔하고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 사건을 보고도 구원을 얻지 못하고, 복음 전도를 듣고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편 119:18)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사”( 에베소서 1:18)라고 기도한 것처럼, 주님이 우리 마음의 눈을 항상 밝혀주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도할 때도 불신자들의 마음을 주께서 열어주셔서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기도하고 전도할 때, 주님이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믿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3. 또한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완악하게 된 것도, 측량못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되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서, 이방인 구원을 위해서 유대인들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에, 때가 되면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셔서, 예수님 믿게 만드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로마서 14:4.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주인(하나님)께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세우실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11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say then, they did not stumble so as to fall, did they? May it never be! But by their transgression salvation has come to the Gentiles, to make them jealous.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Λέγω οὖν, μὴ ἔπταισαν ἵνα πέσωσιν;
I say then, not did they stumble that they might fall?
‘말하노니’(Λέγω)는 현재형이고(I say), ‘넘어지기’(πέσω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동사이고(they might fall), ‘실족하였느냐’(ἔπταισαν)는 부정과거입니다(did they stumble).
이 문장에는 부정사(μὴ, not)와 의문형이 섞여 있어서 번역하기 어려우나 우리성경은 번역이 잘 되었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μὴ γένοιτο·
Never may it be!
여기 동사(γένοιτο)는 부정과거 기원격입니다(may it be).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ἀλλὰ τῷ αὐτῶν παραπτώματι ἡ σωτηρία τοῖς ἔθνεσιν,
but in the of them trespass the salvation to the Gentiles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εἰς τὸ παραζηλῶσαι αὐτούς.
so as to provoke to jealousy them
‘시기 나게’(παραζηλῶ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 엄청 시기 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to provoke to jealousy).
1. 바울은 1절에서 질문한 것에 이어서 11절에서 ‘그들(이스라엘인)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했느냐?’고 묻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절하여 실족했는데, 그것으로 완전히 넘어져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넘어지기까지 끝나버렸는가라?’는 말씀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μὴ γένοιτο: Never may it be!)라고 말씀합니다.
결론적인 것을 미리 말씀하자면, 먼저 이스라엘이 실족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고, 결국 이스라엘이 장차 시기하여(로마서 10:19) 민족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는 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너를 인하여 모든 백성이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8-9.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2절.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if their transgression is riches for the world and their failure is riches for the Gentiles, how much more will their fulfillment be!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εἰ δὲ τὸ παράπτωμα αὐτῶν πλοῦτος κόσμου
if but the trespass of them (is) riches of world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καὶ τὸ ἥττημα αὐτῶν πλοῦτος ἐθνῶν,
and the failure of them (is) riches of Gentiles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πόσῳ μᾶλλον τὸ πλήρωμα αὐτῶν.
how much more the fullness of them
이 문장에는 동사가 없으나 우리 번역은 잘 된 번역입니다.
1. 본절에서 ‘풍성함’이란 ‘구원’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의 넘어진 것은,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비밀스런 섭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이방인의 구원과 축복이 되었다면, 다시 이스라엘인이 회개하고, 예수님 믿으면, 이미 믿은 이방인 신자들과 새로 민족적으로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함께 얼마나 큰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겠습니까?
이 이스라엘인들은 구약에서 구원의 약속이 확실하게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거국적으로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25-26.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로마서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사무엘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이 구원 섭리를 위해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 모시고 삶으로써, 하나님께서 성도님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의 역사를 마음대로 이루어가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님도 형통한 복을 받으시고, 가족들과 이웃들도 구원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