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못 예술가 앤드류 마이어스
나사못 경전 / 김종철(1947-2014)
나사못은 나선형입니다
몸속을 파고들 때나 빠져나올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흔들어도 소리 나지 않는’ 용각산처럼
십자드라이버로 꼭 잠근
나사 머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인간이 고안한 최고의 발명품으로
평가받은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십자 볼트와 십자드라이버가
무슬림에 퍼진 것도 우연이 아닌 것처럼
그가 목수였던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나선형으로 하늘 오른 바빌론이
노여움 받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당신의 정수리에 열십자가 새겨진 것도!
그 나사못이 경전의 한 줄이 된 것도!
‘못의 사제’ ‘못의 시인’이라 한 시인의 「나사못 경전」은 유동식 교수의 『풍류신학의 여로』를 읽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나라 고유정신인 ‘풍류도風流道’를 통해 한국적 신학인 한‧삶‧멋을 나선형으로 한 신학구조와 닮았기 때문이다. 김여란이 “종교적 소재를 사회적인 상상력과 결부시킴으로써 신선한 깨우침을 주기도 하였다”고 말한 것처럼 시인의 『못의 사회학』은 이채롭고 독보적이지 않을 수 없다.
못은 재료에 따라 쇠, 대, 나무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 나사못은 돌려 박는 쇠못으로 상대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며 제 몸을 비틀어 기물에 소리 없이 자리를 잡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흔적이 남더라도 나사못 같은 사랑을 희구하는 이들도 있는 나사못의 형질을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신성사한 「나사못 경전」은 시인의 말마따나 “나 죽은 뒤 나로 살아갈 놈들” 가운데 하나이다.
시는 그리스도의 침묵으로 시작한다. 마태가 인용한 예수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가장 긴 성취인용문인 12장 19절에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는 구절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것 또한 ‘나사못’이다. 카피 문구 “‘흔들어도 소리 나지 않는’ 용각산처럼” 소리 없이 “파고들고”, 소리 없이 “빠져나오는” 못의 머리에는 ‘한일자’도 있지만 ‘열십자’로 된 ‘십자가’를 통해 단단히 박혀 있는 ‘나사못’은 “인간이 고안한 최고의 발명품”이듯 인간이 고안한 최고의 형틀이 또한 ‘십자가’임을 언표하고 있다.
이 “우연이 아닌 것”들 가운데 “십자 볼트와 십자드라이버가/무슬림에 퍼진 것”이다. 무슬림은 예수나 예수의 십자가를 신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십자 볼트나 십자드라이버는 자주 쓰는 공구이며 부품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 죽음의 십자가를 믿던 믿지 않던 결속의 머리가 분명한 ‘나사못’을 사용하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일이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우연이 아닌 것”은 예수의 생업이 목수였다는 것이다. 마태 13장 55절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하였고, 누가 4장 22절에는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였지만, 마가는 6장 3절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는 보다 구체적인 고향 사람들의 증언으로 예수가 목수였음을 밝히고 있다. 예수 또한 ‘못’을 수 없이 사용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십자나사못은 1900년대 초 미국의 엔지니어 헨리 필립스 Henry Frank Phillips에 의해 발명됐다.
“나사못은 나선형입니다”는 명제는 오름의 형태를 통해 “노여움 받은”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오만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를, 서로가 알아들을 수 없는 ‘혼란’의 원인을 통하여 인간의 무절제를 다스려 주시는 하나님에 구원의 목표에서 ‘나사못’은 또 하나의 경종이 되고 있다.
사람에게 ‘나사못’은 반드시 가마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정수리라는 숨구멍으로 비유되고 있는데 사물의 꼭대기, 혹은 머리에 ‘십자가’라는 ‘못’이 있음 또한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경전의 한 줄”인 ‘못’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사회학은 곧 ‘못의 사회학’이다.
못을 통해 육체와 정신을 탐구한 시인은 “못대가리가 없는”(「나 죽은 뒤」) 끔직한 세상을 견딜 수 없어하기도 한다. 시인은 대가리가 없는 「무두정無頭釘에 대하여」 ‘거슬리지’도 ‘개의치’도 않는 “눈물 없이” 우는 비정한 존재들이라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도 허다하니 거대한 ‘못의 사회학’ 속에서 ‘인간 평등의 정신’을 묘파하고자 한 시인의 못 자국이 선현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