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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포리 포대에 오르다
김우식 용사는 남원읍 신례2리에서 태어났다. 1950.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해병 제3기생으로 입대한 후 해병 제1대대 제2중대 제2소대 소속으로 참전하였다. 어릴 때부터 강한 체격과 성격도 쾌활하고 용감해서 군에 입대해서도 늘 첨병이었다. 제2중대가 강원도 고성에서 원산에 도착한 직후였다. 12월1일 오전 9시경 제2중대는 트럭에 승차하라는 지시를 받고 차 위에 올라가 앉았다. 지상에는 살짝 눈이 덮였고 날씨는 쌀쌀하여 대지가 꽁꽁 얼어붙은 듯 했다. 차는 여러 시간을 달리다가 마전리 미해병대 기지에서 잠시 쉬었다. 그런 후 계속 높은 산으로 오르는데 밑은 까마득한 계곡이라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산 정상에 주둔한 미해병대 포병대였다. 그곳에 이르자 미군들이 나와 손을 흔들며 반겼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적이 들이닥칠 위험한 순간에 증원군이 왔으므로 그들도 살았다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곳에슨 벙커마다 시레이션(전투식량)이 가득히 쌓여 있었고 먹고 싶은 대로 가져다 먹으라고 했다. 김 수병도 배낭에 1인용 시레이션을 2개나 접어 넣고 1개는 포장을 뜯어 실컷 먹었다. 지금껏 배를 곯았던 터에 포식을 하고나니 그처럼 좋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누비었다. 어는 구석진 벙커에 가보니 역시 골판지 상자가 몇 개 쌓여 있어 호기심으로 열어봤더니, 양담배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횡재였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남모르게 운반하느냐가 문제였다. 다른 병사들이 보게 되면 골초들에게 모두 탈취당할 것이고, 골똘히 한참을 생각하다가 얼른 그 상자를 원상태로 놓고 그 주변에 있는 쓰레기로 덮었다. 그리고는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혹시 버려진 가방이 없나 살폈다. 운이 좋으려니 마침 큰 피복가방이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김 수병은 얼른 꺼내서 툭툭 털어낸 후 누가 볼세라 재빠르게 담배 박스로 달려가 럭키스트라익 담배를 300갑이나 가득 담았다. 나머지 100여 갑은 그제야 전우들을 불러 선심 쓰듯이 한 갑씩 나눠주니 좋다고 환호를 질렀다.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에게는 1보루(10갑)를 별도로 챙겨서 갖다 주니 칭찬일색이었다. 이렇게 고지 생활은 잘 먹고, 잘 피우면서 전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군대에서는 이곳이 바로 천당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는 않았다. 이틀 후 3일 새벽 3시경 해병 제3대대가 그 험악한 아호비령을 넘어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래서 이곳 용포리에서 제3대대와 합류하게 되어 제1대대 제2중대도 철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철수할 때는 설산 위를 넘어오면서 기진맥진한 3대대와 미군들에게 트럭이 우선 제공되었다. 그러다보니 1대대 2중대는 후미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래서 난감해진 중대장은 각자 요령껏 차량이나 탱크에 편승해서 원산 동해중학교까지 도착하도록 하는 불가피한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김 수병은 욕심을 내어 담배를 잔뜩 담은 큰 가방이 걱정이었다. 이제라도 담배를 버리면 간편하지만 그것도 아까웠고 뒤로는 중공군이 쫓아오고 이러다가 낙오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망설이는데, 구세주 같은 지프차가 달려왔다.
그 미군 지프차 안에는 사람이 가득 했지만 인정 많은 미군은 차에 타라고 한다. 그러나 담배가방을 들고 들어 갈 수가 없어서 마침 지프차 뒤에 매달려 가는 츄레라에 타기로 했다. 그렇게 100여 미터를 가다가 지프자가 덜커덩하고 급정거를 하더니 운전사가 김 수병에게 위험하다며 츄레라 앞쪽으로 앉도록 하고는 츄레라에 김 수병을 단단히 묶어서 요동을 쳐도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 미군의 인명존중과 안전의식에 탄복하면서 땡큐를 연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달려가다 보니 길은 험하고 이리저리 휘어져서 지프차와 츄레라가 따로 따로 달리는 것 같은 곡예운행을 했다. 그 때마다 김 수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몸이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았지만 묶여있어서 추락을 면할 수 있었다. 미군 운전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그 담배 때문에 찬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원산 동해중학교에 도착했다. 배낭에는 시레이션 2개와 담배 300갑이 들어있으니,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미 제3대대도 미해병대와 배차한 GMC트럭에 편승하여 무사히 철수해 있었다. 이 때 적은 마식령산맥을 넘어 동진하여 원산을 향하고 있었다. 1대대, 1,3중대는 원산 외곽을 방어하려 출동해버렸고 2중대만 남아 있었는데, 전시지만 낮에 외출이 허용되었다.
□ 여학생과 데이트
이 기회에 김 수병은 동기생과 어울려 외출을 가게 되었다. 엊그제 미군 진지에서 가져온 담배 1보루와 건빵 1봉지를 누런 외투 주머니 속에 넣고 나갔다. 원산거리는 이곳저곳에서 몰려든 피난민으로 북새통이었고 주민들이 부산하게 오고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원산 여자중학생들은 검정 세일러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미인들이었다. 과연 남남북녀가 맞는 말이었다. 그 여학생들은 우리 해병들을 보고 수줍어하지 않고 활발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국방군동무!” “오! 학생들도 안녕하신가? 우리들은 이곳을 잘 모르니 시내를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예, 그렇게 하갔시오.”하고는 이내 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쌍쌍이 거리를 활보했다. 김 수병은 가슴이 마구 뛰고 황홀한 감정이 온 몸을 뒤덮었다. “국방군 동무, 성함이 뭐야요?” “아, 나는 2중대 김우식 수병이야. 왜 그렇지?” “내일 동해 중학교로 면회 가겠시오.” “그렇게 하지.” 라고 대답하고는 둘은 마치 연인처럼 시내를 돌아다녔다. 헤어질 때는 건빵과 양담배를 주었더니 물자가 귀한 원산 땅에서는 진품이었기에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참으로 감사합네다. 감사합네다.” 연신 머리를 꾸벅거렸다. 2시간 외출 시간은 짧았다. 지는 해가 너무 야속했다. 김 수병은 부대로 돌아와 지정된 구역에서 경계 근무에 임했다.
다음 날 12월5일 동해 중학교 정문에서 기별이 왔다. 어느 여학생이 김 수병을 찾는다고 했다. 보나마나 어제 그 여학생으로 짐작되었다. 그래서 상관에게 외출 허가를 받고 백 속에 양담배 1보루와 건빵도 2봉지 외투 속에 집어넣고 정문으로 나갔다. 짐작대로 그 여학생이 학교 정문에 서서 안쪽으로 누가 나오나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김 수병이 나가자 그녀는 기다리던 애인을 만난 것처럼 기뻐했고, 김 수병도 천하미인을 대하고 보니 무엇에 홀린 듯 그녀에게 매료되어 갔다. 귀신도 잡는 해병이었지만 매력이 넘치는 여학생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말았다. 그게 사람이고 인지상정이었다. 어느새 청춘남녀는 어깨를 가까이 맞대면서 걸어갔다. 원산 시내 분위기는 추워지는 겨울날씨처럼 삭막하고 무서운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보따리 등을 매고 들어온 피난민은 항구의 선착장으로 무작정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김 수병은 그 여학생과 원산의 풍물을 이야기하며 거닐다가 시간이 다 되어 작별을 하게 되었다. 이 때 담배와 건빵을 건네자, 큰 선물을 받은 듯 무척이나 기뻐했다. “안녕히 가세요. 내일 다시 찾아갈게요.” “그럼, 학생도 안녕히.”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김 수병은 동해중학교로 귀대했다.
12월6일 은은한 포성이 들려왔고 중공군은 원산 남부인 안변에 침입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적은 이미 원산을 포위하여 사방으로 조여 왔다. ‘아,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 말단 병사로서는 명령하면 출동할 뿐 전투 상황은 알 수가 없었다. 이 시간 이후에 불어 닥칠 운명을 전혀 모른 채 그날그날을 살고 있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찌푸렸고 눈발이 날릴 때 김 수병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때 정문에서 어느 남녀학생이 면회를 왔다는 기별이 왔다. 여학생은 어제 소녀겠지만 남학생은 누굴까 하며 담배를 챙기고 나갔다. “수병님, 비무장외출은 안됩니다. 총기를 가지고 가십시오.” 하고 경고를 주었다. 그래서 김 수병은 내무실로 뛰어가서 M1소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나왔다. 그 여학생이 웃으면 반갑게 애인처럼 맞이했다. 옆에는 남자 중학생이 있었다. 혹시 그들이 애인관계나 아닐까 내심 짐작하고 있는데, “국방군 동무, 이 학생은 제 오빠야요.” “아, 그래, 그러면 함께 나가자.” 셋이 거리를 거닐었다. 어제와 같이 시내는 주민들의 피난준비에 부산했다. 셋은 원산 거리를 한발두발 올려놓고 있었다. 먼저 여학생이 입을 열었다. “어제 담배 주셔서 요긴하게 선물했시오.” “그러면 나도 기쁘네, 자, 오늘도 담배 가지고 왔다. 이것 받아라.”하고 그 오빠에게 건넸다. 그 남학생은 웬 떡이냐 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 귀한 것을 어데서 구했습네까?”하며 감사합네다를 연발했다. “참, 국방군 동무는 인정도 많습네다.”하고 고마워했다. 그런데 그 남학생으로부터 이외의 정보가 흘러나왔다. “곧 국방군이 철수한다고 합네다. 그리고 중공의용군과 북한군이 오늘 덕원 지방에 들어왔다면서 피난민들은 원산항으로 들어가 배를 타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네다.” “음, 그런가?” 순간 김 수병은 신음소리가 나왔고, 그 여학생의 백옥 같은 하얀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보였다. “국방군 동무, 우리들 만남도 이제는 끝인가 봐요.” “아, 글쎄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아참, 학생도 월남하지 왜 그대로 있나?” “저야요. 아버지가 노동당원이야요. 그래서 남반부에 가도 그 때문에 설움 받을 것 같아요.” “아니야, 남한에서는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를 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당원이라고 해서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 걸세.” “그래도 아버지만 두고 갈 수는 없네요. 저희들은 여기 남겠시오.” 이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귀대시간이 되었다. “자, 학생, 나는 들어가 봐야겠다.”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세요.” “학생도 부디 잘 있어.”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귀대하였다. 돌아와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같은 소대원들이 야릇한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웬일일까 하고 무심히 지내다가 담배가 든 가방을 열어보니, 헐렁해지고 많은 양이 없어져 버렸다. 모르게 둔다고 했지만 이를 눈치 챈 병사들이 어느새 이것을 꺼내서 다들 피고 있었다. “누가 내 담배를 킨바이(도둑질) 해갔나?”하고 버럭 소리를 한마디 하는 것으로 그쳤다. 사실 전황 돌아가는 것을 보니 앞으로는 그 여학생을 만나 선물할 기회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공동물건이었다. 김 수병도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배낭과 모포, M1소총까지 모두 킨바이 한 것이 많았다. 수도 탈환 때는 미해병대 탱크 속에 걸어 둔 것을 미군이 없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미군 장비를 훔쳐 그것으로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맥아더 원수 보급품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김 수병은 웃음이 나왔다.
□ 해병 제1대대 명사십리 철수
12월7일 제3대대가 철수하자 그 이튿날부터 중공군이 원산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병 제1대대도 12월8일 10시경 명사십리에 있는 원산비행장으로 이동하였다. 그 즉시 비행장 주변에 배치되어 방어임무에 돌입하였고 김 수병은 미공군 막사에 숙소를 정하고 정문 경비를 담당했다. 그 비행장 정문은 접을 수 있게 철조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미 항공기는 이륙해버려 보이지 않았고 철조망 밖에는 4차선 활주로에 200여 미터 정도는 빽빽하게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해병들과 함께 자유대한으로 월남하려는 피난민들이었다. 그들은 문을 붙잡고 한사코 해병부대로 진입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는데 인정 많은 보초가 문을 열면 밀물 들어오듯이 마구 밀고 들어왔다.
드디어 12월9일 LST 2척이 명사십리 갈색 모래판에 닻을 내렷다. 탱크, 차량, 대포 등 장비를 탑재하고 나머지 장비와 병참물자는 10여 군데 집적시켜 놓았다. 김 수병은 중대를 따라 선실 안에 들어가자 일체 나오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얼마 업서 배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 이제는 돌아다녀도 좋다고 했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상갑판으로 뛰어 올라갔다. 배는 명사십리에서 외항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김 수병은 한참동안 원산시내를 쳐다보았다. 그게 김 수병이 본 마지막 원산항 모습이었다. 그 때 윙~ 하고 전투기가 날아오더니 군수품 집적한 곳에 소이탄을 투하하였다. 번쩍하고 불기둥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하늘을 뒤덮었다. 바로 적재하지 못한 군수품을 적이 사용하지 못하게 소각하고 있었다. 그 후 김 수병이 배 안으로 들어와 화물창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피난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전쟁이 낳은 비극이었다.
<발췌> 정수현, [한라의 젊은 영웅들], 제주특별자치도재향군인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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