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고, 빼고, 나누고, 붙여라!
-홍성 귀농·귀촌인의 지역활성화 사례들
삶터를 옮기는 것 자체가 지역활성화의 시발점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귀농이란 말이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 이십여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렇게 관련 전문가님들과 한 자리에 모여 도시인에서 촌사람으로 변신한 이들이 농촌지역에 끼친 영향과 성과, 그리고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짚어보는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97년 가을, 서울살이를 접고 충남 홍성으로 향할 때는 부푼 마음보다는 새롭게 맞이할 삶과 일에 대한 우려가 더 컸지만, 17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저 개인적으로는 ‘참 잘 왔다’하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돈벌이는 초창기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어도 시골에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왔기에 단순히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숨은 가치들을 늘 호흡하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일요일인 어제(5월 16일) 저의 일과를 점검해보면 대략 가늠해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삼백여평의 참깨밭을 돌보고 귀농 예정자 한 사람과 한 달 전 귀촌한 이와 함께 그이들이 삶터로 관심있어 하는 택지를 함께 둘러봤습니다. 이곳 홍동에는 작년부터 4~5곳에 10채 안팎의 전원주택 부지부터 수십여채에 이르는 빌라 형태의 공동주택 개발에 이르기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사람이 관심있어 하는 부지는 시흥의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지역민의 과수원을 3.3㎡ 당 십만원에 사들여 계단형 택지를 조성하고 토목공사비와 이익을 덧붙여 22만원에 분양중입니다. 이는 마치 90년대 중반에 경기도 광주나 양평 등 풍광이 수려한 곳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전원주택 부지 분양과 유사한 형태로 홍동은 물론 군내 다른 면에서도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규모 은퇴와 맞물린 농촌지역의 주목할만한 변화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2~3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니까요.
전에는 대부분 농가주택을 구입해 수리하거나 대지(垈地)나 농지를 사들여 전환후에 개별적으로 건축하는 예가 다반사였지 지금처럼 업자들이 달려들어 주변의 지형을 바꾸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인 예가 흔치 않았습니다. 귀농·귀촌인들이 자꾸 몰려들어 쉽게 집을 구하기 이곳의 특성이 반영되었겠지만 은하나 서부면 등의 변화를 살펴볼 때 앞으로 농촌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튼 그이들이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도 우려나 행정적인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이보다 앞서 비슷한 규모로 개발을 직접 진행한 귀농인 후배 두 사람과 용지를 매각한 지역민을 만나 땅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해당 필지의 시세를 22만원으로 잡고 30평형의 주택 건축비를 3.3㎡당 4백만원으로 추산하여 제세공과금과 조경, 경사면 작업비 등을 고려할 때 대략 가구당 2억원 안팎이 투입되는 셈입니다.
오늘 메인 테마가 귀농·귀촌과 지역 경제 활성화인데 그이들은 모두 2~3년 안으로 집을 집겠다하니 홍성 지역경제에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더해질 겁니다. 땅값으로 분양업자에게 총 1억 2천만원 가량이 빠져 나가겠지만 땅을 매매한 농민과 굴착기 기사, 인부들의 노임, 투입 자재, 세금 등은 온전히 홍성의 몫으로 남겠지요. 아직 귀농·귀촌인 다수가 집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근래들어 새 집과 공사현장이 자주 눈에 띄는 걸 보면 도시민의 시골행이 여러모로 지역의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공모사업 유치의 귀재-홍동, 장곡 귀농·귀촌인들
단순히 삶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가치의 창출외에도 홍성에는 도(道)단위 혹은 전국대상의 공기관과 민간, 기업에서 시행하는 공모사업에 비교적 자주 선정되고 있습니다.
사업비 규모가 수십억을 넘는 공모사업중 몇가지 예를 들면 70억원이 투입된 문당권역 마을종합개발 사업과 50억 가까운 홍성한우클러스터 사업이 있고, 최근 진행중인 ‘홍동길 보행환경 개선사업’에도 36억원의 사업비가 쓰이고 있습니다. 공모 주체는 농림부와 안행부 등 각기 다르지만 사업유치를 위해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이 다수는 예외없이 귀농·귀촌인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보다 금액이 적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유치한 군내 기관이나 단체의 핵심 멤버도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역시 거의 귀농·귀촌인들입니다. 저만 해도 앞서 소개해드린 문당권역 마을종합개발 사업의 기획위원으로 깊이 관여했습니다. 당시는 일종의 시범사업이었기에 공모서 작성에 무척 공을 들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한 농림부의 도시민 유치 지원사업의 공모서 검토와 프리젠테이션에 홍성군농업기술센터 주무계장님과 동행하여 P.T 현장에서 유치를 위해 열을 올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홍성이 1등이고 행정과 민간이 긴밀히 연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심사평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외 삼성 고른기회 장학재단이나 한국마사회의 농어촌 희망재단, 기타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다양한 기관의 크고 작은 사업을 따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쯤은 방문하셨을 마을활력소도 안행부 사업비 7천 2백만원을 종잣돈으로 운영하는 가운데 다시 여기에 모여든 귀농·귀촌인들이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 등으로 재생산하거나 확산시키는 지역경제 활성화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 한창 진행중인 홍동길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로인해 홍동초등학교-면사무소-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전공부-밝맑도서관 등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 중심으로 길이 안전하고 한층 아름다워진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공모사업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옛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기에 귀농·귀촌인들이 아이디어와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열정이 더해져 농촌의 모습이 한결 안전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풀무생협에서 의료생협까지...협업으로 해결한다
홍성에는 이미 32년 전에 도시생협과 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생산자 협동조합이 출범하여 전국 최고, 최대의 유기농 산지 조직으로 발전하였고 농협, 신용협동조합, 풀무학교 생협외에도 얼마전에는 협동조합의 완성이랄 수 있는 의료생협이 설립되었습니다.
2015년 4월 30일에 발표한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 설립동의자 명부를 찬찬히 훑어보면 제가 아는 귀농·귀촌 선후배들의 이름이 빠짐없이 눈에 띕니다. 총회에 가보니 더욱 실감이 날뿐더러 당장 의료진인 의사와 물리치료사 모두 귀촌인으로, 물리치료사는 작년부터 저희집에 머무는 아가씨입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청년귀농학교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어 홍성에 안착하였습니다. 1년이 넘는 설립 준비기간 동 변변한 급여 없이도 꿋꿋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도 대견해보입니다. 의사선생님 또한 홍동보건소에 근무한 인연으로 생협 설립을 주도하며 어려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간 의료생협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진료공간 문제가 이웃 마을의 건강관리실로 확정이 되어 제대로 이용되지 않던 시설이 이름값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마을 분들중에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일년여 동안 꾸준한 접촉과 설득으로 막대한 돈을 들여 신축을 하지 않고도 지역의 유휴 공간을 나누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귀농 이후 농촌의 의료문제, 그중에서도 고된 농사에서 비롯된 농부증의 예방과 치료를 노인복지 차원에서 주목해왔는데 이번 의료생협의 설립은 가히 협동조합의 산실(産室)이라 부를 수 있는 이곳 홍동면사(史)에도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획과 추진은 뜻있는 지역민과 귀농·귀촌인들이 연대하였지만 수혜자는 상대적으로 젊은 귀농·귀촌인보다는 지역의 어르신들이실 것 같아 다른 일보다 한결 뿌듯합니다. 총회 당일의 풍경에서도 드러나듯 귀농·귀촌인들이 접수에서 안내, 사회, 선물 증정에 이르기까지 행사를 도맡아 운영하는 모습이 지역민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