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자아우내순대>
소문난 맛집 다시 들렀다. 깔끔하며 단촐한 실내 분위기, 높은 이름에도 불구하고 방송 방영 홍보물 하나 없이 여전히 오늘의 음식과 오늘의 손님만 보고 간다. 잡냄새 없고 감칠 맛 나는 순대국과 순대는 양까지 푸짐하여 든든한 한끼에 몸과 맘이 다같이 만족스럽다.
1. 식당얼개
상호 : 박순자아우내순대
주소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순대길 47(병천명 병천리 173-6)
전화 :
2.먹은음식 : 순대국밥 8,000원, 모듬순대 13,000원
먹은날 : 2020.1.15.저녁
3.맛보기
메뉴는 사실상 두 가지다. 순대국밥과 순대. 두 가지를 다 주문했다. 순대국밥은 순대와 삶은 고기를 잔뜩 넣어 한그릇 그득하게 나온다. 개운한 국물 맛에 우선 회가 동한다.
순대는 혼자서는 도저히 먹지 못할 많은 양이 소복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냄새도 없으면서 모양새로 윤기 자르르, 탱탱하게 시각으로 식감을 보여준다.
한 그릇 그득한 순대국밥은 한끼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양이 많다. 맛깔나는 섞박지와 국밥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얼굴 가득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맛있어서, 흐뭇해서 몸과 맘을 개운하게 해주는 국밥 한 그릇, 누구나 힘을 내게 해주는 인심과 맛이 배여 있다.
매운 고추가 따라나와 기호대로 넣어 먹을 수 있다. 상위에 놓인 양념 중 고춧가루와 들깻가루를 첨가하여 맵게 혹은 진하게 가미하여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도 넣지 않아도 맛은 풍분히 개운하고 깊다. 국물맛도 진한데 순대와 머릿고기 내장 등 삶은 고기 등이 꽉 들어차 있어 먹고 나면 속이 꽉차는 기분, 보신하는 기분이다. 좋은 음식 보양식, 좋은 인심 손맛이다.
순대는 소위 피순대다. 오래오래 전에 혼인잔치나 환갑잔치에 가면 돼지 통째로 잡았을 때 먹을 수 있었던 순대, 이후에는 나이롱 순대라고 당면만 가득 든 것을 순대라고 했을 때 대놓고 속는 기분이었었다. 속는 기분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 옛날 진짜 순대를 먹기 힘들게 된 것이었다.
그러더니 순대를 피순대라고 하고, 가짜 순대를 순대라고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만들기 힘들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 수지 맞추기가 어려워서란다.
가짜순대에 물리는 사람들이 진짜 순대를 그리워하자 그래도 그 어려운 일을 맡아 해주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주에서 병천에서 그런 사람들이 생겨났고, 양쪽 다 성업 중이다.
전주의 금암순대, 먹어본 것 중 수위권 순대다. 국물 한 숟갈에, 그래, 이 맛이야, 할 수 있는 곳이다.
병천 이곳 순대는 전주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그래도 못지 않다. 서울 사람들이, 인근 할아버지들이 일부러 먹으러 올 만한 맛이다. 미슐랭 별3개는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 먹을 만한 음식에 주는 훈장이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신뢰도가 떨어졌지만, 그 구분 기준만은 동의할 만하다.
이 정도 순대, 순대국이면 멀리서 찾아와 먹고갈 만하지 않은가. 잡냄새 없고 풍성한 맛에다 순대는 늘어붙지 않으면서 당면도 적당히 탱글거려 식감도 좋다. 순대 곱창 껍질은 탱탱하며 도톰하여 속을 야무지게 잘 담고 있어 보기도 좋다. 삶은 내장은 두툼하고 쫄깃거리고 깔끔하다. 순대를 싫어하는 사람은 내장만 시키면 훨씬 더 실속 있게 먹을 수 있다.
성큼성큼 크막하게 썰어 푸지게 담아주는 섞박지. 무가 가을무라 그런지 양념하지 않아도 달고 맛있었을 것이다. 단 맛나는 무를 무르지 않게 사각거리는 맛을 고대로 잃지 않고 담았다.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순대하고 같이 하면 맛이 더 난다. 순대도 섞박지도 상승작용이 난다.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새우젓이 좋다. 육젓, 오젓만 못해도 깔끔하고 냄새없고 통통한 새우살이 그대로 남은 새우젓이 신선한 맛으로 순대맛을 받쳐준다. 상에 허접하게 올라온 반찬이 없다.
저녁 영업은 6시반이면 어김없이 끝난다. 손님들을 싹쓸이하지 않는 자세가 이곳을 순대거리로 만들어낸 깊은 마음으로 보인다.
병천거리는 천안이 자랑하는 12경 중 하나다. 청화집을 중심으로 순대집이 생겨났다는데 요즘 많이 알려진 집은 바로 이 박순자아우내순대다.
1960년대에 병천에 햄공장이 생겨 햄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인 내장을 가공하여 순대를 만들어 병천 5일장에서 판 것이 시발점이다. 장날과 국밥은 한몸이다. 장꾼도 먹고, 손님도 먹어야 하는데 모두 빨리 먹고 일어서야 하는 사람들이다. 한 번에 빨리 먹을 수 있는 밥을 만 국밥이 장터 음식인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풍부하게 공급 가능한 식재료인 돼지 내장으로 만든 국밥이 가장 효율적인 메뉴, 거기다 5일장이 열리는 병천, 아우내는 고객을 보장하는 곳이다. 점차로 늘어는 국밥집끼리 맛과 서비스 경쟁이 붙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이 선순환되어 병천에 순대거리가 생겨났다.
천안의 음식 명물은 순대국 외에 호두과자가 있다. 광덕사 호두나무 시원지는 천안이 왜 호두과자 도시인지 역사적 유래를 알려준다. 이곳 순대거리가 천안색을 띄지 또 하나의 명물인 호두과자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호두과자 집으로 가장 유명한 학화호도과자, 옛날호두과자. 전자는 원조호도과자집이고, 후자는 후발 발전적 면모의 호두과자집이다. 전자는 고전적인 맛을 내고, 후자는 우리 밀가루를 처음 사용하고 튀김호두과자를 개발한 집으로 천안의 자존심을 갖고 영업을 하는 집이다.
호두과자집이 가세하여 병천거리는 명실공히 천안 명물거리가 되었다. 역사적 유적지나 유물이 한산한 천안에 음식 명물은 천안의 새로운 승부수다. 천안 발전과 관광객 모객의 길이 보인다. 이미 밀려드는 순대 주문으로 공장을 세워 수요를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바로 유관순의 아우내 만세운동의 그 아우내다. 아우내는 竝川 병천(아우를 병, 내 천)의 우리말이다. 병천은 병천천과 광기천이 아우러지는 곳이다. 내가 아우러지는 곳, 아우내다.
순대거리 지척에 유관순 생가가 있고, 만세운동 유적지가 있다. 목숨 걸고 만세 운동한 우리네 선조의 깊은 뜻이 머문 곳 아우내, 민초들의 인간사랑과 나라사랑이 이제 천안의 대중음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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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는 천안의 12경 중 2개경에 해당되는 곳이다. 순대거리가 좋은 경치일 수는 없겠지만, 음식문화지로서의 순례라면 의미를 붙일 수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