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의 정의 1
욕실 헤어드라이어의 줄이 꼬여 있을 땐 플러그를 빼 풀어두는 것.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더라도 밥그릇에 남은 밥풀이 말라 달라붙지 않도록 물을 채워 개수대에 놓아두는 것.
머리를 감고 수건을 머리에 말아 두르고 나올 때 수건걸이에 새 수건을 꺼내 걸어두고 나오는 것. 변기 옆 두루마리 화장지도 이하 동문.
비록 세탁기를 돌릴 줄 모르더라도 벗어놓은 양말과 바지가 세탁 바구니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들이 제멋대로 뒤집힌 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빠져나간 머리카락을 원망하기보다 수챗구멍에 쌓여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담아 고인 비눗물이 원망 없이 잘 빠져나가게 해주는 것.
누군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텔레비젼 연속극 소리나 음악 소리가 거실을 뛰어다니지 않게 소리를 죽여주고 방문이 쿵쾅거리며 닫히지 않도록 해주는 것.
퇴근 무렵 엄마를 찾는 아빠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갔다고 센스 있게 답하고, 아직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동창회를 보호해주는 것.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 놓고 간 옷가지들이 저녁이면 옷걸이 위에 가지런히 올라가 있거나 얌전히 옷장 속에 들어가 있는 이유가 신데렐라가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 철들지 않은 나 때문에 엄마 몸에서 빠져나가는 철분이 저 흩어진 옷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을 너무 늦지 않게 아는 것.
- 출처 : 림태주 에세이『이 미친 그리움』
* 가족의 정의 2
누군가의 식사량이나 웃음의 양이 줄어들 때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 그것들이 줄어든 만큼 근심과 우울과 외로움의 양이 늘지 않도록 마음의 저울 눈금을 세심히 살피는 것.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주 앉아 밥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에 후시딘을 바르고 1회용 밴드를 붙여줄 줄 아는 것.
빗소리 뒤에 숨어서 한숨을 내쉬는 엄마가 보이거나 자주 창밖의 석양을 내다보는 아빠의 등이 보일 때, 그들의 인생을 파먹으면서 내가 살아왔다는 걸 고요히 생각해보는 것.
신이 용서하지 않는 죄일지라도 언제나 용서받는 곳,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말일지라도 기꺼이 들어주고 편들어주는 곳.
'우리'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곳, 우리가 우리와 이웃을 맺고 어우러져 사는 곳, 나를 넘어 너에게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
신이 다 돌볼 수 없어 서로를 돌보게 만든 가장 작은 지상의 나라.
사랑의 감옥.
- 출처 : 림태주 에세이 『이 미친 그리움』
* 가족의 정의3
아직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짜증내는 대신 혼자 저녁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해두는 것. 방바닥에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 있거나 옷장 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게 신데렐라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누군가의 식사량이나 웃음의 양이 줄어들 때 그것을 알아채는 것. 웃음이 줄어든 대신 근심과 외로움의 양이 늘지 않도록 마음의 눈금을 세심히 살펴주는 것. 아프게 말하고 몰라주는 말을 하는 때가 있더라도,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믿어주는 것. 다투었더라도 마주 앉아 밥을 나누고 서로의 물잔에 물을 채워주는 것. 빗소리 뒤에 숨어서 한숨을 내쉬는 엄마가 보이거나 자주 창밖의 석양을 내다보는 아빠의 등이 보일 때, 그분들의 인생을 헐어내며 내가 살아왔다는 걸 고요히 생각해 보는 것.
세상이 용서하지 않는 죄일지라도 기꺼이 용서하고 안아주는 곳.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는 곳. ‘우리’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곳. 나를 넘어 세상으로 가는 길이 시작된 곳. 신이 다 돌볼 수 없어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곳.
하나가 없으면 전부가 없는 곳.
- 출처 : 림태주 에세이 『이 미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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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족의 정의’ 요점
- 림태주 시인
1. 욕실 헤어드라이어의 줄이 꼬여 있을 때 플러그를 빼 풀어두는 것.
2.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더라도 밥그릇에 남은 밥풀이 말라 달라붙지 않도록 물을 채워 개수대에 놓아두는 것. 머리를 감고 수건을 머리에 말아 두르고 나올 때 수건 걸이에 새 수건을 꺼내 걸어두고 나오는 것. 변기 옆 두루마리 화장지도 이하 동문.
3. 화장실 쓰레기통의 휴지가 만삭으로 부풀어 있을 때 여보와 엄마와 하숙집 아줌마를 찾기 전에 비닐봉지를 먼저 찾는 것.
4. 비록 세탁기를 돌릴 줄 모르더라도 벗어놓은 양말과 바지가 세탁바구니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들이 제멋대로 뒤집힌 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5.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빠져나간 머리카락을 원망하기보다 수챗 구멍에 쌓여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담아 고인 비눗물이 원망 없이 잘 빠져나가게 해주는 것.
6. 누군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텔레비전 연속극 소리나 음악 소리가 거실을 뛰어다니지 않게 죽여주고 방문이 쿵쾅거리며 닫히지 않도록 해주는 것.
7. 퇴근 무렵 엄마를 찾는 아빠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갔다고 센스 있게 답하고, 아직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동창회를 보호해주는 것.
8. 방바박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 놓고 간 옷가지들이 저녁이면 옷걸이 위에 가지런히 올라가 있거나 얌전히 옷장 속에 들어가 있는 이유가 신데렐라가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
9. 철들지 않은 나 때문에 엄마 몸에서 빠져나가는 철분이 저 흩어진 옷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을 너무 늦기 않게 아는 것.
10. 누군가의 식사량이나 웃음의 양이 줄어들 때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 그것들이 줄어든 만큼 근심과 우울과 외로움의 양이 늘지 않도록 마음의 저울 눈금을 세시미 살피는 것.
11.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주 앉아 밥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에 후시딘을 바르고 1회용 밴드를 붙여줄 줄 아는 것.
12. 빗소리 뒤에 숨어서 한숨을 내쉬는 엄마가 보이거나 자주 창밖의 석양을 내다보는 아빠의 등이 보일 때, 그들의 인생을 파먹으며 내가 살아왔다는 걸 고요히 생각해보는 것.
13. 신이 용서하지 않는 죄일지라도 언제나 용서받는 곳,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말일지라도 기꺼이 들어주고 편들어주는 곳.
14. '우리'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곳, 우리가 우리와 이웃을 맺고 어우러져 사는 곳, 나를 넘어 너에게로 가는 길이 시작된 곳.
15. 신이 다 돌볼 수 없어 서로를 돌보게 만든 가장 작은 지상의 나라.
사랑의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