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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문헌
구촌집(龜村集)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류경심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류경심(柳景深)의 시문집. 2권 2책. 목활자본. 외손 최몽량(崔夢亮)과 외증손 배상익(裵尙益)이 이정구(李廷龜)의 교감을 받아 편집하고, 최몽량의 아들 제(濟), 저자의 외손서(外孫壻) 이상일(李尙逸), 외증손 여경(呂儆)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응조(金應祖)의 서 (序)가 있다. 권1의 머리에 저자의 행장 1편과 묘갈명 1편이 있는 것이 다른 문집 체재와 다르다. 시 194수, 권2는 부 6편, 전 1편, 서(序) 1편, 변 3편, 설 2편, 논 4편, 명 1편, 책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부 敬賦〉는 학문의 목적을 밝힌 것으로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수신이 이루어져야 하고 수신은 극기에서 이룩되는 것인데, 극기를 하는 방법은 바로 경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경은 계구(戒懼)와 신독(愼獨)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어버이·임금·어른을 섬기는 공순한 태도로 외부를 제어하는 것임을 밝혔다.
〈책문 策文〉은 천재와 지변, 기근과 병화가 잇달아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하라는 물음에 답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원리가 임금의 마음이 진실됨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왕도와 패도(覇道)의 이치를 논하고 역대 성왕의 치정을 열거, 위민정치·애민정치를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 밖에 천지조화의 무궁함을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조화부 造化賦〉와 정치의 근본이념과 인간생활의 실제가 모두 조정에 있다고 한 〈조정변 調停辨〉이 있고, 명나라의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이 유·불·선 3교를 함께 권장할 것을 지시한 것은 부당하다고 한 〈고황제병립삼교론 高皇帝幷立三敎論〉 등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구촌집(龜村集)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덕온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덕온(李德溫)의 시문집. 5권 2책. 석인본. 1849년(헌종 15)에 그의 9세손 병진(秉鎭)이 산일된 유고를 모아 편집, 간행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36년에 후손 승규(昇圭)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임규직(任圭直)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승규의 발문이 있다.
권1∼4는 시 542수, 권5는 소 3편, 묘표 1편, 인(引) 3편, 상량문 1편, 서(序) 2편, 조(詔) 1편, 격(檄)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서정시가 대부분인데, 그가 간관(諫官)으로 있을 때 광해군의 혼정을 강력히 비판하다가 추방당해 강촌에 묻혀 살았던 탓인지 시름에 싸인 회포를 자연에 반영시켜 읊은 것이 많다. 특히, 그의 생애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의 양란에 걸쳐 있으므로 국난에 피폐해진 당시의 상황을 추적해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화가인 금제(金禔)의 〈사시산수도 四時山水圖〉, 곽희(郭熙)의 〈강남도 江南圖〉와 우리나라 조선 초기 이징(李澄)의 〈첩장도 疊嶂圖〉 등에 대한 화제(畫題)가 괄목할 만하다.
소 가운데 〈동래부사상소 東萊府使上疏〉는 그가 동래부사로 있을 때 올린 글로 당시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백성들의 피폐해진 실정을 들어 부세를 감면해줄 것과, 또 당시 왜관(倭館)의 문제점을 논하면서 수영(水營)에 설치된 왜관의 불가함을 역설한 내용이다.
그리고 〈목욕상소 沐浴上疏〉는 광해군 때의 계축사화의 전말을 밝히고 아울러 그의 노병으로 인한 휴가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영보정효등왕각체 永保亭效滕王閣體〉는 충청남도 부여에 있는 영보정에 대한 기문인데, 중국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서 滕王閣序〉의 체재를 모방한 작품으로 문장이 매우 유명하다.
또한 〈이부학제영강정인 李副學題詠江亭引〉은 역시 부여에 있는 이경여(李敬輿)의 백마강정(白馬江亭)에 대한 악부체(樂府體)의 가사이다. 그 밖에도 〈수성격 愁城檄〉은 병법을 설파한 내용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참고문헌>>錦川集(任圭直)
구촌집(龜村集)
조선 말기의 학자 조병관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조병관(趙炳寬)의 시문집. 8권 4책. 석인본. 1961년 그의 아들 용기(龍基)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권순명(權純命)의 서문과 권말에 정형택(鄭逈澤)·조용기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662수, 권2에 서(書) 51편, 권3에 기(記) 16편, 권4에 서(序) 16편, 발 4편, 명(銘) 1편, 고축(告祝) 6편, 제문 24편, 권5에 잡저 21편, 권6에 행장·가장 21편, 권7에 전(傳) 1편, 유사 4편, 묘지갈 3편, 묘표 3편, 천장(薦狀) 4편, 권8은 부록으로 가장 1편, 구촌기(龜村記) 3편, 구촌명(龜村銘) 1편, 천장 3편, 행장 1편, 묘갈 1편, 문생록(門生錄)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잡저 중에서 〈전발시지설 全髮矢誌說〉은 1895년에 내린 단발령을 반대한 것으로, 부모의 유체(遺體)를 잘 보존하는 것이 효의 근본임을 주장하면서 “머리털을 깎을 바에야 차라리 머리가 잘리더라도 선비의 명분을 지켜야 한다.”고 자기의 뜻을 보인 글이다.
또한, 〈성토이인이종각문 聲討李仁李鍾覺文〉은 동성혼을 주장한 이인(李仁)과 이종각(李鍾覺)을 성토한 글로서, 동성의 금혼은 유가의 기본정신이며, 곧 인간의 인간됨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전제하였고, 이러한 도덕관념이 없는 것은 금수가 되는 길이니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금수와 같다고 하였다.
이 밖에도 〈구촌기〉는 자기가 살고 있는 구촌에 대한 풍토와 인물을 묘사한 것이며, 천장은 효자와 열녀를 추천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포유고(九苞遺稿)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봉명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봉명(李鳳鳴)의 시문집. 3권 1책. 석인본. 1960년 그의 7대손인 남철(南喆)과 8대손 종진(鍾珍)·종홍(鍾洪)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앞에 1726년(영조 2) 왕이 그에게 하사한 〈군신제회도 君臣際會圖〉의 사진이 있고, 권두에 조중목(趙重穆)·송병관(宋炳瓘)·남철 등의 서문과 권말에 종홍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55수, 소 3편, 장(狀) 1편, 권2에 금부원정(禁府原情) 3편, 시 1편, 부 2편, 책(策) 1편, 권3은 부록으로 가장·묘갈명·묘지명·정원일기(政院日記)·어제윤음(御製綸音)·제가기술(諸家記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당시 노론의 거두였던 민진원(閔鎭遠)과 정호(鄭澔) 등의 귀양을 위로하는 시와 응제시(應製詩), 즉 1726년 군신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목적에서 임금을 비롯해 신하 이봉명을 포함한 김유경(金有慶) 등 16명이 지은 연구시(聯句詩)가 있다.
조정을 둘러싸고 암약했던 당쟁의 단면이 기록된 〈정원일기〉·〈금부원정〉·〈인풍뢰지변응지진토역소 因風雷之變應旨進討逆疏〉등은 김일경(金一鏡)·조태구(趙泰耉) 등의 탄핵을 주장하는 상소로서 신임사화의 당쟁사를 살피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이 밖에도 1784년 양익표(梁益杓)·우홍채(禹洪采) 등과 함께 예조참의에 추증된 내용의 〈어제윤음〉과 그가 경상도사에 제수되어 왜인을 접대하는 임무를 띠게 되자, 과거 임진왜란 때 자신의 조상이 왜적의 칼에 살상 당한 일로 인한 적대감 때문에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전라도사로 전근발령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된 〈정이조장 呈吏曹狀〉, 그리고 과작(科作)인 〈빈풍거변말부 豳風居變末賦〉·〈책환아방궁부 責還阿房宮賦〉등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구포집(鷗浦集)
조선 후기의 문신 안헌징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문신 안헌징(安獻徵)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1696년(숙종 22)에 외손인 최석정(崔錫鼎)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최석정의 발문이 있다. 권1∼3에 시 365수, 권4는 관과록(館課錄)으로 표(表)·명·찬(贊)·상량문·부(賦)·잠·송(頌)·주의(奏議) 등 26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에는 낭만과 서정을 드러낸 것이 상당수 있다. 〈상화 賞花〉는 봄의 낭만을 노래한 것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은연 중 나타내고 있다. 〈상국 賞菊〉·〈목련화 木蓮花〉 등 영물시(詠物詩)도 그 내면에 서정이 깃들여 있다.
〈어원상화이십운 御苑賞花二十韻〉은 칠언배율의 장편으로 된 역작이다. 권3의 시는 대개 고체(古體)·근체(近體)가 망라되어 있다. 시는 성당(盛唐)의 시풍이 있다고 평가된다.
발문에 의하면, 최명길(崔鳴吉)도 그의 장률(長律)이 두보(杜甫)의 풍격을 닮았다고 평하였다. 한편 〈관과록〉 중 찬의 〈기린각찬 麒麟閣贊〉, 부의 〈촉룡부 燭龍賦〉, 송의 〈일융의정천하송 一戎衣定天下頌〉 등은 뛰어난 문장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계유집(菊溪遺集)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현유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현유(李顯儒)의 시문집. 2권 1책. 석인본. 1972년에 그의 후손 동화(東華)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그의 6대손 춘희(春熙)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시 140수, 권2는 서(書) 23편, 제문 10편, 잡저 1편, 기 1편, 상량문 1편, 묘표 1편, 행략(行略) 1편과 부록으로 만사 12편, 제문 5편, 가장(家狀), 묘갈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산수시뿐이며, 서(書)는 모두 안부편지이다.
잡저 1편은 〈가훈 家訓〉인데, 이는 사친사군(事親事君)·형제·부부·제사·종족·장유·붕우·인리(隣里)·노비·의식·산업·주색(酒色)·빈부귀천·공부조적(貢賦糶糴)·총론(總論) 등 15개 조목으로 나누어 자손들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훈계한 내용이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국농집(菊農集)
조선 후기의 승려이자 학자인 최훈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승려이자 학자인 최훈(崔勳, 생몰년 미상)의 시문집. 3권 2책. 목판본. 지은이는 철종·고종연간 사람으로 관동지방에 거주한 출가승이라는 것 밖에 자세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1915년 그의 아들 익수(翼壽)가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이나 발문이 없다. 권1에 시 82수, 권2·3에 서(書) 19편, 잡저(雜著) 10편, 서(序) 3편, 기(記) 8편, 발(跋) 2편, 상량문 3편, 축문 2편, 제문(祭文) 7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는 서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사실적 필치로 묘사한 〈종국 種菊〉·〈동야독매 冬夜獨寐〉·〈망해 望海〉·〈음국 唫菊〉·〈감회 感懷〉·〈유소사 有所思〉·〈연담회고 蓮潭懷古〉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밖에 교훈적 색채가 짙은 〈책손아승필 責孫兒乘弼〉, 연작으로 된 〈완재정십이음 宛在亭十二吟〉과 〈승헌인 繩軒引〉, 그리고 여러 편의 만시(輓詩)와 〈거고서재회음 巨庫書齋會飮〉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에는 친구인 김상일(金相一)·이만규(李晩煃) 등과 친족인 현구(鉉九)·재민(在民), 그리고 아우인 육(0xF926)과 아들 익수 등을 대상으로 일상사에 대하여 의논한 글들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여사제 與舍弟〉는 아우 육에게 그의 손자인 승필(乘弼)의 교육문제에 대하여 걱정하는 할아버지의 심정을 털어놓고 대책을 협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잡저에는, 철종이 초야의 어진이들에게 국정의 대책을 구함에 지어올린 것으로서, 국가재정의 기반인 삼정(三政)의 문란한 현실을 낱낱이 지적하고 이에 따른 사회의 부조리도 상세하게 기술한 다음, 이에 대한 대책까지 제시한 〈책문 策文〉을 비롯하여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의인화하여 지은 〈절교문 絶交文〉, 1894년(고종 31) 동학운동이 일어난 이듬해에 지은 〈격동난진중 檄東亂陣中〉·〈노송변설 老松辨說〉·〈화산일록략 花山日錄略〉 등이 실려 있다.
이 밖에도 서(書)와 서(序)에 〈여윤정한서 與尹鼎漢書〉·〈증영월상인서 贈影月上人序〉 등이 있고, 기(記)에 자신의 아버지가 세운 정자인 완재정(宛在亭), 윤순필(尹順弼)이 세운 창암정(蒼巖亭) 등의 내력을 서술한 것과 족인 덕상(德象)과 전백겸(田伯謙) 등을 대상으로 지은 〈석우기 石友記〉·〈만회기 晩悔記〉 등이 있다.
또, 불영사(佛影寺) 청련암(靑蓮菴)의 상량문, 〈선고나수헌부군안석시고유문 先考懶睡軒府君安石時告由文〉, 그리고 그의 삼종질 윤수(崙壽)의 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담문집(菊潭文集)
조선 중기의 학자 박수춘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박수춘(朴壽春)의 시문집. 4권 2책(본집 3권 1책, 별집 1권 1책). 목판본. 후손 이주(履周)에 의해 편집, 간행된 것으로, 간행연도는 본집 서문의 글로 미루어 1725년(영조 1)경으로 추정된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광정(李光庭)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권1에 시 104수, 부 2편, 권2에 소·격(檄)이 각 1편, 서(序) 6편, 문 1편, 잠 2편, 명 1편, 권3은 부록으로 행장·행록·묘갈명·묘비명·제문 및 축문·상량문·서문·사실 외에 여러 사람의 찬영시(讚詠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별집은 추선록(追先錄)으로서 윤순지(尹順之)의 서(序), 추선록세계도, 세계사실, 서문, 행산선조일고(杏山先祖逸稿), 제현유십(諸賢遺什) 15편, 제현유묵(諸賢遺墨) 및 부록으로 묘비명과 사적이 실려 있다.
이 중 〈무오소 戊午疏〉는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의 폐위를 반대하여 올린 것이고, 〈창의격 倡義檄〉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에 의병을 모집할 때의 격문이다. 별집의 제현유묵에는 김종직(金宗直)·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 등 9인의 글이 실려 있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국담문집(菊潭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주재성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주재성(周宰成)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1908년 지은이의 6대손 시협(時悏)과 시민(時敏)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장석영(張錫英)의 서문과 권말에 시협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27수, 서(書) 3편, 서(序) 1편, 문 1편, 논 1편, 행장 1편, 권2는 잡저 2편, 부록의 권1은 만(輓) 15수, 제문·행장·시장(諡狀)·묘지·신도비명 각 1편, 권2는 창의사적(倡義事蹟)·장문(狀聞)·유소(儒疏)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창의문 倡義文〉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영남의 사민들에게 보낸 격문이다. 내용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다고 전제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종사(宗社)가 위급하니, 모두 합심하여 적을 막아 충의의 길을 가자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의 도를 분명히 한 〈오륜론 五倫論〉과 ≪중용≫과 ≪대학≫의 어려운 구절을 해설한 〈용학강의〉가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국담문집(菊潭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하진백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하진백(河鎭伯)의 시문집. 3권 1책. 목활자본. 저자의 손자인 치룡(致龍)에 의해 편집되었던 것을 1900년대 초 현손 황원(滉源)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내석(鄭來錫)·유주목(柳疇睦)·이만각(李晩慤) 및 저자의 생질인 권상(權0x9669)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현손인 황원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52수, 만(挽) 19수, 권2에 서(書) 2편, 서(序) 4편, 잡저 5편, 제문 6편, 행장 3편, 설(說) 1편, 권3은 부록으로 서(序) 3편, 시해(詩解) 1편, 조문(弔文) 2편, 행장·묘갈명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시의 〈한중사회 閒中寫懷〉는 그가 만년에 임천(林泉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서 한가로이 독서를 하면서 은일적인 생활을 읊은 것인데, 정약용(丁若鏞)이 이를 차운(次韻)한 시도 있다.
〈생조 生朝〉는 그의 생일에 부모가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고 차마 주연을 베풀 수 없다 하여 국화전(菊花煎)을 부쳐 먹으며 부모를 생각하는 심정을 읊은 시이다. 그와 같은 작품들을 통하여 저자의 지극한 효성을 엿볼 수 있다.
서(序) 중 〈주자서절요소선서 朱子書節要小選序〉는 이황(李滉)이 엮은 ≪주자서절요≫에서 다시 수십 편을 뽑아 ≪주자서절요소선≫을 만들었는데 그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설의 〈도서연의설 圖書演義說〉은 ≪하도 河圖≫·≪낙서 洛書≫를 문답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먼저 ‘하도’·‘낙서’의 의의를 설명하고, ≪낙서≫ 중 변역(變易)하고 변역하지 않는 이유 등을 논변하였는데, 특히 ≪하도≫의 일육(一六)과 삼팔(三八)의 위치가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음양과 강유(剛柔)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담문집(菊潭文集)
조선 말기의 학자 장경문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장경문(張敬文)의 시문집. 2권 1책. 석인본. 1973년 손자인 기덕(基德)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권일섭(權一燮)의 서문과 권말에 기덕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만사 196수, 권2에 서(書) 12편, 제문 19편, 가장(家狀) 1편, 부록으로 유사 1편, 만사 3편, 제문 2편, 행장 1편, 묘갈명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소박하면서도 은일적인 감상을 나타낸 것이 많다.
〈어옹 漁翁〉은 낚시로 유유자적하는 달인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은연중 자신의 심경을 나타내고 있으며, 〈덕암야화 德巖夜話〉는 덕암의 한 촌가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주인과 대화하는 가운데 느낀 바를 읊은 것으로 주인의 높은 학문과 고고한 지조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무궁화음 無窮花吟〉은 영물(詠物)의 시로 무궁화가 인고와 역경을 감내하면서 끊임없이 피고 지는 것을 찬미한 것으로 우리 민족과 더불어 자신도 끝없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여박하석모춘상영 與朴荷石暮春賞詠〉은 봄날의 경치를 읊은 것으로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늙어가는 인생에 대한 감상적 상념을 표현하였다.
이 밖에 영물의 시로는 〈청선 聽蟬〉·〈청와 聽蛙〉·〈부문 賦蚊〉·〈관야 觀野〉·〈영송 詠松〉 등이 있고, 자신의 학문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 시로 〈자영 自詠〉·〈자민 自憫〉 등이 있다. 서(書)는 주로 친지와 문후(問候)를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이며, 그 가운데 〈답송성안 答宋聖安〉은 선비의 처신과 학문·시 등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 이덕홍(李德弘)의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담실기(菊潭實記)
조선 말기의 학자 양재로의 실기
조선 말기의 학자 양재로(梁在魯)의 실기. 2권 1책. 석인본. 1936년 그의 아들인 재석(在錫)이 편집, 간행하였는데, 권두에 유도승(柳道昇)의 서문과 권말에 재석의 발문이 있다. 내용은 권1은 시 3수, 부록으로 서(序) 9편, 기 2편, 문 1편, 증시(贈詩) 2수, 만(挽) 6수 등, 권2는 부록으로 국담정사낙성운(菊潭精舍落成韻) 97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시는 3수에 지나지 않으나, 문채가 빛나고 시의(詩意)가 고상하다. 〈벽류동한거음 碧流洞閒居吟〉은 한거자락의 심경을 나타낸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다.
부록의 〈증양처사국담서 贈梁處士菊潭序〉는 그가 여항에 있으면서도 처사로 자처하며 속세의 이익에 물들지 않고 초연하게 살았음을 스스로 찬양한 내용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당유고(菊堂遺稿)
조선 전기의 학자 박흥생의 시문집
조선 전기의 학자 박흥생(朴興生)의 시문집. 3권 1책. 목활자본. 아들 인정(仁挺)이 시문을 수집하여 초고를 만들었고, 그 뒤 1612년(광해군 4)에 5대손 이겸(以謙)이 다시 유고를 수집하여 삼암서사(三巖書舍)에 간직해 두었던 것을 1828년(순조 28)에 간행하였다.
그로부터 60년 뒤인 1888(고종 25)∼1894년에 걸쳐 14대손 중호(重浩) 등이 중간하였다. 권두에 서거정(徐居正)·기정진(奇正鎭)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손상호(孫祥浩)·손정흠(孫正欽)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50수, 권2에 서(書) 2편, 기 2편, 서(序) 2편, 제문 4편, 전(箋) 1편, 장(狀) 2편, 발 1편, 잡저 1편, 권3은 부록으로 행장·묘표·추감록(追感錄)·사실록(事實錄)·시집발(詩集跋)·유고추서(遺稿追敍)·서원향사축(書院享祀祝)·동학사초혼록(東鶴寺招魂錄)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끝에 저자의 아우인 흥거(興居)의 시문을 모아놓은 〈이락당유고 二樂堂遺稿〉가 합편되어 있는데, 시 3편, 기 1편, 서(序) 1편, 제문 3편, 이락당시집기(二樂堂詩集記)·한거잡영발(閒居雜詠跋)·이락당행장(二樂堂行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체제가 다양하여 사언잡영(四言雜詠)·오언고시·칠언고시·오언절구·칠언절구·오언율시·칠언율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잡저의 〈거관잠계 居官箴戒〉에서는 관리가 조심하고 경계하여야 할 사항들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규장각도서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국반집(菊伴集)
조선 후기의 학자인 여응규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인 여응규(呂應奎)의 시문집. 6권 2책. 목활자본. 아들 무보(茂甫)가 편집, 간행했다. 권두에 정내석(鄭來錫)의 서문과 권말에 김태응(金台應)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21수, 만(輓) 22편, 애사 5편, 권2에 서(書) 45편, 권3에 잡저 4편, 서(序) 5편, 기 5편, 발 5편, 권4에 제문 10편, 고유문 6편, 묘지 1편, 권5에 행장 9편, 권6은 부록으로 저자에 관한 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인생에 대한 갈등과 번민을 읊은 〈영회 詠懷〉와 이러한 번민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경신생조유회 庚申生朝遺懷〉등이 있다. 이 밖에 〈경차갈암복첩운 敬次葛菴復帖韻〉과 〈송홍산야긍주귀상산 送洪山野肯周歸商山〉 등에 그의 시적 취향이 잘 나타나 있다. 만에는 〈만유정재선생 輓柳定齋先生〉이 있다.
권2의 서는 스승인 유치명을 비롯해 판서 오취선·조성교 등에게 보낸 편지로, 일상적인 문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권3의 잡저 가운데 〈척사설 斥邪說〉에서는 노(老)·불(佛)을 양주(楊朱)·묵적(墨翟)과 같은 부류로 생각해 이를 배척하고 있으며, 유학의 진흥책으로 향약의 결성과 후생에 대한 강학(講學)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육덕(六德)·육행(六行)·육예(六藝)의 삼물(三物)과 불효(不孝)·불목(不睦)·불인(不婣)·부제(不弟)·불임(不任)·불휼(不恤)·조언(造言)·난민(亂民) 등에 대해 팔형(八刑)으로 교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원조속잠 元朝續箴〉은 27세 때 지은 것이다. 외천(畏天)·양심(良心)·경신(敬身)·개과(改過)·독지(篤志) 등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자신의 생활 지침을 설명한 내용이다.
서(序)의 〈월회당양노소절목서 月會堂養老所節目序〉와 기의 〈회로당중수기 會老堂重修記〉등은 당시에도 노인들을 위한 집회소가 운영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문인 〈제갈암이선생문 祭葛菴李先生文〉은 이현일(李玄逸)이 복첩(復牒)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국산집(菊山集)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 엄계흥의 시집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 엄계흥(嚴啓興)의 시집. 불분권 1책.필사본. 표지에는 ‘국산집 전(菊山集全)’이라고 쓰여 있으나, 첫면에는 ‘영월엄씨세고 권지삼 (寧越嚴氏世稿卷之三)’이라 쓰여 있어, 원래 ≪영월엄씨세고≫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1800년 작자의 후배되는 김낙서(金洛瑞)가 작자의 생전의 부탁대로 원래 시집 2권을 정선하여 간추린 것이다. 서문은 없고 말미에 김낙서가 쓴 발문이 있다. 작자는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인물로 여항시인 안성문(安聖文)·지공저(池公著)·이덕함(李德涵)·이단전(李炫熙)·정무륜(丁茂倫)·천수경(千壽慶)·김낙서와 가까이 지냈다.
체재는 첫머리에 부 2편이 있고, 이하에 시 174수가 있다. 시는 대부분 기행시이거나, 당시의 여항시인들과 주고받은 것들이다. 작품 가운데서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강원도와 함경도일대를 여행하고 그곳의 풍물과 역사를 읊은 장편거작 〈북정 北征〉, 세태를 풍자하고 여항인의 불만을 토로한 〈방가행 放歌行〉 등이 있다.
시란 기교보다는 진솔한 표현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역대 시사(詩史)의 전개를 읊은 〈심진사(沈進士)에게 주는 시〉에서는 시란 성정(性情)을 읊고 천기(天機)에 감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근자에 양묵(楊墨)의 무리에 현혹되는 시가 많음을 경계하고 성현의 도를 실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시에는 신분적 제약에서 오는 불만과 갈등이 드러나 있는데, 박윤묵(朴允默)은 이에 대하여 강개격절(慷慨激切)하여 비가적(悲歌的)인 데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참고문헌>>李朝後期閭巷文學叢書 2(驪江出版社, 1986)
국선생전(麴先生傳)
고려 후기에 이규보가 지은 가전 작품
고려 후기에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가전 작품. 술을 의인화하여 지은 것이다. 작자의 문집 ≪동국이상국집≫ 전집(前集) 권20과≪동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인 국성(麴聖 : 맑은 술)은 주천(酒泉) 고을 사람으로 아버지는 차(醝)이고 어머니는 곡씨(穀氏)의 딸이다. 서막(徐邈)은 어린 국성을 사랑하여 국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국성은 어려서부터 이미 깊은 국량(局量)이 있었다.
손님이 국성의 아버지를 찾아왔다가 국성을 눈여겨보고 “이 아이의 심기(心器)가 만경(萬頃)의 물과 같아서 맑게 해도 더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려지지 않는다”고 칭찬하였다. 국성은 자라서는 유령(劉伶)·도잠(陶潛)과 더불어 친구가 되었다., 임금도 국성의 향기로운 이름을 듣고 그를 총애하였다. 그리하여 국성은 임금과 날로 친근하여 거슬림이 없었고, 잔치에도 함부로 노닐었다.
국성의 아들 삼형제 혹(酷 : 텁텁한 술맛의 형용)·포(䤖 : 一宿酒·鷄鳴酒)·역(醳 : 쓰고 진한 술)은 아버지의 총애를 믿고 방자히 굴다가 모영(毛穎 : 붓을 의인화한 .)의 탄핵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아들들은 자살했고, 국성은 탈직되어 서인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국성은 뒤에 다시 기용되어 난리를 평정함에 공을 세웠다. 그 뒤 스스로 분수를 알아 물러나, 임금의 허락을 받아 고향에 돌아가 폭병(暴病)으로 죽었다.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국씨는 대대로 농가출신이다. 국성이 순후한 덕과 맑은 재주로 임금의 심복이 되어 나라 정사를 짐작하고, 임금의 마음을 윤택하게 함에 있어 거의 태평한 경지의 공을 이루었으니 장하도다!”고 하였다.
이규보는 이 작품을 통해 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덕과 패가망신의 인과관계를 군신 사이의 관계로 옮겨놓고, 그 성패를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주인공 국성을 신하의 입장으로 설정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러한 설정은 유생의 삶이란 근본적으로 신하로서 군왕을 보필하여 치국의 이상을 바르게 실현하는 데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라 하겠다.
신하는 군왕으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면 자칫 방자하여 신하의 도리를 잃게 된다. 그러면 신하는 한때 유위유능(有爲有能)한 존재에서 국가나 민생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전락하기 쉽다.
마침내는 자신의 몰락까지 자초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선생전≫은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굳게 지켜나감으로써 어진 신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때를 보아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참고문헌>>東國李相國集
<<참고문헌>>韓國假傳文學選(金昌龍, 正音社, 1985)
<<참고문헌>>韓國擬人文學의 史的系譜와 性格(金光淳, 語文學 16·17, 1967)
<<참고문헌>>麴醇傳과 麴先生傳(金鉉龍, 국어국문학 65·66, 1974)
국순전(麴醇傳)
고려 후기에 임춘이 지은 가전작품
고려 후기에 임춘(林椿)이 지은 가전작품. 술을 의인화하여 지은 작품이다. 작자의 유고집인 ≪서하선생집 西河先生集≫ 권5과 ≪동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 국순의 조상은 농서(隴西 : 중국 甘肅省에 있는 고을의 이름) 사람으로 90대 조상인 모(牟 : 보리)가 후직(后稷 : 옛적에 농사를 맡은 벼슬)을 도와 백성들을 먹여 살린 공이 있었다. 모는 처음에 벼슬하지 않고 숨어살며 이르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만 먹으리라.”고 하며 밭에서 살았다. 임금을 좇아 원구(圜丘 : 하늘에 제사지내는 壇)에 종사한 공으로 중산후(中山侯)로 봉하여졌고, 국씨(麴氏)라는 성을 받았다.
위(魏)나라 초기에 이르러 국순의 아버지 주(酎 : 소주·전국술·醇酒)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주는 상서랑(尙書郎) 서막(徐邈)과 더불어 서로 친해져서 입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국순의 기국과 도량은 크고 깊어 출렁거리고 넘실거림이 마치 만경창파의 물과 같았다. 그래서 맑게 해도 더 맑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았으며, 그 맛이 한때에 드날리고 자못 사람에게 기운을 더해주었다.
국순은 군신의 회의에는 반드시 나아갔고, 그 진퇴와 수작이 임금의 뜻에 맞아서 마침내 권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순은 손님접대·노인봉양·고사(告祀) 및 종묘제사를 모두 주재했다.
그러나 국순은 전벽(錢癖 : 돈을 밝히는 병통)이 있어서 당시의 의론이 그를 더럽게 여겼다. 국순이 늙어 관을 벗고 물러날 때에 임금에게 아뢰기를, “신이 작(爵)을 받고 사양하지 않으면 마침내 망신할 염려가 있사오니, 신을 집에 돌아가게 해 주시면 족히 그 분수를 알겠나이다.”라 하였다. 국순은 집에 돌아온 뒤에 갑자기 병이 들어 하루저녁에 죽었다.
사신(史臣)이 이르기를 “국씨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이 있어 국순이 벼슬에 발탁되었으나, 왕실이 어지러워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더니,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는 거원(巨源 : 중국 晉나라의 문인인 山濤를 이름.)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하다.”고 하였다.
이규보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생과 술의 관계를 문제삼고 있다. 즉,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인간과 술의 관계를 통해서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조명해본 것이다. 당시의 여러가지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증언하고 고발하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국순전≫은 소아배들의 득세와 뛰어난 인물들이 오히려 소외되는 현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西河先生集
<<참고문헌>>假傳體文學論攷(申基亨, 국어국문학 15·16·17, 1956·1957 ; 국어국문학 65·66, 1974)
<<참고문헌>>麴醇傳과 麴先生傳(金鉉龍, 국어국문학 65·66, 1974)
<<참고문헌>>高麗後期擬人文學의 形成과 文學史的意義(金光淳, 高麗時代의 言語와 文學, 1975)
<<참고문헌>>林椿硏究 Ⅰ(金鎭英, 서울女子大學論文集 9,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