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성큼성큼 다가오는 '노후 절벽'을 어떡하나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2017/06/30 조선일보 오피니언 퍼옴
가장 두려운 건 불확실성이다. 좋든 나쁘든 앞날이 예견되면 상황에 맞게 준비할 수 있다. 아무리 악재라도 충격 완화는 가능하다. 문제는 아무런 감조차 잡히지 않을 때다. 정보가 적거나 없다면 미래 진단은 곤혹스럽다. 우리의 앞날이 그렇다. 생경한 생활 풍경이 불가피하다. 성장은 주춤하고 재정은 악화일로이다. 게다가 인구 변화는 절체절명이다. 1.17명(2016년)에 불과한 출산율은 한국 사회의 건강한 지속 경로를 끊어버렸다.
미래는 코앞이다. 성장시대는 가버렸고 어느덧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자 비율이 13.8%인 '늙은 국가'로 변한 것이다. 예측치의 도달 연도가 거푸 앞당겨지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대 변화에 눈을 감으니 위기 확인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고령사회를 지배할 한랭전선은 이미 생활 영역에 다가섰다. 무엇보다 개별 가계의 압박이 증거다. 세대를 연결해온 순환경제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최종 충격은 개별 가계로 쏠린다.
가계는 힘들다. 소득 증대의 기대는커녕 지출 압박의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근로소득이 있는 현역 세대는 낫다. 환갑을 훌쩍 넘긴 고령 인구의 속내는 복잡하다. 은퇴가 불행의 개막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그동안 위기 확인을 미루고 노후 악재를 챙겨두지 않은 결과다.
물론 구조적인 이유가 크다. 당장의 호구지책이 자금 축적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사회 안전망이 빈약한 이 사회에서 고령 인구의 대거 등장은 빈곤층 급증을 의미할 따름이다.
이제 3년 뒤면 제1차 베이비부머(1955~ 1963년생)의 선두 세대가 고령 인구(만 65세)로 편입된다. 이후 10년간 무려 1000만명이 사실상 은퇴한다. 은퇴 후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무수한 사례가 예상된다. 계기는 수두룩하다. 황혼 이별, 사업 도전 실패, 자녀 문제 등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질환이다. 질병이든 사고든 가뜩이나 자금이 부족한 노후에 병원에까지 출입하기 시작하면 생활의 품질은 극도로 악화된다.
의료 지출은 절약 가능한 항목도 아니다. 아프면 다 무용지물이다. 소득 단절이 절대다수인 고령 세대에 의료 지출은 최대한 피해야 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늙어갈수록 아파져서다. 유병률이 급증하는 70대부터는 병원을 끼고 산다. 노구의 특성상 의료비 지출이 반복적이고 연쇄적이니 부담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치매다. 재택 간병이 어려운 데다 비용이 많이 들고 기간마저 길어 버텨내기 어렵다. 베이비부머가 70대가 되는 2030년이면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안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치매 국가 책임제 등 정부도 노후 의료비 부담 완화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무턱대고 신뢰하기는 어려워졌다. 건강보험은 내년에 적자로 돌아선 뒤, 6년 뒤면 적립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사회보장의 혜택과 부담 수준에 대한 새로운 합의 도출이 시급하다. 노후 질환에 예외는 거의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현재로서 유효한 건 보험이다. 다양한 민영보험을 통해 보완하거나, 본인 병력에 특화된 보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예고된 위험이니 회피 전략은 필수다. 노후를 그나마 가장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불행히도 현재로선 자기 자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