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주의가 집권을 향해 매진하고 있던 1978년 상황에서 장 아누이Jean Marie Lucien Pierre Anouilh(1910~1987·'안티고네'로 유명한 프랑스 극작가)의 희곡 <반바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이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힌 뒤를 상상한 작가는 혁명정부가 부권제를 폐지하고 모권제 사회를 채택한다는 가상현실을 통해 그 혁명을 다시 뒤집어 보인다.
여성들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건 보수우익 일간지 <르 피가로>의 논설위원 레옹에게 큰 재앙이다. 대단한 호색가인 이 주인공은 가정부를 임신시킨 혐의로 여성들로 이뤄진 법정에 선다. 유죄가 선고된다면 그는 거세형에 처해질 터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변호하는 티는 별로 내지 않지만, 여성해방론을 결코 현실화하지 않을 극단적 상황까지 몰고 가 희화화함으로써 관객들을 거기서 이반시킨다.
우스개는 여성해방론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내가 레옹을 고발했듯이 아들도 아버지를 배신한다. 자칭 좌파라는 이 불량한 아들은 자신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희생자이며, 아버지는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돌덩이라고 새된 소리로 증언한다. 이 영악한 새 세대는 프로이트를 자신의 비행을 변명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할 줄 아는 것이다.
가련한 남편이자 가련한 아버지는 반바지(퀼로트)를 입고 나온다. 퀼로트는 보수와 권위의 상징으로 읽힐 수도 있었다. 프랑스혁명의 전위 ‘상 퀼로트’**들이 타파의 대상으로 삼던 귀족들이 입던 것이 바로 퀼로트, 곧 반바지였다는 맥락을 상기한다면 그렇다.
그러나 당시 연극을 무대에 올린 극단 한양레퍼터리의 의도는 <반바지>를 그렇게 정치적·계급적으로 읽지 말자는 것이다. 아누이 역시 연극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오직 ‘연극’으로만 생각했다고 주석을 달면서, 한양레퍼터리는 그 즐거움을 충실히 재생하는 데 매진한다. 연극은 대사의 재미와 속뜻들을 정확히 살려놓은 배우들과 그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잘 짜인 소품이 됐다.
그 즐거움 속에는 ‘모든 권력은 경화하게 마련’이란 냉소가, 그 권력 아래서 극중 하인으로 대표되는 민중에게 돌아오는 건 늘 진자리일 뿐이라는 꼬집음이 숨어 있다. 이 연극이 국내 초연된 당시에는 그 의미들이 문화적·정치적 통역 없이 금세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입지에 관한 생각 없이 아누이를 읽자는 총감독이나 연출가의 의도는 애초부터 관철될 운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반바지>의 냉소가 뜻하는 바를 가리는 일이 그렇게도 필요한 일이었을까.
*반바지La Culotte
현대에 유행하는 여성운동 때문에 남성 권위가 실추된 것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오랜 동안 서러움을 받던 여성들이 혁명으로 권력을 잡고 모권제로 남성을 탄압하는 가상세계가 무대다. 그런 상황에서 남성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코믹하게 그렸다. 전통적 남성우월주의자 주인공 레옹이 하녀를 임신시켰다는 이유로 기둥에 묶여 처벌받는 장면으로 극은 시작된다. 레옹은 좀 비겁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남성과 인간의 위엄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인물이다. 처음 공연됐을 때 몇몇 비평가들은 이 작품의 내용과 표현이 저속해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아주 좋아했고 여성운동이라는 소재보다는 그 코믹한 내용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관객을 가르치거나 훈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즐거움과 웃음을 주려는 것이 이 작품의 목표 중 하나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가 됐다.
작품이 나온 때가 1970년대임을 생각해 본다면 대단한 측면이 있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만 있는 게 아니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인간의 권력과 계급,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비판이 모두 들어 있는 까닭이다. 여성해방운동으로 권력을 잡은 여성집단은 공산당과 비교된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흑백 논리로 너와 나를 가르는 집단의 성격 때문이다. 겉으로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지만 반동을 척살하려는 독선적인 주장은 '피보다 중요한 이념' 같은 모순된 논리로 다가온다.
계급에 대해서도 적나라한 풍자가 있다. 너와 나는 평등하지만, 나는 너보다 계급이 높으므로 너는 나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평등하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논리가 곳곳에 존재한다. 우매한 민중, 힘없는 민중에 대한 풍자도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레옹과 아다는 극단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드러낸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대한 비판이면서 이성과 감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며 상황이 반전돼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개성 있고 캐릭터가 살아 있으며 한 명 한 명이 집단들을 대표한다. 출세를 위해 성정체성을 포기하는 변호사, 신념에 가득 찬 여재판관, 피해의식으로 인생을 살아온 아내,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점잖지 못한 작가, 우매한 민중과 하인까지, 인간은 같은 종임에도 너무나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 퀼로트Sans-culotte
상 퀼로트는 프랑스어로 ‘퀼로트를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프랑스혁명의 추진력이 된 사회 계층이다. 주로 수공업자·장인·소상인·근로자 등 무산 시민으로 당시 파리에서는 빈곤층에 속했다. ‘퀼로트’는 당시 귀족들이 일반적으로 입었던 하의였다. 귀족들은 긴 바지를 입은 서민을 바보 취급해 ‘핫바지’와 같은 용법으로 ‘상 퀼로트’라고 불렀던 것이다. 반면 노동자는 불공평한 신분 제도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아, 반대로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이렇게 부르게 된다. 상 퀼로트 계층은 경제 불황과 높은 빵값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 참정권은커녕 어떤 권리도 갖지 못했다. 프랑스혁명이 상 퀼로트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건 당연하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7월 14일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 9월 학살 등 참혹한 혁명의 폭력 양상은 모두 이들로부터 비롯됐다.
파리의 상 퀼로트는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의회를 교란시켰다. 입법의회에서도 그런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장 민병대가 된 그들은 종종 시위와 폭동을 일으켰고 의회에 생활개선 압력을 넣어 혁명을 급진화시켰다. 각 당파에서는 파리 상 퀼로트에 영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랑스혁명이 극단적인 평등주의와 부의 재분배 같은 사회주의적 정책을 중간에 도입하려는 것에 부르주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공포정치는 상 퀼로트의 열성적인 요청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자코뱅파의 종파 싸움으로 숙청됐다. 특히 직접 행동주의의 대표주자였던 에베르 파의 처형 이후 상 퀼로트는 선동자를 잃고 점점 약화됐다. 여기에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는 이들 세력을 단번에 퇴색시켰다. 테르미도르 반동과 이후 총재 정부와 집권 정부의 대규모 탄압을 받은 상 퀼로트는 혁명 주도 세력으로서의 힘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혁명의 주체는 그렇게 부르주아에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