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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스크랩 37강. 666 짐승표
정낙원 추천 0 조회 584 16.03.02 14:3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37강. 666 짐승표 (계 13:11-18)

 

계 13:11-18=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666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합니다.

실제다!

아니다, 상징이다!

 

666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가지고 서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을 정죄하고 심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지혜는 부분적인 것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종말에 일어날 사건을 기록한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더 더욱 유의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이야기는 항상 현재성을 띠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도 신약의 전 시대에 모든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 짐승표 이야기도 어느 한 시대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이고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때로는 실제로 때로는 영적으로 그 의미를 달리하게 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는 동일하지만 나타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간섭하셨듯이 자기 백성들을 간섭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지금도 영적으로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적인 의미로 보면 구약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 우리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성경 속의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를 이 시대 우리의 구원 이야기로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이스라엘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시고 홍해바다를 건너 출애굽 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잇는 자기 백성들을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종말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성도들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떠나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으로서 실제적인 출애굽의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는 성도의 구원이야기가 출애굽 사건으로 예표적으로 나타났고,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빼내심을 입는 영적인 것으로 나타났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출애굽이 담고 있는 구원의 내용이 실제적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가지고 현재 성도들이 죄로부터 건짐 받는 구원 이야기로 해석하면서도 또한 종말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의 예표적 사건이 초림에는 영적으로 나타나고 종말에는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징과 실제가 담고 있는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도 이러한 의미로 접근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어느 시대이고 우리의 신앙에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구약 시대처럼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건너서 나오는 그런 출애굽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출애굽 하는 사건은 계속하여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에서 일어났던 실제적인 출애굽 사건을 신약에서는 성도들이 구원 받는 영적 출애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666도 출애굽 사건과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 사건이 구약에서는 실제였고,

신약에서는 영적으로 나타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에는 이 세상을 떠나는 실제 사건화 되어서 완성된 것으로 나타나게 되듯이 666도 동일한 의미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럼 666이 실제냐? 상징이냐? 라는 것으로 싸울 일이 아닌 것입니다.

둘 다 맞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느 때 이야기 이냐 입니다.

 

초림 때로 해석을 할 때는 실제 이야기이고,

교회사 적으로 이야기 할 때는 영적인 것이고,

종말 때 이야기로 해석 할 때는 상징이면서도 실제적인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666은 실제일 때가 있고 영적일 때가 있고 상징이면서 실제 일 때가 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처럼 실제 일 때는 실제로 해석하여야 하고,

영적일 때는 영적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나타난 시대에 영적인 것으로 말하면 안 되고,

반대로 영적으로 나타나는 시대에 실제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를 터이니 말씀을 잘 이해하시고 666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시고 정리하셔서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워낙 666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증거하는 말씀은 어디까지나 제 견해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 견해와 달리 해석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제 견해가 틀리고 성경적으로 보다 더 맞는 해석이 있다고 한다면 언제든지 제 주장을 수정할 용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일어날 장차 될 일에 관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모든 세대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일어날 실제 이야기이지만

초대교회 때에는 사실을 상징으로 이야기 하였고,

교회사 시절에는 상징을 영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종말에는 실제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장차 될 일이라고 하고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못을 박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될 일이란 실제로 사건화 되어서 일어날 일이란 뜻입니다.

영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요한계시록에 담겨져 있는 666 이야기도 예수님이 재림하는 종말에는 영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날 일이 되는 것입니다.

 

종말의 해석과 종말론적 해석은 다릅니다.

종말의 해석은 실제적이지만 종말론적 해석은 영적인 것입니다.

종말이란 글자 그대로 끝에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종말론적은 예수님의 승천부터 재림까지 신약의 전 기간을 말합니다.

신약의 교회사 전체가 종말론 적에 속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을 하시면서 내가 다시 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은 끝장이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몇 년도 몇 월 몇 일에 오신다고 알려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루 하루를 종말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날짜를 밝히지 않은 것은 성도는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자로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종말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가야할 천국을 오늘날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성도는 항상 주님 앞에 서는 자세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종말론적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종말론적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언제 예수님이 오실지는 모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종말의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666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끝 종말에 일어나는 일과 교회사 속에서 종말론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다릅니다.

이 부분이 올바르게 정리 되지 않으니까 666을 실제다, 아니다 상징이다, 라는 것으로 서로 정죄하고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666은 요한계시록이 써질 당시에는 실제였습니다.

요한은 그 당시 상황을 다만 상징화 하여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도들을 핍박한 로마 황제를 짐승으로 말하고 황제 숭배를 거부하여서 마음대로 매매하지 못하고 굶주림 당한 것을 666 표를 받지 않아서 매매하지 못한 것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건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길드’라는 상인 조합이 있었습니다.

길드에서 모든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정부는 이들에게 상권을 독점적으로 주는 대신 많은 리베이트를 받았습니다.

 

이 때 길드에는 아무나 가입이 되는 것이 아니고 황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심사하여서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가이사는 우리의 주이십니라’ 라는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만 가입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자들에게만 장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또한 일반인들에게도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매매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건 온 나라를 황제 숭배 사상으로 하나로 묶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황제 숭배사상이 판을 칠 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도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가이사는 주이십니다’ 라는 인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야 정상적인 거래가 형성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황제 숭배 사상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주로 모시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가이사를 주라고 시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매매하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타협 할 수가 없는 신앙과 결부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이사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하게 매매를 할 수가 없어서 극심한 궁핍과 환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이용하여서 자기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유대 상인들이었습니다.

유대 상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접근을 하여서 밀거래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상인들과는 정상적인 거래를 할 수가 없으니까 자연히 유대 상인들과 밀거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 상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상적인 가격보다 수십 배를 많이 받고 폭리를 취하였습니다.

어느 시대이고 가장 악랄하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자들이 유대교인들이었습니다.

유대교인들에게는 예수쟁이들은 눈에 가시와 같았어요.

유대교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예수님은 유대교를 허무는 원수였으니까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핍박을 하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고소 할 때 빌라도가 예수님을 일컬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우리에게는 ‘가이사 이외는 왕이 없다’고 하였듯이 그들은 가이사를 임금으로 섬겼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탄핵 할 때 이 사람은 가이사 말고 예수를 임금이라고 한다는 죄목으로 고소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봅시다.

 

행 17:1-8=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유럽 쪽으로 행합니다.

빌립보에서 큰 환란을 당하고 난 후 발걸음을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 회당에서 3주 동안 성경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자 그 중에 헬라인의 큰 무리가 따르고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불량배들을 동원하여서 복음전함을 방해하면서 바울 일행을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들은 가이사의 명을 어기고 예수라는 다른 임금이 있다고 가르치면서 온 성을 소란케 하는 자들이라고 읍장에게 고소를 합니다.

유대인들이 고소하는 내용이 뭔가요?

온 세상이 가이사를 임금이라고 하는데 바울은 예수가 임금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가 과거 일제 식민지로 있을 때 일본 놈들이 천황을 신이라고 하면서 만나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것과 같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핍박을 받았는가 하면 예수님만이 주님이시고 ‘가이사는 주’가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자신들의 황제 숭배 사상 정책을 따르지 않는 예수쟁이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가이사가 주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하거나 이러한 고백을 하는 자들에게만 매매를 허락하게 한 것입니다.

 

유대 상인들은 가이사는 주라고 고백을 하였으니까 자연히 길드 회원이 되어서 각 지역마다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놈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밀거래를 하면서 강탈하디시피 수십 배의 폭리를 취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악랄한가 하면 모든 은금 패물들을 다 취하고 나면 그 때 예수쟁이들을 로마 정부에 밀고를 해서 포상금까지 챙겨 먹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3장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교회사 적으로 순교 시대를 상징하는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유대인들을 일컬어 사단의 회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이사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아서 실제로 매매를 하지 못하여 엄청난 궁핍과 배고픔을 당하고 극심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 요한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인 요한계시록을 회람하면서 666 짐승 표를 읽을 때는 상징으로 보지 않고 실제적 사건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당시 로마 황제와 그 세력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건으로 다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이 배경을 가지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666 이야기를 사도 요한이 로마 황제 숭배사상과 길드를 실제 사건을 상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편지 속에 비록 로마 황제라고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짐승이 로마 황제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초대 교회 당시 666은 실제적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로마가 망하고 황제 숭배 시대가 끝이 나고 난 후 교회 시대에 돌입하고서는 요한계시록은 영적인 것으로 감추어져 버린 것입니다.

실제가 영적 의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건 마치 구약의 출애굽 사건이 예수님 시대에는 영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과 같아요.

교회 시대에는 짐승을 예표하고 666을 예표하는 일들이 영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이단의 교주들이 로마 황제처럼 적그리스도 노릇을 하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땅에서 올라온 짐승 노릇을 하였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이단들이 나타났어요.

하나님도 많이 나타났고 재림 예수도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재림 예수가 판을 치고 있어요.

이들은 자기를 추종하지 않는 자들을 가차 없이 응징했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드러난 이단인 통일교니 신앙촌이니 신천지니 하는 집단에서는 그들이 신봉하는 교주의 말을 따르지 않고 부정하면 불이익을 당해요.

지난번 유병언이 사건으로 실체를 보았잖아요.

이단들의 특징은 자기 조직을 이탈한 자들은 철저하게 응징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복이 두려워서 이탈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그리스도 세력들은 항상 교회를 어지럽혀 왔어요.

성도들을 핍박했어요.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신앙의 싸움들로 점철 되어 온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믿음에 사람들이 거짓 그리스도의 세력들과 싸우면서 죽임 당했어요.

 

계시록 13장에서 말하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단수적인 의미로는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복수적인 의미로는 적그리스도 세력을 말합니다.

교회사 속에서 단수적인 의미로는 이단의 교주들이 짐승인 적그리스도 행세를 하였고,

복수적인 의미에서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공산주의처럼 국가의 형태로도 나타나기도 하고 히틀러의 나치 집단처럼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반기독교적인 세력으로도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 종교적으로는 카토릭이나 WCC 같은 단체들은 적그리스도 세력들이에요.

그런데 세상 끝에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통합하여 단일된 것으로 거대한 조직이 되어서 나타날 것입니다.

이들이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하는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처럼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고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참람 된 말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들을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세상의 환경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 세계가 반목과 갈등으로 전쟁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 전쟁의 바탕에는 종교가 깔려 있습니다.

종교 전쟁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에요.

 

또한 지구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화가 되면서 지구가 각종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어요.

지구 온난화로 엘리뇨 현상이 일어나서 곳곳에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지구를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었어요.

 

이제는 어느 한 나라에서만 환경을 보존한다고 해서 지구 환경을 지켜낼 수가 없어요.

전 세계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어요.

그래서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서 환경 포럼을 하고 국가마다 지구 환경을 위하여 기금을 조성하고 공해 배출을 억제하는 정책들을 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결국 이 지구에서 함께 살자면 단일 국가 형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나라마다 민족마다 종교가 달라요.

종교가 다양한 민족들이 하나의 국가로 이루고 살자면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정책이 펴져야 하고 이를 조율하는 지도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 지도자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으로서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 초림 때 로마라는 국가와 황제 숭배 사상으로 보여주었어요.

로마가 온 세상을 지배했고 로마 황제는 온 세상 나라를 통치했어요.

종말에도 이러한 모습으로 국제 정세가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 황제가 온 세상 나라 종교를 통합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카토릭이에요.

 

흔히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 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로마는 국가를 통치하는데 종교를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였어요.

여기에 기독교를 이용한 것입니다.

이게 로마 카토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로마 황제는 카토릭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합하는 일을 했어요.

카토릭은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음녀 종교이지 예수그리스를 구주로 믿는 기독교가 아니에요.

로마 카토릭은 처음부터 반 기독교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단으로 출발했어요.

이 때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카토릭 사상에 동조하지 않다가 죽임을 당했어요.

로마 카토릭은 자기들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어요.

 

그러다가 종교 개혁으로 카토릭이 쇠잔하고 소멸되어가는 것 같았어요.

종교 개혁으로 거의 망한 것처럼 보이던 카토릭이 이 시대에 와서 다시 부활을 하여서 화려하게 재기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걸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죽게 되었다가 살아난 짐승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3:3-8=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죽었다가 살아난 놈이 어떤 일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참람 된 말을 하고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는 일을 하고 성도들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고 땅에 거하는 자들은 박수를 치면서 교황을 경배하고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신처럼 경배하고 있어요.

이 시대 카토릭은 예전처럼 막강해졌어요.

교황은 그 힘으로 가는 곳마다 반기독교적인 종교 통합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 로마 카토릭이 주도적으로 종교통합 운동을 펼치고 있어요.

 

여기에 동원된 교회 조직이 세계 교회 협의회 라는 WCC 단체에요.

이것의 근본 뿌리는 공산주의에서 기독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로마 카토릭이 추축이 되어서 반기독교 운동을 벌리는 집단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WCC를 움직이는 실제 조직은 로마 카토릭이에요.

그러니까 WCC의 실제적인 수장은 로마 카토릭의 교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황은 온 세상의 임금과 같아졌어요.

각 나라 국가 원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 있어요.

그래서 국가 원수들이 교황이 자기 나라를 방문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땅에 평화로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황을 알현하는 것을 엄청난 성은을 입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 시대 지구의 환경은 온 나라를 하나로 묶고 통치할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시기가 되었어요.

그 지도자는 반드시 모든 종교를 품을 수 있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습으로 이 적임자가 바로 로마 카토릭의 교황인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은 정치와 종교가 하나 된 국가에요.

각국마다 대사를 파견한 나라이면서 전 세계에 수많은 신자들을 가진 종교 집단이에요.

이게 바로 짐승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에서는 멸망당한 로마가 재생하여서 이 세상을 다스릴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가 되어서 나타나는데 이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암튼 이 시대 정치적인 환경이나 경제적인 환경이나 지구 환경적인 것이나 여러모로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종교가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었어요.

 

마치 예수님의 초림 때처럼 세상의 환경이 급변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예수님의 재림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면 세상의 시대 상황이 초림 때처럼 되어 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말을 맞이한 지금 이 시대 세상의 모습이 예수님 초림 때처럼 적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정치와 종교가 하나 되는 시스템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이 흩어짐을 면하고자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서 탑을 쌓아서 하늘에까지 닿자고 한 것처럼 이 시대 신종 바벨탑이 쌓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벨탑을 쌓을 때의 모습을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라고 합니다.

 

구음이 하나란 말은 하나의 사상을 말합니다.

정치나 종교가 하나된 것을 말해요.

하나님은 바벨탑을 헐고 하나 된 구음을 흩어 버렸습니다.

 

인간들은 구음이 하나가 되니까 하나님을 훼방하는 일을 하게 되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벨탑과 함께 하나 된 구음을 흩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세상 끝에 다시 구음이 하나 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국가에요.

이 일을 지금 로마 교황이 하고 있어요.

땅에 평화로 온 세상을 하나로 묶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구음이 하나가 되면 인간의 힘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자체가 이 땅이 자기의 근거지이므로 이 땅에 천국을 만들고자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는 땅에 거하는 자들의 두목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로 따르게 되어 있어요.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데 어찌 안 따르겠어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는 땅에 속한 자들은 다 짐승을 경배하고 따르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면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늘에 속한 성도들이에요.

 

성도들은 땅에 속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원수들이에요.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자칭 하나님이 되어서 참람 된 말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대적하여 죽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암튼 적그리스도는 이 땅에 인간들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때에 다니엘의 예언처럼 공중에 뜨인 돌이 나타나서 세상 나라를 박살을 내어서 먼지처럼 흩어 버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나타났고 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끝장내고 자기 백성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이게 성경의 시나리오에요.

 

하나님께서 성경을 응해 가시려고 지금 이 시대에 종교개혁으로 다 망한 것 같던 로마 카토릭을 다시 부흥케 하여서 온 세상이 따르도록 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반기독교 세력으로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성경을 응해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가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흥분이 되고 신이 나는 일이지요.

지금은 모든 성경의 예언이 다 응해져 가는 때입니다.

 

이렇게 되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666 짐승표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 끝 역사 속에 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세계를 단일화하고 종교를 통합하여서 통치하는 수단으로 어떤 제도를 666 짐승표처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도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신앙과 결부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면 666이라는 상징이 실제가 되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666을 짐승의 이름이고 그 수라고 했습니다.

알다시피 계시록 13장의 짐승은 적그리스도에요.

그러니까 666은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어떤 수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베리칩이 666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만약에 베리칩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이 된다고 하면 베리칩이 666 짐승표가 되겠지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세계가 단일화 된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적그리스도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베리칩이 666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표적인 것일 수는 있어요.

그러나 예표적인 것을 사실이라고 하면 그 또한 미혹이 되는 것이므로 베리칩을 666이라고 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앞으로 지켜 볼 일이지 지금 이것이다 속단 하면 안 되어요.

 

심정적으로는 이해는 하지만 확실하게 드러날 때까지 참고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는 단수적인 적그리스도도 나타나지 않았고, 온 세상이 적그리스도를 숭배하고 따르는 단일 국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성경을 상고하면서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상징과 실제를 아셔야 해요.

 

실제로 일어날 일을 상징으로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는 자기 백성들에게만 알려주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666은 비밀에 속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 비유를 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에게는 천국의 비밀이 허용되었지만 저희에게는 감추어졌다고 합니다.

너희는 예수님에게 속한 자이고 저희는 짐승에 속한 자들을 말합니다.

비유나 상징이나 같은 의미에요.

 

비유나 상징은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법입니다.

비유와 상징 속에는 실제를 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백성들은 상징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지만 예수님에게 속하지 아니한 자들은 그냥 겉으로 나타난 것만 보게 됩니다.

 

666은 상징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징을 통해서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짐승인 마귀의 종들이 하는 일을 상징으로 말할까요?

이는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에게만 알려주고자 하심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이름과 그 수의 비밀을 안다고 했습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는 다 알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다 알게 해 주실 것이니까 걱정 하지 마세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666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짐승의 표에요.

짐승에게 속한 자들만 받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받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짐승의 표를 짐승의 이름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그 이름의 수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짐승 이름을 숫자로 풀이하면 666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의 이름을 숫자로 계산하면 666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려면 그 당시 사회적인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는 알파벳에다가 고유의 번호를 매겨놓았습니다.

알파벳마다 고유의 숫자를 매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게마트리아’ 라고 합니다.

 

‘게마트리아’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철자에 숫자를 붙여서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의 A-1, B-2, C-3, D-4, E-5...라는 식으로 각 알파벳마다 고유의 숫자를 정해 놓은 것입니다.

 

당시에 사용하던 히브리어와 헬라어에도 그랬어요.

이렇게 되면 각 사람마다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고유의 번호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ABD ABD 라고 합시다.

그러면 ABD ABD 의 고유의 값을 합하면 그 사람의 수가 되는 것입니다.

 

ABD ABD 알파벳 이름의 수가 1+2+4=7, 1+2+4=7 를 합하면 14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ABD ABD 라는 사람은 14 라는 수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사무소에 가서 직원이 14번을 부르면 ABD ABD 가 예 하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주민등록 번호도 다 이 원리에서 나온 것들이에요.

앞으로도 사람을 숫자화 하여서 불려 질 때가 얼마든지 올 수가 있어요.

바코드나 베리칩이 다 이런 원리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왜 그 이름의 수가 666이냐 입니다.

이건 성경이 말하는 숫자에 담긴 영적의미를 알면 이해가 됩니다.

성경에는 특히 요한계시록을 보면 7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일곱 교회 또는 일곱 천사,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7은 하늘에 수인 3과 땅에 수인 4을 합한 수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 이 땅에서 창조의 일을 하실 때 나타나는 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을 7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7을 창조의 수이면서도 완전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면에 7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6을 미완성의 수로 봅니다.

그래서 7을 하나님의 수이고 하늘에 수라고 하고, 6을 짐승의 수이고 땅에 수라고도 합니다.

영적 의미로 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면서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창조의 수인 7로 말합니다.

그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숫자로 표기하면 777이 되겠지요.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777이라고 하신 적은 없어요.

666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방해서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방해서 적그리스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땅이 자기의 근거지에요.

이 땅에서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방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도 삼위일체가 있어요.

계시록 13장으로 보면 용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귀의 삼위일체에요.

그래서 짐승의 이름의 수를 666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용은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옛 뱀 마귀 사단이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적그리스도이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 영에 사로잡힌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가 땅을 근거로 하고 있어요.

그럼 땅을 기반으로 하는 용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땅에 수인 666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들이 666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게 되는 것입니다.

 

666은 땅에 속한 자들이 받는 표에요.

그래서 666을 짐승의 이름이라고 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자기 소유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 소유에 표를 했어요.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12지파 속에서 12000명씩 144000명에게 하나님의 인(印)을 칩니다.

이들이 요한계시록 14장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들의 이마에는 다 이름이 있어요.

짐승의 이름이든지 어린 양의 이름이든지 적혀있어요.

짐승과 어린 양이 각자 자기 것에 표를 해 두었어요.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은 짐승을 왕으로 따르고,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성도들은 어린 양을 그리스도로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자들과 그 세력들을 암호화 하여서 짐승이라고 하였고 숫자로 666라고 하였어요.

666은 성도들만 알아보는 암호에요.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666 그러면 ‘아 이 놈이 누구이구나’ 를 알아먹었어요.

 

계시록 13장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야기입니다.

이 두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인 사람과 그 세력들이 누구였나요?

로마 황제였고 그에게 동조한 자들이었어요.

당시에는 로마 황제가 짐승이고 적그리스도였어요.

이들 모두가 666이 상징하는 자들이었어요.

 

그러니까 666을 단순하게 적그리스도 이름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그 세력으로 이해하세요.

666을 단수적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고,

복수적으로 말하면 어떤 세력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단수적으로는 로마 황제가 666이고, 복수적으로는 그를 따르는 세력들을 말해요.

 

어느 시대이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늘 있어 왔습니다.

성도들을 핍박한 자들이 다 마귀의 수하이고 짐승들입니다.

그러니까 666은 초대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대를 거쳐 오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로마 황제가 적그리스도로 활동했고, 그를 추종하면서 성도들을 핍박한 세력들이 짐승의 무리들이었습니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로마 교황이 적그리스도였고 로마 카토릭이 짐승의 무리들이었어요.

지금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고 그와 동조하는 자들이 짐승의 무리들인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WCC 같은 단체가 666 짐승의 집단인 겁니다.

이들은 예수 이외도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반기독교적인 종교 통합을 외치고 있어요.

이건 예수 이외 구원 얻을 길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는 성경을 전면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요한계시록 13장의 적그리스도 세력이고 짐승들인 것입니다.

이들의 사상을 동조하고 따르는 것이 짐승표를 받은 것과 같아요.

지금은 누가 어떤 단체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방해하는 자인지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전 교회 시대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장차 될 일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주어지는 시점부터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까지 장차 될 일에 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시대에 나타난 것을 가지고 전부로 이해하여서 이것이다 라는 식으로 속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666 짐승표는 초대교회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그 당시에 국한 하여서 지나간 사건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세대에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과거적 해석과 현재적 해석과 미래적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또한 육적으로도 보아야 하고 영적으로도 보아야 해요.

영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어요.

 

역사적 해석과 영적 해석을 동시에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영적인 일들을 펼쳐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시사적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하나님은 육적인 사건을 통해서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대하는 자세는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는 달라요.

육에 속한 자는 육적인 사건 자체만 보지만 영에 속한 자는 그 사건 속에서 영적 의미를 찾아내게 됩니다.

영에 속한 자들은 만물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즉 육적 사건을 통해서 영적 메시지를 읽어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천기(天氣)는 분별 할 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시대의 징조를 모르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이는 시대의 징조를 통해서 때를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역사를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가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창세전 언약은 역사 속에서는 시작과 끝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창세전 언약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풀어가는 식으로 진행이 되어갑니다.

성경이 성도의 구원을 시작과 끝이 있는 삼 시제로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이룰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다 이러한 이치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구원을 받았고,

현재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장차 구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구원이 역사 속에서 시간을 두고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구원이 미완료이고 미완성이고 온전치 못하다는 말이 아니에요.

구원은 완료이고 완성이고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어요.

이미 끝이 났어요.

이미 구원을 받은 자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세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세상의 시간관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 라는 삼 시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역사의 흐름이라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로 말하지만 이 구원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끝까지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완료이고 완성이고 완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묵시적인 의미에서 구원은 완성된 것이에요.

 

하지만 역사적인 의미에서는 점진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진행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론적으로는 이미 끝이 난 완성된 것이지만, 상태론적으로는 이루어가는 점진적인 것입니다.

 

이걸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으로 이해해 보세요.

 

구약 이스라엘이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출애굽은 단번에 이루어진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이건 광야에서 보면 과거에 이미 끝이 난 구원입니다.

이러힌 상태를 ‘구원을 받았다’ 라고 과거 시제로 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구원의 여정을 보면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입니다.

출애굽을 한 것은 가나안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가나안으로 가기 위하여 애굽에서 빼내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구원의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 속에 광야를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사십년 동안을 이미 얻은 출애굽의 구원을 그 목적에 맞도록 완성 된 자리로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목적이 있습니다.

왜? 무엇을 위하여 했는지가 있습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구원의 목적을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성령의 감동으로 증거 하기를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창조 하였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란? 구원과 동의어입니다.

왜 구원 했느냐? 여호와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 출애굽 시켰느냐? 여호와를 찬송케 하기 위함입니다.

 

찬송이란? 감사의 행위입니다.

감사는 깨달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을 광야 사십년 동안 인도하면서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신약의 성도를 상징하는 예표적인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광야로 빼내셨습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로 성도를 세상에서 교회로 빼내 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일컬어 빼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광야에서 가나안에서 살아갈 사람으로 양육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를 찬송하는지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현재 ‘구원을 이루어 간다’ 라고 합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던 애굽에 사람이 죽고,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하늘에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 사십 년 동안 애굽에서 나온 1 세대들은 다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2 세대들이 자라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광야에서 태어나 율법으로 양육 받은 자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그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는 제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미래 시제로 ‘구원을 이룰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여정이 구속사적 입장에서 성도의 구원의 전 과정이 담겨져 있는 그림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을 다스려 가셨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다루어 가시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는 것도 그 이스라엘의 구원이 곧 성도의 구원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약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통해서 신약에 성도들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여정은 곧 신약의 전 교회 시대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신약의 전 교회사 적으로 구분을 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 맨 마지막 시대의 교회 상을 담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이후의 교회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이 세상 속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실상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만물이 세상의 종말이 임박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 하셨던 종말의 징조들이 지금 이 시대는 동시다발적으로 타나나고 있습니다.

천재지변을 통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의 모습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속에는 영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도들은 육적인 사건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읽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내용들은 모두가 상징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만 해석을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역사성을 간과합니다.

아니에요.

이건 지혜롭지 못한 겁니다.

 

물론 모든 성경은 영적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주는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지 그 사건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건은 껍데기와 같습니다.

그 사건 속에는 영적 의미가 알맹이처럼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영적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시작을 하면서 요한계시록의 성격을 장차 될 일이고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실제 내용은 전부 상징들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상징을 통해서 장차 될 일을 설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장차 될 일이고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사건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장차 될 일이고 반드시 속히 될 실제 내용들을 상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장차 일어날 사건들 속에 영적인 것들을 담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이 역사 속에서는 어떤 사건이 되어서 나타나게 되면 그 사건 속에 담겨진 영적인 의미를 읽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세요.

이 세상 역사는 일 년이라는 싸이클로 계절의 순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 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진행이 됩니다.

이게 순환 되면서 역사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일 년이라는 계절로 담아 두었습니다.

만물은 창세전 언약을 펼쳐 보이기 위해서 창조가 된 것이므로 그 언약이 완성 되면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창세전 언약을 일 년이라는 것으로 이해해 봅시다.

일 년은 사 계절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계절마다 특징이 있고 나타나는 현상들이 다 다릅니다.

 

봄에는 새싹들이 피어나는 모습들이 있고,

여름은 숲이 우거지고 무더운 모습들이 있고,

가을은 단풍이 들고 추수하는 모습들이 있고,

겨울은 낙엽이 떨어지고 추운 모습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속에 펼쳐가는 창세전 언약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봄에 씨처럼 뿌려지는 시기가 있고,

여름처럼 이삭이 나서 풍성하게 자라가는 시기가 있고,

가을처럼 곡식이 익어서 추수하는 시기가 있고,

겨울처럼 곡간에 들어가서 안식하는 시기가 있어요.

 

역사의 흐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가면서 이 세상의 모습도 그 시기마다 나타나는 사회 현상들이 다릅니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면 망할 징조들이 잘 나타나고 있어요.

국가가 망할 때 항상 그 징후들이 사회전반에 나타났습니다.

반목과 갈등과 부패와 타락으로 망국의 징후들이 나타납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보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망할 때를 보면 망국의 징후들이 사회전반에 나타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걸 사회현상론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에요.

망할 징조들이 인간들 세상에 나타납니다.

흔히들 사회가 혼란스럽고 나라가 시끄러우면 하는 말이 세상 말세야! 나라가 망할 징조야! 라고들 합니다.

교회가 망하려면 망할 징조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에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세상 끝의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그 징조들을 세 가지 현상론으로 말씀 하셨습니다.

 

첫째가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하는 교회의 타락을 말씀 하셨습니다.

둘째로 기근과 지진과 온역과 같은 천재지변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사랑이 식어져서 민족이 민족끼리 짐승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세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셨을 때 구약 교회는 썩을 대로 썩었어요.

오죽 했으면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였겠어요.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의 교회를 음녀라고 하면서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이들이 성도들의 피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예수님의 재림의 모형입니다.

영적 상태가 똑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구약 교회의 종말이고,

예수님의 재림은 신약교회의 종말입니다.

 

성경 속에는 종말의 모습들이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냐 하면 극심한 타락의 모습입니다.

종말은 심판성을 담고 있습니다.

 

노아 때도 그랬고,

소돔 고모라 때도 그랬고,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도 그랬고,

예수님의 초림 때도 그랬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시대의 교회 모습이 어떠할까요?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겠지요.

 

교회의 타락이란? 세속화입니다.

교회가 세상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나 신약의 교회사를 보면 언제 타락하느냐 하면 세상 가치가 들어 왔을 때입니다.

교회는 하늘에 속하였어요.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늘에 이야기가 증거 되어야 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의가 증거 되어야 해요.

그런데 마귀는 거짓 선지자들을 교회 안에 풀어서 땅에 이야기를 하게 하고 인간의 의를 좇아가도록 미혹하게 하였어요.

 

땅에 가치로 하늘에 가치를 가리고 인간의 의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게 하였어요.

여기에 필연적으로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의 전쟁이야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고,

마귀는 자기 백성들을 땅에 붙잡아 두고자 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교회 안에서 두 부류의 교인들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 백성들을 땅에 것으로 이 땅에 붙잡아 두고자 합니다.

땅에 붙잡아 두자면 어찌 해야 할까요?

땅에 것을 주어서 붙잡아 둡니다.

 

사도 요한은 땅에 것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세상으로부터 좇아 온 것으로서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마귀가 예수님에게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마귀가 사십일을 주린 예수님을 찾아 왔어요.

떡을 주면서 예수야~! 너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그럼 이것 받어, 그랬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난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어, 라고 합니다.

마귀가 다시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을 해, 그럼 이거 줄게, 그럽니다.

이에 예수님이 싫어, 나는 하나님만 경배 할래,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보아야 할 것은 이걸 시험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나갔어요.

그리고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십일을 굶었어요.

사십일을 굶은 사람 앞에 마귀가 떡을 들고 온 겁니다.

당연히 고맙다 하고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절했어요.

 

왜 예수님이 거절했나요?

이는 마귀가 떡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됨을 시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험인 겁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는 이유는 자기 목숨을 유지하고자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사는 자라고 응수하신 것입니다.

 

이게 엄청 중요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어요.

무엇으로 시험했나요?

떡입니다.

 

예수님은 그 동안 떡을 안 먹고 살았나요?아니에요.

떡을 먹었어요.

육신은 떡을 먹어야 해요.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 됨을 떡과 세상 것으로 시험 할 때는 나는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어,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살아가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떡이 신앙의 시험이 될 때 나는 떡에 가치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가치로 산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떡을 먹어야 살아요.

그런데 이것이 신앙의 시험으로 나타나면 떡 보다 말씀을 택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말씀에 가치로 살고 마귀의 아들들은 떡에 가치로 살아가요.

 

누가 여러분에게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가난해서 되나,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증명을 해야지 라고 하면 신앙이란 물질적 가치로 사는 것이 아니고 언약의 가치로 사는 것이라고 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각도에서 666을 접근하셔야 해요.

666을 뭐라고 하나요?

매매수단이라고 합니다.

이것 안 받으면 매매를 못합니다.

이건 먹고 사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이 시대 666을 받아야 된다!

아니다 안 받아야 된다!

싸우고 있어요.

이건 쓸데없는 싸움이에요.

 

이건 악을 쓰고 싸울 일이 아니에요.

떡을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받고, 말씀을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안 받아요.

666은 하늘에 거하는 자와 땅에 거하는 자를 심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고 땅에 거하는 자들은 다 짐승의 표를 받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표란 자기 소유를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과거에는 노예들을 사고팔았어요.

주인이 돈을 주고 노예를 사 오면 자기 소유를 낙인을 찍어서 표시를 해 놓았어요.

 

16절을 보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사람들의 이마나 오른 손에 표를 한다고 하지요.

이는 짐승의 소유라는 말입니다.

누구의 표인가 하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표입니다.

 

앞서서 말씀 드렸지만 마귀는 하나님을 모방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모방합니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들에게 표를 하십니다.

이걸 마귀도 땅에 거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표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7장을 봅시다.

 

계 7:1-8=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바람을 불게 합니다.

바람이란? 환란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기 전에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각 지파 별로 일만 이천 명씩 하나님의 인을 칩니다.

 

이렇게 인을 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을 친 자들은 내 것이니 손 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인을 쳐 놓고서는 전쟁을 맡은 천사에게 권세를 주어서 환란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출애굽 할 때 장자들을 죽이는 심판을 단행하기 전에 먼저 어린 양의 피를 문에다 발라 놓게 한 후에 죽임을 집행하는 천사들을 보내서 문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지지 않는 집에 들어가서 장자들을 죽이도록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종말의 재앙도 출애굽 때 애굽에 장자가 죽는 재앙과 같은 것입니다.

 

종말의 재앙은 출애굽과 같습니다.

창세전 언약이 완성이 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멸망하십니다.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칩니다.

인을 치는 이유는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이전에 천사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보냅니다.

보내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은 천상으로 빼내십니다.

다 빼내고 난 후에 이 세상은 소돔 고모라처럼 불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을 봅시다.

 

계 14:1-5=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습니다.

시온 산이란? 천국을 말합니다.

시온 산에 어린 양과 십사만 사천 명이 함께 서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에 어린 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써 있다고 하지요.

이들을 일컬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을 지킨 자라고 합니다.

 

여자가 누구인가요?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음녀이고 13장에서는 짐승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마귀가 교회 안에서 각각 자기 소유를 표시해 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이마에 어린 양과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고 땅에 거하는 자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입니다.

 

666은 짐승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자기 소유라고 표시를 해 둔 것입니다.

짐승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는 자들에게 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66 짐승표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백성들은 절대로 받지 않아요.

구약을 보면 표가 어디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 되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 9장을 봅시다.

 

겔 9:1-6=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하나님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에게 살육하는 기계를 들고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섯 사람이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들이 쓰는 먹 그릇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뭔가 표시를 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이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을 예루살렘 성읍으로 보내서 그 성읍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을 인하여 울면서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합니다.

표를 다 하고 난 후에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자들에게 이마에 표가 없는 자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 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자들을 어디로 보내는가요?

예루살렘 성읍이지요.

성소로 보내지요.

 

6절을 보세요.

 

6절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심판을 성소에서 시작하라고 하지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집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게 종말에는 교회의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항상 교회 안에서 활동해요.

이단들이 누구를 미혹하던가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미혹해요.

여기에 누가 넘어가던가요?

진리에 서 있지 못하는 자들이 넘어가요.

 

표도 마찬가지에요.

교회 안에 가짜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성소 안에 이마에 표를 한 자들과 표 하지 않은 자들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마에 표 있는 자들은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고 표 없는 자들만 심판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 안에 두 부류가 섞여 있음이 되지요.

 

에스겔이 본 환상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교회에요.

왜 교회로 보내는가요?

교회 안에 진짜와 가짜를 갈라내고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심판하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을 보고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합니다.

교회의 가증한 일이란 세속화입니다.

인간의 의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이건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음녀의 가증한 일을 보고서 우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 시대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타락을 보면서 애통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 인 맞은 자들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성도는 교회의 타락을 보고서 아파하고 애통해요.

 

육적 신자들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교회가 진리가 증거 되지 않아도 아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성도들만이 교회가 세속화 되면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이 인을 맞은 자들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인이에요.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는 음녀를 따르지 않아요.

거짓 선지자들이 말을 따르지 않아요.

종말에 되어질 일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666 짐승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도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는 자들은 다 짐승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않을뿐더러 666 짐승표를 받지도 않아요.

 

666 짐승표는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아니한 자들이 받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심판 받을 자들에게 표시를 해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데리고 갈 자기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치고, 마귀는 지옥으로 데리고 갈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가요?

성도에게는 이처럼 신 나는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자기 것이라고 소유를 하는데 어찌 신이 안 납니까?

당연히 신이 나야지요.

 

제가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면서 그랬지요.

요한계시록은 두려운 책이 아니고 위로와 소망을 주는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시려고 환란 속에 있는 교회들에게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비록 이 땅에서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66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고 하여도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에요.

도리어 아~ 성경대로 응해져 가는구나! 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나님은 666이 나타나기 전에 먼저 자기 백성들에게 인을 쳐 주세요.

그러니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666 짐승표가 나타난다고 하여도 걱정 할 일이 아니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는 666을 받지 않아요.

왜냐하면 666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거하는 성도들은 666이 나타나도 두려워 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극단적인 종말론 자들은 요한계시록을 두려운 책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666를 가지고 공포심을 조성하고 있어요.

마치 666을 안 받는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냥 떠들고 있어요.

이것은 자기 안에 엄습하는 두려움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 위선에 지나지 않아요.

 

두려워 한다는 것은 땅에 속하였다는 증거에요.

하늘에 속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아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좇아요.

그러니 그 안에 온전한 사랑을 받은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아요.

스데반처럼 죽음 앞에 서도 당당해요.

 

이건 우리의 의지나 각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그렇게 해 주세요.

죽음은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자에게 두려운 것이에요.

죄와 사망 권세를 벗어난 성도에게는 두려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 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죽어요.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다 죽습니다.

누구에게 죽임 당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짐승의 출현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추수하기 위함입니다.

 

말이 추수이지 육에 속한 자들은 땅에서 붙박이처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주류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서 뽑힘 당하는 자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짐승이 성도와 싸워서 이긴다고 하는 말은 성도들이 짐승에게 죽임 당한다는 것입니다.

 

1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은 짐승으로부터 죽임 당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3장의 주제는 짐승이 하나님에게 속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과 싸워서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 짐승에게 경배치 않고 또한 666 짐승표를 받지 않고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시대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에요.

살려면 짐승에게 경배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아요.

물론 666 짐승표도 받지 않아요.

 

그럼 당연히 핍박을 당하든지 고난을 당하든지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주세요.

 

이게 중요한데 잘 이해하세요.

사람들은 짐승에게 죽임 당하는 것을 저주라고 여기는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도리어 축복이에요.

 

짐승에게 죽임 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어요.

하나님은 성도들을 짐승에게 붙여서 다 예수그리스도처럼 죽임 당하게 만들어서 천국으로 데려가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두 증인들의 죽음으로 보여 주셨잖아요.

두 증인들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하나님이 사흘 반 후에 예수님처럼 부활을 시켜서 하늘로 데리고 가셨잖아요.

 

또 다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죽어도 사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걸 제일 먼저 혜택을 본 사람이 사도 요한이에요.

 

사도 요한은 지금 밧모 섬에 유배당하고 있어요.

죽어가고 있어요.

그런 그에게 하늘에 모습을 보여주고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다녀온 사도 요한이 죽음을 두려워했을까요?

아니에요.

도리어 기뻐했어요.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과 마귀는 각각 자기 소유에게 표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표를 받은 자들은 상대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는 마귀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666 짐승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격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성도는 마귀로부터 죽임당하고, 666 짐승표를 받은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마귀는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들만 죽여요.

반대로 하나님은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에게 진노를 끌어 부어요.

재미있는 것은 마귀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성도들은 천국으로 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지옥으로 갑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증거하는 것은 이 땅에서 죽임 당한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와 함께 거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잘 믿으면 죽음도 피해 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예수 잘 믿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므로 복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낙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천국에서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천상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상이 있으니 안심하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봐라!

죽었지만 산 자가 되어서 세상 위에 계시지 않느냐?

너희 앞선 믿음에 선진들을 보아라!

믿음을 지키다가 죽었지만 저렇게 살아서 영원토록 왕 노릇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도 예수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슬퍼하지 말고 영원히 사는 것이니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는 666 표를 받지 않고 살아서 예수님을 영접할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666을 받지 않도록 해 주십니다.

환란 속에서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 죽지 않고 데려감을 당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봅시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잘 보세요.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 두 종류의 성도가 있습니다.

먼저 자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사 시절에 믿음으로 살다가 일찍 죽임을 당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니까 자는 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교회 시대가 시작이 되고 난 후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께서 강림 하실 때에 살아남은 자들이 있어요.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짐승표를 받지 않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짐승으로부터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봅시다.

 

계 20:4절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목 베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고,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고 합니다.

 

두 부류가 있지요.

목 베임을 당한 자들과 살아서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은 교회사 속에서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고,

살아 있는 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이 둘에게 모두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사 시절에는 믿음으로 살다가 죽임을 당하는 성도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살아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한계시록은 시대마다 적용하는 것이 다르다고 한 것입니다.

이걸 영적인 것과 실제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행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이 오시면 우린 죽지 않고 데려감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예수님이 재림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로부터 고난당하다가 죽임을 당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아직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았고 예수님의 재림 때가 아니므로 짐승과 666 짐승표 이야기는 영적인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사 시대로 해석하여서 비록 믿음을 지키다가 이 땅에서 고난당하고 버려짐을 당한다 하여도 슬퍼하지 말고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위로와 소망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는 곧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때와 기한이 차야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때를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징조를 보아서 때를 예측 할 뿐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오실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되어가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를 잘 믿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 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할 수가 있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영광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고난당하고 살아가는데 손해를 보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슬퍼하지 말고 천국에 소망을 삼고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을 초대교회로부터 주신 목적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실제로 죽었어요.

이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죽음 이후의 세상인 천국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 가는 것이므로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위로와 소망을 받았어요.

 

초대교회는 예수 때문에 칼과 창에 찔려서 죽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은 없어요.

예수 믿는다고 죽이지 않아요.

 

다만 믿음으로 살다가 보면 세상 영광도 버리고 물질적 가치를 버려야 하는 아픔들을 당합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물질에 가치로 살지 않는 것은 고난입니다.

지금은 영적인 의미에서 물질적 가치로 사는 자는 666을 받은 것이고,

물질적 가치로 살지 않고 말씀에 가치로 살면 666 짐승표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세상 영광을 꿈꾸고 물질적 가치로 산다면 그는 666 짐승표를 받은 사람이에요.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예수 앞에 나와서 떡을 구하고 세상 영광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성령이 와 계신 성도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은 입을까 라는 세속적 가치를 얻고자 예수를 믿지 않아요.

 

도리어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로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살아요.

이러한 사람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다고 해서 이슬 먹고 살지 않아요.

여전히 밥을 먹어야 해요.

 

그러나 성도는 비록 돈을 벌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라는 자세로 살아요.

그러므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있는바 족한 줄 알고 하루 하루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떡을 던져 보면 각 자의 정체성이 드러나요.

땅에 거하는 자는 떡을 좇아가고, 하늘에 속한 자는 말씀을 좇아가요.

교회 안에는 떡에 가치로 사는 자와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가 있습니다.

떡에 가치로 사는 자는 666표를 받은 자이고,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성도에요.

 

666 짐승표를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게 하지요.

이마는 그 사람의 정신을 나타내고 오른 손은 그 사람의 삶을 말해요.

그럼 지금은 머리 속에 떡에 가치 즉 세속적 가치를 품고 사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것과 같아요.

 

쉬운 말로 어리석은 부자처럼 정신머리를 떡에 가치로 가득차 있고 손발이 떡을 쫓아가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은 것이 되어요.

그럼 그 반대로 떡(세상 영광)에 가치로 살지 않고 머릿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것을 누리지 못함이 고난입니다.

이게 교회사 시대에는 목 베임 당하는 것과 같은 아픔인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이에요.

 

스스로에게 물어 보세요.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의 떡을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천국에 대한 소망과 창세전 언약이 이루어져 가는 기쁨으로 사는가?

 

내가 사는 이유가 현세적이고 떡이면 영적으로 이미 짐승표를 받은 것이고,

내가 사는 이유가 내세적이고 말씀이면 영적으로 하나님의 인을 맞은 것입니다.

떡이 살아가는 의미인 사람은 666 짐승표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누가복음 4장을 봅시다.

 

눅 4:1-13=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리라”

 

마귀가 무엇으로 예수님을 시험 합니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내어 놓은 문제지가 뭔가요?

떡입니다.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입니다.

 

마귀가 제시한 하나님의 아들 상이 어떤 건가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땅에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은 어느 시대이고 계속되었어요.

지금 식으로 말하면 예수 믿으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살아야 하나님께 복을 받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항상 세상에서 성공하여서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들은 물질적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말씀에 가치관으로 하나님의 아들 됨을 내어 놓습니다.

이러면 땅에 거하는 자와 하늘에 거하는 자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떡이 생명인 사람은 떡을 좇아가고,

말씀이 생명인 사람은 말씀을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강요할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본질의 문제입니다.

소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고기를 먹을 수가 없고,

사자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건 각자 먹을 양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도 이와 같습니다.

각자 살아가는 의미가 달라요.

불신자는 세상 영광을 구하고, 신자는 하늘에 영광을 구해요.

불신자는 떡이 살아가는 의미이고, 신자는 말씀이 살아가는 의미에요.

 

이 의미를 잘 이해 하셔야 해요.

예수 믿는 사람은 떡 안 먹도 산다는 말이 아니에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자는 떡을 먹어야만 살 수가 있어요.

그러나 떡에 가치로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모습이 그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났어요.

성령이 임하고 나자 그 동안 떡에 가치로 살던 사람들이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 모습이 교회에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 제물을 내어 놓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물질을 모으던 것에서 성도들을 섬기기 위하여 내어 놓는 것으로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이마에 성령의 인침을 받은 성도들은 떡에 가치로 살지 않고 말씀에 가치로 살아요.

반대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은 교회에 나와도 떡에 가치로 살아요.

이러한 사람들은 666 짐승 표를 받은 것입니다.

666 짐승표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가짜 그리스도인들을 뽑아내기 위하여 사단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마귀는 666 짐승표로 자기 백성들을 추수해요.

그래서 창세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가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666 짐승표를 우리의 의지나 각오로 가지고 받느냐 안 받느냐 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건 받느냐, 안 받느냐, 목소리 높여서 싸울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으면 안 받게 할 것이고 녹명 되지 않았으면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666을 받느냐 안 받느냐 보다 먼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죄인은 천국 가는 길을 몰라서 지옥으로 가는게 아니에요.

천국 가는 길을 알려주어도 지옥을 가는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천국 가는 길로 주셨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고 해도 싫어합니다.

왜 그런가요?

이는 예수는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이 믿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서로 발에 밟힐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예수님은 돌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을 경배해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자들은 다 666 짐승표를 받아요.

저것 받으면 죽는다고 하여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666을 안 받으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에요.

이 시대 극단적 종말론 자들은 자기 의지로 666을 받으면 안 된다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신앙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지켜주는 것이지 인간들이 핏대를 세우고 소리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핏대를 세우고 예수를 믿으라고 해서 예수가 믿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은 예수를 믿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해 주셔야지만 믿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구원이 은혜이고 믿음이 은혜인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척 흉내는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흉내 내기이지 믿음은 아니에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분들은 소리치지 않아도 믿고 믿음을 선물로 받지 않은 사람은 소리쳐도 못 믿어요.

그런 의미에서 666을 받아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것으로 다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다투어서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믿어지십니까?

그럼 안심하세요.

 

천국이 믿어지십니까?

그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 안에 성령의 인침이 일어났습니까?

그럼 666하고 상관이 없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주어진 천국의 약속 안에서 하루 하루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지혜를 주셔서 말씀을 잘 분별 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징조를 볼 수 있는 눈도 열어주어서 때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온전한 사랑 안에서 두려움 없이 종말의 때를 살게 하시고 주님 오심을 사모하면서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처럼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께서 능히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 주심을 믿고 담대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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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01.12 23:55

    첫댓글 하나님 감사합니다 ^^

  • 21.11.24 20:4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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