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쑥인절미 / 글. 정금자
치매 환자를 포함한 노인병 전문치료병원에 근무 할 때 일이다. 병실은 늘 장기 환자를 포함한 노인들이 전부다. 하늘의 기운이 잠잠해지는 밤이면 언제나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들이 음습한 땅으로 내려와 6층짜리 건물 안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설날, 78세 된 환자의 여동생 한 분이 해남에서 병문안을 왔다. 오는 길에 직원들을 위해 쑥인절미를 만들어 온 일이 있다. 요양보호사 중 나이 40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Y씨가 있었다.
Y씨가 인절미를 한 움큼을 들고 나오더니 수줍음도 없이 입을 쩍 벌리며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초록색 인절미를 꿀꺽 먹어 치웠다. 볼이 볼록볼록 튀어 나오도록 맛있게 먹던 그녀가 나를 불렀다.
"언니, 이리와 봐요. 김 어른신의 보호자께서 쑥인절미를 아주 먼 시골집에서 손수 만들어 오셨는데, 언니도 나처럼 이렇게 먹어봐요. 참 맛있어요. 자! 아……. “ 하면서 나의 입에다가 인절미 한 개를 넣어 주었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나는 그만 그녀가 넣어주는 떡을 나도 모르게 받아먹고 말았다. 바로 그 맛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정성껏 만들어 입에 넣어 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그윽하게 입안을 감도는 쑥 향에 불현듯 어머니 생각이 났다.
불쑥 솟아오르는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와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해마다 봄이면 자식들에게 먹여 주고 싶은 당신께선 땡볕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줄도 모르고 들로 산으로 다니시며 대광주리가득 쑥을 캐다가 절구통에 찧고 아궁이에 군불 지피실 때 찜통에 찌어 주셨던 쑥인절미,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신지 아득히 멀건만 지금도 나의 눈망울은 녹음이 우거진 쑥밭에서 쑥 캐러 가신 어머니를 마중 나가 있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어머니는 쑥을 캐다가 아궁이에 소나무 가지를 뚝뚝 꺾어 넣으시더니 성냥불을 켜서 불을 지피시고 쑥인절미를 만들고 계셨다.
“엄마, 이거 힘들게 왜 자주 만드세요? 눈 매워죽겠는데…….”
아직 마르지도 않은 솔잎이 타면서 매캐한 연기가 마당 밖까지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었다.
“여자한테 좋은 거여…….”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얼굴을 닦아 내리시더니 나를 힐끔 올려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쑥은 피로를 풀어 주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며, 소화기 장애를 해소시켜 변비에 좋다고 하셨다. 또한, 따뜻한 성질을 몸에 전해주기 때문에 그 성질이 또한 여자와 같다고 하셨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지만, 의학적 지식을 공부하셨을 리 없던 어머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만 되면 부지런히 쑥을 캐서 인절미를 만드셨던 것은 자식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발로였던 것이었다.
당신은 힘드신 줄도 모르고 그저 자식 사랑에 하나라도 더 먹여 주려고 애쓰시던 모습, 넘치는 사랑이 아직도 내 가슴을 진달래 꽃빛으로 물들게 한다. 나는 어린 소녀였다. 가마솥에 불을 지펴라 하시면 무조건 순종하던 어린 여자 아이, 어머니를 도와 연한 피부가 발갛게 물들 때까지 장작불을 지펴 쑥을 삶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가마솥에 삶은 쑥을 꺼내 검은 물이 빠질 때까지 3일 정도 두었다가 불린 찹쌀과 함께 시루에 넣고 고실고실해 질 때까지 장작불로 쪄 낸다. 그런 다음 절구에 넣고 떡메로 친다. 아버지가 떡메를 치면 어머니는 엉기지 않도록 골고루 뒤집었다. 떡판에다 올려놓고 손으로 뚝뚝 떼어 구수한 콩가루를 발라 놓으면 맛있는 인절미가 만들어 졌다.
떡심부름도 무척 많이 했다. 덩달아 신이 난 나는 접시 여러 개를 겹쳐놓고 이웃집으로 뛰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아까운 떡에 흙고물을 묻힌 적도 많았다.
어머니께서 내게 시키시는 심부름 중 가장 신나고 기뻤던 것도 이웃에게 먹을 것을 전해 드리는 일이었다. 쑥인절미는 물론이거니와 제사 때 찐 시루떡과 시원하고 깔끔하게 끊인 콩나물국 한 대접을 쟁반이나 바구니에 담아 주면 발걸음도 가볍게 이웃으로 향하던 일이 생각난다.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인절미는 야참이나 새참으로 훌륭한 음식이었다. 엿가락처럼 길고 두껍게 잘라 냉동실에 두었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 다시 찐 다음 콩고물을 얹으면 마치 막 만든 인절미처럼 되곤 했었다.
형제들과 모여 앉아 찌거나 구운 인절미를 먹으며 밤 깊은 줄도 모르고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오늘 이렇게 쑥인절미를 먹고 있으니 새삼스레 어머니가 그리워져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살아생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도록 맛있는 쑥인절미를 만들어 주시던 크나 큰 사랑에 두 손 들어 받아 들지 못했던 그 때의 죄스러움이 아직도 눈가에 아른거린다.
떡집을 지나면서 지금은 돈 주고 얼마든지 사 먹는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자식을 사랑하는데 있어 아궁이 속 장작불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시다가 쓸쓸한 기억만 남겨놓고 가신 당신 앞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어머니만의 쑥인절미를 광주리에 담아 바칩니다.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아궁이 앞에서 눈물 흘리시던 어머님, 떡집 앞을 지날 때면, 아득히 먼 세월의 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로 어머님이 내게로 온다. 낮에 나온 달 같다가도 금방 사라지는 물안개로…….글썽이는 눈물 못내 참아가며 가던 길로 가는 길은 아직 채 꺾지 않은 쑥 향기가득한 길을 걷고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어머니와 쑥인절미
그리고 나
짙은 향수 내음
짙은 추억 내음
침샘이 철철 넘습니다.
회장님 너무 멋지게 잘 쓰셨습니다
고향의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 납니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피는 그리운 꽃 한 송이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