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가서 범대순 시인을 찾아뵙다(2012. 3. 22)
기계시에서 디오니소스 축제의 시학까지
―범대순론
이승하
범대순 시인의 시력詩歷을 꼽아본다. 첫 시집 『黑人鼓手 루이의 북』을 간행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고 보면 40년이요, 그 시집에 발문을 쓴 조지훈 시인이 “그가 나에게 시를 보여준 것이 10여 년 전 옛날이니”라고 했으므로 시작(詩作)의 시작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세기에 걸친 시적 여정이다. 희수를 바라보고 있는 범대순 시인의 시적 여정을 살펴보게 된 것을 분에 넘치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펜을 잡는다.
등단 과정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모교 고려대학교의 은사이기도 한 조지훈은 그 당시 『문학예술』지의 추천위원이었다. 이제는 ‘범대순 군’을 시단에 내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신년호에 자네 시가 내 추천사와 함께 나갈 걸세’라고 말한 바로 그 달(1958년 1월)부터 책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딱 그 시점에 재정난으로 폐간이 된 것이다. 시인은 그때 스물일곱에서 여덟로 막 접어든 열혈 청년이었는데 뜨거운 내적 충동을 발화시킬 기회를 놓쳐버린 채 그만 타의에 의해 시단에 고개도 못 내민 채 잠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등단은 유야무야해지고 말았고, 범대순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단 관행인 ‘등단’이란 절차 없이 7년 반의 세월이 흐른 뒤인 1965년에야 시집 출간으로 시단에 나가게 된다. 조지훈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발문을 쓰게 되는데, 아래는 발문의 가장 앞부분이다.
범대순 군은 숨은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가 나에게 처음 시를 보여준 것이 10여 년 옛날이니 범군은 그 동안 적지 않은 세월을 시를 쓰면서 시와 함께 살아온 것이다. 꾸준히 시를 쓰면서도 발표와는 아랑곳이 없었고 충분히 역량을 지니면서도 그 숱한 동인지 활동에의 참여조차 무관심하면서 오직 스스로의 진실의 느껴운 바를 외로이 시로 써서 모았던 것이니 내가 범군을 숨은 시인이라 부르는 內情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집 후기에서 꼭 10년간에 썼던 시를 뽑아서 엮었다고 했다. 한 사람이 시인이 되기 위하여 절차탁마하며 기다린 세월이 장장 10년, 등단의 길이 너무나 넓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첫 시집의 첫 번째 시를 보자.
다이너마이트 폭발의 5월 아침은 快晴
아카시아 꽃 香氣 그 微風의 언덕 아래
황소 한 마리 入場式이 鬪牛士보다 오만하다.
처음에는 女王처럼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다가
스스로 울린 청명한 나팔에 氣球는 비둘기
꼬리 쳐들고 뿔을 세우면 洪水처럼 신음이 밀려 이윽고 바윗돌 둑이 무너지고.
그것은 희열
사뭇 미친 폭포 같은 것
짐승 소리 지르며 목이고 가슴이고 물려 뜯긴 新婦의 남쪽 그 뜨거운 나라 사내의 이빨 같은 것.
―「불도오자」 앞 3연
불도저는 커다란 쇳날과 무한궤도를 장치한 특수 자동차로서 땅을 깎거나 평평하게 고르는 데 쓰인다. 또한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건설공사장의 필수적인 기기로 수십 개의 삽을 대신하는 노동력과 산길 진흙길 마다하지 않고 가서 일하는 기동력을 지녔다. 그 저돌성은 ‘불도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낳기도 했다. 시인은 불도저에게 생명을 불어넣기로 했다. 그래서 이 시가 투우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불도저가 꼬리를 쳐들고 뿔을 세우자 바윗돌 둑이 무너진다. 불도저의 작업 광경은 미친 폭포 같다. 남쪽 뜨거운 나라 사내의 이빨을 가진 불도저는 짐승 소리를 지르며, 신부의 목과 가슴을 물어뜯으며, 불같은 사랑을 한다. 정오가 되어 휴식시간을 가졌을 때의 불도저는 이렇게 묘사된다. “진정 검은 大陸의 그 발목은 화롯불처럼 더우리라”. 국내외 수많은 모더니스트가 문명을 비판해 왔는데 범대순은 그와 반대로, 문명의 ‘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 시 자체가 우리 시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다음 시들을 보자.
앞에 꿇어 손을 모으지 않았어도
오히려 山上 경건한 祈禱의 횃불이여
내 일찍이 自由의 女神 앞에 서서
오늘의 이 感激에 울었거니.
―「放送塔」 부분
港口서야
검은 빌딩과 굴뚝을 숲처럼 세우기 위해
백일해처럼 답답한 貨物들이 모두 풀려 나오고 있었을 게 아닌가.
百年쯤 더 옛날
방금 赤道線을 넘은 어느 貨物船에선
黑人의 拒逆이 꽃처럼 화창했던 것일까.
또 百年이 지나는 어느 지금
한 宇宙港에 전송도 슬픔도 없어
파이프와 휘파람으로 그 出帆이 쓸쓸하겠지.
―「싸야렌」 부분
김기림은 「氣象圖」(1936)에서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풍자했지만 범대순은 자유의 여신을 방불케 하는 방송탑 앞에서 감격하여 울었다고 했다. 문명이 오로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인간은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하거늘, 현실이 어디 그런가. 백일해처럼 답답한 화물들이 항구에서 모두 풀려 나오는 이유를 시인은 검은 빌딩과 굴뚝을 숲처럼 세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오늘날 숲을 대신한 것이 검은 빌딩과 굴뚝이므로 이런 현실을 그대로 인정해야지, 부정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항구의 사이렌 소리는 낭만적이었으나 우주항의 시대인 지금은 그런 소리조차도 없어 쓸쓸해진 것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을까.
기계문명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첫 시집 제1부의 시들에 집중된다. 차량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간의 “무수한 엔진과 발목들이 潮水로 넘쳐 밀리는 廣場”을 그린 「랏쉬 아워」, 안테나를 “항상 내 靑春의 높이와 그를 맞세워 보는 것이다”라고 묘사한 「안테나」, 사이렌 소리를 “아 피 맺힌 나라의 정말로 기막힌 소리”라고 표현한 「싸야렌 序」 등이 다 기계와 문명, 혹은 기계문명에 대한 시인의 관심의 소산이다. 특히 「機械는 外國語」는 시인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시다.
機械는 外國語
같이 밋밋한 音響과 호려한 色彩를 가졌어도
손잡고 거리에 나서기 가벼운
허나 들어 같이 자리하기가 까스러운 女人.
―어느 날
내 발 벗고 달린 都市에 키 크고 검은 對面
오만하여 둥근 발목과 긴 모가지
이제 그 金屬 生理 속에
어느 茂盛한 常綠을 생각하고
같이 살며 太陽만한 알을 낳자고
그는 자꾸 닳아오른 나의 體溫을 要求하다.
―「機械는 外國語」 앞 3연
‘기계’라는 한자어가 외국어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은자의 나라 조선에 ‘기계문명’이란 것이 들어온 것은 청나라와의 활발한 교류 덕분이었다. 청을 통해 서방의 선진 문물을 접한 선각자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부르짖은 것이 실학이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국민의 절대다수가 의식주 해결에 내몰렸는데 기계는 조금씩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편리와 여유를 제공하였고, 그럼으로써 개화기와 근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계는 ‘외국어’이기 때문에 자리를 같이하기엔 왠지 껄끄럽다. 기계는 키가 크고 검고 오만하다. 하지만 그의 금속 생리 속에서 살아가게 된 나는 무성한 상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는 “같이 살며 太陽만한 알을 낳자고”, “자꾸 닳아오른 나의 體溫을 要求”하고 있지 않은가. 거절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금은 낭만주의 시대가 아니다. 자연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기계를, 문명을 길들여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인의 운명임을 범대순은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후일 자신의 첫 시집 제1부에 있는 시들을 해설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 자신이 성취해놓은 기계문명의 세계에서 예술가는 왜 저주를 자초하고 있는 것인가? 기계와 인간정신의 대립은 예술이 기계와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불성실에서 오는 것이고, 그것은 기계와 예술 쌍방의 정신적 태만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이 곧 기계가 시의 주제일 수 있는 열쇠가 되고 나아가 나의 기계시 「불도우저」의 시적 가치일 줄 안다. 불의 발견으로부터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발명치고 신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되지 않는 것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그 발명을 이용하여 오늘날까지 발전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기계가 한 편의 시가 되기까지」, 『트임의 미학』, 사사연, 1998, 114쪽.
시인 스스로 ‘기계시’라고 명명한 이런 시를 쓰게 된 데는 스승 김종길이 소개해준 영국 시인 스티븐 스펜더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범대순은 “기계에 대한 적의”라는 스펜더의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쓰게 된 것이 일련의 기계시였다. 그렇다고 하여 시인의 의도가 기계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이 아니라 그 본질을 규명하는 데 있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범대순의 기계시는 확실히 ‘문제 제기적인’ 시였다. 시집의 제2부에는 ‘힘’에 대한 추구가 낳은 시편이 실려 있다.
당신은 아뜨라스
검은 손이 불꽃처럼 밝다.
처음에는 創造의 숨결
들릴 듯 들릴 듯 아쉽더니
이윽고 無數한 소나기와 常綠
화려한 戰爭이 몰리고 또 지고
그리하여 波濤와 쫓기는 密林의 불빛.
붉은 悲鳴과 검은 憤이 목을 노면
저렇게 우는 것인가 생각한다.
―「黑人鼓手 루이의 북」 앞 4연
대단히 역동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화려한 색조와 급박한 음향 등으로 구현된 사물의 운동성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기계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생명체의 생명력에까지 이어졌다. 「初産」「산불」「홈런」「蹴球競技場에서」「G線」「103號 硏究室」 등 대부분의 시가 그렇다.
범대순은 첫 번째 시집을 발간하면서 자신을 전통 서정시의 계보에도, 모더니스트의 계보에도 넣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한 셈이다. 뜻하지 않은 일로 초산이 난산이 되긴 했지만 정작 태어났을 때 그의 울음소리는 흑인 고수 루이의 북소리를 방불케 할 만큼 컸다. 그는 이렇게,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과는 뚜렷이 구별될 정도로 확실한 개성을 보여주며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5년 뒤에 제2시집 『戀歌 ⅠⅡ 其他』를 펴내게 되는데, 여기서는 많은 한자어를 동원한 관념의 성채를 버리고 지극히 평이한 일상의 평원으로 내려간다.
서당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작은 나의 손목을 잡으시고
그 맥을 헤아리며 눈을 감다 뜨시고는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었구나 하시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꾸지람을 어느 날은 자랑을 또 어느 때는 거짓말을
꼭 맞추시던 아버지를
어렸을 때 나는 세상을 다 아시는 성자라 믿고 있었다.
―「戀歌 Ⅰ」 앞 2연
적도선상 긴 해안에 파도 높은 정월의 어느 날
여인의 뜰 매화 가지에 문득 몇 송이의 꽃을 피우고 조용히 다가서는 사나이의 소리를 듣는다.
심장의 직경이 흔들리는 열대의 파도
그 장관을 가만히 꽃이파리 흔들리는 속에서 깨닫노니
매화 꽃잎이 지고 이제 진달래가 필 무렵 적도선상에 일어날 사건들을 그녀는 생각한다.
―「戀歌 Ⅱ」 앞 2연
앞의 시는 유년기 회상이고 뒤의 시는 현실 반추이다. “심장의 직경이 흔들리는 열대의 파도” 같은 역동적인 표현이 없지는 않지만 그의 시가 고요해졌다고 할까 그윽해졌다고 할까, 어느새 젊음의 열기를 많이 가라앉히고 ‘靜中動’의 세계로 나아갔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자어가 확실히 줄어들었고, 대다수 시가 쉬워졌으며, 자신의 과거 실제 경험에서 시의 소재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관념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상상의 세계에서 경험의 세계로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돌을 보내고 곧
처음으로 생일도 맞는
엄마야 하기도 하고
아빠 또 압지 해보기도 한
이애가 제 형들 하는 대로
책도 뒤지다 찢고 뜀도 뛰다 넘어지고 하더니
그러다가 어느 날은
눈을 부릅뜨고
내인 제 애비에게
새끼 이 새끼하며 주먹질을 하는 것이었다.
―「두 살」전문
이런 시를 보면 변화의 폭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문명 혹은 기계에 대한 담론은 거대담론이지만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시의 소재가 될 때, 이것은 삽화 내지는 스케치가 될 수 있다. 뜨거운 시정신하고는 먼 거리에 있는 시들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6․25전쟁도 ‘동족 상잔의 비극’으로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차원에서 이야기된다.
기념 행사에서 돌아오다
열 살의 아이가 六ㆍ二五를 봤느냐 묻기에
나는 보았다고 대답하였다.
열 살의 아이는 공산당을 봤느냐 또 묻기에
나는 보기만 해 하였었다.
한참만에 그 애는 또 간첩을 봤느냐 묻기에
간첩도 만나고 말고야 하였더니
애기는 그러자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때마침 우리는 검문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애기는 나의 손을 꼭 붙잡더니
“아빠 자수해” 하는 것이었다.
―「六ㆍ二五」 앞 4연
이 한 편의 시만 보더라도 제1, 2시집의 편차가 대단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제1시집의 발간 연도가 1965년이라고 하여 60년대에 접어든 이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해이다. 시인은 50년대에는 시를 쓸 때 때때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첫 시집 발간 이후에는 일상사에 대한 관찰과 과거지사에 대한 회상을 시의 모티브로 삼는 일이 많아져 자연히 시를 쓸 때에는 날렵하고 경쾌한 푸트웍을 하게 되었다.
시인이 제3시집을 내는 것은 두 번째 시집을 내고 나서 무려 16년 뒤인 1986년 뒤의 일이다.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공부까지 하고 나서 유학의 길을 떠난 시인이 외국에서 문학 연구에 매진하느라 국내 시단에서의 활동을 접은 탓이 아닌가 한다. 시인은 미국으로 가 오하이오주에 있는 데니슨 대학에서 학업을 쌓는다. (시인이 공부한 대학에는 영국 캠브리지와 에모리 등도 포함된다.) 그 나라에 가서도 창작의 펜을 놓지 않았음은 데니슨 대학에서 시와 에세이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이 입증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내 시단에서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쓴 시는 공교롭게도 동양적인 시정신에 입각해서 쓴, 지극히 한국적인 시다. 수만 리 바닷길 저쪽에 있는 고국의 토양과 풍광, 역사와 현실, 한민족의 특질과 습성, 가족과 친지, 기억 속의 고향과 고향 사람들……. 버터를 먹으면서 생각한 김치였을 테니 얼마나 절실했을 것인가. 그래서 시집 제목도 ‘異邦에서 老子를 읽다’로 붙이게 된다. 시집의 첫 번째 시를 보자.
어둠이 아직 버티고 있는
계곡 안에 가득
넘쳐흐르는 까치의 나팔이
바위를 밀어
굴 안
깊은 꿈속에
코를 부는
범을 흔들면
꿈속의
밝음을 더불고
비로소 눈을 뜨면서
부신 빛이
실은 새의 말이었음을 깨달으며
범은 몸을 일으킨다.
―「까치 호랑이」 앞 3연
단군 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까치와 호랑이가 나온다. 눈부신 빛이 새의 말(언어)임을 깨닫고 범이 몸을 일으켜 새벽을 맞이한다는 개벽 신화로 바꿨으니, 신화 패러디다. 둘의 만남이 천둥으로 울려 새 세상이 열렸다고 한 이 시를 제일 앞머리에 둔 이유는 시인 스스로 ‘자기 정체성 찾기’에 골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태생의 뿌리, 내 존재의 근원을 찾고자 먼 이역에서 쓴 시가 바로 「까치 호랑이」였다.
이 시집에서 어린 시절에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소재로 해서 쓴 작품으로는 「부사리 畵像」 「南向」 「소나기여」 「고향에 가서 엿판이나 질거나」 「新村」 「洛村」 「生龍洞」 「芝山村」 「밭돌미」 등이 있다. 농촌공동체의 풍속이 그대로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을 그린 이런 시들은 참으로 따뜻한 정감을 안겨준다. 이밖에도 시집의 제1부에 있는 「송아지」 「春望」 「봄비」 「바람」 「晩秋」 「落葉」「挽歌」 「送別」 등의 시는 한국적인 정서, 또는 토속적인 정취를 듬뿍 맛보게 한다. 제2부의 시들은 외국 유학과 여행의 낙수 같은 것들이다.
시인은 1981년부터 1991년까지 10년 동안 여러 차례 외국에 나가 공부를 했다. 아마도 유학을 가서 한동안은 귀도 안 트이고 입도 안 열려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교수의 요청으로 학우들 앞에서 한국문학에 대해 특강을 하는 기회까지 얻게 된다. 창작교실에 나가 영어로 시도 써보고 시 낭송회에도 참여한다. 데니슨 대학 개교 150주년 행사의 하나인 문학작품 현상모집에 응모한 시가 특별상을, 에세이가 2등상을 타는 감격을 맛보기도 한다. 배움이 늘수록 그의 영혼을 압박하는 것은 “코리아 나의 나라”였다.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되고 뇌리에 영어단어가 쌓일수록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했던 것이다.
영어로 老子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孔子와 春秋戰國時代와
전자계산기와 주말을,
중량급 레슬링 선수와 코리아 나의 나라,
대륙과 자살을 생각한다.
美國에서 老子라니 말도 안 된다.
안 되고말고
이와 같은 시대에
더구나 미국에서 老子라니
정말로 거짓이다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버리지 못하고
밤을 새우며 老子를 읽는다.
―「異邦에서 老子를 읽다」 제2, 3연
왜 그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영어로 노자를 읽었던 것일까. 정말로 거짓이다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버리지 못하고, 밤을 새우면서까지.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노자의 사상에 우리 정신의 뿌리가 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서양에 없는 것, 서양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거기에는 분명히 있다.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서양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런 식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혹은 영국)에 가서 영어로 된 노자를 읽는다는 일의 아이러니컬함이여! 시인은 훗날 이 시를 쓸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시에서 미국의 욕심과 노자는 너무나도 역설적인 것으로 그들의 공존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시 속에서 대륙의 자살을 암시하였다. 이 시가 한 대학의 개교 기념 문학행사에서 발표되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미국의 시인들은 그 대륙은 어디를 가르키냐고 물었다. 나는 욕심 많은 미국 등 서구를 암시한다고 말하고 서구의 식민지와 기독교와 자본주의와 그리고 영어의 욕심을 말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매우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러나 사실상 월트 휘트먼을 필두로 오늘 미국 시까지도 그 욕심은 열린 시, 열린 사상 등의 형태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미국의 시인들은 나의 이 예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미국에서 노자를 읽는 역설」 끝부분
시인의 용기에 힘찬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전형적인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자신만만함이 평소에 영 못마땅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보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 다음에 그는 ‘외국’과 ‘외국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다.
옥스퍼드에서 내가 배운 것은
그들이 결코 현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오하이오에서 내가 배운 것은
그들이 결코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배운 것은
그들이 결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내가 영국에서 배운 것은
그들이 결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배운 것」 전문
범대순은 외국에서 배운 것이 크게 네 가지라고 했다. 현대와 역사, 그리고 어둠과 햇빛. 고금과 명암이니 그는 참 많은 것을 배웠던 것이리라. 시인은 제4시집을 데니슨 대학에서 펴낸다. ‘Selected Poems of Bom Dae-Soon’이라는 제목으로. 제3시집의 시편을 주로 영역하여 낸 시집이다.
오랜 유학 생활을 끝마치고 귀국하여 1993년 봄에 낸 제4시집 『起承轉結』과 그 다음해 봄에 낸 『백의 세계를 보는 하나의 눈―다시 기승전결』에서 시인은 중요한 시론을 전개한다. 제4시집의 권말에 붙어 있는 이 시론을 시인은 1989년 11월 아이오아 대학 ‘국제 작가 프로그램’에 발표하고, 이를 보충하여 1990년 10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발표한다.
동양에 있어서 기승전결은 시문의 전통적인 구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시문의 체제와 품위를 유지하는 시문의 기본적인 표준이며 견고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기승전결은 시문에 대한 다른 이름이었고 동양의 시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기본적인 정신입니다. 기승전결은 사계절의 원형에서 착안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춘하추동과 그 원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기승전결의 사상을 중심으로 서양사상을 인식해볼 때, 서양사상은 어딘지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서양사상은 과정을 너무 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 속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분적이기 쉽고 부분적으로 판단하기 쉽기 때문에 사물을 전체적으로 판단하는 데 약한 것입니다. 기승전결은 전체를 강조하는 사상입니다.
(……)
나는 기승전결이 시의 형식과 사상을 갖춘 위대한 그릇이라는 것을 믿고 있으며 이 그릇은 현대적 사상과 감정을 담는 데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투철한 시론에 입각하여 쓴 시들이 2권의 시집으로 묶어지게 되었다. 『起承轉結』에는 모두 10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모두 4행 4연으로 되어 있다. 제일 앞머리의 시만 본다.
지리산 화엄사 사 사자지
종소리 한 가닥은 노고단에 오르고
바른 가닥은 골에 따라 섬진강에 든다.
범종 소리 앞서 해도 서로 가고 있다.
소리는 지면서 다시 돌아와 일고
소리는 일면서 다시 돌아 멀리 갔다.
산 석양 일고 자는 종소리 속에
시작이면서 맺는 끝을 같이 본다.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가야 나의 긑머리에 닿느냐
긑머리이면서 다시 이는 종같이
겨울을 가다 다시 이는 소리로 살 수 있으랴.
석양 화엄사 사 사자지에 서서
산과 같이 일고 자는 범종 멀리
어디선가 동이 트는 새벽을 본다.
아, 당신의 기승전결을 본다.
―「1. 사 사자지(四 獅子址)」 전문
시를 시작하여(起) 그것을 이어받아 전개시키고(承), 거기서 일전하여 다른 경지를 열고(轉), 전체를 깔끔하게 마무리짓는(結) 시작법은 한시 창작에 있어 대표적인 구성법이다. 범대순이 동양정신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중에 찾은 하나의 방법론이 기승전결이었다. 이것은 시인 자신이 말한 춘하추동과도 원리가 같지만 생로병사나 일월성신과도 통하고, 한국적 발상에 의한 사상의학이나 사물놀이와도 통한다. 꽉 짜인 형식의 틀 속에다 자유분방한 자신의 생각을 담으려는 작업이 90년대 전반기에 행해졌던 것인데, 이는 3장 6구의 시조나 서양의 소네트 형식을 지양,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 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시어는 ‘소리’이다. 지리산 화엄사 사 사자지에 있는 종이 내는 종소리의 행방이 시의 핵심이다. 종소리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종소리가 새벽을 연다. 정확히 때를 맞춰 울리는 종소리의 의미를 ‘기승전결’에 연결시켜본 것이다. ‘긑’은 ‘끝’의 옛말인데, 구태여 사어가 된 말까지 가져다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아무튼 기승전결이라는 형식은 답답한 느낌도 주지만 시 세계는 천태만상이요 각양각색이다. 소소한 일상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해외 각국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역사의식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이 여간 넓은 게 아니다. 『백의 세계를 보는 하나의 눈―다시 기승전결』은 앞서 낸 시집의 꽉 짜인 형식에 변화를 시도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일 앞쪽에 있는 시 4편의 제1연만을 본다.
새가
울자
해가
떴다.
―「1. 새」 제1연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서
더딘 세월을 위하여 헤매었던
괴로움이요 기쁨 끊임없는 것
그리면서 빈 주먹을 남기었다.
―「2. 다시 기승전결(起承轉結)」 제1연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프리카 친구에게 묻는다.
―「3. 푸른 하늘」 제1연
길을 묻다가 젊은이에게 거절당한다.
그는 자기 길도 바쁜 사람이었다.
그가 어찌 나의 길을 댈 수 있으랴.
―「4. 길」 제1연
이와 같이 앞 시집의 기승전결 형식을 아주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다. 행의 수도 자유롭고 행의 길이도 자유롭다. 여전히 10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각 시편의 내용에 대해 살펴볼 겨를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2권 시집의 시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다는 것이다. 한시의 기승전결 작시법에 맞추어 시를 쓰되 그가 다루는 세계는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제12시집이 되는 『나는 디오니소스의 거시기氣』의 단초가 되는 시가 한 편 있어 여기에 전문을 써본다.
아테네에 두 해째 비가 내리지 않는다.
아카데미의 소나무 숲도
파르네소스의 바위산 줄기도
푸른 지중해의 여름도 타고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수많은 계단에
돌까지도 칠월의 불로 타고 있다.
붉은 미나드의 머리카락이
불붙은 소꼬리처럼 타고 있다.
오이디프스의 불길을 가기 위하여
에피다브로스 극장에 모인 사람들
불에 뛰어드는 여름 밤 나방이같이
붉은 광기의 절정에서 죽는다.
애비를 죽이고 어미와 같이 한
이야기를 두둔한 죄로 이르노니
니이체여, 맑스여, 디오니소스여.
너희는 결코 불을 부리지 못하리라.
―「35. 디오니소스 극장의 인상」 전문
그리스 여행 시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디오니소스 극장을 소재로 한 시인 듯한데, 시인은 10년 후에 디오니소스 축제가 벌어졌던 이 극장을 상상의 영역으로 끌어와 수많은 연극을 연출한다.
1994년에 펴낸 제7시집인 『幼兒園에서』를 통해 시인은 또 다른 형식 실험을 한다. 이번에는 아주 짧은 시로 나아간다. 그것이 제1부의 시 14편이 되었다. 2, 3부의 시는 기승전결 형식의 시를 써 나가는 과정에서 썼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쓴 제법 긴 시들이다. 먼저 제1부에 실린 시 가운데 제일 앞의 시 2편을 보자.
山
十里
단숨에
싶은데
한나절
가도
또
十里길.
―「山十里」 전문
山
紫色
夕陽
햇빛
山새
山토끼
빨간
帽子.
―「夕陽」 전문
극도의 압축과 생략으로 여백의 미를 최대한 강조한 시를 쓴 것이다. 두 편 시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한 행 한 행 넘어갈 때마다 긴장감이 감돈다. 한 연 한 연 넘어갈 때마다 엄숙한 자기 절제가 느껴진다. 언뜻 보면 일본의 하이쿠 같지만 5․7․5음절과 계절어의 사용을 필수조건으로 하는 하이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어지는 시는 「너릿재」 「장작불」「소재(牛峙)」「낙엽」「한재산」 등으로, 시인은 이런 시에서 ‘우리 것 찾기’ 혹은 ‘전통 지향’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제2, 3부의 시편은 모두 지나온 생의 편린을 하나하나 시로 정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대학 정년퇴임을 앞둔 시점에 낸 시집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네 살 때
나는 어머니를 떠났었다.
떠나면서 내가 어떠했는지
그것은 아무도 전해주지 않았지만
혼자 어머니가 어떻게 남았었는지
더러 뒤로 들은 적이 있었다.
오늘 어버이날에
네 살 난 애기의 시중으로
유아원의 벤치에 앉아
반세기도 더 먼 옛날을 생각한다.
―「幼兒園에서」 제5, 6연
술김에 만났다 황급히 보낸 사람을
점잖은 자리에서 마주치듯
학생 바로 보기가 편치 않다.
하여 부러 외면하고 걷는데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는 흔연스런 인사에 놀라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다가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니
아! 눈물겹도록 너는 푸르구나.
―「캠퍼스의 아침」 끝 3연
앞의 시는 유년기 때의 상처로 생긴, 지워지지 않고 있는 흉터를 거의 처음으로 독자에게 보여준 것이라 여겨진다. 뒤의 시는 캠퍼스에서 겪은 일 가운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을 시로 써본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범대순의 65세를 맞이하게 되었고 대학문을 나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로하는 시인도 많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50줄에만 들어서도 대가연하는 시인도 많다. 특히 대학에 재직하면서 시를 쓰는 시인 중에는 유아독존의 아집을 갖고 있거나 시작활동보다는 문단활동에 더 적극적인 시인을 더러 보게 된다. 범대순 시인은 바로 이 시점에 시 세계의 심화 확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 결과 2권의 ‘絶句시집’을 내게 된다.
1996년에 펴낸 제8시집 『아름다운 가난』과 1997년에 펴낸 제9시집 『세기말 길들이기』는 앞에서 소개했던 「山十里」와 「夕陽」의 그 절제된 형식을 줄기차게 밀고 가 완성한 시집이다. 『아름다운 가난』에는 일련번호를 111번까지 붙인 「아름다운 가난」과 역시 111번까지 붙인 「사는 그 작고 큰 없음」 2편 및 시론 「絶句詩集 『아름다운 가난』을 위한 담론」이 실려 있다. 짧은 시 222편으로 볼 수도 있고 장시 2편으로 볼 수 있겠다. 『세기말 길들이기』는 차례가 없는데 세어보니 제1부 ‘세기말 길들이기’에 50편이, 제2부 ‘靜夜思’에 50편이 수록되어 있고 시론 「詩精神에 대하여」가 덧붙여져 있다.
‘절구시’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시인 자신이 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8행 4절 8음보 20음절만으로 그 구성을 단단히 하였다”.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절구시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전통적인 한시의 起承轉結을 기본적 정신으로 하여 그 틀, 즉 그 담장을 견고히 하고, 8음보와 4행시를 포함한 短詩에는 20음절이 가장 적절한 호흡을 유지할 수 있고, 단숨에 끝까지 읽을 수 있으며, 한눈 안에 가장 적절하게 들어옴으로써 하나의 사상을 순간적으로 형성한다는 나 나름의 실험을 거친 소신에 입각”하여 완성한 시 형식이다. 몇 편만 예시한다.
1
봄날
앞마당
쌀 뉘
가리는
할머니
옆에
의좋은
암탉.
2
겨울
밤이면
문 밖에
속옷
토실
토실한
이 동태
사냥.
3
머슴
돌이 상
보리밥
위에
목숨을 걸고
붙는
파리떼.
4
아닌
우박에
수탉이
놀라
알 낳는
암탉
불러
다스림.
5
꾸무럭
한 날
처마
구렁이
번개나
같이
천둥
치는 혀.
―「아름다운 가난」 제일 앞의 시 5편
형식적 특징은 시인 자신이 밝힌 그대로다. 8행 4절 8음보 20음절을 유지하기 위해 “토실토실한”도 “토실/ 토실한”이 되었고 “꾸무럭한 날”도 “꾸무럭/ 한 날”이 되었다. 그야말로 ‘一目瞭然’과 ‘寸鐵殺人’, 그리고 ‘頂門一鍼’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눈으로 금방 읽고, 머리로 오래 새기고, 가슴에 길이 남게 하는 독특한 시 형식을 완성한 것이다. 내용은 ‘아름다운 가난’이라는 제목이 거지반 이야기해주고 있다. 어린 시절 시골마을의 한가로운 풍경을 낱낱이 재생하여 보여주고 있다. 가난했지만 이웃 간에는 정을 나눌 줄 알았고, 형제간에는 우애를 나눌 줄 알았던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골마을의 정취를 내가 시로 남기지 않으면 이제는 그 누구도 복원시킬 수 없으리라’ 하는 생각이 「아름다운 가난」을 쓰게 했을 것이다. 「사는 그 작고 큰 없음」은 제목부터가 선적(禪的)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시인은 이 작품에 대해 “우리들 동양인이 더러 禪思想에 마음을 두면 편하고 트이고 아늑하고 歸巢 같은 포근한 정서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아닌게아니라 “없는 것/ 없고// 있는 것/ 있는// 여기/ 저승을// 사는/ 우리들.” 같은 시는 선시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하지만 “국제/ 전화로// 저승/ 불렀다// 통화/ 중이라// 뒤로 미뤘다.”나 “당신은/ 국립// 묘지에/ 들고// 원컨대/ 나는// 바람을/ 다오.”같이 일상의 편린이 시가 된 경우도 많다. “遠方來/ 하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벗과// 같은/ 죽음아/”나 “목/ 구멍으로// 힘겹게/ 꼴딱// 꼴딱/ 세월이// 넘는/ 십이월.”처럼 죽음에 대한 초월적 인식의 산물도 있다. 시집의 제3부는 「絶句詩集 『아름다운 가난』을 위한 담론」인데,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이 자리에 몇 문장만 인용해놓는다.
오늘날 미국에 신뢰할 만한 문학이론은 없는 듯하다. 신비평은 이미 그 빛을 잃고 있으며 페미니즘, 신역사주의 등 새로운 문학이론은 해체론의 미국적 응용이긴 하지만 아직 문화적 가치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해체론이나 현상학 등 유럽의 철학이 미국문화로 흡수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문화적 열등의식, 다시 말해서 미국의 애국적 집착을 털어내야 한다. 세계가 곧 미국이라는 자부심은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는 성공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현상은 그렇게는 안 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적 열림의 갈증과 소화력과 미국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럽 문화는 아직도 높이 솟은 견고한 성벽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유학 가서 공부하고 온 이들이 ‘현해탄 콤플렉스’(임화가 쓴 이 특수한 용어는 훗날 김윤식에 의해 보통명사가 된다)에서 종내 못 벗어난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문학과 문학이론, 그리고 문화와 문화현상에 대해 이렇게 강력하게 비판한 글이 미국 유학파 시인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시인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나온 시들이 2권 ‘절구시집’의 시들이기에 더욱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아름다운 가난』은 제29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한다. 『세기말 길들이기』에는 “졸기만/ 하면// 보이는 저승// 출입/ 무상한// 할머니의/ 눈.”(「저승」), “꼭두/ 새벽에// 무너진 문짝// 고함/ 담 넘는// 더러// 첫날 밤.”(「혼야」), “북쪽은/ 얼고// 남쪽은/ 타는// 산길/ 통일로// 맨발로/ 간다.”(「통일로」) 등 절창이 한두 편이 아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야 한 글자도 더 넣거나 뺄 것이 없지만 내용에 있어서도 한 글자도 고칠 곳이 없는 시편이다. 내용과 형식 어느 면으로나 완벽한 짜임새를 지닌 시 100편을 범대순은 『세기말 길들이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 있으니 연작시 2편을 보자.
붉은
낙엽이
왕조
최후의
왕세자
피를
토하듯
운다.
―「세기말 1」 전문
천 년이
바뀐
날의
고요함
속에
설레는
외로운
까닭.
―「세기말 3」 전문
노시인의 혜안으로 지난 100년을 꿰뚫어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20세기의 마지막 날을 향해 가면서 느낀 감회들이 9편의 시가 되었다. 21세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세기다. 세기말 현상이 나라 안팎에서 무단히 일어나고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의 말들이 매스컴마다 무성할 때 쓴 시이다. 20세기 100년의 한국 정치사와 사회사에 대한 사색의 편린을 시로 쓴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절구시의 시대를 마감한 시인은 1999년에 제10시집 『北窓書齋』를, 2002년에 제11시집 『破顔大笑』를 펴낸다. 제목이 둘 다 4개의 한자로 되어 있기에 ‘절구시에서 기승전결로 다시 돌아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시인은 극단적인 말 버림의 시학인 절구시를 통한 실험을 중단하고 그 반대편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산문시의 세계로 나아간다. 앞에 나온 시집의 시편이 대개 길고 뒤에 나온 시집의 시편이 대개 짧다. 표제시를 예시한다.
북창을 향하여 눈을 감고 앉은 사람은 눈을 떠도 봄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매화를 넘긴 뒤에까지도 모지게 내리는 소리 없는 눈보라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월 진하게 푸른 모란이 피는 날에도 앞 뜰 은은한 것을 뒤로 느끼면서 멀리 눈이 내리는 그믐날 같은 생애를 가까이 정말 가까이 보고 있는 것이다. 북창을 향하여 눈을 감고 앉은 사람은 가을이 있고 밤이 되어야 비로소 시작하는 검붉게 잘 익은 젊음 그 북소리를 본다. 북소리는 빛나는 어둠을 항해하고 있다. 북창을 향하여 눈을 감고 앉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북창을 향하여 앉아 있다. 천년이 지고 천년이 일어서는 이 시각에 세상 있고 없음을 白紙 안에 그렇게 있다.
―「22. 北窓書齋」 전문
시인은 천년이 지고 천년이 일어서는 시각에 북창서재에서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의 변화는 무쌍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펜을 쥐고서 시상을 떠올리고 백지에 글자를 한 글자씩 써나간다. 그런 의연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시인의 세상 읽기인 『北窓書齋』에는 오롯이 담겨 있었다.
툼벙 소리 있고 달이 파안대소한다. 깊은 밤 내내 달은 그렇게 있고 나는 이렇게 있다.
―「1. 파안대소」 전문
가을이 깊자 스스로 알게 말수가 적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에 앉아 햇볕을 졸다 앞서 간 그를 만나 우리는 파안대소하였다. 그가 그렇게 크게 죽고 내가 이렇게 작게 사는 일 그 안에 다 같이 있었다.
―「34. 파안대소 2」 전문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102편의 시 가운데 「파안대소」 연작시는 총 22편이다. 같은 산문시형이기는 하되 이 시집에서는 “말수가 적어졌다”. 두 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선적인 직관의 세계가 아니면 연륜의 깊이가 가져온 달관의 세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크게 웃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파안대소는 할아버지의 웃음이다. 시인은 ‘파안대소’의 의미를 시집 서문에서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가 “역설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이르는 크고 넓은 땅”의 경지이며, 둘째가 “지성과 반지성의 공존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얻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셋째는 “니체에서 배운 비극의 탄생 속의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조화”인데, 이 생각이 구체화되는 것은 제12시집인 『나는 디오니소스의 거시기氣다』에 가서이다. 제12시집에 대해서는 월간 『문학사상』 2006년 1월호에 서평을 쓴 바 있으므로 몇 대목 인용하는 것으로 이 시집에 대한 언급을 대신할까 한다.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와 연극과 다산의 신인 만큼 비범하기 이를 데 없고 기운이 철철 넘친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을 이런 디오니소스의 거시기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디오니소스의 가운뎃다리쯤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보건대 이 시의 주된 내용은 시인 자신을 디오니소스 축제의 참여자로 인식,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현실이나 사회제도, 인간세태를 비판할 때도 시인은 풍자의 정신으로 유쾌하게 말의 축제를 벌이지 엄숙주의나 비장미를 내보이지는 않는다. (……) 이런 것 전부가 일종의 축제요 환타지다. 포도주가 있으니 도취가 있고 춤이 있으니 몰입이 있고 음악이 있으니 황홀경이 있고 노래가 있으니 합일이 있다. 거시기는 시인에게 넘쳐나는 시상이요 사상이다. 또한 원초적 욕망이요, 축제에 필요한 포도주와 춤, 음악과 노래요, 우주만물의 기의 원천이요, 세상 모든 생명체의 생명력이다. 거시기가 있으므로 시인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집의 시편들은 어조가 하나같이 당당하고 호탕하다.
―「유쾌한 디오니소스 축제의 시학」에서
시인이 지난 50년 동안 쌓아올린 12개 언어의 집을 주마간산격으로 읽고 말았다. 좀더 치밀한 분석과 깊이 있는 평가는 앞으로 석․박사 논문을 통해 이뤄져야 하리라 생각한다.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시인이 이룩한 크나큰 세계의 문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린 부끄러움이 너무 크다. 희수를 앞둔 범대순 시인이 앞으로도 더욱 왕성하게 언어의 밭을 갈아나갈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시인은 지난 50년 동안 이 땅에서 가장 시인다운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한 편의 시 앞에서 까마득한 후배시인 옷깃을 여미고 정좌한다.
바람에 물 위에 있고 없는 소리로 나의 묘비명은 다만 한 번만 헛소리같이 파안대소로 있게 하여다오.
―「66. 파안대소 13」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