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15)
올리브산
(Mount of Olives)
주님 승천 경당
(Dome of the Ascension)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승천하신
예수의 생애 마지막 사건 현장
▲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푸른 올리브나무'(예레 11,16)라 했다. 유다인들은 자신을 올리브나무에 비유하며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자랑했다(시편 52,10). 사진은 겟세마니 성당 정원에 있는 올리브나무.
구약성경은 올리브 산을 ‘동쪽 산’이라고도 불렀다(에제 11,23 즈카 14,4 참조). 해발고도 약 820미터로서, 갈릴래아 지방 타보르 산 보다도 높다. 다만, 예루살렘 도성이 700~750미터 고지대에 위치하기에, 올리브 산은 상대적으로 동네 야산처럼 낮게 보인다. 예전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산을 덮을 만큼 우거졌으나, 서기 1세기 로마 시대에 열혈당원들을 진압하던 티투스 장군이 많이 잘라 버렸다.
올리브산은 예루살렘 동쪽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동산으로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다.(사도 1,12 참고-유다 율법은 안식일에 1km 이상 걷지 못함). 구약 시대 때부터 이 산을 히브리 말로 '하르 하 자이팀'(올리브산)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예부터 이곳에 올리브나무가 무성했음을 알 수 있다.
▲ 올리브산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유다인에게도 성지이다. 그 이유는 즈카르야의 예언대로 마지막 날 주님께서 예루살렘 맞은 편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에 오신다(즈카 14,4)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 부활을 믿으며 이 산에 묻혔고, 지금도 묻히길 원하고 있다.
사진은 올리브산에 있는 유다인 무덤들.
올리브산은 신ㆍ구약의 역사가 얽힌 곳이다. 다윗은 압살롬 반역을 피해 도망가던 길에 이곳을 지나갔고(2사무 15,30-32), 그의 아들 솔로몬은 말년에 여기에다 모압의 우상 크모스와 암몬인의 우상 몰록을 위해 산당을 지었다(1사무 11,7). 이후 유다 임금 요시야는 올리브 산의 이 산당들을 허물고(2열왕 23,13-14)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또 예언자 즈카르야는 '주님의 날'에 올리브 산에서 벌어질 일(즈카 14,4)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을 말씀하시고(마태 23,37) 한탄하셨던(루카 19,41)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로마 시대 이후 항아리가 눈물을 상징하게 됐기에 1955년에 건축된 지금의 성당도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다.
성당 제대 정중앙에서 창을 통해 예루살렘을 보면 골고타 언덕이 바로 보인다.
▲ 예수께서 수난 전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다 체포되셨던 곳에 세워진 성당으로 현재 성당은 12개국의 모금으로 건축돼 '만국의 성당'으로도 불린다.
올리브 산에는 구약과 신약의 역사가 공존한다. 고대 유다 전승은, 대홍수 때 노아가 방주에서 내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산에서 올리브 잎을 따왔다고 전한다(창세기 라바 33,6). 임금들에게 부은 거룩한 기름도 올리브 산에서 얻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올리브 고개를 울며 넘었다(2사무 15,30). 기원전 6세기 초반에는 ‘하느님의 영광’이 타락한 예루살렘과 성전을 버리실 때, 마지막으로 올리브 산에 머무르셨다(에제 11,23).
‘하느님의 영광’은, 구약에서 주님의 발현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모세가 주님께 당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청한 탈출 33,18-23에도 ‘주님 영광’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즈카르야는(14,4-8) 주님의 날에 하느님이 올리브 산 위에 서시면, 산이 반으로 갈라지고 동서로 넓은 골짜기가 생기리라 선포한다. 그러면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 절반은 동쪽 바다로(사해死海), 절반은 서쪽 바다로(지중해) 흐를 것이다. 올리브 산은 위치적으로도 해 뜨는 동쪽에 있으면서, 그 뒤편으로 광야를 끼고 있다. 그래서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전해진 곳에 세워진 성당. 헬레나 성녀가 처음으로 이곳을 순례와 성당을 세웠고 19세기에 재건돼 현재는 프랑스 가르멜 수녀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성당 벽면에 각 나라말로 쓰인 '주님의 기도' 타일이 인상적이다.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의 영광이 올리브 산에 머무셨듯이,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올리브 산을 즐겨 찾으셨다. 이곳에서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하셨고(마태 21,1-11 요한 12,12-19 등), 측은지심의 눈물로 예루살렘의 몰락을 슬퍼하셨다(루카 19,41-44). 성전에서 가르치는 동안 올리브 산에 묵으셨으며(루카 21,37), 산 기슭에 있는 겟세마니에서 대사제 무리에게 체포되셨다(루카 22,39-53). 히에로니무스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 또한 올리브 산이므로(사도 1,9-12) 빛과 부활의 상징이라 강조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 선언 이후 올리브 산에는 4세기 중엽부터 성당들이 지어졌는데 대표적인 4대 성당이 겟세마니 성당, 주님 눈물 성당,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승천 경당이다.
■ 주님 승천 경당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을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사도 2,32-33)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경당이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 위에 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전하는 본문들을 다시 읽고, 예수 승천 경당의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이곳에서 주님께서 승천하신 것으로 보고 성전을 지었다. 비잔틴 시대 팔각형 모양의 성전이 먼저 세워졌고 십자군 시대 때 재건됐다. 현재는 무슬림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경당 안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딛고 오르셨다는 바위가 남아 있다(루카 24,50 참고).
■ 신약성경의 예수님 승천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삼층 구조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맨 위의 하늘과 그 아래의 땅, 맨 아래의 셔올로 이루어진 이 세계관은 전체 성경 이야기의 배경을 이룬다. 하늘은 하느님의 세계이고 땅은 인간의 세계이며 셔올은 죽은 이들의 세계이다. 이러한 배경 안에서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이 서술된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것으로 표현되고, 그분이 돌아가신 것은 셔올로 내려가신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이들 중에서 일으켜지신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신 것은 승천, 즉 하늘로 올라가신 것으로 표현된다. 이와 같이 복음서는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을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하강과 상승, 즉 내려오심과 올라가심으로 표현한다.
마르 16,19에 따르면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특히 예수님의 승천은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상세하게 묘사된다. 이 두 책의 저자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루살렘은 구원의 역사의 중심이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곳, 성령 강림이 일어난 곳, 복음 전파가 시작되고 교회 공동체가 시작된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0-53) 여기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은 베타니아 근처로 언급된다.
사도행전은 승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 뒤에 사도들은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산은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 가까이 있었다.”(사도 1,6-12)
여기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은 올리브 산으로 언급된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즉 걸음걸이로 2,000보의 거리였다. 이 본문에서는 역사적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연속성이 강조된다. 곧 제자들의 사명은 예수님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머리말은 예수님의 승천이 부활하신 뒤 40일 이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소개한다.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사도 1,1-3)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전에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올리브 산의 한 동굴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고 거행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그리스도인에게는 감추어진 장소가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384년에 에제리아(Egeria)는 이 동굴 근처 언덕에서 열린 예수님 승천의 전례 거행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 첫 번째 성당이 세워진 것은 392년에 로마 황제의 가족 중 한 사람인 포이메니아(Poimenia)에 의해서였다. 당시 성당의 천장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 후 성당은 여러 차례 파괴되고 재건되었다. 십자군 시대에 세워진 성당은 그 이전의 원형 모양을 팔각형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성당 근처에 수도원도 세웠다.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당 바닥에 있는 오른쪽 발의 흔적을 예수님의 것으로 여겼다. 오늘날에도 이 발자국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역사적 신빙성이 매우 희박하다.
▲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딛고 오르셨다는 바위 (Footprint stone in Dome of Ascension)
예수 승천 경당은 1198년에 살라딘(Saladin)에 의해 점령되고 이슬람인들의 손에 넘어 갔다. 그들에 의해 1200년에 경당이 복원되었을 때 십자군 시대 성당의 중요 부분이 보존되었으나 천장에 둥근 돔 모양의 지붕이 만들어졌다. 결국 예수 승천 경당은 이슬람의 사원(Mosque of the Ascension)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지금도 승천 경당 안에 들어가면, 메카 방향을 알려 주는 ‘미흐랍’이 붙어 있다(모슬렘들은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하므로, 사원에는 항상 미흐랍이 있다). 비록 예수님의 승천이 코란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슬람인들은 그것을 믿고 있다. 오늘날 이슬람인의 소유인 예수 승천 경당에서는 1년에 하루, 즉 주님 승천 대축일에 그리스도인들이 미사 전례를 거행하도록 허락된다. 이곳에서 마태오 복음서의 마지막 구절을 기억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늘에 올라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신 예수님은(마르 16,19), 오순절이 되자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다(사도 2,1-13). 그리고 승천 경당은 오늘도 변함 없이,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는 재림의 희망을 상기시켜 준다(사도 1,1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