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야흐로 몸의 시대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몸신’의 시대이다. 우리 민족이 각자 자신의 몸에 대해 이처럼 드높은 관심을 가지고 몸을 호강시키며 잘 사는 건 단군 이래 지금이 처음이라고들 한다. 몸은 물질이고, 인간 몸은 자연 물질의 부분집합이다. 하지만 거기에 정신이 개입하면 몸과 자연 모두를 정신의 부분집합으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바로 그 정신이 우리에게 ‘신외무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도 한다. 내가 군대 갈 때 나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르신 그 말씀에서 ‘신’은 ‘몸身’ 자였다.
하지만 어떤 TV 채널의 “나는 몸신이다” 혹은 “몸신의 탄생”이라는, 롱런하는 건강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은 ‘body身’이 아니고 ‘God神’이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TV 방송국에서 그와 유사한, 의학 상식에 관한 내용의 교양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거기에는 일부 유명 닥터들이 출연하여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법이나 건강하게 사는 법 등의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교양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종편 TV 방송에서는 건강 상식 프로그램을 빙자해서 건강에 이롭다는 특정 성분의 물질을 홍보하기도 한다. 혈관과 간 건강 및 활력 충전에 알부민, 관절과 연골 건강에 콘도로이친, 그리고 내장지방 관리에 이소비텍신과 같은, 의약품 같기도 하고 식품 같기도 한 물질의 과대광고를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물론 해당 물질이 그런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문제는 그런 프로그램이 간접광고라는 명분으로 시청자들의 건강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여 실제로는 상업적인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런 토크를 실행하는 방식이다. 거기에는 순환기내과나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등의 각 분야 전문의들이 출연하는데, 상업주의에 편승한 그들 일부 닥터들이 방송국이나 해당 물질 사업체와 결탁하여 실행하는 야비한 상술은 홈쇼핑 뺨친다. 나는 실제로 어떤 프로그램에서 한 전문의가 투명한 플라스틱 파이프 두 개—한쪽은 이물질이 낀 파이프이고 다른 쪽은 깨끗한 파이프—를 세팅해 놓고 파이프 입구에 피를 연상시키는 빨간 액체를 주입해서 전자의 파이프를 통해서는 빨간 액체가 정체되어 흐르지 못하는데 반해 후자의 파이프 속으로는 쑥쑥 시원하게 흐르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주장은 이 물질만 꾸준히 섭취하면 콜레스테롤이 덕지덕지 끼어 노후 하수 파이프 같던 혈관이 교체된 새 PVC 상수 파이프처럼 깨끗하게 된다는 식이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컵이 바스러지듯 걸핏하면 뼈가 부스러지는 골다공증 환자도 이 물질만 섭취하면 로봇 태권브이 골격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그 닥터들이 각 분야의 전문의 표식이 부착된 흰 재킷을 입고 스튜디오에 나란히 앉아서 그 신비의 식품인지 의약품인지 성분인지의 영험한 효력을 설명하는 건지 파는 건지 하면 나는 내가 한동안 즐겨 들었던, 가수 김성환이 구수한 음색으로 “오늘밤 요강이 깨진다고 허풍치던”이라고 능청스럽게 노래하는 「약장수」라는 가요를 흥얼거리곤 한다.
이 시대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몸이라는 증거가 또 하나 있다. 그게 바로 TV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서 뭇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게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나 먹방이라는 점이다. 대통령도 출연한 ‘냉장고를 부탁해’를 비롯해서 ‘흑백 요리사,’ ‘한식대첩,’ ‘천하제빵’ 등과 같은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나 “삼시 세끼”나 “서진이네” 등과 같은 요리 예능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들이 줄잡아 100개가 넘는다. 더불어서 요리사라는 직업도 ‘셰프’라는 트렌디한 새 직함을 얻었다. 예전에는 그분들이 주방장이라 불렸다. 대학의 요리학과도 인기가 높다 한다. 몸의 중요성과 먹는 즐거움이 인생의 중심 가치가 된 것이다. 지금은 함포고복하는 백성들의 트롯 노랫가락이 TV 채널마다 넘쳐흐르는 태평성대이다.
지금이 몸신들의 시대라는 걸 입증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들의 불멸할 것 같은 몸이 연출하는 장면을 TV로 보고 있노라면 나는 부러움을 넘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동계나 하계 올림픽의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의 금메달리스트들도 나를 매혹시키는 몸신들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프로 스포츠 스타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그 몸값은 죄값으로 치러져야 하는 보석금이 아니라 그들 몸의 실행 능력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연봉이요 개런티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프리에이전트(FA) ‘최대어’인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야구선수 후안 소토가 2024년 뉴욕 메츠와 맺은 계약에서 그의 몸값이 15년 총액 1조 원을 돌파했다. 참고로 일본인 오타니 쇼헤이는 9240억 원에, 한국인 이정후는 338억 원에 계약했다. 몸의 능력에 상대되는 능력—정신이나 그것의 전쟁통에 잃어버린 형님뻘인 영혼의 능력—으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금전적 가치이다. ‘God神’ 자의 몸신 시대에 오직 몸만 이룩할 수 있는 쾌거이다.
그렇다면 몸 즉 육체가 이처럼 각광받는 반면에 그 상대되는 어떤 가치가 조명에서 벗어나 어둠속에 버려졌다는 말일까? 몸에 상대되는 개념은 마음이나 정신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은 주로 문학이나 철학, 종교, 예술 등의 영역에 속한다. 배부르고 등 따스운 오늘날에 그런 분야를 다루는 TV 방송도 없고 대중 강연도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춥고 배고팠던, 후진국 국민이었던 1960년대나 1970년대에는 방송이나 신문에서 김형석씨나 안병욱씨와 같은 철학자들, 양주동씨나 이어령씨와 같은 문학자들, 김수환 추기경이나 한경직 목사, 법정 스님과 같은 종교인들, 그리고 박완서씨나 피천득씨 같은 작가들이 그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이른바 그들 인문학자들이 그 시대정신을 이끄는 지성이었다. 그분들이 강연을 하고 글을 써서 고상한 교양을 베풀어 주었고,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그분들을 존경했었던 것 같다.
동물의 몸을 가졌으면서도 거기에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특이한 현상인 의식이라는 작용이 깃든 우리 인간의 삶을 주도하는 게 몸과 정신 중 어느 쪽일까?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몸은 매우 제한된 존재이지만 정신은 무제한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괴로운 경우에는 최악의 상태에서라도 쓴웃음을 지을 수 있지만, 몸이 아프면 제아무리 고상한 정신이나 영혼이라도 몸의 고통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아니다. 우리는 정신으로 몸을 이긴 영웅들에게서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게 이중적 존재인 인간이 운명적으로 처한 영원한 딜레마일까? 어쨌든 지금과 같은 몸신의 시대가 앞으로도 우리에게 쭉 지속되길.
첫댓글 전, 지금이 인문학 전성시대라고 보는데요.
글쓰기,독서모임,무용학원, 음악 사교육 ..
이어령시대보다 훨씬요.
요즘 TV보거나 광고보고 정보다고 생각하는 어른은 없어요.
그렇기도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용한 '오리-토끼' 그림입니다.
앞만보는 저땜시 그림까지… 몸신시대이기도 합니다.
인문학도 구독과 좋아요라는 몸신의 옷을 입어야 삽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