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성서 귀절)
참된 의로움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필리 3,2)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필리 3,3-6)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필리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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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바오로사도 영성에 있어 하느님께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의 영성이 없이
율법만으로 하느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추구하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추구하는 영성의 경향의 예를 오늘 우리 세계의 삶 속에서 고찰한다면!
1.고찰에 앞서 자신의 삶 전체와 세례이후의 교회 내의 제도적인 규범 속에 인간관계를 고찰하는 많은 생각에 머물러야 했고,
자신의 삶의 무게와 연관되는 신자생활과 오늘날 교회(본당)내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연관관계속에 하느님사랑, 이웃사랑을 생각해 보아야 했다.
2. 여러 가지 생각 중에 하느님의성전인 교회(본당)에서 하느님권위와 순명에 대한 각자의 위치와 실천적 사례를
우리스승 예수님의 삶과 연관해 본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3. 그 이유는 내 자신을 내 마음에 거울에 비추어 바라보고, 자신을 성찰하기에 앞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내,외 세속적 더러움의 영(影)이 더 역겨워 보여 지기 때문이다.
4. 우선 요점부터 정리해본다.
1) 바리사이파란?
① 2세기 중엽부터 율법에 대해 보다 엄격한 해석과 실천을 내세우던 학파에 속하던 사람들이다.
② 이들은 대다수인 유다인들과 소수인 자신들을 구별하여, 율법을 엄수하지 못하는 자들을 멸시하고 적대시하였다.
③ 이들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었으며, 선한 삶을 산 사람과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보상과 징벌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들은 운명론자였다. 세상 만사는 운명과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 사두가이파
① 이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에 있었던 유다교의 한 당파이다.
② 그들은 솔로몬 시대 제사장 사독의 후예로서 보수적 현실주의적인 상류 계급이다(1열왕 2,35).
③ 그들은 율법 연구와 그 엄격한 준수를 목표로 하는 중산층 바리사이와는 반대로,
선교 활동보다는 제의(祭儀)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모세 오경만을 중시하였다.
④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 영혼과 천사들의 존재 등은 부정하였다(사도 23,8; 4,1-2).
3) 율법이란?
①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생활에 관하여 신의이름으로 규정한 규범.
② 율법은 구약의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율법(律法, Torah)이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느님의 명령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 모든 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도덕적, 종교적, 법률적 명령을 말한다.
이는 구약의 율법(모세 오경), 율법서를 포함한 구약 전체라고 할 수 있다
③ 오경에는 고대 유대민족의 생활을 포괄하는 여러 규범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율법은 오늘날의 법보다는 넓은 뜻을 가진 것으로서 생활관습이나 도덕규범도 포함하고 있다.
4) 오늘날 율법에 따른 의로움은 무엇인가?
① 하느님가치관속에 제도적 집단적 규범을 준수하며 하느님을 찬양과 기도하며, 마음에 악한 생각되지 않게
오직 하느님만 생각하고 하느님백성으로 하느님의 권위 에 순명하며 하느님사랑, 이웃을 사랑 하는 것(善).
하느님 계명 하에 사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② 즉 사랑은
하느님계명을 준수하며,
성령 안에서 나에 마음과 생각 행위를,
인간의 본성인 정(情)과 선행(善行)으로
나에 모든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희생(犧牲)하며 기쁨으로 덕(德)을 쌓고 사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5) 오늘날 천주교인으로서 그리스도 율법은 무엇인가?
① 하느님가치관으로 예수님의 삶을 영위하는 것
② 성경과 천주교 교리와 교회법에 의한 신자의 생활규범을 준수하는 것
(교회 공동체에서 교회법은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는 이도 없고, 쉽게 찾아볼 수 가 없다.
신학교 신학생의 학습과정 이라 표현 할 수 있다.
세례이후 교회에서는 오직 하느님 말씀인 복음과 실천적 복음적인 삶을 강조 한다)
③ 국가의 국민으로서 국가법을 준수하며, 도덕적 윤리관으로 사는 것.
6) 율법만으로 하느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추구하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추구하는 영성의 경향?
① 성직자:
본당 사제로서 하느님사랑과 예수님의 진리, 삶, 가치관을 말하지만
일부사제는 본당교우를 군림하려하며 피박과 속박으로 맹목적 복종을 강요하는 것
하느님의 계명 준수인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이기심과 사리사욕, 평신도 무시)
즉 사제의 권위, 말, 행위가 율법이다.
② 평신도:
본당 주임신부, 사제에게 평신도로서 하느님의 권위인 교회에 순명하기보다는
스스로 종과 개가 되어 사회적 맹목적 복종을 하는 것 (신앙의 오류와 무지)
평신도의 율법: 토테이즘적 신앙, 기복신앙, 측은지심, 선대 양반제 의한 복종, 의식 없이
그 상황에 안주하는 것(보신주위)
③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하느님정의를 사회정의구현이라는 논제 하에 정치 ,사회, 국가안보에 에 깊게 관여하는 것
(세계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만국에 대한 안보의식이 없다,
사회정의구현보다는 교회 내 사제의 독선에 대한 쇄신이 더 시급)
④ 맹목적 신앙
가. 이웃종교를 무조건 터부시 하는 것. (타 종교도 존중해야한다)
나. 교회의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전통문화와 민족예절을 터부시하는 것
(가정 제사와 상갓집에서 절하는 것)
선입감과 인간의 내면에 두려움이라 할까!
죽은자의 영혼은 귀신으로 간주 하여 무조건 두렵고 무서운 악의 존재로 나쁘게 생각하게 함.
이러한 것이 조상의 좋은 정신적 유산과 가게의 유훈(遺勳)이 보존 계승 될 수 있는지?
선대 및 조상의 뿌리가 말살되어 가족공동체가 개인 이기주의 원인이 된다.
(유대인의 민족성과 탈무드정신을 교회공동체에서 가르쳐주고 배워야 한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 3,17)
진정한 내면의 자유로써 복음을 소개할 때,
다시 말해 하느님의 무한한 자애로움인 사랑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기쁜소식인 복음은 있는 그대로의 타인의 삶 속에 도달하게 되고
가장 깊은 내면에 스며들게 된다.
(예수님의 살과 피로 세워진 교회! 죽음에서 해방,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필리 3,2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하느님의 권위와 순명이 교회내 일부 사제와 사목회 봉사자중 무지한자의 처사에
즉 개같은 나쁜일꾼의 이기심 사리사욕, 공명심등으로 하느님의 어린양을 군림하려 하고 있고,
신자들이 영적으로 즐겨야 할 사랑, 평화,기쁨, 자유와 평등이 속박되어 하인이나 종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평신도가 병신도가 되며 더 나아가 불신도가 되는 것 이다..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교회 본당에서 비일 비재한 일로 비추어지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필리 3,7-9)
“성전은 나에게 언제나 영감을 주고 매혹적인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야 한다.”
첫댓글 개도 좋은 개가 있습니다. 양떼들이 무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또 목자의 말에 순응하도록 목자를 도와주는 개가 있습니다. 오늘 날 목자들이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옆집 염소와 함께하기를 즐기는 목자들을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당에만 열심히 다니고, 성당 봉사만 열심히 하면 하느님을 잘 믿는 것으로 오해하는 신자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평신도들도 많은 회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진리의 교회임을 인정한다면,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교리와 교회법을 부정해서는 아니됩니다.
아무리 정구사가 밉더라도 교회를 욕해서는 아니되며, 교리와 교회법을 벗어난 행동은 자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법을 어기며, 법을 무시하는 상대방을 책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교회의 권위를 세우고, 교리와 교회법을 준수하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야만, 우리의 주장이 합당함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다른 평신도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욕을 하거나 저주하거나 경멸하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도 아니요, 자신이 내뱉은 그 말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아신다면, 그들을 저주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죄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심판은 하느님의 몫이며, 우리의 몫이 아니란 것을 아신다면,
그들은 '우리의 형제가 아니다'라는 말은 못할 것입니다.
그 죄에 대한 벌은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사람을 단죄하여서는 아니됩니다.
일탈하는 사제들을 위해 우리의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흔 일곱번을 용서해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어본다면, 제 생각으로론 그렇습니다.
" 그래도 그들이 회개하도록 일깨워라"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교회로 돌아오도록 일깨워줌에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그들이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