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고 / 임정자
모임에서 같이 하는 일 중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난 '단연 같이 밥 먹기'이다. 젊었을 때는 주로 저녁밥을 먹고 술 마시고 노래방을 갔다. 지금은 밥은 먹지 않고 카페에서 책 이야기, 두어 시간 맨발로 걷기, 헬스장에서 운동한다든지 한다. 그런데 이 모임은 맛집을 찾아다니며 밥을 먹는다. 한낮 더위에 여름은 갈 수 없었다. 봄, 가을에 이산 저산 꽃구경을 가고 절을 찾아다녔다. 3년째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놀자' 모임이다.
열 명 다 일을 한다. 직장에서 갈등하는 관계나 복잡한 심리 상태를 풀자는 의도가 있었기에 무조건 즐겁게 놀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3년이 되어 가니 노는 게 그리 즐겁지 않다. 왜 그럴까? 마음에 동그란 구멍이 난 듯 휑 한다는 거다. 공무원 퇴직하고 노래 강사로 일하는 오 도령이 말했다. "우리 봉사 어때요? 아동복지 시설이나 노인복지시설에 가서 그들과 함께 놉시다." 이 말에 우리는 바로 합의가 쉽게 이루어졌다.
추석 한 달 남겨 놓고 조 주간님의 근무지인 주간보호센터에서 봉사를 하기로 했다. 이야기 나온 지 6개월 만이다. 재능기부인 만큼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나눴다. 자칭 임영웅을 닮았다는 삼호 님이 사회를 맡아 분위기를 이끌기로 했다. 오 도령과 춘향이는 노래하고 향단이와 나는 건강체조, 유희와 주간은 박수치고 어르신 손 잡고 어깨를 들썩이는 역할이 정해졌다. 영희와 철수는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다.
대상이 어르신들이니 의상을 한복으로 입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기성복이 넘쳐나는 요즘 불편한 한복을 누가 입으려 할까. 평상복도 아닌 옷을 기백만 원이나 하는 옷을 산다는 것이 고민이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고 이래저래 비용이 드는데 한복까지 맞춰 입기엔 회비 지출이 무리라는 의논이 모아졌다. 처음 시작이니 가볍게 흰 티와 청바지를 입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봉사 가기로 한 일주일 전, 차 대장은 우리에게 한복을 빌려주겠다 했다. 그녀는 노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열 세 명의 선생님이 경로당에 찾아가 어르신들에게 건강 체조를 가르쳐준다. 대형 거울이 있어 자신 모습을 보면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기도 하고 진행과 안무까지, 수십 년 쌓아 온 그녀의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심지어 밥도 잘 사주는 피로회복제 같은 존재다. 그녀의 좋은 에너지가 우리를 더 뭉치게 했다.
첫 봉사의 날이다. 토요일 아침 여덟 시에 차 대장 센터에서 우리는 만났다. 한복 입은 모습이 돋보이게 조금 진하게 화장을 하고 머리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핀으로 고정했다. 젊은 향단이가 솜씨를 뽐냈다. 계획한 대로 삼호가 사회를 보고 오 도령과 춘향이 노래로 막을 올렸다. 어르신들은 소파에 앉아 양손을 올렸다 내렸다. 어깨를 들썩이다 흥얼흥얼 리듬을 탄다. 장작불이 타오르듯 흥이 점점 올랐다. 오 도령이 '사랑의 트위스트'로 리듬을 빠르게 했다. 그도 몸을 빠르게 흔들었다. 마이크를 춘향이에게 넘겼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노래에 맞춰 다 같이 손동작으로 율동했다. 사회자는 분위기를 조금 느리게 이끈다. 게임으로 선물을 줄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섬마을 선생님', '여자의 일생'을 춘향이가 부르자 여자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들이 함께 부른다.
여자 어르신이 내 손을 잡고 어깨를 들썩이더니 슬며시 손을 놓는다. 한복을 만지작거린다. 나는 모른 척 치마를 치켜 앞으로 여미니 "곱다" 말한다. 한복이 그녀의 마음을 홀렸을까. 저고리 치마 입고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을까. 어린 나이에 곱디고운 전통 혼례복을 입고 새신부 되었던 그 모습이 그리웠을까. 무엇을 회상했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면 의상 선택은 탁월했다. 별 다섯 개다.
함께 노는 게 재미가 없다고 그 모임에서 탈퇴해야 할까? 아니다. 놀자고 만나 같은 음식을 먹으며 정을 쌓았으니 같이 놀 수 있는 것을 찾아야지. 생각보다 그런 놀이는 많다. 모두 건강에는 문제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