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우포생태문학제 [초대시]
우포늪 햇살 속의 춤판
윤석산(尹石山, 시인, 제주대 교수)
창녕에 사는 친구로부터 ‘우포쌀’이 왔다.
한 달쯤 먹고 보니 갈대밭이랑 골풀이랑 생이가래가 보이고,
일억 사천만 년 전 늪이 열릴 때 하늘에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집사람은 그 햇살 위에 누워 해바라기를 하다가
지름이 일 미터도 넘는 가시연꽃 위로 내리는 햇살이 너무 좋아 두 딸에게 조금씩 나눠 보냈다.
그 애들은 첫날부터 왕잠자리, 청실잠자리, 방패잠자리가 날아든다고 전화가 왔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우포늪 햇살 위에 누워 해바라기를 하면서
논병아리, 쇠백로, 중백로, 큰고니가 날아오르기를 기다리다가
태초엔 인간도 자연도 하나라고 생각하다가
내 몸 안 어디선가 두리둥둥 북소리가 울려오고
아내는 바다 건너온 두 딸이랑 왕버드나무랑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포늪 햇살 속에 벌인 춤판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춤판이었다.
멀구슬 타령
-간혹 제주도로 신혼여행 와 첫날밤에 갈라서는 사람들은 모두 멀구슬 탓이기에 내 경계하여 이르노니……
1.
멀구슬,
한자말로는 마주목(馬珠木)이다.
그러니까, 구슬꽃……
오월 언덕바지에서 파아란 바다를 등지고
라일락 같은 고운 그 빛깔 흔들릴 때면
남태평양에서 달려온 흰 구름도
취해서 한동안 몸살을 앓고
2.
멀구슬
고운 님 보내옵고
미운 님 모셔오는
달랑달랑 조랑말 모가지에
걸어주고 싶은 꽃
3.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주도엘랑 오지 맙주게. 오더라도 오월엘랑 오지 맙주게. 오더라도 멀구슬 근철랑 가지 맙주게. 꿈처럼 흔들리는 고운 그 꽃은 당신의 입술보다 너무 고와서 그 님은 당신을 잊을 꺼우다.
외로운 사람들도 제주도엘랑 오지 맙주게. 오더라도 오월엘랑 오지 맙주게. 달빛은 꽃잎에 들고 꽃잎은 당신 눈에 들어 어이구 어이구 환장할 그 놈의 빛깔에 온갖 잡것들도 미인으로 보여서 사랑한다 사랑한다 헛소리를 하고 한평생 그 날을 후회할 꺼우다.
에라! 모르겠다, 아무라도 좋은 사람도 오지 맙주게. 오더라도 멀구슬 근철랑 가지 맙주게. 투명한 그 향기에 취해 하는 말 당신이나 나나 믿을 수 있나. 사랑은 텅텅 부도수표(不渡手票)처럼 남발되고 허망은 바다처럼 빛나 그 가지에 목매달아 죽고 싶을 꺼우다.
4.
멀구슬
내가 사는 제주도 뒤뜰에 피어
멀쩡한 사람들도 미치게 하는 꽃
생홀애비 괴춤 끄르고 히히 웃게 하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