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반도체 외 1편
김순진
문인들의 번개모임에 나갔는데
한 원로 작가께서 저서 두 권과 소금 한 봉지를 주신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건네니
소금을 선물로 주는 분이 다 있느냐며 신기해한다
술이 깬 새벽 물 먹으러 거실에 나왔다가
식탁 위에 올려진 소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소금은 파도의 기억을 온몸에 새기고
태양의 뜨거움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분수로 밀어 올린 혹등고래의 산통(産痛)과
태풍을 잠재운 심연의 슬기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소금은 하루에도 수만 번을 철썩이며
뭍을 동경하던 파도의 소원이었을까
멸치며 정어리 고등어의 지느러미에 채인
미세한 파도의 떨림이 알알이 기록되어 있다
주꾸미와 오징어 낙지의 많은 발로 주무르고 매만진
물의 포말이 고스란히 정제돼 고형으로 갇혀 있다
넉가래에 밀리고 밀리며 염전을 구르던 바닷물의 기억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저장한 정육면체의 반도체 칩
어느 방향이든 최선이 되는 저 백색 주사위는
궁핍한 인간을 먹이며 간드러지게 했다
봉지를 찢어 한 알갱이를 입에 넣으니
장화 신은 어부의 발자국이 저벅저벅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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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어록
김순진
통나무를 잘라 나이테를 본다
나무들의 귀는 우리의 말을 듣으려 하지 않았다
꽃의 말이나 꽃 같은 말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귀는
스치는 말에 대하여 처철하게 밑줄을 그었다
거슬리는 말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순종했다
겨울의 말을 거울삼았다
허공에 흔들리는 귀들을 늘어놓고서
바람의 말을 열심히 경청했다
그가 귀를 접었던 그해 겨울
그는 바람의 어록을 책으로 출간한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게 언제가 될는지는 꿈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자서전이 될 것 줄은 정말 몰랐다
결국 그는 바람의 말을 안으로 새겨 넣었다
그는 바람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이테, 그 바람의 어록을 보며
나의 어록에 대하여 꿈꾼다
김순진
고려대학교 미래교육원 시창작강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스토리문학 발행인
대한민국예술문화공로상, 박건호문학상, 수필춘추문학대상, 포천문학대상 등 다수 수상
시집 『더듬이주식회사』 , 시창작이론서 『즐기며 받아쓰는 시창작법』 등 저서 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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