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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을 주시는 약속.(2023년 8월 13일 주일예배)
본문; 로마서 12:1-8
롬 12: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3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4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7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8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1. こういうわけで、兄弟たち、神の憐れ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に勧めます。自分の体を神に喜ばれる聖なる生けるいけにえとして献げなさい。これこそ、あなたがたのなすべき礼拝です。2. あなたがたはこの世に倣ってはなりません。むしろ、心を新たにして自分を変えていただき、何が神の御心であるか、何が善いことで、神に喜ばれ、また完全なことであるかをわきまえるようになりなさい。3. わたしに与えられた恵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一人一人に言います。自分を過大に評価してはなりません。むしろ、神が各自に分け与えてくださった信仰の度合いに応じて慎み深く評価すべきです。4. というのは、わたしたちの一つの体は多くの部分から成り立っていても、すべての部分が同じ働きをしていないように、5. わたしたちも数は多いが、キリストに結ばれて一つの体を形づくっており、各自は互いに部分なのです。6. わたしたちは、与えられた恵みによって、それぞれ異なった賜物を持っていますから、預言の賜物を受けていれば、信仰に応じて預言し、7. 奉仕の賜物を受けていれば、奉仕に専念しなさい。また、教える人は教えに、8. 勧める人は勧めに精を出しなさい。施しをする人は惜しまず施し、指導する人は熱心に指導し、慈善を行う人は快く行いなさい。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해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생명력 있는 의인으로 살게 되는 삶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세상의 가치관이나 혹은 누군가와의 비교나 평가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님을 믿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을 의식하는 의인의 태도로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일상을 살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본문의 말씀이 약속하고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에 대해서 다시금 확증하는 시간을 갖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1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각자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드리는 “합당한 예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새번역성경이 합당한 예배라고 번역한 이 단어를 개역성경에서는 “영적 예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합당하다, 혹은 영적이다는 말의 원어는 “logiko,j (로기코스)”라고 말합니다. 이 ‘로기코스’는 ‘로고스’가 어원인데요.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성경에서 ‘로고스’는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현되고 있지요.
따라서 여기서 합당하다(도리에 맞다), 혹은 영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이고, 우리 삶에 이치적으로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같은 로기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베드로전서 2장 2절을 개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
여기서 “신령하다”는 표현이 바로 로기코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드려야 할 도리에 합당하고 마땅한, 혹은 영적인 예배란 우리의 몸을 살아있는 채로 주님께 제물로 드리듯이 거룩하게 지키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동물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성전제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영원히 유효한 희생제사를 드리셨음으로, 우리가 이 예배를 거룩하고 기쁜 마음으로 지키는 것으로서, 그 희생제사의 완성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함께 죽은 나의 몸이 드려진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마음과 자세와 태도로 예배의 시간과 장소를 지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럼 나의 몸을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는 예배, 즉 예수와 함께 죽은 나를 제물로 드리는 예배란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와 같은 태도의 기본을 2절에서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 것.
둘째,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받을 것.
셋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것. 이 세 가지입니다.
이 셋을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순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이 롬 12장 3절부터 15장 13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교회 안에서 성도가 질서 있고, 도리에 합당하게 행동할 모습의 내용인 3절~8절까지를 우리가 함께 읽었던 것이지요.
이 말씀의 내용을 개인적으로 다시금 반복하여 읽다보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 주십니다. 그리고 각자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변화될 것을 가르쳐 주시지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지속될 때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세속의 가치가 아닌 말씀의 가치로 헤아리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2절에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여기서 본받다는 말은 “suschmati,zomai (쉬스케마티쪼마이)”라는 단어로 ‘같은 모양이 되다’ 혹은 ‘본따서 형성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붕어빵 틀에 반죽을 넣고 같은 모양으로 구워내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것이 본받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헤아리는 것이 곧 시대의 풍조를 본받는 것입니다. 단지 시대의 흐름과 세대의 변화에 대해서 아무 이유 없이 거부감을 갖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으로 본받지 않는 태도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는 그대로 이해하고 분별하지만, 그 흐름에 휩쓸리거나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지혜와 명철을 갖고 분별하는 태도와 자세를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가치와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붙들고 있어야 이 시대의 풍파에서 쓸려 내려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성경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 2: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 7:24-25)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행하는 자는 이 시대의 풍조나 혹은 변화에 휘말려 흘러 떠내려가거나, 홍수와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고 올바른 기초에 세워진 집과 같은 든든한 존재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존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존재가 되는데 우리에게 절대 필수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실은 우리의 노력이나 종교적 수련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의 계기는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 수련회에 참석해서 집회 중에 말씀을 들으면서였습니다. 그 후로 주님께서 저를 떠나신 적이 없고, 저도 그런 주님을 떠나거나, 떠나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에 늘 합당하게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떠나신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지속적으로 곁에 두고, 수시로 펼쳐 읽으며, 또 이 말씀을 근거로 오늘도 여러분들과 은혜를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바울이 제자인 디모데에게 성경의 가르침과 절대로 멀어지지 말고, 늘 가까이에 두라고 하면서 권면한 내용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씀이 곧 성령님을 통해 성경이 기록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성경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의 유익함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17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하지요.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7)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다는 구절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도록 이끄시는 원동력이 곧 하나님의 감동인 성령님의 일하심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성도인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능력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시대의 본을 받는 것은 곧 이 세대의 가치관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치관은 실력과 재력과 혹은 인맥으로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인맥을 거느리고 있는지를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독과 좋아요, 알람설정까지 눌러달라고 그렇게 애교를 떨며 말합니다. 자신의 sns계정의 팔로워가 얼마인지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요. 연봉이 높은 직장, 혹은 대단한 실력을 갖추도록 도와 주겠다는 학교들...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의 본을 따라 아무런 반성이나 생각 없이 질주하는 좀비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저 의미 없는 생존만을 선택하여 마약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아무런 기쁨이나 즐거움, 그리고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마지못해 살고있는 젊은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내용의 르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말세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 같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하지만, 성경은 마지막 때의 놀라운 부흥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28-29)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5)
이 두 말씀을 볼 때 우리가 맞이하게 될 이 세상의 마지막, 즉 말세에는 타락의 극단적인 현상과 성령충만의 놀라운 부흥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점점 더 악하게 되면 될수록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더욱 강력해진다는 뜻이지요.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수를 채우시는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8-39a)
예수님께 나아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그 생수의 강은 예언서에 기록된 것처럼 이 세상 모든 도시와 민족을 살리는 능력이 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 47:9, 12)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의인의 배에서 흘러넘치는 생수는 곧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예언하시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를 통해 극악무도하고 죄의 타락이 극에 달한 이 땅이 생명수 강물로 회복되고, 다시 부흥하는 일이 있을 것을 주님께서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시대의 풍조를 따라 자신의 존재가치와 존재이유를 찾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에게는 다섯 가지의 능력이 생깁니다.
첫째, 믿음의 능력이 생깁니다. 믿으려고 애쓰고 노력해서 겨우 믿게 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님께서 믿어지는 마음을 차곡차곡 채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성령님의 일하심으로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죄를 이길 능력이 생깁니다. 아무리 교회에 성실하고 착하다고 소문 난 사람이라도 순간 방심하여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살인과 강도와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종교적인 노력이나 실력도 우리를 죄에서 지켜 주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세상을 이길 능력이 생깁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우리의 가치를 물질적이고, 금전적인 기준으로 헤아리게 만들고 비교하게 만드는 생각을 뜻합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시면 자신의 가치를 세상의 틀에 맞추지 않고, 주님의 약속에 붙들어 맬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넷째, 봉사할 능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맡겨 주시고, 봉사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봉사란 말 그대로 자원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쁘고 감사할 일이지요. 사람들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뙤약볕에 나아가 일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일하는 손길을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영원토록 그 헌신의 손길을 잊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 6:10)
다섯째, 전도의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전도하게 됩니다. 전도를 해야만 성령충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위해서 전도의 의무를 지키는 것과 다릅니다. 전도란 말 그대로 복음을 전하고 선물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모양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그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을 영원토록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 12:3)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 세대의 끔찍한 멸망의 결과에 휘말리지 않도록 굳건히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게 해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어떤 실력을 갖출 것인가... 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충만을 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곧 성령의 능력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의 몸을 살아 있는 제물로 드려진 영적인 예배자로 산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세상은 우리에게 실력과 재력을 갖춰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또한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을 체감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세속의 유혹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도록 주님과 함께 죽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은 나를 제물로 드린 예배자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우리는 가장 사람답고,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채우시는 능력으로 언제나 주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이 실감나게 체감되고, 명확하게 목격하게 되는 행복한 증인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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