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그분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룻의 삶이 은혜입니다.
02/20목(木)룻 4:13-22 / 요 1:16-18
“주님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룻 4:13).
은혜는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지하여 깨닫지 못해 우리의 삶이 부정적으로 되어 실패하게 됩니다. “누가 그대를 별다르게 보아줍니까?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받아서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고전 4:7)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많이 깨닫고, 크게 체험할수록 축복입니다. 이것이 은혜위의 은혜의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요 1:16).
은혜가 되는 룻의 삶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은혜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비록 베들레헴을 떠나왔지만, 신앙이 깊은 여인입니다. 룻은 이방 여인으로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유대인 가정에 시집을 온 것이 은혜입니다. 룻은 남편이 죽었지만, 시어머니를 좇아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룻 1:16).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룻과 보아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관계는 아닙니다. 그런데 룻이 시어머니를 보양하기 위해 이삭줍기를 한 곳이 보아스의 밭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최고 명문가의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인이 자기 아내가 되자 그는 그 여인과 동침하였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룻 4:13).
▣룻이 오벳을 낳은 것이 은혜입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룻 4:21-22).
룻은 이방 여인이지만 은혜로 구원 받았고, 보아스와 결혼해 오벳을 낳으므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갑니다. 룻의 삶이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And...
성도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축복의 삶을 사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은혜는 선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말합니다.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부정적 삶에서 긍정으로, 어둠에서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의 속성은 가장 절망적이고, 믿을 대상이 아무도 없을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가장 위급한 상황일 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을 것인가에 대한 모든 의심이나 두려움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일 수 있고, 우리에게 악해 보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눈에 그것이 어떻게 보이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언제나 최고의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풍요로움 안에 감추어진 은혜의 경이로움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어떤 상황에도 그분의 섭리가 있기에 지금 일어나는 부조화의 그 상황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선용하실 것을 믿으면 선의 결과를 맺는 것이고,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부정적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선택은 중요합니다. 룻의 삶이 은혜인 것은 모든 상황을 긍정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따스한 말 한마디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으면 지금 내 삶에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느껴집니다.
대부분 위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느껴지면 믿겠다는 의지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로받지 못하는 근거는 단순하게 불신앙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위로의 말씀을 믿기로 결단하면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 생각은 차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것입니다.
장례 이후 남편과 계속 이번 아버지의 소천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나누게 됩니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며 작은 종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찬송가 305장의 가사를 적은 종이였습니다. 시간 나면 틈틈이 가사를 외우려 노력한 흔적이 있습니다. 구겨진 종이 한 장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그래서 소천하기 며칠 전까지 찬송가 불러 달라고 하면 가사 한 줄 틀리지 않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찬양을 부르신 것입니다. 가족들 단톡방에 아버지에게 올리는 글을 보면 자녀, 손자 모두 아버지의 바람대로 살겠다는 다짐과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의 글입니다. 참 잘살다 가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맛이 깔깔해 밥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는데 때에 맞추어 어느 귀하신 권사님이 보내주신 적당히 익힌 백김치가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하나님이 권사님을 통해 입맛을 돌이켜 주셨다고 믿고 느끼는 것이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허락하신 은혜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을 믿고, 느끼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은혜 아니면
https://youtube.com/watch?v=NGB2VVH5Z80&si=5ieDDiDavvSIXrT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