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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강 사람이 되신 하나님 김형익 목사
광주 벳샬롬교회
26.02.24(화)
빛이신 그리스도 이 이야기를 할 때 또 하나 우리가 설명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요한복음1장은 창세기 1장하고 굉장히 흐름이 비슷해요.
창세기 1장은 창조 얘기를 하죠.
요한복음 1장은 재 창조의 얘기를 해요.
그래서 재 창조라고 하는 것에 우리가 포커스 초점을 맞추고 보면
고린도 5장 17절 말씀대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창조에 대한 새창조가 뭐죠 구속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구속을 얘기하는 거죠. 어두운데 빛이 비치리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
어두운데 빛이 비치리라 언제 말씀하셨어요.
창세기 1장 3절 그와 같은 새 창조를 빛이신 그리스도를 어둠이 깔려있는 이 세상 가운데 어둠 자체인 세상 가운데 보내셔서 새 창조를 이루기 시작하셨다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영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표현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 유명한 말씀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육신입니다 육신이 된 겁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메 이 거한다는 말이 되게 중요한 말이에요.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이제는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여기 주목해야 할 단어들이 참 많아요.
근데 성육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일입니다.
거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장막을 치고 거한다. 이거는 구약의 성막을 얘기하는 거예요. 성막을 가리키는 거예요.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여기 자 하늘의 성막을 가리키는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시 하나님의 장막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을 얘기하고 있죠. 완성되는 거예요.
근데 여기에 보면 몇 가지 단어들 자 여기 거하신다 라고 했을 때에 헬라어로 쓰여졌죠 요한복음이 스케노 제가 영자로 써놨어요.
여러분들 읽으실 수 있는 스케노 이거는 거한다. 텐트를 치고 한다. 장막 치고 한다는 거예요. 근데 히브리 말로는 거한다는 말이 샤칸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사실은 이게 음역 발음으로 보면 비슷한 말입니다. 그리고 성막이라는 단어가 히브리 말로는 뮈쉬칸이라고 읽어요.
그리고 여러분 들어보셨을 거예요. 셰키나 뭐 슈카이나 영어로 이렇게 말하는 세키나 세키나의 영광 쉐키나가 뭘 말하는 거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모세가 성막을 지었을 때 구름이 가득하자 모세가 감히 하나님께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기 때문에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현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나타날 때 그걸 세키나의 영광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 가운데 거하신다 라고 했을 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우리 가운데 와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세키나의 영광 세키나의 영광이 이제는 더 이상 나타날 필요가 없어요. 왜 예수님이 세키나의 완성이고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마치 모세의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고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이제 진짜가 오신 거예요.
그 영광을 보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라고 말했어요. 은혜와 진리라고 하는 단어를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은혜와 진리 이거는 구약에서부터 계속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이에요.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 이게 은혜와 진리 같은 말이여요.
인자는 히브린 말로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보셨을 단어예요. 헤세드라는 단어예요.
그리고 진리라는 말은 에메트라고 하는 단어인데 헤세드는 언약을 지키시는 사랑 실패할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 하나님이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으면 그 사랑은 이루어지고야 마는 그런 사랑이죠. 감정에 휩쓸리는 사랑이 아니죠.
그런 인자 은혜와 진리 은혜를 얘기하는 거예요.
진리는 뭐예요? 참되다 틀림없다. 옳다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말씀하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시는 그런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데 은혜위에 은혜로라 그냥 은혜라고 얘기하잖아요.
은혜 위의 은혜 강조하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니 그 영광을 보니 영광과 언제나 함께 쓰이는 단어가 은혜여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우리는 은혜를 받는다고 느끼는 거예요.
단순히 기분이 좋아졌다 뭐 드라마 보고 은혜 받았어. 이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 영광 어떻게 봐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때 우리는 은혜를 받는데 어마어마한 무한한 은혜를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육신은 그래서 성자 하나님의 낮아지심이에요.
엄밀하게 말하면 하늘 영광 보좌를 떠나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라고 하는 것을 육신속에 가리시고 한번도 하나님이 아니신 적은 없으시지만 육신에 가리시고 이 땅에 비천한 몸으로 오셔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그렇게 해서 30년 목수의 삶을 사셨고 그리고 3년의 공생애를 지내시고 고난받고 죽으셨어요.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성육신은 낮아지는 거고 비천해지는 거고 나빠지는 거예요.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거를 뭐라고 표현하냐? 하면 영광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해요.
요한복음을 여러분이 보시면서 성경이 설명하는 영광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세례 요한이 하는 증거들을 여러가지로 요한복음 1장에서는 표현하고 있어요.
그런데 세례 요한을 우리가 이해하려면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 동안 선지자가 안 나타났어요.
하나님 말씀이 없었어요. 내 침묵을 깨고 나타난 사람이에요. 근데 그 모양을 보니까 낙타 옷을 입고 메뚜기를 먹었고 근데 꼭 그 모습이 엘리야를 연상케 했어요.
그래서 구약성경에 말라기 선지자가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 하는 말씀을 알았던 사람들은 이 엘리야가 왔구나 하나님이 드디어 말씀하기 시작했구나 드디어 400년 동안 보내지 않던 선지자를 보내기 시작했구나 이스라엘이 뒤집어지는 사건이었죠.
그래서 사실 요한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 사람이 세례요한이 뭐라고 그래요. 요한복음 1장 6절에 그를 이렇게 표현하죠.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그리고 그는 빛이 아니고 빛에 대해 증언하러 온 사람이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자꾸 와서 물어보니까 이렇게 대답하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아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니다.
모세 같은 선지자가 나올 거다 그 말씀을 지금 가리켜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거죠. 너희들이 기대하는 그거 아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긍정을 하죠.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이사야 40장 말씀을 인용합니다.
말씀은 그리스도예요. 세레요와는 소리여요.
소리는 말씀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세례 요한이 가리키는데 세례 요한이 했던 상황 했던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뭐예요?
그의 이름에 있는 바 세례 엄밀하게 얘기하면 벱티스트 세례를 주는 사람이죠. 세례자 요한이에요. 세례를 주는 게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세례를 받는 게 아니라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을 하면 세례를 받고 들어왔어요.
근데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줬거든요.
세례 요한이 그러니까 이건 무슨 무슨 얘기예요.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을 부정하는 행위잖아요. 이거 유대인을 모독하는 행위거든요.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는 일이 그런 의미가 있었다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이 세례를 주는 장면에 등장을 하십니다.
그때 요한이 말하는 거예요.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이러되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증거했던 중요한 개념이에요.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36절에 또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사야 53장에서 말씀한 대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예수님을 양으로 쭉 구약성경에서 얘기하고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이라는 표현이 제일 많이 나와요. 한 30번 이상 나와요.
근데 그분이 오시며는 내가 너희들한테 세례 주는 것 가지고 놀라지 마라 그분은 물로 세례 주는 게 아니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거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진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그러셨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너희에게 부어주셨다 그렇게 사도행전 2장 33절에 말합니다. 오순절 사건을 얘기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은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니라. 이거는 사실은 마지막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사도 요한이 쓰고 있는 그 말을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런 장면이 1장의 마지막에 등장하죠.
설교자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께 옵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는 형제 안드레의 전도를 통해서 빌립은 예수님의 직접적 부르심을 통해서 나다나엘은 나다나엘은 공간복음에는 안 나와요.
공간복음에는 바돌로메라고 하는 이름으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나다나엘일 것이라고 대부분 생각합니다.
빌립의 전도와 또 주님이 잘 못 믿으니까 주님이 직접 말씀하심을 통해서 예수님께 나오죠.
근데 이것을 뭐라고 얘기를 해요.
이거를 그냥 제자가 됐다.
아니 중요한 거는 누가 부르셨느냐에요.
전능자의 부르심 하나님의 부르심이에요.
그들의 생애 최고의 부르심이었어요.
세례 요한이 증거한 대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안드레가 또 예수님하고 같이 하루를 지내고 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어 형 베드로에게 말한 거죠.
또 빌립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어 바로 저분이야 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정말 놀라운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 말씀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 이것을 권세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이것은 정말 무시되고 잊혀진 우리 생애 최고로 영광스러운 축복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이거보다 더 큰 축복이 있나요?
내가 금수저의 집안에 태어났다는 것이 축복인가요? 아니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생애에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몇 가지 적용점을 말씀드리죠
오늘 강좌에서 첫째 믿음의 눈으로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분을 만난 것의 영광스러움과 특권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전능자가 나를 부르셨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나를 그분의 제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합니까?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나는 이 길을 영광스럽게 걸어가겠다고 생각합니까?
세 번째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의 생명이 된 것을 아십니까? 낮아지심 사람이 되심 죽으심 그것을 성경은 영광이라고 얘기합니다.
세상이 설명하는 영광에 현혹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영광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음 번에 2강에서 우리가 다루게 될 내용은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를 유명한 갈릴리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보게 되고 진짜 믿음이라는 게 뭐냐 그럼 가짜 믿음도 있겠죠. 그런 문제들을 우리가 2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강 요한이 말하는 예수 - 요한복음이란 1
김동수 교수 평택대학교
평택대학교 신학과의 김동수 교수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12주에 걸쳐서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여행으로 비유를 한다면, 오늘부터 여행을 떠날 건데 제 역할은 가이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우리가 연구여행에 제가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이렇게 본문 자체를 공부하기에 앞서서 요한복음이란 어떤 책인지 요한복음이란 무엇인지를 한번 여러분과 같이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포인트를 한번 보면
첫 번째는 요한복음서는 모든 세대에 걸쳐서 크리스찬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애복음서다 이런 게 첫 번째 포인트고요.
두번째포인트는 요한의 눈으로 봐야 된다. 그거고요.
세 번째 포인트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영생을 얻고 그렇게 살게 하는 데 있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요한복음의 한번 중요성을 좀 보면 많은 사람이 지금도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요한복음을 먼저 읽으라고 합니다.
또 요한복음은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초대 교회 시절에 논란이 됐던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예수님이 신이냐 예수님이 인간이냐 이런 논쟁의 종지부를 찍게 한 게 요한복음입니다.
여러분이 대답은 잘 하실 겁니다.
정답은 뭐냐하면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요. 완전한 인간이다.
그건데 특별히 완전한 신이라고 하는 말이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와 있습니다.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게 요한복음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또 여기와 연관이 돼 가지고 요한복음에는 삼위일체 사상이 그 어느 책보다도 분명합니다.
삼위일체가 한마디로 뭐냐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구별되시면서도 하나를 이루신다는 거예요.
이게 요한복음에 나중에 우리가 5장을 공부할 때 더 자세히 공부할 텐데 가장 분명합니다.
또 우리가 요한복음 보면 성경의 요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이 있어요. 여러분 다 외우시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요한복음은 기독교 역사상 아주 중요한 복음서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또 요한복음에는 여러 특징이 있는데요.
그걸 여러 말로 우리가 표현을 하는데 요한복음은 참 쉽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별칭 중에 하나가 어린이 복음소입니다. 애들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럳데 반대로 요한복음이 또 수수께끼 복음서라는 말이 있어요. 수수께끼라는 것은 참 잘 알기 어렵다 그런 뜻이죠.
일 측면으로 요한복음은 단순한 메시지와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을 알기가 어렵지 않아요. 구원받는 방법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믿으면 구원받는 거다 단순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내 안에 거하고 또 내가 너의 안에 거한다. 이런 말은 무슨 뜻일지 조금 어려운 감이 없잖아요.
그래서 요한복음 두 가지 측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 복음서와 수수께끼 복음서라는 양측면 또 요한복음은요 초신자가 읽는 그런 복음서이면서
동시에 심오한 진리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애호하는 그런 복음소입니다. 이런 별칭이 있어요. 요한복음이라는 수영장에는 어린이와 코끼리가 같이 수영할 수 있다.
초신자도 요한복음을 통해서 무엇인가 자양분을 얻고 코끼리와 같은 기존 신자도 요한복음에서 우리가 영적인 자양분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요한복음의 별칭 중에 하나가 영적인 복음서라는 말이 있어요.
이거는 사실은 초대교회 교부 중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라는 분이 얘기를 하신 건데요.
이거를 잘못 이해하면 요한복음에는 사실 기록은 안 하고 의미만을 기록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영적인 복음서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만이 아니라 심오한 진리 그 안에 깊은 어떤 사고가 있는 진리 그런 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여러 가지 중요성과 특징이 있는데 이제 요한복음을 우리가 그러면 어떤 책인지 조금 더 살펴보면 일단 책 제목부터 저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이다. 이렇게 이제 우리가 한국말로 번역을 했는데 정확히 번역을 하면 요한에 의한 복음입니다.
요한에 의한 중간에 약간 의미를 넣자면 요한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게 뭐가 중요하냐?
우리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도 정확히 말하면 다 이런 겁니다.
마태에 의한 복음 마가에 의한 복음 누가에 의한 복음 정경 복음서는 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근데 외경이라고 하는 사실이 정확하지 않고 좀 우리가 크리스찬이 정경 말씀을 읽을 수 없는 그런 복음서에 따르자면 복음서의 이름이 유다 복음서라는 게 있습니다.
유다에 의한 복음서가 아니라 유다가 주어여요.
유다가 설파하는 메시지라는 거죠.
그래서 예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했던 게 유다복음서라면
우리가 요한복음서는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쓴 거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서는 우리가 마테 마가 누가 요한복음 중에 하나 사 복음서 중에 하나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많이 읽어보진 않으셨겠지만,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외경 복음서라는 것들이 있는데요.
외경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어떤 측면 하나만 기록한 게 있어요. 어린 시절 이야기만 기록한 도마복음 도마의 어린 시절 예수의 복음서라는 게 또 있고 또 예수님의 수난사만 기록한 베드로의 수난복음서라는 것도 있습니다.
또 예수의 말씀만 기록한 도마 복음서라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사복음서는 어떠느냐하면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균형 있게 기록한 것입니다.
마테 마가 누가 요한범이 다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하나로 모아요. 예를 들면 산상수훈 같은 거 있죠.
마태복응 5장에서 7장 또 13장 또 18장 24장 25장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모아놓고요. 중간중간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과 또 예수님 말씀을 아주 균형 있게 잘 기록한 그런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사복음서 중에서 마테마가누가복음을 우리가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공관이라는 한자는요 같을 공 자 볼 관 자 같은 관점으로 원래 보았다는 뜻입니다.
근데 그건 정확한 말은 아니고요. 비슷한 관점으로 본 겁니다. 뭐에 비해서 요한복음에 비교해서 어떤 이제 그 같은 관점으로 마태 마가 누가 보냐하면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할 때 처음에 갈릴리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갈릴리 이외의 지역으로 갔다가 예루살렘에서 마치는 것으로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공간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의 주제는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비유예요.
이런 똑같은 공통점이 있는데 요한복음은 사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한 번 가시는 게 아니고 예루살렘을 자주 왔다 갔다 하십니다.
또 요한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라기보다는 또 영생이에요. 그리고 요한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보다도 예수님이 누구냐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조금 비교해 볼 때 요한복음의 특색이 있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복음에는 그렇게 공관복음서에 흔한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가 한 편도 나오지 않아요.
또 예수님이 공관복음서에는 그렇게 자주 행하셨던 귀신을 쫓아내는 축기 기사도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고요. 문체도 독특해요.
문체 굉장히 요한복음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문체 단순한 문법으로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는 그런 특색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제 요한복음을 어떻게 읽어야 되느냐 어떻게 우리가 해석해야 되느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복음서를 이제 사람들에게 읽도록 그렇게 쓴 것이기 때문에 요한이라는 사람의 관점으로 우리가 이 요한복음을 읽어야 됩니다.
근데 우리가 요한복음을 잘못 읽는 방법 중에 하나는 바울의 관점으로 요한복음을 읽는 것 혹은 누가의 관점으로 요한복음을 읽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이 누군가 요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치 요한이 된 것처럼 요한의 눈으로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어야지 올바로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가 이렇게 잘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동안에 교회에서는 복음서를 읽을 때 이렇게 막 섞어서 읽는 경향성이 조금 있었어요.
우리도 알게 모르게 요한복음과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섞어서 읽는 경향성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관복음에도 이게 나와요.
요한복음에는 여인의 이름이 나오고 또 여인이 행한 좋은 일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내기 위해서 미리 그런 준비하는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여기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옥합을 깨뜨리는 게 나오지 않아요. 근데 공간복음서에 그게 나오기 때문에 요한보음을 읽을 때 자꾸 옥합을 깨뜨리는 것으로 그래서 우리가 옥합을 깨뜨리는 것처럼 우리도 착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가야 된다. 이런 설교하는 걸 제가 많이 봤어요. 공관복음은 이런 뜻입니다.
그러나 요한 보면 포커스가 사실 여인의 선행보다도 이 사건이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는 사건이다. 거기에 더 초점이 있어요.
그래서 요한을 요한되게 읽으라고 하는 그런 우리가 지침으로 요한복음을 공부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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