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질문 3. 어떤 본질이 먼저 있고 거기에 존재가 부가되어서 실존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게 맞는 이해인지?
교수 답변 :
이러한 이해는 어떠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로 이렇게 이해하는 것도 사실은 유비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질, 존재, 실존 이러한 용어들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 즉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정신이 고안한 개념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들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물(질료, 대상)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이기에 이를 ‘형이상학적인 용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형이상학적인 용어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 대상이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국면 혹은 양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고안한 용어들입니다. 가령 한 마리의 검은 산토끼가 있습니다. 여기서 동물학자들은 검은 산토끼를 설명하기 위해서 ‘토끼류’ ‘산토끼종’ ‘흑색 산토끼속’ 등의 개념들을 도출하고 있지요. 아니면 최소한 사람들은 토끼와 강아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토끼의 본성과 강아지의 본성을 구분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본성이나 종, 혹은 류나 속 같은 용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어떤 속성들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지, 그 자체 - 실체적으로 -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존재론적으로 보자면 한 마리의 토끼를 설명해주는 ‘종과 속’ 혹은 ‘류나 본성’ 같은 것은 모두 동시적이고 실체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한 것들 이지요. 그럼에도 학문적 필요성에 따라서 구분하고 체계화 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인간의 이성이 이러한 것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에 적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한 구체적인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체계를 통해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차원에서 다양한 체계가 가능할 것입니다. 가령 사고하고 생각하는 인간의 정신을 ‘정신’, ‘이성’, ‘오성’, ‘지성’ 심지어 ‘영혼’ ‘의식’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하는데, 이러한 분류는 철학자 마다 조금씩 다르지요. 그러니 본질이 있고 거기에 존재가 부가 되어 실존이 된다는 학생의 말은 본질이 무엇인지 존재가 무엇인지 나아가 실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따라서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또 어떤 철학자의 사상에서 말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물론 지금 묻고 있는 질문이 중세의 철학자들의 사상 안에서 묻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철학자들 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예 아니오로 답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가령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유에 의거하여 세계가 창조 될 때, 신의 지성 안에 세계에 대한 비전(창조적 본질)이 먼저 있었고, 그런 다음 신이 실제로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나누어 주었다(분유론)고 할 것이며, 이렇게 하여 ‘현재의 구체적이 세계(실존)’가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도 사실은 유비적인 혹은 논리적인 분석일 뿐, 본질, 존재, 실존이라는 말은 모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개념적인 분석일 뿐, 존재론적으로는 항상 동시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