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20장1~7절
제목 : 시험대에 오른 이스라엘
훼손된 시신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총회로 모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불참한 가운데 각 지파 지도자들은 사건의 전말을 듣습니다.
1. 이스라엘 총회의 소집(1~2절)
1) 미스바에서 총회를 개최합니다(1절)
“[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17:6과 18:1;19:1의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은 오직 '여호와'한 분뿐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온 회중이 미스바에 모인 것은 지도자들의 통솔하에 각 지파 간을 연결하는 연락 조직에 의해 된 것이지만, 본서 기자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모인 것'을 부각 시키므로써 여호와의 통치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단은 가나안 최북단의 성읍이고(18:29),
브엘세바는 최남단의 성읍입니다(창21:31).
따라서 본절과 같은 표현은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 전역(全域)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삼상3:20;삼하3:10;24:2;대상21:2;대하30:5).
한편 '단'(Dan)의 본명은 '라이스'(Laish)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이곳을 정복한 후 자기 조상의 이름을 따라 '단'으로 개칭하였습니다((18:29).
따라서 본장에 나오는 사건은 적어도 단 지파의 라이스 정복 사건보다는 이후에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길르앗 땅. - 이것은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과 상대적인 것으로서 요단 동편의 전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0:3 주석을 참조하라.
미스바. - '망대'(watchtower)이라 뜻을 가진 이 지명이 가리키는 곳은 두 곳입니다.
한 곳은 길르앗 땅의 미스바이고(10:17;11:11,29,34),
다른 한 곳은 베냐민 지파 변방에 위치한 미스바입니다(수18:26).10:17주석 참조.
본절의 미스바는 물론 후자이며 기브아 북쪽 7.5km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네비 삼월'(Nebi-Samwil)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한편 혹자는 왜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는가에 대하여 답하기를 미스바에 적당한 예배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Goslinga).
그러나 카일(Keil)은 실로의 성막(수18:1;삼상4:3,4)이 그곳으로 옮겨진 것은 아니라고 못박고있습니다.
어쨌든 이후로 미스바는 국가적 총회 장소로 자주 나타나는데 사무엘시대에도 그러했고(삼상7:5-12,16), 왕조 시대 말기(왕하25:23)나 마카비 시대에 도 이곳에서 전체 회중의 총회가 열렸었습니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모은 또 다른 이유는 미스바가 기브아에서 가까왔기 때문에 베냐민 사람들에게 크게 위협을 가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미스바에 모인 본질적인 이유를 밝힙니다(2절).
“[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본절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미스바에 모인 본질적이 이유가 무엇인가를잘 보여줍니다.
즉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재판하고 응징하기 위해 모였던 것입니다.
모든 지파의 어른들. - 여기서 '어른들'에 해당되는 원어 '피노트'는
'모퉁이돌'(corner stones)이란 뜻입니다.
이는 비유적으로 '지도자들', 또는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장'(chief)들을 가리킵니다(삼상14:38;사19:13).
따라서 여기서 어른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로서 40만의 보병들을 지휘하는 장군의 역할을 수행했던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 이처럼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기 위하여 모인 군사의 수가 40만이었다는 것은 출애굽시 장정의 수가 60만이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민26:51)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또한, 훗날 사울이 암몬과 싸우기 위해 군사를 모집 하였을 때 그 수가 33만이었던 것만 보더라도(삼상11:8) 여기에 모인 수는 이스라엘 장정 전체가 다 모인 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사건의 전말을 설명함(3~7절)
1) 베냐민 지파에게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말하라고 합니다(3절)
“[3]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것은 베냐민 자손들이 기브아 비류들의 사건(19:22-26)을 이제 듣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미스바에서 총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이제 들었다는 뜻입니다.
앞서 레위인이 베냐민 지파에게도 시신한 덩이를 보냈을 터이니(19:29),
그들은 이미 사건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 지파들이 총회를 가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베냐민 지파에게는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베냐민 사람들은 이제서야 총회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한 방안을 그들 나름대로 연구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13절에 나타난 베냐민 사람들의 태도를 볼 때, 이때 베냐민 사람들은 그 총회에 대해 강경히 대처하기로 결심했음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 총회는 기브아 비류들의 사건에 대해 신중히 대처하기 위하여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전체 회중 앞에서 다시 한 번 발표하기로 결정하고 레위 사람으로 하여금 자초지종을 말하게 했습니다.
2) 레인의 보고 내용입니다(4~7절)
(1)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습니다(4절).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죽은 여인의 남편인 레위 사람이 대답합니다.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다고 합니다.
(2)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하였다고 말합니다(5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레위인은 기브아 사람들이 실제로 노린 것은 그의 목숨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대신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었기 때문에 그녀가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19:25).
여기서 은근히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레위인의 교활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 이처럼 본문에 나타난 레위인의 이야기의 초점은 오직 기브아 사람들이 '그의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하였다'는 사실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기브아 사라들이 '그의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하였다'는 사
실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청중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도록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특히 여기서 '욕보여서'(인누)는 강조형 능동태 동사로서 '여성을 무지 막지하게 능욕하다'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말 역시 청중들의 분노를 끊어오르게 하기에 더욱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3) 첩의 시체를 보낸 이유를 말합니다(6절).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여기서 이 레위인은 자신이 첩의 시체를 쪼개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게 된 이유를 강조함으로써, 사람의 시체를 각뜬 자신의 잔인한 행위에 대하여서는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부 기브아 비류들의 행위를 기브아 사람들 전체의 악행인 양 과장하여, 이것이 전 이스라엘 지파에 대한 범죄임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국가적 대처 방안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같이 과장된 레위인의 보고 속에는 자신의 죄를 감추고 사적(私的)인 분노를 민족적인 분노로 미화시키려는 의도가 감추어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4) 방책을 내달라고 말합니다(7절).
“[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 여기서 이 레위인이 요구한 것은 레 18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음란죄에 대한 형벌입니다.
만일 이 레위인의 말대로 기브아 사람들 전체가 그러한 범죄를 행했다면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에서 끊쳐져야 할 것입니다(레18:29).
*레18:29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이스라엘 자손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이스라엘 전역에서 “일제히”미스바에 모입니다(1,2절).
전대미문의 ‘기브아 사건’은 온 이스라엘을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사건을 조사하고 방안을 숙의하며 잘못을 가려 징벌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희생양 찾기에 골몰 한다면 참혹한 보복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참담한 일들에 대해서도 “기도와 대안”없는 날선 비난과 정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근본 원인을 묻고 개선방안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기브아가 속한 베냐민 지파는 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사태의 추위를 살핍니다(3절).
먼저 나서서 진상을 조사하고 잘못한 자들을 처벌해야 함에도, 혈족이라는 이유로 공의를 외면하고 공동체의 연합까지 위태롭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뜻보다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휘돌릴 때, 또 사적인 이익을 앞세워 진실을 왜곡할 때 정의는 세워질 수 없고 공동체도 와해될 수 있습니다.
진실하면 불편하고 정직하면 손해 보는 일이 많더라도 주의 백성은 늘 모든 일에 그릇됨 없이 공평해야 합니다.
3) 레위인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며 억울함을 토로합니다(4~6절).
그의 설명은 비교적 사건의 전말에 부합하지만 왜곡과 과장이 뒤섞인 자기중심적(나) 변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첩을 무책임하게 방치한 것은 숨기고 자신이 받은 피해만을 강조합니다.
훼손된 시신을 보내어 분노를 야기하고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판단도 회피합니다.
정의로운 판단을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살피고 악한 자기중심성부터 회개해야 했습니다.
4) 레위인은 의견과 대책을 내놓도록 다그칩니다(7절).
사태가 심각하고 다급하지만 사안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대처한다면, 동족 간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공분에 차 있을 때, 누구도 현명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사심 없이 공동체의 문제를 통찰할 수 있는 혜안 있는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