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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15장25~32절
제목 : 나답의 통치와 바아사의 반란
22년간의 여로보암의 통치가 끝나고 나답이 왕위에 오릅니다.
아버지를 따라 악을 행하던 나답의 통치는 바아사의 반란으로 끝나고, 여로보암 왕조는 몰락합니다.
1. 나답의 악한 통치(25~27절)
1) 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니 이스라엘 왕이 되어 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었습니다(25절).
“[25] 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이처럼 여로보암 왕조의 북왕국 통치는 여로보암 통치 22년(14:20) 그리고 그 아들 나답 통치 2년 도합 2대로 약 23년간에 그쳤습니다(B.C. 930-909).
그런데 남왕국 유다가 다윗 왕조 통치하에 내적 안정을 이루었던 데 비해, 여로보암 왕조의 이 같은 단명(短命)은 분명코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라는 것이 열왕기의 시각입니다(14:6-16).
2) 나답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26절).
“[26]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 즉 여로보암이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조차 타락하게 만든 우상 숭배 죄(12:28-33)를 가리킵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4:16 주석을 참조하라.
3)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나답을 죽였습니다(27절)
“[27]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 '바아사'란 이름은 '바알이 듣는다'는 말의 단축형입니다(MacLean).
그런데 그가 여로보암 가문을 멸하고 정권을 잡지만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 바아사 또한 우상 숭배에 몰두한 여로보암의 아류(亞流)일 따름입니다.
그러기에 그 역시 훗날 여로보암과 똑같은 징벌을 받아,
아들대 제 2년에 가서 멸족을 당하게 됩니다(16:8,9).
한편 잇사갈 출신 바아사가 이처럼 에브라임 출신 여로보암 왕조를 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 의미를 지닙니다.
(1) 이로써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점(14:10,11),
(2) 당시 북왕국 내의 지파간 결속이 확고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깁브돈 - '깁브돈'은 '산마루'란 뜻입니다.
본래 블레셋의 한 성읍으로 가나안 정복 당시 단 지파에게 배분되었으나 단 지파는 이곳의 점령에 실패한 듯합니다(수 19:14).
아무튼 이곳은 애굽과 수리아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므로 이스라엘은 이를 줄 곧 차지하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로니칼(ironical)하게도 바아사가 나답을 모반했던 시기도 깁브돈 공략시이고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시므리에게 모반당한 시기도 2차 깁브돈 공략시입니다(16:9,15,16).
2. 바아사의 반란(28~32절)
1)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 하여 왕이 됩니다(28절)
“[28]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 하여 왕이 됩니다.
이는 곧 나답의 통치 제 이 년째 되는 해입니다(B.C.909).
이로 미루어 나답은 만 이년을 채 통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25절).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깁브돈(Gibbethon)포위 공략 중 바아사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인물이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이로 보아 아마도 그는 나답의 군대장관이었던 같습니다(Hammond).
그런데 이처럼 무력에 의한 유혈 쿠데타는 북왕국 왕권의 존엄성과 정통성을 실추시키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 이와 같은 반란은 북왕국 역사에 꼬리를 물고 발발하여 하나의 악순환을 이룹니다(16:19,20;왕하 9:11-10:36;15:10-31).
2) 바아사가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멸하였습니다(29절)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온 집을 쳐서. – 여기서 '쳐서'(나카)는 '살해하다', '쳐죽이다'는 뜻으로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사입니다(출 21:12;신19:4;수10:26;삼하2:23 등).
이 동사가 특히 신학적 중요성을 띠는 경우는 하나님이 심판(또는 징계)의 주체가 되실 때입니다(신28:22,27,28,35).
본절 역시 여로보암 일족을 멸절시키는 바아사의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이는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된 사건인 것입니다.
*14:6,11 “[6]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11]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이 역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의 바아사 자신의 동기는 전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보복당할 가능성을 말살하려 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여로보암 가문 중 한 명이라도 남게 된다면
그는 바아사에게 피의 복수를 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민35:16-21).
*민35:16~21 “[16]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17]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19]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20]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21]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이는 바아사로서는 큰 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바아사는 여로보암 일족을 철저히 진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복수 가능성을 봉쇄해 놓고도
그의 운명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바아사 왕조로 하여금 여로보암 왕조의 말로와 같게 하신 것입니다(16:11-13).
*16:11~13 “[11] 시므리가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안 사람들을 죽이되 남자는 그의 친족이든지 그의 친구든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12]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13]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의 죄 때문이라 그들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2) 여로보암 집안이 진멸된 원인입니다(30절)
“[30]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
(1)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입니다.
그는 우상을 만들어 섬겼고, 그의 백성들에게 죄를 범하게 하였습니다.
(2)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노엽게 한 일'에 해당하는 '카아스'는 '화나게하다', '분노를 불러 일으키다'는 뜻입니다.
이는 특히 마음의 내적 상태가 점차로 격심한 분노와 흥분 상태에 이르게 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인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으로 표현해서 하나님께서도 언약의 백성이 당신에게 불성실한 경우 그와 같이 상처입고 분노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분노와 상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출34:14;겔16:42).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겔16:42 “그리한즉 나는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질투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관련해서는 삼하22:4-20 강해, '신인 동형 동성론'을 보다 참조하라.
3) 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었습니다(31절).
“[31] 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사적과 행한 모든 일 – 2년이 채 못되는 나답의 재위 기간(25절) 중 나답의 행적으로서 우리에게 알려진 단 하나의 사실은 그가 깁브돈을 포위, 공격하려 했다는 것 뿐입니다(27절).
그리고 역대기는 아예 나답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둘러싸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1) 여로보암 말년의 패배(7절;대하13장)와 실정(失政, 14:1-20)은 북왕국 내의 여로보암 왕조의 왕권을 인정치 않는 반발의 기운이 조성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사 시대부터 군사적, 정치적 성공을 지도자 승인의 요건이었습니다.
(2)그런데 나답은 이러한 반발을 효과적으로 다스리지 못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바아사의 왕위 찬탈(27,28절)은 세습 왕권보다는 카리스마(Charisma)적 지도자 선택이라는 성향(性向)이 작용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번은 군대의 인기를 독점한 바아사라는 인물이 세습 왕권의 나답을 능가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아사의 출신이 미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데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16:2).
*16:2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 - 북왕국의 국정 일지에 해당되는 책입니다.
본서 기자나 역대기 기자가 성경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이를 참조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14:19 주석 참조.
4)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었습니다(32절).
“[32]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왕들이 거듭 바뀌어도 남북의 적대 정책에는 이처럼 변함이 없었습니다.
한편 아사와 바아사 사이의 인상적인 전투는 16-22절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15:16~22 “[16]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17]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21]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원래 바아사는 무인(武人) 출신이라 전쟁에 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성공적으로 남왕국을 공략해 예루살렘 턱밑 6km 지점 라마까지 진출하였습니다(17절).
그런데 아사의 책략으로 인해 동맹을 파기하고 북왕국의 후방을 급습한 벤하닷 때문에 바아사는 라마에서 결국 철군하고 말았습니다(18-21절).
그러나 이 일 후에도 남북왕국은 항상 전시(戰時) 상태에 놓여 있었고, 상호 적대감은 증가하였습니다.
따라서 분열 왕국 시대(B.C. 930-586)는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깊은 골이 가로놓여 있었던 암울한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나답이 왕이 됩니다(25,26절).
나답과 함께 북이스라엘은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얻었지만, 나답은 영적 회생의 때로 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르호보암이 악한 행위를 그대로 따르던 유다 왕 아비얌(3절)처럼, 나답도 아버지 여로보암의 악한 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아들이, 왕을 따라 백성이 악을 답습합니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에 뿌리내린 악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 자리를 잡고 ‘더 넓게’퍼져 갑니다.
관행이나 전통으로 여기던 일들 중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은 없습니까?
당장 끊어야 할 고의적이고 고질적인 악습은 없습니까?
2) 바아사는 블레셋의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던 나답을 죽이고, 여로보암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을 처형합니다(27~29절).
“남북이 분열하면서 첫 왕조로 등장한 여로보암 왕조”가 그 아들 나답 시대에 몰락한 것입니다.
약속도 받았고 예언도 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대를 이어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먼저 싸워야 할 대상은 눈에 보이는 대적(블레셋)이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 온 불신앙이었습니다.
우리도 지금이야말로 더 많은 소유와 더 나은 성취를 바랄 때가 아니라, 남은 힘을 다해 회개하고 영적 갱신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요?
3) 특별한 선택에는 특별한 책임이 있습니다(30절).
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왕의 척도였다면, 여로보암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의 죄는 여로보암의 죄와 동일시되고 끊임없이 반복됩니다(15:26,30,34) 다윗의 후손들이 더 안정적인 와위를 이어 갔다면, 여로보암의 자손들은 반란으로 왕조 생명이 단축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기준입니까? 다윗처럼 선하게 사는 자의 증인입니까, 악하게 사는 자의 증인입니까?
4) 여로보암의 죄에 진노하신(30절) 하나님은 그를 답습하는 나답에게도 책임을 물으십니다(31,32절).
그 결과 그의 죽음을 기록하는 열왕기서는 조상과 함께 잠들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14:20).
하나님을 떠닌 자의 삶에 대한 평가입니다.
인생의 중심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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