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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계시록5장1~14절
제목 : 죽임 당하신 어린양
4장의 초점은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과 거룩이며, 5장의 초점은 우리의 구원의 소망이시며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광입니다.
보좌의 환상에 이어지는 하늘의 광경으로, 두루마리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죽임 당한 어린 양 이 등장하고 천상의 존재들이 승리하신 어린 양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1.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1~5절)
1)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1절)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오른손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 텐 뎌시안'은 문자적으로 '오른손 위에'라는 의미로(1:16) 권능과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열려진 손바닥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두루마리'로 번역된 헬라어 '비블리온' 고대에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던 '두루마리'(scrooll)로 봅니다(사34:4; 렘36:2; 히10:7).
안팎으로 썼고. - 문자적으로 '안쪽과 뒷면에 썼고'라는 의미로 공적인 내용을 양면에 기록한 사실은 내용의 양면에 완전히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안팎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선포를 시사합니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봉하였더라'는 '위 아래로 봉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의 의미는 일곱이 완전수를 상징하므로 책의 내용이 완전하며 어떤 인간에 의해서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런 내용이어서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밝히 보이실 수 있음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Alford, Barclay, 롬16:25; 고전4:1; 엡3:3).
한편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의 내용에 관한 견해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종말 즉, 악인들에 대한 심판과 성도들의 구원 그리고 만물의 비밀의 완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6:4,6,8,10; 7:3-17).
2) 누가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2~5절)
(1)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2절).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힘있는 천사'에 대해서 혹자는 천사 장 가운데 하나로 해석하며, 혹자는 가브리엘로 해석하기도 하나(Ford)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편 본문의 '합당하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앝시오스'는 능력이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함이나 의로움과 같은 적합성(適合性)을 나타내는 것으로 봉인된 책을 열 수 있는 의로운 자격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수사학적 질문입니다
(2) 전 우주와 모든 피조물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3절).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는 빌 2:10과 병행을 이루는 표현으로,
혹자는 '하늘 위'는 천사들과 죽은 성도들이 거하는 곳을,
'땅 위'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거하는 곳을,
'땅 아래'는 악한 영들이 거하는 음부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하나,
전 우주와 모든 피조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출20:4).
창조물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비밀을 밝혀낼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3)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울었다고 합니다(4절)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울었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라이온'은 미완료 능동태 시제로 계속 울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직업적으로 애곡하는 자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나(요11:33,35)
구약성경에서는 비참함을 선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왕상13:30; 렘22:18).
본절에서 요한의 울음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됩니다.
⓵ 마땅히 의 울음을 의미합니다
⓶ 계시의 내용 가운데 구체적으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 수 없음으로 인해 계시를 알고자 하는 열정의 울음을 의미합니다.
(4)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합니다(5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본문은 요한이 책을 열기에 합당한 자가 없어서 울 때 장로 중 하나가 위로하며 한 선포입니다.
인봉된 책을 열기에 합당한 자에 대한 칭호는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⓵ 유대 지파의 사자. - 이것은 야곱이 유대 지파를 향해 했던 축복의 예언을 반영한 것입니다(창49:1-28).
야곱은 유다를 가리켜 '사자 새끼'라고 하였으며, '실로가 오시기까지 홀이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창49:9,10).
이 약속은 승리하신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용되었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이기는 자' 혹은 '메시야의 특징'으로 나타납니다(히7:14).
이 칭호는 고난당하는 메시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시며 지배하시는 왕으로서의 메시야를 지칭합니다.
⓶ 다윗의 뿌리.- 이 칭호는 사11:1을 반영합니다.
이사야서에서 메시야는 악을 징계하고 평화로운 이상 국가를 이루시며 다스리시는 왕으로 나타납니다(사11:1-10).
이 메시야 칭호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더욱이 '뿌리'는 예수님께서 비록 다윗의 인간적 혈통을 통해 오셨으나,
그 근본 본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시사합니다(사11:1,10; 마1:1).
한편 '이기었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두 에니케센'은 문자적으로 '보라'는 의미의 감탄사 '이두'와 단회적으로 '이기었다'를 의미하는 부정 과거 시제의 '에니케센'으로 이루어져 '단번에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한 것'을 시사합니다.
이는 곧 승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켜 미래에도 그러할 것임을 암시합니다(Swete).
실제로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승리를 약속하셨고 최후에 두루마리의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이며 온전한 승리를 성취하실 자입니다(1:18; 눅10:18; 요14:30; 16:33).
2. 두루마리를 취하신 어린 양(6~8절)
1) 어린양(6~7절)
(1) 한 어린 양이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6절).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 '어린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니온'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사용된 '암노스'(어린양')와는 달리(요1:29,36; 행8:32; 벧전1:19) 갓난 어린양을 표현하는 것으로 본서에서 29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곧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희생을 시사합니다(사1-3장).
'사이에'는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한 위치를 가리키기보다는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구속받은 성도들의 중보자임을 암시하는 표현이라 추측합니다(4:2,4,6).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에스파그메논'은 완료 수동태 서술 분사 구문으로 과거에 십자가에 죽었으나 지금은 살아계신 것을 시사합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기도 하며 혹자는 그리스도의 몸에 이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묘사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할 때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을 구원하며,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고, 현재는 중보자로서 계셔서 십자가의 대속 사역의 효력을 영원토록 발휘하심을 나타냅니다(5:9,12; 6:4,9; 13:3; 18:24).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일곱 뿔'에서 '뿔'은 힘을 상징하며,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기에 어린양이 소유한 '일곱 뿔'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완전무결하신 권세와 능력을 시사합니다(민23:22; 신33:17; 삼상2:1; 왕상22:11; 시75:4; 빌2:9-11).
앞서 언급된 죽음을 당한 적이 있는 어린양과는 달리 '일곱 뿔'을 가진 어린양에 대해 혹자는 묵시적 개념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에녹1서 90:37).
한편 '일곱 눈'은 성령을 상징합니다(1:4; 4:5).
'눈'은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슥3:9; 4:10) 성령께서 특수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여(행2장)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일체된 사역을 행하심을 시사합니다(요14:26; 15:26; 16:8,13-15).
(2)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취합니다(7절)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취하시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일레펜'은 생생하고도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며 동시에 세상의 모든 통치가 어린양을 통해 성취됨을 시사합니다.
이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성취시킬 권위와 권한을 부여 받으셨음을 암시합니다(사9:6,7; 슥9:10).
2) 성도들의 기도(8절)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1)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립니다.
어린양이 세상의 구속을 위한 왕권을 위임받자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일제히 어린양 앞에 순복하였으며 그의 권위와 능력을 찬양하고 경배 자세를 갖춥니다.
(2)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여기서 '각각'이 누구를 한정하는가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① 혹자는 경배와 찬양은 생물 보다는 인간이 해야 할 직무임을 강조하여 이십 사 장로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② 혹자는 이십 사 장로들과 네 생물 모두를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본서에서 네 생물의 경배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후자가 타당합니다.
'거문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용하는 몇개의 현이 달린 전통적인 악기로서(14:2; 15:2; 시33:2; 98:5; 147:7) 일반적으로 찬송을 가리킵니다.
이는 어린양이 하나님과 함께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심을 시사합니다.
한편 금대접에 담긴 '향'은 성도들이 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혹자는 이것이 교회가 오랫동안 해 온 기도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본절에서 기도(祈禱)를 어린양께 바치는 것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중보자가 되심을 시사합니다.
*계 3:5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3. 네 생물과 장로들이 어린양께 드리는 새 노래-첫 번째 찬양(9~10절)
1) 그들이 새 노래를 부릅니다(9절).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 '새 노래'는 시편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입니다(시33:3; 40:3; 96:1; 98:1).
*시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시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96: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시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여기서 '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넨'은 '시간적이며 근원적인 면'에서 새로움을 나타내는 '네오스'('새로운')와는 달리 '질적인 면'에서 새로운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기에 '새 노래'는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구원의 새로운 완성에 대한 노래입니다.
앞장에서 하나님이 창조 역사로 인해 찬양받으셨던 것과는 달리 본절에서 어린양은 구속의 역사로 인해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을 받습니다.
한편 '노래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두신‘은 현재 시상으로 계속적으로 노래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찬송이란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새 노래란 바로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그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양의 사역에 참여되지 못한 자는 찬양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으니 모든 영광을 어린양에게 돌려드립니다'는 것이 새 노래입니다.
그래서 새 노래는 '내가 산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희생 덕분이다'는 것을 가슴 깊이 인식하고 모든 영광을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돌려드리는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어린양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능력은 우리의 헌금(獻金)이나 기도(祈禱)나 예배(禮拜)나 찬송(讚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에 의해서 살리심을 입은 신자들은 필히 어린양의 피를 압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고 나서 하나님이 구원을 찬양하는 것처럼,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얻은 백성들도
역시 죽음 속에서 우리를 살리신 어린양의 피를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노래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송입니다.
신자는 바로 이 새 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은 자기 이름과 세상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로 삽니다.
예수님의 피가 생명이고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 영광이 귀한 것이 아니다'는 정신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은
이기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아야 합니다.
남을 희생시켜야 내가 잘되고 높아질 수 있는 경쟁사회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죽은 자로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에서 잘난 인간되고 높아지는 것은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은 진심으로 예수님의 피만 그 속에 생명으로 자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세상 영광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했기에,
그리고 그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과감하게 세상 것을 포기할 수 있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신자가 하늘에서 승리자로 여김 받는 것입니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 '합당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앝시오스'는 부정 과거 시상으로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역이 인봉을 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음을 시사합니다(2절).
즉 일찍이 역사 가운데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영원한 조건을 갖추었음을 시사합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 요한은 예수의 죽음이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적 죽음임을 나타냅니다.
'죽임을 당하사'의 헬라어 '에스파게스'가 부정 과거 수동태이며(고전6:20; 7:23; 갈3:13; 벧후1:21) '피로 사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라사스...엔 토 하이마티'가 대가를 나타내는 전치사 '엔'과 '구속하다'는 의미를 가진 '아고라조'의 부정 과거인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과 죽음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택한 자들을 사신 것을 나타냅니다.
한편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라는 표현은 인종적, 집단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보편적인 인류를 나타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됨을 시사합니다(12절;1:5;7:14;12:11;13:18; 14:4; 15:3; 19:7;21:9;22:3).
그러나 '가운데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는 민족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는 보편 구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엡1:5) 선택한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 드리시고.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죄인들을 구속하신 목적입니다.
그것은 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백성이 되게 하며 그에게 순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고전6:19,20).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성도들은 하나님께 소속된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2)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았습니다(10절).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 '나라'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할 집합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가리킵니다(1:6; 20:6).
*계1:6,20:6 “[1: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20: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또한 '제사장들을 삼으셨다'는 말은 옛 언약 하에서 특별히 선택된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 새 언약 하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개인이 직접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며, 섬기고 찬양함을 시사합니다(히13:15,16).
*히13:15,16 “[15]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 '땅'은 종말론적 성취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온전히 왕 노릇할 것을 의미함은 물론 현재에 그리스도인이 왕 노릇하는 것도 내포합니다.
한편 '왕 노릇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실류슈신'에 대해서 미래형으로 취한 사본도 있으며(P, Nestle 26 ed), '바실류우신’으로 현재형을 취한 사본도 있습니다(A, Q).
미래형을 취할 경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릴 것을 기대하면서 구원받는 자들이 함께 그 통치의 기쁨을 누릴 것을 대망하는 것을 나타내며(2:26,27; 20:4; 22:5), 현재형을 취할 경우 그것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왕적 통치를 나타냅니다.
두 가지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닙니다.
요컨대 '왕 노릇하리로다'는 말은 '미래적 현재'로 온전한 왕 노릇을 기대하면서 현재에 참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왕노릇은 현재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시고 세상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신자를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것은 의를 드러내는 도구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의가 드러날 때 무엇이 드러납니다.
숨겨져 있던 죄가 드러납니다.
죄의 결과는 곧 심판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죄가 드러나고 세상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음이 증명되는 것은 신자에 의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신자가 왕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죽은 자로 살아갈 때 세상에 의해서 업신여김을 당하고 무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세상이 약자로 오신 예수님을 죽인 죄 속에 있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신자에 의해서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심판을 선포한다는 것은 이미 세상 위에 군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승리자이고 왕노릇하는 자입니다.
4. 온 피조물의 경배와 찬양(11~14절)
1) 두 번째 찬양-천사들이 어린양께 올리는 찬양(11~12절)
(1)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입니다(11절).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본절에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찬양하는 이들은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에서 많은 천사들로 확대됩니다.
'만만이요 천천이라'는 말은 단7:10을 반영한 것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무리를 묘사합니다.
이는 이 무리들 가운데 계신 자의 무한한 영광과 권능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천사에게도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시사합니다(시68:17; 히12:22).
*시68: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히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12절).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본절은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 내용으로 7:12과 유사합니다.
이 찬양의 내용이 13절과 7:12에서는 하나님께 돌려지고 있으나 본절에서는 어린양께 돌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어린양이 동일(同一)함을 나타냅니다.
한편 찬양의 내용은 일곱 가지이며 이것들이 하나의 관사 '텐'으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속성을 시사해 줍니다(대상29:10-12).
대상29:10~12“[10]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11]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12]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⓵ 능력. -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그리스도께도 속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이십니다(고전1:24).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⓶ 부. - 이것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약1:11), 또한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고후8:9; 엡3:8) 믿는 자들에게 나누어진 것입니다(요1:16).
*약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⓷ 지혜.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서(고전1:24) 모든 지혜를 소유하시고 계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고전1:30; 골1:9).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골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지혜’는 다니엘 2:20에서 도출하여 일곱 완전수로 재구성합니다.
*단2: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⓸ 힘. - 이것은 '능력'이 외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악이나 대적자를 멸망시키심을 시사합니다(눅11:22).
*눅11: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⓹존귀와 ⓺영광. - 그리스도께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으로 존귀와 영광을 소유하신 분이었으나 세상에 종의 형체로 오셔서 낮은 자리에 임하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존귀와 영광을 입으셨습니다(요1:14; 빌2:1-11; 히2:9).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⓻ 찬송. - 앞서 언급된 여섯 가지가 그리스도의 속성과 본질을 잘 나타내는 반면 본문은 천사들과 성도들의 고백을 나타낸다(벧전1:3).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같이 동일하게 모든 피조물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시사한다.
2) 세 번째 찬양-모든 피조물이 성부와 성자께 드리는 찬양(13~14절)
(1)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13절)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본절은 앞절의 찬송에 대한 모든 피조물들의 화답송으로 만물이 속한 전우주의 구속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입니다.
여기서 '만물이 가로되'는 창조주와 창조물이 구분되지 않는 범신론적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적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우주에 속한 만물의 반응을 나타냅니다(롬8:19).
*롬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14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피조물의 찬송에 호응하여 네 생물과 장로들이 아멘과 경배로 하늘의 찬송을 끝맺습니다.
'이르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레곤'은 네 생물이 12절의 일곱 가지 찬송과 13절의 네 가지 찬송에 모두 아멘이라고 화답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어린양의 찬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을 함께 찬양합니다.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통해서임을 보충 설명합니다.
구약과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의 한계를 넘어 성부와 성자가 예배의 대상이 됩니다.
5장 예배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선교적입니다.
보좌로부터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예배입니다.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도록 두루마리가 등장한다.
둘째, 기도와 찬양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예배입니다.
셋째, 예수가 예배의 대상이 됩니다.
예수가 신적인 존재로 하늘 보좌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유일신론에서 삼위일체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묵상 Point
1) 역사의 주권자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가 있다.
이것은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 구속의 결륜과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도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고 주의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작정을 막을 수 없고, 그분의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다.
악은 득세하고 교회는 수세에 몰리고 성도들은 모진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구속의 역사는 정체되고 하나님 나라를 이어갈 희망마저 보이지 않지만, 보좌에 앉으신 주가 계시기에 탄식은 탄성으로 슬픔은 환희로 바뀔 것이다.
2) 구속을 완성하실 예수님
봉인된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다윗의 뿌리요 어린양이신 예수님뿐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만이 심판과 구원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성취하실 것이고, 성령(‘일곱 영’)을 통해 그 구속이 온 세상에 편만하게 적용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셨을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속을 통해 새롭게 창조하고 싶은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셨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기부정과 십자가의 길을 가신 어린양을 따르는 것만이 ‘이기는 자’(2-3장)가 되어 영원한 승리와 영광에 참여하는 길이다.
3)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예수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수많은 천사들은 어린양 앞에 엎드려, 자기 피로 백성을 속량하여 하나님을 위해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어린양께 경배한다.
오직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만이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고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고백하며 찬양한다.
주님이 아니면 오늘의 내가 없고, 살아갈 수도 없고, 내일도 보장할 수 없다는 기도와 고백이 바로 찬양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절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계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교회가 박해를 받고 성도가 고통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악을 심판하고 의인을 구속 하실 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2-7절 유대 지파의 사자(창 49:9)이시며, 다윗의 뿌리(사 11:1,10)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봉인을 떼고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스스로 구원자라 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아무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실현시킬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힘으로도 지혜로도 돈으로도 뗄 수 없고, 오직 흠 없는 메시아의 죽음으로만 뗄 수 있는 봉인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린 양 예수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왕이 되셨습니다.
어린 양의 구원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만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8절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펼치실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울부짖던 히브리 민족의 기도를 들으시고 출애굽의 역사를 펼치셨던 것처럼(출 2:25), 이제 사망의 권세 아래 탄식하는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이 속히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이웃은 누구입니까?
9,10절 어린 양의 피로 사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언어, 모든 나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구나 제사장이고 왕입니다.
이제 차별과 배제와 혐오를 양산하는 모든 경계는 허물어졌습니다.
혹시 내 안에 허물지 못한 벽과 구별 짓는 대상이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은지 살펴봅시다.
12-14절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의 찬양을 받으실 분입니다.
승리한 용맹한 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죽임 당한 어린 양의 모습이지만,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하신 왕입니다.
제국의 황제는 무력으로 세상을 굴복시키고 자신을 숭배할 것을 강요했지만,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영원히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기도]
공동체-우리 교회가 죽임 당하심으로 생명을 구원하신 어린 양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열방-콩고민주공화국에서 종족 간 폭력사태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특히 의료적 혜택에서 소외 되는 피해를 받고 있다.
종족 간 폭력사태가 해소되고 주민들이 의료혜택을 누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