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나무는 저 스스로 감나무가 되지 못한다
민구식
얼마 전 오랜만에 고향 집에 갔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의 울타리 한 구석 비탈 심한 곳에 고욤나무가 있었다. 접근하기도 어렵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곳에 감나무처럼 잎과 줄기를 키우지만 가을이 되어 열리는 것은 감이 아니라 고욤이다
씨는 감 씨와 같거나 비슷한 모양이지만 먹을 것도 없고 떫은 맛에 색감도 눈에 띄지 않는 진한 고동색으로 도토리 만하게 익는다. 고욤을 따서 작은 항아리에 담아두면 추운 겨울 나름 달콤한 맛을 볼 수가 있었다.
말라 쪼그라든 고욤 한 개를 따서 입에 넣으니 어느덧 떫은 맛이 가시고 단 맛이 들었다. 씨 빼고 나면 껍질뿐이지만 침 넘기기에는 괜찮은 편인 것은 어릴 적 먹어본 경험 때문이 아닐까?
고욤 나무에 감나무를 접 붙여 키우면 감나무가 된다. 찔레나무에 장미를 접 붙이고, 능금나무에 사과나무를 접 붙이고, 머루 나무에 포도를 접 붙이는 일도 그렇다
감에도 종류가 많아 어떤 감나무를 접 붙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감이 되지만 고욤 나무는 저 스스로 감나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뿌리가 되거나 줄기가 되어 양분을 공급해 주는 역할만 하고 열매를 만들고 꽃을 피우는 것은 그 역할을 맡은 다른 존재가 한다.
한 나무에서도 역할이 다른 협동의 일이 있음을 깨닫는다
부모님 같은 고욤나무는 천박한 땅에서 고욤의 양분을 가지에 주었지만 가지는 새로움에 눈을 떠 경험을 쌓고 대처에 나가 성공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달라진 모습으로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욤 나무로 태어나 고욤 나무로 산 몇몇 친구들이 있다. 주름 깊은 얼굴과 농사일에 굳어진 굽은 허리, 거친 손, 그리고 언행과 행동, 좁은 울타리에서 습관된 고달픈 삶들을 보면서 좋은 멘토가 있었다면 비록 고욤 나무 이어도 좋은 감나무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도 심성이 바르고 정직하게 살고 있다면 몰라도 주태백이, 막무가내, 좌충우돌, 가는데 마다 시비, 싸움이 잦으면 아무리 고향이라도 멀리 할 수 밖에, 결국 동창들, 친구들 사이에서도 기피 인물이 되어버린 친구를 생각하면 같이 학교를 다닐 때는 별로 차이 남이 없이 고욤 나무 같은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나무는 잎을 다 떨구고 상강霜降 지나 찬 바람이 불 때 홍시가 되어 분홍색 홍등 달아 놓은 것 같이 가을을 대표하여 서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잎은 열매를 위하여 여름내 탄소 동화 작용과 광 합성을 하여 녹말을 저장해 주고 제 역할을 다하면 날개 짓 하면서 떨어져 이별을 한다. 열매는 그 모든 양분을 받아 씨앗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까지 과육을 저장하고, 색을 들이고 바람 부는 날을 맞아 멀리 떨구어 보내거나 새들을 불러모아 씨앗을 퍼뜨려 달라고 제 몸을 보시하거나 하는 일련의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본다
자연의 이치에 인간이 개입하면 자연은 거부하려고 한다.
열매를 인간이 가로채는 행위가 과수원이고, 농장이고 경작지가 아닐까? 어느정도 까지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행위일까 생각해 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사람을 위한 자연을 일부 도용하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다. 다만 함께 공존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착취하거나 저장하려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욤 나무를 감나무로 바꾸거나, 머루 나무를 포도나무로 바꾼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오늘이 상강이다
홍등처럼 매달려 울타리 밖을 비추는 붉은 감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이어본다
저 감나무의 뿌리는 고욤 나무고 키움을 받아 붉은 감이 되었구나 하면서 길러 주시고 가르쳐 주신 부모님과 모든 스승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추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