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교당에 부임을 한 지 3년이 되었다. 처음 부임할 때 ‘여기는 농촌이라 젊은 사람들이 없어요’‘고생 하시겠어요’‘여자 교무님이라면 좀 나을 텐데 남자 교무님이라 어쩐데요’그러신다. 교당에는 제일 젊은 사람이 60대라 앞으로 우리도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 ‘밭이라도 팔아서 교무님 모시다가 안 되면 옆 교당하고 합해야지요’ 그러는 거다.
옛날에는 70여명이 출석하는 교당이었는데 열반하시고 요양원으로 가시고 아들 따라 도시로 나가시고 연세가 많으셔서 걷기가 어려우신 관계로 교당을 못 오시고 30여명이 출석하는 교당이다.
대각개교절이 되어 음악회를 계획했다. 교도님들에게 음악회를 하자고 하니 해본 경험도 없고 돈도 많이 들 것이고 듣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을 한다. 돈 안 들이고 할 테니 허락만 해주시라고 하였더니 돕기는 하겠다고 한다. 전단지를 4천장 인쇄해서 시청으로 인근 교당으로 돌리며 만나는 대로 음악회에 오라고 하였다. 음악회는 매개체요 사람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교도님들도 교무의 첫 행사라 그랬던지 음식을 열심히 준비를 해주었다. 부침개 매실차 호떡 등을 준비하고 음악회를 했는데 150여명이 참여를 하였고 왔던 사람들이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교무가 하는 일에 교도들이 한마음으로 동참을 해주신 것이 고맙다.
교당이 깨끗하고 볼거리가 있어야 교도님들이 교당에 올 맛이 나지 않겠느냐는 말이 생각나 서울에서 정원 일을 하는 청년회원과 상의를 하였더니 마당을 리모델링 하자고 한다. 농촌교당 형편이 어려우니 실비만 받도록 사정을 했다. 그 청년교도의 도움으로 마당을 정리하였는데 무척 아름답고 늘 꽃피는 교당이 되었다.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면서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교당 대문 옆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었다. 단풍나무 아래 있으니 앉아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큰 바위를 놓을 필요는 없고 어찌할까를 생각하다가 세워야겠다고 판단을 했다.
남강석재 사장님께 사정 이야기를 하니 시골 교당이 얼마나 힘드시냐고 본인이 글씨를 파서 세워 주겠다고 한다. 앞에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라고 새기고 뒷면에는 돌에 대한 역사를 시처럼 적어 놓았다.
정원은 늘 꽃이 피어 좋기는 하지만 평일에 교당을 찾는 교도는 거의 없었다. 일요일에도 법회만 보고 썰물처럼 모두 가시고 삭막하기만 하다. 한옥이라 품위는 있고 보기는 좋지만 부속 시설이 없고 전임 교무님이 뒤로 달아내서 식당을 만들었으나 교도들이 머무를 공간이 없었다. 어느 날 좋은마음에 갔더니 황토방을 자랑하셔서 ‘우리 교당에도 하나 만들어 주세요’ 부탁을 하고 교도님들에게 황토방을 하자고 하였더니 돈 낼 사람도 없고 얼마나 쓴다고 그걸 하느냐고 한다. 한 분 한 분을 설득하여 2평짜리 찜질방에 9평 거실과 화장실을 갖춰 팬션같은 황토방이 되었다. 염려하던 바와는 다르게 황토방은 교도들이 좋아라 하고 거기서 놀기도 하고 밥을 해 먹기도 하며 교도들 공간이 되었으니 며칠 만에 본전을 뽑았다고 좋아들 한다. 고백하지만 좋은마음 사장님께 손해를 보도록 만들었으니 다음 생에 갚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한옥의 대각전, 교도들의 쉼터인 낙원전, 푸른 잔디마당에 늘 꽃피는 화단. 교도들은 원불교에서 제일 아름다운 교당이라고 말한다.
작년에는 중앙교구가 바자회를 쉬었다. 바자회를 목적하고 준비한 교당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교당에서 바자회를 하면 어쩌냐고 했더니 우리가 어떻게 바자회를 하느냐고 어려워 한다. 면민이 2,400명인데 그것도 소재지에 있는 사람은 몇 명밖에 안 되는데 바자회를 하면 팔리겠느냐고 한다. 그리고 우리 교당은 청국장밖에 없는데 한 품목으로 바자회를 어떻게 하냐고 의아해들 하였다. 청국장만 팔지 말고 청국장을 끓여서 오신 분들 접대를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교구내 교당들에 전화를 해서 우리가 바자회를 할 테니 참여를 해 달라며 자릿세는 안 받고 천막도 우리가 다 치겠다고 했더니 10개 교당 봉공회에서 참여를 하겠다고 한다. 겸하여 사람을 모을 수 있도록 음악회를 하였는데 음악회와 바자회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지 바자회는 성황리에 마쳤고 청국장과 밥을 잘 먹었다는 인사들을 받았다. 함라교당의 청국장은 만들기가 바쁘게 팔려 바자회 때는 몇 시간 만에 다 팔고 주문을 받아서 청국장을 또 만들어야만 했다.
교도들이 교당에 호감을 느껴서 그러는지 안 나오던 교도도 몇 분 나오고 몇 분이 새로 오고 농촌교당의 하향곡선은 멈추게 되고 이제 교화를 해야 되겠다는 말들을 한다. 교무가 하자고 하면 어떻게라도 함께 하려는 교도들이 고맙다. ‘우리 교무님 무엇으로 식사 하신다냐’ 하면서 반찬들을 해 오시고 ‘우리 교무님 오래오래 살아야 혀’그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