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선생 별세 추모사로 임진택 마당극 연출가. 창작판소리 명창이 쓴 추도글에 박호성 교수가 나와 검색했더니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나와 공유한다. 여러권의 저서가 소개되는 데 꼭 읽고 싶은 책들이다.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장·교육학 박사
원문보기 : [저자와의 대화]‘지식인’ 출간한 박호성 교수 - 경향신문 (khan.co.kr)
‘지식인’ 출간한 박호성 교수
2014.05.30 20:51 입력
글 김종목·사진 김정근 기자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나… 선택지는 ‘저항’ 아니면 ‘어용’뿐”
‘F교수’는 불의에 항거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표상이 된 인물이다. 강의 때 가난뱅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따지고 들면 불순분자로 매도당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노동의 가치를 역설한다. 국내 최대 규모 노조의 고문도 맡고 있다. 단사표음(簞食瓢飮)을 기리는 그는 청빈한 학자로도 알려졌다. 한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F교수는 ‘랑데부 살롱’ 단골이다. 순정파 여대생 도우미 실비아를 사랑한다. 술친구이자 스폰서인 대형 건설회사 대표 성사장과 자주 들른다. 성사장은 F교수에게 어느 달동네 판자촌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것이라는 정보를 귀띔하며 미리 목 좋은 곳에 땅과 집을 사두면, 가만히 앉아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대기업 주식을 처분해 성사장에게 부동산 매입자금을 송금한 날, 두 사람은 랑데부에서 모임을 가진다. F교수가 계약 턱을 쏘는 날이다. 그는 취중에 하루빨리 판자촌이 철거되길 염원한다.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가 쓴 단편소설 ‘목격자’의 줄거리다. 박 교수는 신간 <지식인>(글항아리)에 이 소설을 담았다. F교수는 실존 인물일까. 세속적 호기심을 제어할 수 없었다. 27일 연구실에서 만난 그에게 던진 첫 질문도 F교수의 실존 여부다.
“여러 교수한테 힌트를 얻었어요. 오해 안 하도록 마흔인데도 백발에 안경 낀 것으로 묘사했지. 그런데 (기자가) 할 일이 없었나 봐.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을 읽고 말야.”
<지식인>을 엮으며 저지른 작태 하나가 소설을 넣은 것이라며 웃었다. 전업 소설가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듯해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라며 송구스럽다고 했다. 박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여러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낙선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과욕이 부른 참사이자 쌤통”이라고 회고한다.
책의 쪽수나 늘리고 낙선의 한을 풀려고 소설을 실은 건 아니다. “논문소설 같은 천덕꾸러기꼴”이라고 했지만, 소설은 지식인의 이중적 삶의 단면과 폐부를 보여준다. 그 주제는 곧 정년퇴임하는 박 교수가 대학교수로서 마지막 발자취로 남긴 <지식인>을 관통하는 문제의식과도 이어진다. 박 교수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지식인이 늘어난다”며 “국정원이니, 대선개입이니, 간첩사건 증거 조작이니, 종북주의니 하는 식의 온갖 불의한 사태와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도착 증세도 이익을 좇는 지식인이 늘어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지식인 문제는 한국인의 ‘서글픈 존재 양식’에도 나타난다. 박 교수는 ‘영혼 없는 기계’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나누기보다는 가로채는 일에 좀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 그리하여 더불어 나누는 인간다운 너그러움보다는 자기 몫만 살벌하게 챙기려 드는 냉혹한 수지타산에만 광분하다 급기야는 무혈충으로 전락해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는 “우리는 공유하기보다는 거래하는 데 훨씬 능통한 존재 양식을 공유한다”며 “인류사의 가장 큰 적도 이 같은 이기주의로, 결국 타인과 타 집단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심화시켜 나갈지가 인류의 과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형식주의, 소집단 애국심, 사익 절대주의 등을 한국 지성계의 풍토병으로 여긴다. ‘컬러리즘’(색깔론)도 그중 하나로, 박 교수가 만든 신조어다. “영어로 써야 귀를 기울이니”라는 농반을 던지면서도 “색깔론은 한국 사회의 암적 병폐”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그는 “ ‘색깔을 밝히라’는 주문은 ‘꼭꼭 숨겨놓은 당신의 이념과 노선의 정체를 솔직히 드러내라’는 강압적 요구다. 사상의 자유와 이념에 대한 판정이 지금껏 항상, 특히 박정희 시대에 유별났듯이 지배 세력의 입맛에 따라 좌우되었던 전통 때문에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식인’을 표제로 삼은 책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란 화두가 빠질 리 없다. 박 교수는 지식인의 역할은 저항 아니면 어용뿐이라고 했다. 저항적 지식인의 역사적 소명과 당위성을 중점적으로 파헤친 그는 지식인이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일들의 목록도 내놓았다. 목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해답은 그의 과거와 현재의 학문 수행과 미래의 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철학자 박이문 교수가 현대 한국의 자생철학을 대표한다면, 박 교수는 자생정치사상을 대표하는 학자로 볼 수 있다.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한국 현실에 바탕한 자신만의 개념과 이론을 꾸준히 주창하고 정립해왔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에 깊이 파고든 민족 및 계급 문제 두 축을 연구하며 우선 민족 문제와 관련해 ‘남북한 민족주의론’을 내놓았다. 계급 문제의 철학적 토대를 밝힌다는 의미에서 ‘평등론’을 썼다. 인간이 왜 존엄한지를 밝히기 위해 쓴 게 ‘휴머니즘론’이다. 그 토대 위에 인간이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공동체론’에 담았다. 이어 어떻게 하면 생태·지구 공동체에서 조화를 모색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제시한 게 ‘생태론’이다. 지난해 한국 사회과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자연의 인간, 인간의 자연>(후마니타스)이라는 생태론 저술을 내놓았다. 그는 ‘자연살이’라는 말도 만들었는데 자연 존중과 연대, 공동체민주주의를 기본 가치로 삼는 정신이다. ‘자연을 죽이면, 자연이 죽인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 “자연에 생채기 내는 건 친족 살해나 마찬가지예요. 자연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워주는 게 지식인 역할이죠. 기업에 환경보호세 같은 것도 물리고, 초·중·고 때부터 생태를 필수 과목으로 정해야 해요. 인문학은 결국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학문입니다.”
박 교수는 곧 다가올 정년퇴임을 학문적 삶의 여로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반환점으로 규정한다. 이 여로에서 붙들고 있는 화두가 ‘인간’이다. 박 교수는 “허황된 꿈을 많이 꿔 주변에서 놀림도 많이 받는다”고 운을 뗀 후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 삶의 총결산으로 ‘인간론’을 쓰고 싶어요. 정치·경제·사회·문화와 삶의 질을 포괄하는 방대한 주제라 죽기 전에 쓸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인간론을 마지막으로 쓰고 이 세상을 표표히 떠나고 싶어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소설을 쓰겠노라고 신문에 나면 얼마나 창피해. 그러니까 시간 여유가 있으면 소설도 쓸 수 있는 역량을 키워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써달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