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신앙을 하고 있는가?”
일본에서 시작된 불법을 그대로 따라가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 움직이는 신앙입니까?
오늘은 이 문제를 풀어주는 아주 중요한 불법의 원리,
수방비니(隨方毘尼)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수방비니란 무엇입니까?
“수방”은 그 지역에 따른다는 뜻이고, “비니”는 계율과 실천입니다.
즉, “그 나라의 환경과 사람에 맞게 불법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지만, 형태는 달라집니다.
불법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가르침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불법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으로 전해지고 일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옷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의 가르침, 그 본질입니다.
만약 인도의 방식만 고집했다면
중국에도, 일본에도 불법은 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일본이라는 현실 속에서 법화경을 살려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한국이라는 땅 위에 서 있습니다.
한국인의 삶,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의 현실 속에서 법화경을 다시 살려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지금의 동개신도회는 완성된 조직이 아닙니다.
때로는 부족해 보이고, 때로는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토착화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땅에 심기면 바로 꽃이 피지 않습니다.
흙을 뚫고 올라오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신앙해야 하겠습니까?
이제는 “언제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신앙이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광포의 주체입니다.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불법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꽃은 각 나라에서 다르게 핍니다.
지금 이 땅, 대한민국에서 법화의 꽃을 피우는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지금의 한 걸음,
지금의 한 번의 제목,
지금의 한 번의 광포가
미래를 만듭니다.
함께 만들어 갑시다.
이 땅에
법화의 빛이 찬란히 퍼지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수방비니의 실천자가 되어
당당히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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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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