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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논개 이야기 ❹
이애미 붉은 꽃타래
박일만 시인
이 바위, 이 여인 / 정 식
그 바위 홀로 솟아 있고
그 여인 우뚝 서 있네
여인 이 바위 아니었으면
어찌 죽을 곳을 얻었을까
바위 이 여인 아니었으면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을까
한 줄기 강 외로운 바위
오랜 세월 꽃다운 이름이로다
斯巖斯女(사암사녀)
獨峭其巖(독초기암)
特立其女(특립기녀)
女非斯巖(여비사암)
焉得死所(언득사소)
巖非斯女(암비사녀)
焉得義聲(언득의성)
一江孤巖(일강고암)
萬古芳名(만고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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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식(鄭 栻 : 1683~1746), 본관은 진주, 조선 숙종(肅宗)~영조(英祖) 시대의 학자, 저서 명암집 등.
이 시는 송시(頌詩)이다. 논개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서정시로써 송가(頌歌) 또는 찬가(讚歌)라고도 부를 수 있다.
진주지역에 오랫동안 구전돼 오던 논개의 순국 사실이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유몽인이 지은 어우야담이다. 그리고 이어 진주의 선비 정대륭은 남강의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훗날 진주의 유지들과 그리고 뜻을 함께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은 정대륭의 손주뻘 되는 명암 정식으로 하여금 비문을 짓게 하고, 이 비문을 바탕으로 ‘의암사적비(義巖史跡碑)’를 세웠다. 이를 근거로 당시의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진한으로 하여금 논개의 포상문제가 임금께 아뢰어지도록 나랏일을 결정하던 최고 회의기구인 비변사에 진정서를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진정서가 접수되자 비변사에서는 임금(경종)에게 그의 뜻을 아뢰었고, 면밀히 살펴본 임금은 마침내 부역(賦役)을 면제(免除)하는 등 특전 여부를 적절히 시행하라는 지시를 하였지만 논개가 순국한지 130년이 지났기 때문에 비변사에서 요구하는 근거할 만한 문헌이나 자료, 문중의 일가친척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후, 진주 사람들의 뜻을 받아 최진한은 현직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1721년 2월 부임)에서 전라도 병마절도사(1724년)를 거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1725년 6월)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계속 논개에게 특전을 내려 달라고 진정서를 올렸다. 이번에는 비변사를 거치지 않고 임금(영조)에게 직소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달갑지 않다는 답이 왔을 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1738년(영조 14, 무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남덕하(南德夏)가 1740년(영조 16, 경신)에 임금에게 다시 진정서를 올려 왕의 윤허를 받아 드디어 의기(義妓)의 정포사액(旌褒賜額)이 내려져 의기라 호칭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논개의 의혼을 봉안하는 사당인 ‘의기사(義妓司)’를 촉석루 부근에 건립하였다.
그러면서 지난 날(경종2, 1722)에 세워진 ‘의암사적비’에 비각을 세우고‘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렇게 해서 논개는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이 시는 그 의암사적비(頌碑)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촉석루에서 의암에 이르는 길 중간쯤에 있는 비각(碑閣) 속에 있다.
이 시는 전쟁이 끝난 지 상당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바위(의암)와 여인(논개)의 기상이 여전히 남아서 꽃처럼 오롯하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바위와 여인은 운명적으로 한곳에 있었기 때문에 의로울 수 있다는 당위성과 함께 시기와 장소의 적절한 조화를 통한 순국의 의미를 부각 시키고 있다.
바위와 여인을 대비하고 강을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논개의 죽음의 의미가 바위에 서리고 강에서 솟아오른 꽃처럼 오래도록 빛이 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바위(의암)와 여인(논개)이 남강 기슭에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숙명적 이유와 결과를 적절한 비유로 표현해 내고 있다.
제6행의 焉得義聲(언득의성)은 시 해석과 문맥상 ‘어찌 의롭다는 소리 얻었을까’라고 하기보다는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을까’로 표현하는 것이 앞의 글자인 ‘소리’와 잘 어울린다.
이 부분은 특히 焉得義聲(언득의성 : 어찌 의롭다는 소리 얻었을까)과 烏帶義聲(오대의성 : 어찌 의롭다는 소리 띠었을까)와 같은 몇 가지 다른 기록(문헌, 비문)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의기암에서 / 안종창
한 여인이 의롭게 죽었으니
곰과 물고기의 덕이라 하겠네
밝게 빛나는 청정한 자태여!
늠름하고 결백한 지조여!
왜장 한 놈 죽였다고 말하지 마라
모든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네
한 작은 여인이라 말하지 마라
만 장부의 팔뚝처럼 능히 떨쳤다네
흐르는 강물도 바위를 갈지 못하니
천년의 의암 언제나 남아있네
義妓巖(의기암)
女子死於義(여자사어의) 熊魚判容易(웅어판용역)
濯濯氷玉姿(탁탁빙옥자) 凜凜霜雪志(늠름상설지)
莫謂一倭死(막위일왜사) 萬膽同日墜(만담동일추)
莫謂一女小(막위일녀소) 能奮萬夫臂(능분만부비)
江流石不磨(강류석부마) 留得千載義(류득천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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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창(安鍾彰 : 1865~1918), 경남 함안 生, 조선 말엽 문인, 학자, 저서 희재집 등.
이 시에서 시인은 조선말기 서구열강들의 침입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나라를 걱정하며, 논개의 절의(節義)를 강조하여 민족의 정기를 일깨우고자 하였다.
시인은 논개의 지조와 굳센 정신을 곰과 물고기에 비유하여 이는 곧 우리 민족 고유의 기상이라 말하고, 논개의 충절정신이야 말로 면면(綿綿)히 이어져야 할 민족애라 말하고 있다.
특히, 의암의 빛나는 자태는 늠름하고 결백한 지조인지라 이는 논개라는 한 여인의 개인적인 지조를 넘어서 민족의 기상과도 같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시인은 시를 통해 천년이 흘러도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려는 마음을 담아냈다.
단군신화의 쑥과 마늘이야기, 곰과 호랑이의 전설이 그것이다. 우리민족의 호연지기와도 닿아있으므로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인 것이다.
논개의 의로운 죽음을 ‘곰과 물고기의 덕’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도 산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주인이지만 물에서는 호랑이 대신 물고기가 주인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물살을 헤치고 오르는 물고기의 강한 힘을 표현해 내고자 하였다.
제5행에서 “왜장 한 놈 죽였다고 말하지 마라 / 모든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네”라고 말한 대목에서도 시인은 논개가 죽인 사람은 비록 한 명의 왜장에 불과하지만 침략의 수괴 가등청정의 오른팔을 죽였으므로 왜적들이 호남지방 침략 야욕을 포기하고 조기에 철수한 점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촉석루에 올라 / 최병식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촉석루
긴 강만 외로이 성을 안고 흐르네
적막한 옛 언덕에는 부질없는 산새들이요
아득하게 긴 세상 한 서린 갈매기네
삼장사의 석 잔 술은 송백의 절개요
논개 충절의 바위는 가을의 눈서리네
상녀의 정화곡을 듣고 있자니
아득히 놀던 옛 일이 그립네
登矗石樓(등촉석루)
十載重尋矗石樓(십재중심촉석루) 長江獨自擁城流(장강독자옹성류)
古邱寂寞啼山鳥(고구적막제산조) 浩劫蒼茫恨岸鷗(호겁창망한안구)
三壯士杯松栢節(삼장사배송백절) 義妓一石雪霜秋(의기일석설상추)
忍聽商女庭花曲(인청상녀정화곡) 往事蒼茫憶舊遊(왕사창망억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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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식(崔秉軾 : 1867~1928), 본관은 경주, 조선말엽 학자, 저서 옥간집 등.
이 시는 조선말의 학자인 최병식이 촉석루와 의암을 한번 다녀간 후 10년 만에 다시 찾아와 이곳에서 순국한 삼장사의 절개와 논개의 충절 정신을 동시에 기리며 지은 작품이다.
시인은 여기서 임진왜란 당시의 민족이 겪어야 했던 전쟁의 참혹한 상황이나 과정 보다는 삼장사와 논개의 정신이 담긴 사물을 비유적으로 회고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과 그 의미를 더듬어서 읊고 있다.
이 시는 정막한 듯하지만 평화롭고 안온한 분위기의 촉석루와 그 주변의 정경을 찬찬히 바라보며 감회를 읊어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역사적인 현장은 의연하게 남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심중을 가다듬게 한다는 표현이 장점이라 하겠다.
삼장사의 절개를 송백에 비유하고 논개의 충절정신을 가을의 눈서리와 같다하여 매섭고 단호했던 삼장사와 논개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이들의 넋을 위로함과 동시에 촉석루 주변에 배어있는 민족적인 기상을 찾아내고 이를 우러르고 있다. 작자의 심중을 잘 나타냈다.
이처럼 촉석루는 대대로 시인․유객들이 자주 찾아 민족적인 한을 회상하기도 하였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학자가 쓴 시이니 만큼 유장한 글귀가 돋보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눈앞에 정경이 펼쳐지는 듯하게 그렸다는 장점이 있으며 또한 아릿한 회억에 빠지게도 한다. 사물을 대하는 시인의 깊은 정신세계를 엿 볼 수 있다.
의기암에서 / 김창숙
기특하고 아름답도다! 이 나라 역사 위에
기녀로서 의암이 있었다네
괘씸하구나! 고기 씹는 작자들
나라를 버리고서 무엇을 그리 탐하느냐
논개사당은 바위 위 언덕에 높이 서있고
남강 물은 의암 아래로 깊이 흐르네
지금의 탐욕스런 부자들아
의암의 충절을 어찌 기억하지 못하는가
義妓巖(의기암)
奇絶靑邱史(기절청구사) 娼家有義巖(창가유의암)
咄哉肉食子(돌재육식자) 負國尙何饞(부국상하참)
祠高巖上岸(사고암상안) 水咽岩下潭(수인암하담)
卽今封豕食(즉금봉시식) 此義少人傷(차의소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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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金昌淑 : 1879~1962), 경북 성주 生, 유학자(儒學者), 독립운동가, 저서 심산유고 등.
이 시는 작자가 독립운동을 할 당시 논개의 충절을 칭송함으로서 쇠락해 가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쓴 작품이다.
시인은 의암(논개)이야말로 우리 민족 역사상 충절의 대표적인 상징 인물이라고 칭찬하면서, 논개의 구국정신을 되살리고 이어받아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해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당시에 국내 상황은 3.1운동이 일어나고 세계를 점령하려는 일제의 야욕과 만행을 알리는 등 일제에 저항하는 국민적 공분이 들끓던 시기였다.
또한 이 시에서 시인은 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의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는 데도 일제에 빌붙어 살며 권력을 휘두르고 호의호식하며 나라를 팔아먹기에 골몰하는 무리들을 향해 따끔하게 호통을 치고 있다.
보잘것없는 신분인 기녀의 애국정신도 저렇게 드높기만 한데 나라의 위정자라는 사람들은 매국적 행위에만 골몰하고 있음을 지탄하고 있는 것이다.
을사오적을 비롯한 매국적 무리들을 향한 질타와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당시에는 온 국민의 공통된 정서이기도 했다.
제3행에 ‘고기 씹는 작자들’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고기’는 물질적 탐욕의 대상이고 ‘작자’는 나라의 일에는 등한하고 오로지 일제에 아부하며, 혼자만 배불리 먹고 살자고 잇속만 챙기는 무리들을 일컫는다. 을사오적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을 향해 의암 논개의 충절정신을 되새기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 중에서도 오롯하게 돋아난 논개의 순국행위는 시대를 초월한 상징적이고 혁명적인 정신이며 마땅히 본받아야할 사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논개(論介)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廟)에 / 한용운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矗石樓)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朝鮮)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그대는 어디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구나
나는 황금(黃金)의 칼에 베어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로운 그대의 당년(當年)을 회상(回想)한다
술향기에 목맺힌 고요한 노래는 옥(獄)에 묻힌 썩은 칼을 울렸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바람은 귀신(鬼神) 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
가냘픈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아름답고 무독(無毒)한 그대의 눈은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보다도 더욱 슬펐다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여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대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朝雲)이냐, 울음의 모우(暮雨)이냐, 새벽달의 비밀이냐, 이슬꽃의 상징이냐
삐비 같은 그대의 손에 꺾이우지 못한 낙화대(洛花臺)의 남은 꽃은 부끄럼에 취하여 얼굴이 붉었다
옥(玉) 같은 그대의 발꿈치에 밟히운 강 언덕의 묵은 이끼는 교긍(驕矜)에 넘쳐서 푸른 사롱(紗籠)으로 자기의 제명(題名)을 가리었다
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이름뿐이나마 그대의 집도 없으면 그대의 이름을 불러볼 기회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으려면 나의 창자가 먼저 꺾어지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꽃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꽃을 심으려면 나의 가슴에 가시가 먼저 심어지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금석(金石)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은 그대가 아니요 나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쓸쓸하고 호젓한 잠자리에 외로이 누워서 끼친 한(恨)에 울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대입니다
나의 가슴에 ‘사랑’의 글자를 황금으로 새겨서 그대의 사당에 기념비를 세운들 그대에게 무슨 위로가 되오리까
나의 노래에 ‘눈물’의 곡조(曲調)를 낙인(烙印)으로 찍어서 그대의 사당에 제종(祭鍾)을 울린대도 나에게 무슨 속죄(贖罪)가 되오리까
나는 다만 그대의 유언대로 그대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영원히 다른 여자에게 주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것은 그대의 얼굴과 같이 잊을 수가 없는 맹서(盟誓)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그대가 용서하면 나의 죄는 신에게 참회(懺悔)를 아니한대도 사라지겠습니다
천추(千秋)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나는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됩니다
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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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韓龍雲 : 1879~1944), 충남 홍성 生, 독립운동가, 시인, 저서 조선불교유신론·님의 침묵·불교대전·정선강의 채근담 등, 월간지 유심 창간.
이 시는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된 작품으로서, 시집은 1926년 간행되었다.
논개가 진주 남강에서 단행한 의로운 행위를 주지시키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일제치하로부터 조국을 독립시키기 위한 애국지사로서의 강한 의지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논개를 추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진주 촉석루를 찾아 그녀가 순절한 남강을 바라보며 지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수백 년이 흘렀지만 또다시 나라는 일제로 인하여 위태로운 상태에 놓인 시기였으니 독립운동가인 시인으로서는 논개의 충혼이 서린 남강을 찾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참혹한 전투 상황 속에서도 민족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논개를 자신의 애인이라 설정해 놓고, 이를 통해 논개의 애국적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제 강점기를 극복하여 조국의 독립을 성취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논개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애인으로서 논개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남강은 가지 않’는다거나 ‘향기는 썩지 않는다’, ‘죽지 않는 그대가’ 등과 같은 역설적인 표현도 돋보인다.
또한 논개의 의로운 죽음을 꽃으로 환원, 승화시켜 거기에서 풍겨져오는 향기에서 민족적인 자긍심을 찾아내었으며, 아울러 어지러운 현실 상황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시인 자신과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반성을 토로한다. 꽃과 같이 향기로운 나이였을 순국 당시의 논개를 회상하며 그 ‘꽃을 사랑하는’ 까닭에 꽃을 꺾을 수도, 꽃을 심을 수도 없는 아픔을 시대적인 상황에 빗대어 표현해 내었다.
아울러서 논개의 무덤과 사당을 사랑의 상징물로 비유하여 님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과 함께 속죄의 마음을 표출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자는 논개와의 언약을 설정해 놓고 ‘금석(金石)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용서하여요’의 반복이 그것이다.
그리고 논개의 의로운 정신은 오랜 세월(千秋)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역사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며, 논개의 절대적 정의 정신은 불의가 횡행하는 일제 강점기를 극복할 고정불변의 힘이며, 그 힘을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산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민족의 삶과 정신이 황폐해져가는 처지가 곧 죽음과도 같은 삶이라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이어서 임진란 당시 참혹하고 절망적 위기 앞에서도 기탄없이 행한 논개의 과감한 애국적 실천행위를 상기시켜 우리들에게 역사의식과 저항정신을 불어넣어 주고자 하였다.
논개의 충의사상과 애국정신, 그리고 만해 한용운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동시에 가장 명징하게 표현해 냈으며, 유장한 리듬과 경건한 어조로 종교적인 깨달음까지도 적절하게 나타낸 시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매미는 의암(의로운 바위)의 방언이며, 꽃타래는 논개를 노래한 시들의 묶음을 뜻한다.
박일만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로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육십령), 사랑의 시차(제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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