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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대청봉에서 공룡능선을 넘어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에 도착했다.
제 40차 백두대간
(1) 언제 2018.5.19일(토) 흐림다 맑음(5시~19시)
(2) 어디를 : 대청봉~소청~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세존봉~저항령~황철봉~미시령
18.2km(누계 787.6km)
(3) 누구와 : 나와 강쌤
(4) 산행이야기 : 설악산 2일째 산행이다.오늘은 대청봉에서 일출을 본 후 소청봉과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에서 다시 비탐구간인 세존봉과 황철봉을 넘어 미시령(彌矢嶺)까지 갈 계획이다.오늘 대청봉의 아침 일출은 동해바다 구름위에서 떠 올라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대청과 소청에서 내려다 보이는 설악의 속살과 계곡은 멋진 안개를 보여 주었다. 나는 실로 보기 드문 설악의 비경에 넋을 놓아 한참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산행을 하는 동안 설악의 암릉(巖陵)은 쉽지 않았다. 공룡능선을 지나 마등령에 이르러 지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간단하게 준비한 행동식도 바닥이 났으며 마지막 남은 구간의 세존봉과 황철봉 바위너덜은 사람의 기운과 체력을 너덜하게 만들었다.황철봉의 끝 없는 너덜구간 바위는 매우 위험하였고, 뽀쪽한 바위틈은 상어의 아가리 같았으니 긴장 할 수 밖에 없었다.더구나 너덜구간에서 희미하게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시간을 자꾸 지체하게 만들었다.백두대간 구간중 오늘이 가장 힘든 구간이였으며 조난하지 않은게 다행스런 일이다.그렇게 무려 14시간 걷고 헤메인 끝에 해넘이전 오후 7시무렵 어렵사리 미시령에 도착한다.우리는 그렇게 2일째 산행을 힘들게 마쳤다.
설악산 이틀째 산행기를 쓴다.
중청대피소에서 4시30분에 일어난다.
대청봉은 어제 올라 갔었지만 오늘은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다시 오른다.
몸만 빠져 나와 대청봉에 향하는데 하늘은 벌써 빨갛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지난밤 세찬바람으로 진통을 해 대더니 저렇게 정열적인 멋진일출를 보여주려 했나보다.
대청봉을 오르다가 내려 본 중청대피소는 안개가 걷히고 있었고
소청봉 넘어 용아장성 하늘은 하얀 구름바다이다.
(대청봉 철쭉에 핀 상고대)
5월에 보기 드문 모습인데 대청봉 주변 철쭉에 상고대가 피었다.
상고대는 무빙(霧氷)이다.지난밤 영하의 날씨에 안개입자가 얼어 나무가지에
얼음결정을 만들었다. 수정처럼 맑은 상고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대청봉에서 본 동해 일출)
지난밤 설악은 웅웅 소리를 내며 밤새 울었다
무엇이 서러워 울었는지 몰랐다.
밤새 소리내어 울던 밤에 안개는 바람을 타며 춤추고 놀더니
철쭉가지에 반짝이는 얼음상고대 열매를 맺히고
동해바다 구름위에서 뜨거운 일출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동해에 깔린 어둠이 걷히고 붉고 뜨거운 아침해 솟아 오르니
대청봉 일출을 보러 온 남춘이와 원서 미칠듯이 환장하게 좋아한다.
오늘의 일출과 상고대는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를 축하하는 선물이였다.
나는 이른 새벽 대청봉에 올랐다.
세찬 바람에 몸 가누기 힘들었고 상고대 맺힌 새벽냉기에 손 시리고 추웠다.
그러나 가슴 뜨거웠다.동해바다 아침 운해(雲海)속에 떠 오르는 태양을 보며
내가 품은 산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드는 순간이였다.
나는 백두대간 완주기념 현수막을 펼쳤다.
"백두대간 그 길을 걸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현수막을 보고 부러워 하신다.
"두분 대단하십니다"
"남은 길도 안전한 산행 하십시요!" 여러분들이 격려와 축하을 해 주신다.
이 순간 안개구름은 우리의 산행을 축하하며 춤추는
치어리더가 되는 모습이다.
(대청봉에서 현수막을 어깨에 감쌌다)
나는 그 무엇보다 행복한 순간 현수막을 어께에 감쌌다.
그 동안 걸으면서 흘렸던 땀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서 느꼈던
무릎의 통증과 장거리 운전의 고충, 그리고 번민과 시간의 제약,
그 모든것들이 한꺼번에 보상이 되고도 남는 희열(喜熱)을 느낀다.
" 내 생애 하고 싶은 일 한가지" "백두대간 종주"
이제 나는 막바지 끝의 정상에 서 있었다.
대청봉 정상에는 어느새 많은 인파가 모여든다.
그들도 붉게 떠오른 태양을 보며 무언가 소망하리라
나와 그들의 소망들이 이루어길 빌었다.
이제 중청대피소에서 배낭을 찾아 5시40분 본격적인 오늘의 산행을 시작한다.
중청에서 소청으로 가는 능선에서 또 다시 환상적인 모습을 본다.
설악의 암릉 뾰쪽한 바위를 휘감아 돌며 서서히 걷혀지는 운무이다.
지리를 사랑했던 나는 수 없이 안개바다을 보았다.
그런데 설악의 운해(雲海)는 느낌이 달랐다.
지리산의 운해가 조용하게 내려 앉은 모습이라면 설악의 운해는 시시각각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소청봉 아래 봉정암과 "용아장성" 은 구름위에 떠 있었으며
그 아래 구곡담 계곡과 가야동은 아직 깊은 계곡이였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떠 올랐다.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다면 저 깊은골에 날아가고 싶었다.
소청봉으로 가는길,저 아래 깊은 계곡이 조금씩 환하게 보였고
설악의 속살 깊은 계곡,무릉도원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호사를 누린다.
나는 이대로 지나가기 싫었다. 이곳에 텐트라도 치고 눌러 앉아 종일 저 계곡만 바라 보아도
여기 이 자리에 오랫동안 있을것 같았다. 친구도 넋을 잃고 연신 핸드폰에 사진을 담는다.
오늘 아침은 습한 날씨여서 안경알 유리에 이슬이 맺혀 안경을 벗었는데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 불편하였지만 차츰 적응이 된다.
소청으로 가는 나무 데크길에 아침 햇살이 비친다.
(노란 비옷 입은 여인)
노란 비옷을 입은 한 여인이 지긋시 설악의 아침 풍경을 즐기며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나는 허락없이 그녀의 뒤 모습을 디카에 담았다.
이곳에서 1km아래는 봉정암(1,244m)이 있고 공룡능선은 동북향이다.
봉정암(鳳頂庵 1,244m)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있는 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암자이다.
불교성지 5대 절멸보궁중 하나이며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탑이 있어 불상이 없는 암자이다.
지리산 묘향대(1,500m)보다는 낮으나 설악산에서는 가장 높은 암자이며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10.6km 거리이니 족히 5~7시간은 올라야 하는 곳이다.
어느 여름 계곡에 수량(水量)이 많은날 백담사에서 구곡담 계곡의 여려 폭포수를 보며
봉정암에 오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이렇게 추가 했다.
(구름위 향로봉과 금강산)
구름 위 가운데에 쪽배처럼 떠 있는 봉우리가 향로봉(香爐峰 1,296m)이고
그 뒤로 큰 산마루가 금강산이다.
"평화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18년 4월 27일 10시
제 19대 대한민국 문재인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은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했었다.
남,북한이 서로 교류하며 북녁의 백두대간이 열리고 금강산 관광이라도 다시 시작하기를 바래 본다.
소청에서 희운각대피소로 내려 가는중에 아침안개는 걷히기 시작했다.
시야는 밝아져 더 멀리 더 다양하게 보이고 공룡능선의 뽀쪽한 바위들도 자세하게 보였다.
그 뒤쪽으로는 오늘 더 가야 할 세존봉(1,326m)과 황철봉(1,380m)이다.
6시 40분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정원 30명을 수용하는 아담한 시설이다.
오늘 비슷한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과 더 이른 시간에 새벽산행으로 오른 사람들이
대피소의 식탁에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가져 온 누룽지을 끓여 아침식사을 하고 생수를 5개씩 충분하게 준비하여 일어선다.
대청봉 동쪽 아래 반내피골은 "죽음의 계곡"이다
1969년 2월 한국산악회 제 1기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이곳에서 동계훈련을 하다가
조난하여 폭설에 묻혔고 한달 후 대원 10명이 주검으로 발견된 곳이다.
그해 10월 산악인 희운(喜雲)최태묵선생이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산악인이 안전을 위해 사재를 털어 이곳에 대피소을 세웠는데 희운각 대피소이다.
설악의 슬픈 역사가 있는 대피소였다.
천연기념물 217호 "산양"의 설명이 있는 현판글도 읽었다.
지금 설악산에는 산양이 250여 마리가 서식한다는 설명이다.
나는 공룡능선을 지나면서 수 없이 많은 산양의 분변을 보았는데
어디로 꼭꼭 숨었는지 산양을 보는 행운은 없었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시작한 산행은 본격적인 공룡능선 시작이다.
곧장 거대한 암릉을 다시 만나는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도 곧장 오른다.
정확한 지명은 알 수 없으나 신선대 아래 멋진 조망터,
산행하는 사람들이 설악의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바쁘다.
공룡능선은 바위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데
철제 안전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다행스러웠다.
공룡능선 구간에서는 시간당 1.5km를 가는 속도로 걸었다.
(설악의 비경들)
보는 곳곳마다 선경(仙境)이고 비경 (秘境)이다
바위마다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았으나
나는 알 수 없어 그저 보이는 모습으로만 본다.
그리고 물줄기가 흐르는 직벽을 오른다.
위험한 직벽이지만 철제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붙잡고 오르니 안전하다.
겨울철 등반시에는 미끄러운 구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 주변 어디에선가 설악의 희귀 자생 식물들도 살아 갈 듯하다.
이름 모른 뾰쪽한 바위 아래 어떤 희귀식물을 발견한건지?
직벽 바위에 위험스럽게 올라 근접사진 촬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설악의 꽃, 에델바이스(솜다리꽃)라도 찍었을까?
설악산은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2년 8월 한국최초로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동물로는 사향노루,산양,하늘 다람쥐,수달등 39종의 포유류와
62종의 조류와 각종 파충류,양서류,어류와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눈잣나무와 북방계 고산식물등 882종의 관다발식물과
56종의 휘귀 식물이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생물권 보존지역이다.
(인터넷 자료 참고)
설악은 사람들에게 보기 좋은산이기도 하지만
설악은 각종 식물과 희귀식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설악산이 "생물권 보존지역"으로써 잘 보존되어지기를 바래본다.
오전 10시 즈음에 거대한 바위 아래 쉼터에 이른다.
양옆으로는 거대한 암벽이며 1,275m고지의 아래 인듯하다.
이 쉼터는 산행하는 사람들이 모두들 쉬어가는 곳이다.
우리도 행동식으로 쵸코렛과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고
잠시 바위에 기대고 누워 한참을 쉬었다.
어느덧 하늘 맑았고 능선의 바위길은 좁았다.
오전 10시 30분,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니 반대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아오고 있었고 좁은 길목에서는 편도로 지나는데
기다렸다, 교차하여 지나기를 반복하니 시간은 점점 지체 되고 있었다.
아이고 다리야~ 잠시 서서 쉬기도 하다가 오전 11시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한다.
좌로는 오세암을 거처 내설악으로 하산하면 백담사에 이르고
우로는 비선대를 거쳐 신흥사, 외설악지역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대청봉에서 5시40분에 시작하여 이곳까지 5시간째 걸었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의 절반정도 왔는데 벌써 다리가 뻐근하다.
이제 여기서 미시령까지는 10km거리가 남았다.
우리는 등산화을 풀고 바위에 한참을 앉아 쉬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과를 하나를 쪼게 나누어 먹고 짓눌린 방울 토마토 몆개를 먹었다.
뭉게진 바나나는 못먹을 정도여서 비닐에 그대로 쌌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휴식중에 설악을 자주 오셨다는 젊은분과 몇마디 담소 나누는데
자기가 미시령에서 중청까지 오르는데 15시간 걸렸다며 오늘 우리가 미시령까지 가는데
늦어질것 같다며 "가지 마시라" 권하신다.
우리도 각오 하고 왔던 터라 "늦으면 야간산행이라도 해야지요"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산행 중이니깐요" 라도 의기양양하게 대답 했었다.
"그래도 조심하십시요" "황철봉의 너덜구간은 정말 힘든곳입이다"
"네~ 참고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분들은 하산 길이였기에 혹 먹을거 있으면 좀 나누어 주실 수 있나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생각만 맴 돌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먹을 행동식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구간은 비탐구간 10km인데 7시간 정도 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 한끼 정도는 제대로 먹어야 하는데 쵸코렛 몇개와 물만 있었다.
이제는 비탐방 지역으로 들어간다.
비탐구간 안내현판을 넘어 미시령으로 향한다.
지도상엔 세존봉(1,326.7m)일것 같은데 정상표시석은 마등봉이라 써 있었다.
서울 외국어대학산악회에서 이름를 쓴 표시석이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세존봉에 오르는 길은 멀리서 보면 완만한 능선이였다.
마등령이 말(馬)의 등을 닮은 능선이니 그럴만 했다.
마등봉에서는 올라 오자마자 좌측으로 " U"턴 하여 내려 가야 한다.
그러나 무심코 올라 온 우리는 마등봉을 지나 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암벽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좁은 길을 따라간 것이다.
잠시 알바를 하였고 다시 되돌아와 제길을 찾아간다. 또 그렇게 20여분을 지체하였다.
비탐구간이라서 그런건지 산양 배설물이 지천이다.
산양이 250마리나 서식한다는 국립공원 현판글을 보았고 아마도 이 지역에 산양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나보다. 산양은 이방인들의 방문을 반기지는 않을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느 바위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는 산양을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바램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없었다.
세존봉 넘어 너덜지대 시작이다.
다행이 내리막 너덜에 산행길이 훤하게 보이고 처음이라서 걸을만 했다.
이정도 너덜구간은 걸을만 한데 왜 그렇게 힘들다 했을까?
백두대간 산행중에 너덜구간은 이곳이 처음이였고 생소한 산행의 묘한 재미에 걸을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건방진 기우였다.
나는 오전에 걸었던 구간을 되돌아 보았다. 오늘 출발한 대청봉이 좌측 끝에 보이고
우측끝은 뒤때기청봉(1,577m)이다.
(너덜경 바위들)
아이고~ 다시 너덜이다.
이번엔 너덜 바위가 더 크고,경사는 더 가파르게 내리막이다.
그후 너덜 바위구간은 수 없이 반복 되었다.
가파른 오르막을 가까스로 오르면 다시 큰 바위을 붙잡고 내려가는 너덜이였으며
이 정표도 없고 드문드문 있었던 리본도 없는 깜깜이 산행이다.
다만 야광 안내봉과 산행방향을 유도하기 위한
나이론끈 줄이 간간히 있어 다행이였다.
그리고 1,178m봉과 1,249m의 암봉들을 연이어 넘는데
체력은 떨어지고 배도 고프고 다리는 힘이 없고 몸은 이미 기진맥진이다.
더덜지역 큰바위 아래 젊은 남성 두분이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계셨다.
간단한 인사후에 우리는 지나쳤고 나중에 그들은 우리를 따라 잡고 지나친다.
체면불구하고 나는 그들에게 남은 음식 없냐고 물었다.
그분들은 부산에서 오신분인데 안타까워 하시며 남은 라면 한개를 주시고 지나 가셨다.
산에 다니며 먹는걸 나누어 먹긴 했으나 동냥은 처음이였다.
그분들에게서 얻은 라면을 베낭에 넣었다.
오후 3시 저항령(低項領)이다. 마등봉과 황철봉 사이 낮은 고개가 저항령이다.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의미인데 순수한 의미의 이름인듯하다.
친구야! 아까 그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가자!
우리는 너무 허기졌고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오뚝이 라면 한개를 끓여 나누어 먹었다.
다소 나마 허기진 배을 채우는데 친구 강쌤은 뱃속이 불편하다며 그나마 먹지를 못하고 남긴다.
그도 많이 배가 고프고 힘들텐데 안타깝다.
나는 조금의 라면에 든든함이 있어 한결 힘이나고 자신감이 오른다.
이제 황철봉을 향해 오른다. 역시 또 너덜바위 구간이다. 머리위로 황철봉이 올려다 보인다.
먼거리는 아닌듯한데 아득하고 멀게만 보인다.오후 4시 20분 황철봉(1,381m)에 도착한다.
정상은 참나무와 철쭉등 활엽수가 점령하고 있었으며 숲은 원시림이다.
큰 자연석은 옛날부터 있었던 원시적 그대로 흩어져 있는데
어떤 개인이 설치한 정상표시 철판이 아담하고 위치를 알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 미시령까지는 4.5km 통상 늦게 걸어도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우리는 3시간 넘게 걸렸다. 그러나 남은 구간은 거리보다도 너덜 바위가 문제였다.
그런데 황철봉을 넘고 황철봉을 닮은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했다.
1,318봉인 것이다.
(너덜경)
길이 없고 다만 바위만 널부러져 있다.이 너덜 바위는 크고 매서웠다.
너덜바위에 드문 야광표시 파이프와 나이론 로프를 따라
바위을 넘고, 때론 건너 뛰었고 ,때론 엎드려 바위를 타고 내렸다.
다리 뻐근하고 발바닥은 불 붙은듯 뜨겁고 비틀거리는 몸이지만
조심스럽게 너덜 바위 위을 하나씩 내려 온다.
바위 위에 스틱 자국을 찾아 더듬어 걷기도 하고
자꾸 등로를 벗어나기도 하여 더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시간당 1km정도의 늦은 속도로 가고 있었다.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한반도의 가장 북쪽의 동해의 푸른바다를 보았고
강원도 고성읍 시가지가 보이고, 황철봉 아래 저 능선은
울산바위와 흔들바위가 있는 능선이다.누군가는 저 능선을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겠지...
저렇게 시원한 조망을 보면 피곤함을 잠시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제 너덜지대를 지나 숲에 들어간다.이 숲은 너덜바위와 나무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리고 1,080m봉을 지날때까지 편한길은 아니였다.
다만 숲은 따갑고 강렬한 햇빛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숲길은 좁았고 풀과 나무가지에 팔이나 옆구리가 자꾸 걸린다.
그래도 좋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친구 강쌤을 잊은체 한참을 내려가다가 강쌤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제 다소 편한 흙길을 밟으며 어느덧 미시령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오래된 참나무 한그루 세월의 무게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 있어 안타까웠다.
이제 너덜 바위지대는 끝이 나고 포근한 흙길이다.
피곤한 걸음걸이도 미시령 자락이 보이니 마지막 힘이 솟는 느낌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는 간사함에 작은 미소로 웃으며 반성했다.
(미시령위의 상봉)
내일 올라야 할 상봉(1,242m)의 능선이 부드럽다
그리고 상봉 아래 미시령 도로가 보였다.
해는 서산에 뉘엇뉘엇 넘기 직전이다.
미시령에서 마등령까지 비탐구간이라 국립공원 직원이 탐방을 단속하는 초소가 있다.
그러나 이미 퇴근 했는지 조용하다. 미시령은 철제 울타리로 막혀 있어 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좌측으로 한참을 내려가 울타리를 우회하여 오후 7시 미시령(彌矢嶺 826m)으로 나온다.
(미시령에 그림자 드리우고)
고갯길에 미시령 돌탑 있고 햇살 그림자 길게 늘어져 있었으며
석양의 햇살은 안타깝게 넘어가고 있었다.
"친구야! 수고 했제!" 미시령 광장에서 강쌤과 뜨거운 악수를 한다.
구, 도로 미시령은 휴게소가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휴게소가 없는 넓은 광장이였으며
동해바다와 고성읍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곳이였다.
설악산행 둘째날 대청봉에서 미시령까지 약 20km구간을 이렇게 14시간동안 걸었다.
우리는 이토록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나의 계획은 11시간 정도 걷고 오후 4~5시쯤 끝낼 계획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체력은 북설악의 암릉에 나약했고 비탐구간 원시림은 자존심이 넘친
큰 산이였으며 황철봉 너덜구간은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거칠고 힘든 산이였다.
황철봉 주인은 사람이 아닌 천연 기념물 "산양"이였으며 너덜바위였다.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걷는 우리는 늘 범법자가 되기도 했다.
마음 무거웠고 힘들게 걸은 만큼 황철봉 구간은 잊지 못할 구간이 된 것이다.
훗날 그리움으로 다시 이 황철봉에 오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시는 황철봉에는 오고 싶지 않다.
1시간전에 전화로 콜한 인제군 북면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백담사 지역 용대리 숙소로 이동하며 오늘의 산행을 모두 마친다.
이제 내일은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 미시령에서 진부령구간이다.
내일은 백두대간 종주 마지막 날 눈물이 날것 같다.
2018년 5월 19일(토) 걷고 6월 11일(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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