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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한미동맹 유지강화발전에의 기여 -권안도
이 회고는 대열임관50주년 기념책자 (가칭: 대열 반세기 여정) 1부에 포함시킬 예정인 대열동기생 현역시절의 자부, 즉 시대별 국가적 국방이슈와 관련해, 각자 어떤 역할과 공헌을 했었던 지에 대한 회고를 수록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루어진 글이며, 포병동기생들의 약사를 대표집필하신 권안도 동기의 한미동맹 관련 글 기고 의향을 적극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아래 한미동맹유자강화에의 기여 글은 비단 권안도 동기생의 군복무역사 회고일 뿐 아니라, 추후 역사적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방의 주익(主翼)인 한미동맹의 과거와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공부자료라 생각됩니다. 특히 이 분야에는 많은 동기생들이 함께 참여해 노력하고 공헌했었다는 부분도 알려주셔 감격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다른 동기생들도 여타 분야에서 못지않은 활약들을 하셨으리라 생각하며, 영양가 높은 회고의 글들이 후속 답지하리가 기대합니다. -주(註) 편집위원 김명수
한미동맹을 위한 작은 보탬
2021.6.20. 권 안 도
많은 대열 동기생들이 한미동맹 분야에서 구슬땀 흘려 노력해 온 결과, 지대한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한다.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자면 김장수 동기는 국방부장관,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재직기간 한미안보협의회의(SCM :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한미연합작전지휘 등 핵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권안도, 임광택, 전인구 동기는 각각 연합작전, 연합군수, 연합공병 업무 분야에서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권일상, 김기환, 김선필, 양태호, 제정관 동기는 한미연합군 사령부의 핵심 업무인 연합지상작전, 연합연습, 연합전략기획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문두식, 신형화, 이광길 동기는 한미 군사외교 및 군수협력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벌써 오래된 현역시절이라 기억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대열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추가적인 자료를 받아 종합자료화 되기를 기대하며 내 자신의 근무경험을 토대로 한미동맹을 위한 노력을 소개함으로써 대열 동기들의 추가적인 자료 제공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나의 경우 1981년에 박정주 동기와 함께 미 육군지휘참모대학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행정학교에서 6개월간 해외유학장교반 교육을 이수한 후 1982년 1월부터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에서 실무교육(OJT : On the Job Training)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으며, 작전참모부에서는 연합사의 전반적인 업무파악에 가장 도움이 되는 종합상황실의 상황장교 임무를 부여해 주었다.
주요 업무는 주야 24시간 한·미군의 지·해·공 상황을 파악하여 지휘부와 상급부대에 보고할 상황보고서를 작성하며 매일 아침 영어로 상황보고를 하는 것으로, 실무 업무와 군사영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기회로 생각되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상황실장님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3월 팀스피리트(Team Spirit)연습을 위해 미군의 전력(戰力)이 한반도에 전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대한 상황보고를 스스로 전담하여, 상황보고 절차 및 양식 개선을 통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매년 팀스리트연습을 시행하게 되면 상황실은 미군 증원 전력 전개 현황 파악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주된 이유는 미군 지휘부에서는 미 증원군 전개 현황에 대하여 일자별 세부현황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매일 교대하는 상황장교의 개인적인 현황파악 능력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일일 전개현황보고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위해 자진하여 업무를 맡았으며, 미군으로부터 연습을 위한 증원전력 전개 계획을 인수 받아 계획서와 연계된 보고서 양식을 개선하여 예하 작전사령부에 하달함으로써 보고서 종합이 용이하게 하였고, 중요한 전력 전개는 미군의 첨단 통신망을 이용, 미군 상황장교가 직접 파악하도록 하였으며, 새롭게 전력화된 무기체계는 미군의 설명자료를 번역하여 보고서에 첨부하는 등 보고 절차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결과, ‘소령/주무관 팀스피리트(Major Team Spirit)’ 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는 등 성공적인 한미연합사 실무교육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대대장 재직 시 연합사령관(William J. Livsey대장)의 혹한기훈련 현장지도를 계기로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 지상작전장교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군 최초로 야전군 사령부를 ‘86팀스리트 야외기동연습에 참가시키고, 실전과 같은 피해를 묘사하는 기동훈련 통제 방안을 발전시키라는 지침을 받아, 이를 위해 2개 야전군사령부를 청/황군사령부로, 1개 야전군사령부를 통제단으로 운용하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연합사/지구사 연습을 위한 연습작전계획과 실전 묘사형 연습통제계획을 발전시켜 나름대로 대단히 성공적인 팀스피리트연습을 시행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이 과정에서 야전군사령부 야외기동연습을 최초로 실시하게 되므로 계획, 준비는 물론 시행, 사후검토 등 전 단계에 걸쳐 분야별 협조할 내용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어려움도 적지 않아 거의 매일 야근하며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근무했던 기억이 나며, 함께 수고했던 연습처의 김선필 동기와 미군 라이스 중령(LTC. Kenneth A. Rice)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또한 ’86 아시안 게임이라는 국가적 큰 행사를 앞두고 북한의 예상되는 위협에 대비하여 군사대비태세 완비가 중요한 당면과제였으며, 특히 북한의 침투가능성에 대비하여 전방지역의 장애물 보강 문제가 시급한 관심사였다. 이를 위하여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살포식 지뢰(FASCAM : Family of Scatterable Mines)’를 운용하는 방안을 발전시키고, 추가 소요량은 한국군이 도입하는 방안을 발전시켜 획기적으로 단시간내에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전방에 배치된 미군 포병전력의 최신 무기체계와 첨단 특수탄(FASCAM, 레이저유도탄 등)을 전·평시에 적극 활용하는 계획을 구체화하여 한미연합대비태세 강화에 작은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된다.
포병연대장을 마친 후, 합동참모본부(합참)의 한미군사협력업무 주무과장인 군사협력과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 당시 주한미군 6,000여명이 철수하고 한미야전사령부가 해체되는 등 한국방위를 위한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 변경이 한미 간 공조 하에 진행되고 있어 많은 업무가 산적되어 있었다.
바쁜 가운데 몇 가지 보람을 느끼는 업무를 얘기하자면,
우선 평시 한국군 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한미협조 업무이다. 미측에 제시한 우리의 입장은 한국의 국력도 신장되고 한국군도 상당 수준 능력을 구비하였으므로, 현행 한미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평시에는 한국군이 지휘하다가 전시가 되면 현 연합방위체제로 전환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당시 연합사령관은 예하부대 지휘권을 전쟁과 평시로 이원화하는 것은 전쟁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며, 연합전투력 발휘에도 지장이 많음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따라서 한미 간 실무협의도 1년여에 걸친 마라톤협상으로 매우 힘들었다.
결국 ‘94년 말 이전에 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전환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당시 합참작전기획과장으로 수고하던 안병한 동기의 전구작전 전문성을 발휘한 큰 도움에 감사한 마음이다. (참고로 한국군 평시 작전통제권 전환은 1994년 12월 1일부로 이루어졌다.)
다음으로 한미연합방위태세 강화를 위해 1992년 10월에 연합지상구성군 사령부를 창설하고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 임무를 수행하는 지휘체제를 확립하여 연합 지상작전의 효율성을 강화하고 한국군의 위상을 제고 하였으며, 이와함께 한미연합해병사령부(CMFC : Combined Marine Forces Command)를 창설하여 연합해병 작전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뿐만 아니라 매년 5,000만불 규모의 연합방위증강사업(CDIP : Combined Defense Improvement Project) 주무관으로, 연합사 탱고 지휘소(TANGO : Theater Air, Naval, Ground Operations)와 오산 전술항공통제본부(HTACC : Hardened Theater Air Control Center) 시설 개선, 최신 무기체계인 아파치 헬기(AH-64) 시설 공사 등 연합방위태세 강화를 위한 지원사업을 성공적으로 관리하였다.
1993년 7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소말리아 평화유지활동 파병에 따른 계획과 준비 임무를 부여받아 소말리아 유엔군사령부와 협조 및 선발대 인솔과 본대 전개 준비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였으며, 이 때 합참 군 구조과장으로 근무했던 유선준 동기도 함께 참여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졸고 ’한국군 유엔평화유지활동 첫걸음‘ 참조)
장군으로 승진 후, 국방부 정책차장으로 근무하면서 아·태안보협력이사회(CSCAP:Council for Security Cooperation in the Asia Pacific – Korea)의 국방분야 위원으로 활동하며 아태지역 안보 협력 차원에서의 한미동맹에 대한 심층 깊은 연구와 토론의 기회를 가졌었으며, 1993년 12월에는 CSIS가 주관하는 Pacific Forum(아태지역 15개국 학자, 외교관, 군인 등 30여명 참여)에 참여하여, 한반도 정세와 북한 핵 개발 문제 관련 한국의 입장 설명 및 토론의 기회를 가졌다.
이후 미국 ‘산타 모니카(Santa Monica)’에 있는 ‘랜드(RAND)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파견되어 현행 군사동맹 위주의 한미동맹을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한미동맹 비전‘을 주제로 전문가들과 연구 및 토론을 하였으며, 랜드연구소 주최 ’정치·군사 연습(Pol-Mil Game)’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국제적 지지를 얻어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귀국 후, 연합사 작전처장을 맡게 되었는데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근무였으나, 연합사령관을 모시고 전방의 주요고지에서 시행했던 주요 축선별 현지 전술토의는 미군들에게 한국군의 “How to fight”을 일깨워주고, 한국적 여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토의하는 매우 유익한 기회였다고 자부한다. 또한 작전개념 발전 분야에서 수도권에 대한 적의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oo축선’에 대규모의 통합격멸지대(Killing Zone)개념을 발전시켰는데, 야전군의 포병전력은 물론 한미공군전력이 동시성과 통합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계획하였으며, 최근에도 그 일부를 주기적으로 훈련하고 있어 마음 든든하게 생각한다.
사단장을 마치고 연합사 작전참모차장의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연합작전 분야에서 실무장교, 작전처장 직책을 경험한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근무할 수 있었으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업무는 ‘전구급 대화력전 수행체계’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300여문 규모의 북한 장사정포 (170밀리 평사포, 240밀리 방사포)가 인구 밀집지역인 수도권을 위협하고 있었으며 소위 ‘서울 불바다’ 발언의 현실화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미연합사에서는 ‘지상구성군사령부(지구사) 대화력전 본부’를 설치하여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응하고 야전군에서는 군단별로 대화력전 수행체계를 정립하도록 하였다. ‘지구사 대화력전 본부’는 종심 깊게 배치되어 한국군의 포병사거리를 벗어나는 동굴 진지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를 실시간으로 탐지·타격하기 위해 감시수단과 공군 및 장거리 타격수단을 최신 C4I체계로 연동한 장사정포 무력화 체계를 발전시켜, 수차에 걸친 ‘락드릴(Rock Drill)’을 통해 계획을 구체화하고 주기적으로 절차연습을 시행하도록 조치하였다.
몇 년 전에 새롭게 창설된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를 방문하였는데, 종전에 미군이 수행해오던 ‘지구사 대화력전 본부’ 임무를 지작사가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어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다음으로는 주요 한미연합연습체계를 살펴보니, 매년 3-4월에 ‘키리졸브(Key Resolve), 7-8월에 ’을지 프리덤가디언(Ulchi Freedom Guardian)’, 10월에 ‘독수리(Foal Eagle)’ 등을 연례적으로 시행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키리졸브’ 연습은 미 증원군의 전개 절차를 포함한 야외기동훈련이며, ‘독수리’연습은 주요시설과 병참선 경계 위주의 대침투 훈련이므로 이를 통합 시행하는 것이 훈련 성과면에서 효과적이며, 부대운용 주기 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어 실무검토와 미측과의 협의를 거쳐 합참의 승인을 받아 ‘키리졸브/독수리(KR/FE)’, ‘을지 프리덤가디언’(UFG)체계로 개선하였다. 당시에도 관련부대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으며, 지금껏 연습체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된다.
군단장을 마치고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에 이어 전역 후에는 국방부 정책실장을 맡게 되었다. 국방부 정책실장은 한미동맹의 현안문제를 협의하는 한미 간 ‘안보정책구상(SPI:Security Policy Initiative)’ 회의체의 한국측 수석 대표직을 맡게 되어있다.
재임간 SPI를 통해 한미관계의 미래 모습을 발전시키기 위해 먼저 ‘포괄적 안보상황 평가(CSA:Comprehensive Security Assesment)’를 한미 공동으로 연구하여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공유토록 하고, 이를 토대로 ‘한미동맹 비전(JVS:Joint Vision Study)’에 대한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포괄적 안보상황 평가’ 공동 연구시 한반도 주변국에 관련 안보상황 인식에서 적지 않은 시각 차이가 드러나 일부 내용은 각국의 입장을 열거하도록 하되 최대한의 공통분모를 먼저 표기하는 식으로 의견을 조율하였다. 이렇게 공유된 안보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동맹의 당위성과 동맹의 비전을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한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추구라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군사동맹 위주에서 확장하여 외교·안보, 경제 분야는 물론 사회, 문화 등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호혜적 동맹관계라는 공동비전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한미동맹비전’ 연구 결과는 2009년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 미래 비전’ 선언으로 발전되었으며,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을 위한 큰 디딤돌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다음으로 ‘미군기지 재배치 사업(LPP:Land Partnership Plan)’을 한미간 협의하 추진하였는데, 이는 휴전 후 전국 91개 지역(7320만평)에 흩어져 있는 주한미군을 중부권역(평택, 오산)과 남부권역(대구, 왜관)의 49개 지역(2318만평)으로 통·폐합하여 재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환 부지를 활용하여 국토 발전을 도모하고, 주한미군에게 보다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보장해준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협조를 하였는데, 용산 미군기지 이전 위한 평택지역 추가 소요 부지 제공 문제와 비용지원 문제, 그리고 반환기지의 환경 정화문제가 주요 협의 대상이었다.
소요 부지 제공 문제는 재배치되는 부대의 종류와 규모를 기초로 예상 소요를 판단하여 협의하였고, 비용지원 문제도 토목 및 시설공사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해결하여 기본 합의서(UA:Umbrella Agreement)와 시행합의서(IA:Implemen -tation Agreement)를 체결하였다. 최근 평택으로 이전한 미8군 사령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감회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건데 나의 군 생활은 야전에서 지휘관 생활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 연합작전 분야나 전략, 정책 분야 근무를 통해 한미동맹과 연관된 직책에서 주로 근무해왔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으며 이 부족한 글이 마중물이 되어 한미동맹은 물론, 각자 맡은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이룩한 동기생들의 자료들이 제출되어 대열 회고록 편집실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1.6.19. 대열 회고록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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