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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명 | 시대 | 편 찬 자 | 내 용 | ||
동국사략(東國史略)
동국통감(東國通鑑) | 태종
성종 | 권근, 하륜 등 김종서 정인지 등 김종서 남수인 등 노사신 서거정 등 신숙주, 권람 등
서거정, 권효함 등 | 우리 나라 역사책 왕의 모범정치 관계를 뽑은 것. 채색법을 본받아 만든 지도 |
(3) 정치(政治), 국방(國防), 법전(法典)에 관한 저서(著書)
책 명 | 시대 | 편 찬 자 | 내 용 | |
경국전(經國典) 경제문감(經濟文鑑)
경제 6전(經濟六典) 치평요람(治平要覽) | 태조 〃
〃 세종 | 정도전 〃
하륜(河崙) 정인지 | 유교이념에 따라 제정한 이조의 법전 기록한 것으로 근세 정치조직의 초안적인 것. |
(4) 의학(醫學)에 관한 저서
(가) 의방류취(醫方類聚) :
세종 27년- 양성지(梁誠之), 우리 나라, 중국, 일본의 한방의학(韓方醫學)을 망라하여 이를 체계화시킨 의서.
(나) 향약채집월영(鄕藥採集月令) :
세종 13년- 유호통(兪好通), 노중례(盧重禮), 약용식물학(藥用植物學)을 정리한
최초의 책으로 식품명을 우리말로 기입함.
(다) 신주무원론(新註無寃錄) :
세종조- 최치운(崔致雲), 이세형(李世衡), 변계문(卞季文), 김황(金滉),
일찍부터 중국에서 수입된 무원록이란 법의학(法醫學)에 관한 책에 새로운 주를 가하여 완전한 것으로 만듦.
(라)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
세종 때 된 의서(醫書)
(마) 태산요록(胎産要錄) :
세종 16년의 노중래가 편찬한 의서(醫書)
(5) 근세조선의 유명한 저서(著書)
책 명 | 시대 | 편 찬 자 | 내 용 | |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보한제집(保閑齋集)
사가집(四佳集) | 세종 〃
〃 | 신숙주(申叔舟) 〃
〃 | 일본(日本) 기행기, 역사연구의 귀중한 것 근세조선까지의 시문을 모은 것 |
☞ 금오신화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 된 소설로서 유명함.
나. 학예(學藝)
(1) 건축과 조각
(가) 경복궁(1494) : 평화문을 비롯한 웅장한 근정전, 경희루 등의 큰 건물이 있다.
(나) 창덕궁(1405) : 돈화문 등의 궁문, 인정전, 비원 등이 있다.
(다) 원각사 대리석 탑(1467) : 이조초기의 건축, 조각의 정화로서 고려에 비해 손색이 없다.
(라) 숭례문(남대문 : 1448) :
성에는 웅대한 문과 누각을 세웠으니 그 대표되는 것은 숭례문인데
이것은 돌로 홍예문(紅 門)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세워 정중하고 견실하며 군형의 미를 나타내고 있다.
(마) 이외에 개성 남대문(1394) 평양의 보통문(普通門 : 성종 때 1473) 등이 유명하다.
(2) 그림(繪畵)
(가) 국초에 도화서(圖畵署 : 그림 그리는 기관)를 두어 임금과 고관의 얼굴을 그리었다.
(나) 학자 사이에도 사군자의 화법이 유행하였다.
(다) 화가(畵家)
1) 삼절(三絶)이라는 이름을 듣던 화가
*안견(安堅) : 세종조의 화가인데 산수화로 유명. 작품에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있음.
*최경(崔涇) : 세종조의 화가인데 인물화로 유명.
*강희안(姜希顔) : 중종조의 화가인데 산수, 인물화를 잘 그림.
2) 그 밖의 화가 :
이 외에도 중종 때 사람 이상좌(李上佐)는 산수, 인물화로 유명하다.
작품으로는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가 있으며
또한 이이(李珥)의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師姙堂申氏)가 유명하다.
(3) 글씨
(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은 송설체<松雪體 : 원의 조맹부(趙孟 )의 필체>를 받아
온건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넉넉한 품을 이루어 유명하다.
(나) 중종 때 김구는 진(晋)의 왕희지(王羲之) 필법을 본떠서 인수체(仁壽體)를 시작했다.
(다) 명종 때의 양사언(楊士彦 : 蓬萊)은 특히 초서를 잘하여 그의 물 흐르는 듯한 글씨가 세간에 애호되었다.
(라) 선조 때의 한호(韓濩 : 石峰)는 역시 왕희지의 체의 해서(楷書)로써 이름이 높다.
☞ 이조초기의 서도 4대가 1. 안평대군(安平大君 : 세조의 아들) 2. 김구(金絿)- 중종 때 |
(4) 공예(工藝) :
근세조선의 공예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기(瓷器)이니
처음에는 회황색(灰黃色)을 띈 이른바 분청(粉靑)이란 것이 많았으나
차츰 뒤에 백자(白瓷)가 성하여져서 세계에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이 많이 만들어졌다.
(가) 도자기의 제조 :
도자기의 제조는 사옹원(司甕院)이 맡아 하였는데
그 분원(分院)이 광주(廣州)에 있었고 각 도에는 자기소(磁器所)를 두었다.
그 중에서도 광주 분원에서 만든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므로
이를 분원자기라 하고 고령(高靈)것이 그 다음이었다.
(나) 백자(白磁)의 종류
백자에도 순백(純白), 난백(卵白), 청백(淸白)등 미묘하고 우아한 빛깔의 차이를 나타내고
그 중에는 모(角)을 낸 것도 있고, 혹은 철사(鐵沙 : 검은 빛), 진사(眞沙 : 검붉은 빛)등의 물감을 쓰기도 하였다.
(다) 도자기 공예품의 비교(고려 이조)
구 분 | 근 조 선 | 고 려 조 |
특 색 | 평민적, 실용적, 소박(素朴)함. | 귀족적, 감성적, 섬미(纖美)함 |
색 갈 | 회황색(灰黃), 회청색(灰靑) | 벽옥색(碧玉) |
종 별 | 분청자기(粉靑瓷器), 백자(白瓷) | 상감청자(象嵌靑瓷), 청자(靑瓷) |
(라) 금속공예 :
근세조선에서는 금 은기의 사용을 일반에게 금하였으므로 큰 발달을 보지 못하고
오직 유기(鍮器)등의 약간의 발전을 보았는데 안성(安城)의 유기그릇이 가장 유명하였다.
(마) 이밖에 나무로 만든 옷장, 문갑(文甲), 궤등의 목공품이 발달하였고
또 대리석으로 만든 향로, 벼룻돌 등의 석공품 등이 상당히 운치를 띠어 유명하였다.
(5) 제지술(製紙術)
인쇄술이 발달하고, 국가적 출판사업이 늘어가자 이에 제지 술도 크게 발달하였다.
제지는 조지서(造紙署)를 두어 제조 생산케 하였으며,
태종 12년(1412)에는 금 은의 취련(吹鍊)보다 제지의 필요를 강조한 일이 있어
이후 조선지는 깨끗하고 보드랍고 광채 있는 고운 백지로 생산되었고
기타 저피(楮皮 : 닥나무 껍질)외의 특수한 재료를 써서
여러 가지 질이 좋은 종이를 많이 생산하여 문화 발달의 도움을 주었다.
다. 음악(音樂)
이조초기의 음악으로는 주로 아악을 들 수 있으며 또한 음악을 중심으로 한 가무가 유행하였다.
(1) 아악(雅樂) :
이조시대의 역대임금은 아악을 장려하였으니
태조 14년에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를 두고
태종 때에는 명(明)으로부터 악기를 가져오게 하여 아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가) 유명한 아악작가
*박연(朴堧) :
세종의 명을 받아 관습도감(慣習都鑑)의 제조(提調)가 되어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의 3부 악을 대 정리하여 궁전음악인 아악을 완성하였다.
*성현(成俔) :
성종 때의 학자로서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악곡을 모아
성종 24년(1493)에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하였다.
(나) 악보(樂譜) :
박연은 많은 악곡을 새로 만들고 고쳐서
세종 12년(1430)에 아악보(雅樂譜)를 만들었고
세조 때에는 정대업(定大業)같은 향악곡(鄕樂曲)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다) 가사(歌詞) :
가사에는
성종 때의 악학궤범(성현 편)과
명종 때 된 악장가사(樂章歌詞)가 전해져서
청산별곡(靑山別曲), 어부가(漁父歌)등이 남아 있다.
(2) 가무(歌舞) :
궁중에서 의식(儀式)으로 행하여지는 처용무 등이 있었고
민간에서는 산대극(山臺劇) 꼭두각시놀음이 성행하고
또 잡가타령(雜歌打鈴)과 일반 농악(農樂)이 발달하고 이에 맞춘 가무가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