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구씨네마의 수료식 날이었습니다.
구씨네마는 아이들 사업과는 다르기에,
기택님과의 수료식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승환 선생님이 종결평가에 쓸 영상 다르게 편집해 보여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간 활동 영상들 자르지 않고,
저와 승환 선생님의 영상편지 붙여넣었습니다.
10분 가량의 영상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기택님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습니다.
지난 이틀간 수료식, 종결평가 준비로 뵙지 못했더니 왜인지 허전했습니다.
그도 그러셨던 게 아닐지, 전화의 이유 억측해보았습니다.
영상을 CD에 넣고, 기택님댁 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 날 인쇄하고 사인까지 한 수료증도 챙겼습니다.
준비해서 나서려는 중에, 기택님께서 복지관에 오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11시도 안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분명 댁으로 찾아뵙겠다 전했는데 복지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어느덧 저희 보러 내려오시는 게 익숙해지신 것 같습니다.
늘 깜짝 방문으로 저희 놀라게 하시는 기택님, 오늘도 한결같으셨습니다
기택님과 함께, 기택님댁으로 걸어올라갔습니다.
이 길을 같이 걷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늘 기택님이 홀로 내려오시거나, 저희가 올라가곤 했으니까요.
두 명이 걷기에도 좁은 길,
저는 앞장 서 걷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기택님과 승환 선생님 두 분이 간간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 들렸습니다.
돌아오는 길 무슨 이야기 나누었는지 승환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기택님께서 “애썼다” 하셨답니다.
구씨네마 준비하느라 애썼다 표현하셨답니다.
당사자님께 처음 전해 받은 감사 표현,
직접 듣지 못한 게 참 아쉬웠습니다.
본인의 감정 의사 표현하는 것, 기택님에게는 당연한 일 아님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에게는 불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말 저희에게 하셨습니다.
타인의 수고를 알아주고 감사하는 말 하셨습니다.
그렇게 기택님 댁에 올라가 CD를 전해드렸습니다.
DVD 기계를 셋팅하시는 모습이 능숙해 보였습니다.
평소 기택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이 재생되지 않았습니다.
DVD와 CD 파일 양식이 다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거 확인 안 해봤어요?”
“에이, 이걸 확인을 해 봤어야죠”
저와 승환 선생님이 당황하자,
기택님은 웃으시며 이것도 확인 안 하면 어떡하냐고 타박하셨습니다.
잔소리 듣고 왔습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잔소리였습니다.
가벼운 타박하실 정도로 가까워졌음을,
그리고 이 영상 보고싶어 하신다는 것 느꼈습니다.
처음 복지관에 오셨을 때도 “그 영상,,” 이라 하셨으니까요.
“여기 칩에다가 넣어도 돼요”
건내신 유심칩에 영상 담아 다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복지관에 내려가 영상을 다시 담고,
오후에 기택님댁 다시 찾아뵈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영상이 재생되었습니다.
5, 4, 3, 2, 1 로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 영상 속 본인 모습을 유심히 보셨습니다.
간간이 “이거는 언제 찍었어요?”
새삼 신기하신 듯 묻기도 하셨습니다.
티켓자르고도장찍는부분보시며
당시 상황을 회상하기도 하셨습니다.
“저거 도장, 그때 작게 해가지고 ..”
구씨네마 준비과정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활동 모습이 끝난 이후,
저와 승환 선생님의 영상편지가 이어졌습니다.
“기택님, 구씨네마 준비하시면서 어려운 부분들도 있으셨죠?”
“어려운 거 없었는데”
부끄러우신 듯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리시기도 했습니다.
화면보시다가다른곳보시다가
익숙한 얼굴임에도 화면에 가득 들어차니 낯설게 느끼실만도 하죠.
“잘 찍었네요”
영상 보신 이후 가장 먼저 기택님이 건내신 말입니다.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찍었어요?”
“얼마나 걸렸어요?”
실습생들의 선물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았습니다.
어떤 수고를 들였는지 물으셨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한 번 보고 마셨을텐데요.
“한 이틀 정도 걸렸어요. 구씨네마 마무리하면서 선물로 준비한 거에요”
“그럼 이제 학교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리고 이제는 학교로 돌아가는 거냐고, 구씨네마 이후의 저희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사실 이 마지막을 기택님께서 어떻게, 얼마나 이해하고 계시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작별 인사를 전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을 알고 계시는 듯, ‘이제 돌아가냐’ 하셨습니다.
그도 이 만남의 끝을 알고 준비하고 계셨음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괜스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저와 승환 선생님의 빈 자리
기택님이 아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아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마지막이지만, 아쉬웠습니다.
이상하게도 기택님이 이를 아신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습니다.
영상을 함께 보고, 수료증도 전달했습니다.
뭐 이런걸 주냐면서도 밝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담백하게 인사 마치고 댁에서 나왔습니다.
“기택님 저희 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평소와 같은 만남의 끝이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이번에는 다음에, 언제 또 뵙겠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아파트 복도를 나서며 승환 선생님과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습관처럼 다음에 또 뵙자고 이야기할 뻔했습니다.
실습 끝이니, 당연히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남은 마음들이 걸렸습니다.
아무리 주고 받는 관계 되었다 해도,
늘 제가 주는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사자님께 받은 건 작고 희미해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익숙해진 아파트 단지를 나서며,
그 마음의 크기와 무게 속단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느꼈습니다.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운 만큼의 마음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게 몸소 느끼며 돌아왔습니다.
끝이 다가오고 있음이 피부에 닿으면서도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
기택님댁 찾아뵌 이후, 바로 윗층에 사시는 김송지 어르신댁 방문했습니다.
준비한 작은 편지, 그리고 컬러링 도안 드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어르신께서 직접 준비하신 편지와, 형광펜 받았습니다.
아마 함께 계시는 요양보호사님께 부탁드려 편지를 쓰신 것 같았습니다.
첫 날과 같이 바닥에 둘러 앉고, 어르신께서 편지를 직접 읽어주셨습니다.
“은하양, 우리는 부모님께 좋은 성씨를 물려받았죠”
평소에도 같은 안동 김씨라 반겨주셨던 어르신, 편지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날들에 대한 응원 받았습니다.
어르신다운 다정한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형광펜 주셨습니다.
어르신께서 주신 펜으로 열심히 줄 긋고 공부해야겠습니다.
중요한 부분 강조하고, 또 고민할 때마다 어르신 생각날 것 같습니다.
25살의 1월 생각날 것 같습니다.
막연히, 사회복지는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현장은 더욱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제가 받은 것이 더 많습니다.
어느덧 조금은 익숙해진 아파트 단지를 나서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서툴게 내민 마음에 비해 받은 것이 더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 덕분에 겨울 잘 날 수 있었음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