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용어와 조선말 교회 연대표
사대(事大)
전근대 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에 취한 외교노선의 하나이다.
소국은 대국과의 외교 관계에서 큰 나라를 섬긴다는 사대(事大)를 방편으로 국운(國運)을 지키고자 했다. 이에 소국은 대국을 섬기고 대국은 소국을 사랑으로 어루만진다는 ‘사대자소(事大字小)’의 개념이 생겨났다.
이후 사대는 중국과 그 주변국 사이에서 조공 · 책봉 체제로 나타났다.
세도정치(勢道政治)
19세기 전반 조선에서 외척들이 중심이 되어 왕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면서 권력을 집중한 정치 형태를 일컫는다. 정조 초반 홍국영의 전횡이나 고종 연간 대원군 집권, 여흥 민씨 세력의 권력 독점 등도 세도정치의 범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흔히 순조 · 헌종 · 철종 연간의 정치 형태를 가리키며, 특히 철종 연간 안동 김씨의 집권을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이해한다.
연행사
조선 시대에 청나라로 보낸 사신 행차를 말한다. ‘연행(燕行)’이라고 한 이유는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北京)을 ‘연경(燕京)’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조선 중 · 후기에 연행은 1637년(인조 15)부터 1893년(고종 30)까지 257년간 지속되었다.
물고([物 故]
사전적의미: 유명한 사람이 죽음. 예전에, 죄인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나 죄인을 죽이는 일을 이르던 말.
“잘못하다가는 이 나라에서 쫓겨나거나 물고를 당할 형편이다.”
실제로 물고(物故)란는 용어는 일부러 매를 쳐서 죄수를 죽이려고 할 때 썼던 용어
다.
조선의 신분질서
조선의 신분질서는 법적으로 양인, 천민의 2단계(양천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4단계(반상제)로 분화되었다. 초기에는 양천제였지만, 중기로 접어들면서 후자의 반상제 체제가 정착되어 간다.
노비(奴婢)
한국 역사에 나타난 신분의 하나로, 사회구성상 조선시대에 가장 큰 의미를 지녔다. 조선 양반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던 노비제는 16세기에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고, 17세기 후반부터 쇠퇴기에 접어드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노비제가 해체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평가되는 17세기 후반에 노비의 비중은 여전히 높았다. 17세기 후반 이후 노비들의 도망이 속출하면서 노비제는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부록: 조선 말 왕조와 교회사 연대표
20대 경종 | 1720년 | 6월 19대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 노론과 소론 당쟁의 절정기. |
1722년 | 중국 옹정제 즉위 후 천주교 말살정책 시행 |
21대 영조 | 1762년 | 사도세자 사사 1701년 무고의 옥 |
22대 정조
1776.3월 21대 사도세자의 아들.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평가됨. | 1776년 | 1776.3월 21대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탕평책을 계승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함.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평가됨. |
1779년 | 권철신 주도하에 천진암 강학회 개최 |
1780년 | 홍국영 축출 |
1784 | 1월 이승훈 영세(북당/그라몽 신부) |
1784 | 3월 김범우세례. 자기집을 신앙집회장소로 제공.한국천주교회창립 |
1785 | 3월 을사추조적발 사건으로 김범우 유배(경남 밀양 단장/삼랑진) |
1791 | 5월 . 신해박해(진산사건 / 윤지충, 권상연 순교)(신해박해) |
1794.12 |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 조선에 밀입국 |
1795.6 | 윤유일, 지황, 최인길 순교(을묘박해) |
23대 순조 1800.7월22대 정조둘째아들.11세즉위. 안동 김씨가세도정치 | 1801년 | 신유박해 |
1801.1 | 정순왕후 김씨, 천주교 박해령, 오가작통법 시행 |
1801.3 | 주문모 신부 자수로 그와 연관된 신자들이 잡혀 순교 |
1801.9 | 황사영이 체포되고 백서 발각으로 다시 박해가 가열 |
1815 | 을해 박해 |
1831.9 | 조선대목구설정. 브뤼기애르 소주교 |
24대 헌종
1834.11월 23대 순조의 손자. 8세 즉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권력 투쟁에 휘말림. | 1834.1 | 유방제 신부가 정하상 등의 안내로 의주 변문을 통해 입국. |
1833.4 | 파리외방전교회 조선 포교지 수락 |
1836.1 | 모방 신부 입국 |
1836. | 앵베르 신부(범세형 라우렌시오)가 조선대목구의 부주교로 임명 |
1836 | 최방제, 최양업, 김대건 3명을 마카오에 파견 |
1839 | 기해 박해 |
1844.12 | 김대건, 최양업,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서품 |
1845.8 | 상해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김대건 사제 서품(페레올 주교 집전) |
1845.10 | 페레올 주교 일행 조선 입국(강경 황산포 나바위(羅岩)에 도착) |
1846.9 | 김대건 신부 순교(새남터). 병오박해 |
1849.12 | 최양업 신부 단신으로 입국 / 페레올 주교와 만남(충청도) |
25대철종18496월.19세 | 1857.3 | 다블뤼 보좌주교주교성성식을 최초로 조선에서 거행 |
1861.6 | 최양업 신부, 경북 문경에서 선종. |
26대 고종 1863. 12월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12세 즉위. | 1866년 | 병인박해 |
1866.3 | 베르뇌 주교, 브르뜨니애르, 볼리웨, 도리 신부 참수치명(새남터) |
1866.3 | 다블뤼 주교, 오매르트, 위앵 신부 황석두, 장주기 참수치명(갈매못) |
1866.10 | 병인양요(로즈제독 군함 7척으로 강화도 침입, 박해가 심해짐) |
1871년 | 제너럴 셔먼호 사건. 신미양요 발발 |
1873.11 | 흥선 대원군 실각 |
1876년 | 강화도 조약 (조.일수호조규) 체결 |
1886.6 | 한불수호통상조약 조인 / 종교자유획득 |
1904년 | 한.일 협약 체결 |
[자료편집: 성지순례 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