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유(陸游)는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이다.
육유가 세상에 태어난 다음 해 북송은 멸망하였고,
임안으로 천도한 남송은 일시적인 평화 상태를 이루었다.
그 당시의 재상 진회는 금나라가 너무 강성하니
싸우지 말고 눈치를 보며 지내자는 온건파였다.
그래서 힘을 키워
빼앗긴 땅을 되찾자는 주전론자들을 많이 파면하였다.
육유의 아버지도 파면당한 관원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주변에는 비분강개하는 선비가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애국심을 가진 시인으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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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주전파의 핵심 인물이 된 육유는
걸핏하면 관직을 강등당하거나 귀양살이를 했다.
그러나 기질적으로는 서정시인이었다.
인생과 자연을 놓고 미세한 현상에 눈길을 돌려 섬세한 붓으로 그려내는
송나라 시의 특징은 그의 시에서도 증명된다.
다만 청년 시절의 불운했던 혼인 관계, 국가의 굴욕적인 상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이 그를 애국 시인으로 간주하게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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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된 육유는 당완(唐琬)이라는 이름의 사촌 동생과 결혼을 했다.
그 시대에는 사촌 간의 결혼이 금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시를 썼고,
통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금슬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육유의 어머니가 당완의 집안이 가난하고
자기가 골라준 신부 감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육유의 어머니는 금슬이 유독 좋은 아들 부부를 못마땅하게 여기더니
날이 갈수록 며느리한테 구박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며느리를 욕하던 육유의 어머니는
이혼을 강요하기에 이르렀고, 당시의 관습상 자식이 부모의 영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이혼하긴 했지만,
육유는 당완을 이웃 마을로 몰래 피신시키고
간간이 가서 부부의 정을 나누곤 했다.
애틋한 사랑의 날들이 얼마 이어지지 않았을 때
육유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발대발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다시 내 아들을 만나면 그냥 두지 않겠노라고 엄포를 놓은 뒤
당완을 멀리 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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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렀다.
육유는 어머니가 정해준 왕씨 성을 가진 여인과 재혼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완도 친정 부모의 뜻에 따라
조사정(趙士程)이라는 이름의 문인에게 개가했다.
객지를 떠돈 지 8년 만에 고향인 소흥(紹興)에 들른 육유는
우적사(禹迹寺)라는 절의 남쪽에 있는 심원(沈園)이라는 곳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심원은 원래 지방의 돈 많은 벼슬아치인 심씨 가문의 정원이었는데
경치가 워낙 좋아 사람들이 소풍 나오는 유원지가 되었다.
그곳에서 육유는 조사정과 그의 친구들이
나들이를 나온 데 따라온 당완을 만나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았지만 금방 서로를 알아봤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 두 사람이었지만
다가가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당완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본 조사정은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당완은 저 사람은 전남편 육유이며,
벌써 재혼했는데 여기서 우연히 만나니깜짝 놀랐다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도량이 넓은 조사정은
육유에게 술과 안주를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육유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음날 시를 써 조사정 몰래 당완에게 인편으로 전하니
유명한 '차두봉'이다.
▶차두봉(釵頭鳳)
紅酥手 黃藤酒 滿城春色宮牆柳
홍소수 황등주 만성춘색궁장류
東風惡 歡情薄 一懷愁緒 幾年離索
동풍악 환정박 일회수서 기년리색
그대 고운 손, 보내온 황등주
성안엔 봄 색 가득, 버들은 너울너울
모진 봄바람이 좋은 인연 빼앗더니
쓰라린 마음 안고 헤어진 지 그 얼마였나?
錯 錯 錯 春如舊人空瘦 淚痕紅浥鮫綃透
착 착 착 춘여구인공수 루흔홍읍교초투
桃花落閑池閣 山盟雖在錦書難託 莫 莫 莫
도화락한지각 산맹수재금서난탁 막 막 막
착잡하고 착잡하고 착잡하여라.
봄은 옛과 같은데 사람은 공연히 여위어
눈물 흔적만 비단 손수건에 붉게 비치네
복숭아꽃 지는 쓸쓸한 연못 누각에서
태산같은 굳은 약속 편지로 전할 수 없네.
막막하고 막막하고 막막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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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받아본 당완은
전남편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육유에게
애끓는 마음으로 답 시를 써 보낸다.
시어머니가 자기를 미워하여 육유와 헤어지게 되었으나
시를 보니 전남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여전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
'착잡하다' 와 '막막하다' 라는, 각연의 마지막 행에 담겨 있는
전남편의 마음을 읽고
당완은
'어렵다' 와 '숨겨야 한다' 라는 말로 화답한다.
世情薄 人情惡 雨送黃昏花易落
세정박 인정악 우송황혼화역락
曉風幹 淚痕殘 欲箋心事獨語斜闌
효풍간 루흔잔 욕전심사독어사란
세상인심 야박하고 인정은 모질어
황혼 녘 내리는 비에 꽃이 집니다.
밤새 흘린 눈물 자국 새벽바람에 말리고
내 마음 호소하려 난간에 기대었지.
難 難 難 人成各 今非昨 病魂常似鞦韆索
난 난 난 인성각 금비작 병혼상사추천색
角聲寒 夜闌珊 怕人尋問咽淚裝歡 瞞 瞞 瞞
각성한 야란산 파인심문인루장환 만 만 만
어렵고 어렵고 너무 어려워요.
우리는 헤어져 그 옛날이 아니지만
병든 이 마음은 그네처럼 오락가락
뿔피리 소리 차고 밤은 다해가는데
내 마음 알려질까 눈물을 삼키었네.
속였어 속였어 나를 속였어
☆☆☆
위의 시를 지어 보내고 나서
당완은 집으로 돌아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당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당완의 사망 소식에 육유는 깊은 시름에 잠긴다.
☆☆☆
당완이 죽은 뒤
4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육유의 나이 어느새 75세, 백발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무치게 보고 싶은 아내 당완이었다.
젊은 시절 한때이긴 했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 당완의 흔적을 더듬어
심원에 다시 가본 육유는
비통한 마음으로 아래의 시를 읊었다.
城上斜陽畫角哀 沈園非復舊池台
성상사양화각애 침원비부구지태
傷心橋下春波綠 曾是驚鴻照影來
상심교하춘파록 증시경홍조영래
석양의 성 위에 화각 소리 애처로운데
심원은 그 옛날의 누대가 아니로구나.
가슴 아파 다리 아래 푸른 봄물 바라보니
일찍이 고운 님 그림자 비추며 왔었지
夢斷香消四十年 沈園柳老不吹綿
몽단향소사십년 침원류로불취면
此身行作稽山土 猶弔遺蹤一泫然
차신행작계산토 유조유종일현연
꿈이 깨어지고 향기 사라진 지 사십 년
심원 버들 늙어서 버들 솜도 날리지 않네.
이 몸도 장차 회계산 한 줌 흙이 되련마는
남은 자취 찾아보니 한줄기 눈물 주룩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