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하늘언어
* 더위를 견디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헤쳐오시느라 얼마나 힘드십니까?
막바지 더위로 인해 다들 지치고 휴가를 떠나시는 분도 계셔서 오늘은 쉬어가는 주간으로 여기고 특별 메시지를 써봅니다.
오늘은 평소처럼 여러 부로 구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투보다는 함께 큐티나 묵상을 하는 분위기로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본문 마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제목: 타이스
타이스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독실한 수도사인 빠프뉘스는 유명한 창녀였던 타이스를 만나 신자로 개종을 시킵니다. 타이스는 구원의 기쁨을 맛보며 죽어갑니다.
그런데 빠프뉘스는 점점 육욕에 빠져들다가 끝내는 타락하고 맙니다. 결국 창녀인 타이스는 구원을 받았고 성자인 빠프뉘스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역설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이러한 생각은 값싼 구원에 불과합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여서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통념을 가차없이 깨트리는 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빠프뉘스는 구원이 확정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반면에 타이스는 구원과 상관없는 여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빠프뉘스를 통해 신앙을 받아들이자 이내 성녀로 변화되고 기쁨 속에서 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구원은 단순히 익숙한 종교언어를 반복한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사과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과를 먹지는 않고 사과에 대한 연설만 주야장천 연발한다면 사과의 효능을 전혀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길도 이와 같습니다. 기독교의 교리 지식을 잘 알고 그것을 설교하는 것은 마치 사과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말만 하고 열매 즉 실천이 없다면 그의 삶은 구원의 사과를 먹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구원이 사과를 먹듯이 자기 맘대로 먹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노력을 해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는 종교를 자력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은 한없이 미약해서 자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는게 기독교의 구원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라는 타력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가르칩니다. 그것이 이성적으로 보기에는 옳지만 삶을 통해 체험을 해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복합적인 존재여서 표리부동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빠프뉘스처럼 표면적으로는 믿음이 강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타락이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은 표면의 믿음과 내면의 불신이 자기 분열을 일으키는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반면에 타이스는 표면의 불신앙 이면에 내면이 순수하여 한번 주어진 복음을 받아들여 바로 열매를 낼 수 있도록 이미 준비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 즉 내면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참된 구원은 바로 그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복이 단순히 “믿습니다.”라고 말만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생각, 말, 행위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변화 자체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믿음도
구원도, 실천할 능력도 전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져야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 게 아니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분의 안내에 따라 꾸준히 순종하며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막바지 더위 잘 이겨내시고 건강한 심신으로 기쁨의 가을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