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인 시감상
메타시(시론시)는 시론에 관한 시,시쓰는 과정을 묘사한 시이다
이 시(김산의 현대시)는 시쓰기에 관한 시다.메타적 사유를 바탕으로 현대시가 갖는 다양한 속성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모더니즘 중 이미지즘의 시쓰는 방식을 향상화하였다고 판단된다. 이미지즘은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형식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함께 현대시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이미지즘이 사상주의(寫像主義)라고 일컬어지므로 화가가 이 시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즘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미지즘은 현대시 운동을 말한다. 즉 1910년대에 영국·미국에서 전개된 반(反)낭만주의 시운동(詩運動)이자 사상주의(寫像主義)라고도 한다.
*낭만주의: 상상과 감성을 주요소로 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함
1) Imagism의 3원칙( 1913.3, "시"지)
1.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사물을 직접 다루어라.
2. 주제와 관계없는 어떠한 시어도 사용하지 말라.
3. 리듬은 메트로놈의 반복이 아닌 음악적 반복
2) 모든 위대한 시가 지녀야 할 6가지 원칙(이미지즘 시선집 서문,1915)
1. 구어체를 사용하되, 언제나 정확한 단어만을 사
용할 것.
2. 새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3.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 절대적인 자유를 허용할
것.
4.이미지를 제시할 것
우리가 화가 그룹은 아니지만, 시가 철저하게 개별
성을 지향하여야 하며,절대로 모호한 일반성을 다루는 것이 아님을 믿는다.
5. 견고하고 명료한 시를 쓸 것.
-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언급을 피할 것.
6. 마지막으로 "압축 concentration"이 시의 본질
임을 잊지 말 것.
형용사와 서술어를 걷어치우고,농축
현대시 / 김산
무언가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시의 영감(시마, 뮤즈)이 오고 있다)
공기는 잠시 가던 길을 멈췄고
(영감이 오는 순간이므로 공기까지 분위기 감지)
인파 속에서 고갤 갸웃거렸다
(영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잡긴 잡았으나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영감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불행히 발견되지 않았다
(시의 정수를 발견하지 못했다.인파에게 모두 수긍가능한 시, 인간의 인식기관과 능력의 한계를 초과하는 시는 불행히도 인간에게는 불가능할 지 모른다 )
고로, 어떤 발생도 하지 않았다
(시가 태어나지 못했다. 혹은 시를 쓰더라도 진정한 시의 세계를 완성했다고 볼 수 없다)
모든 빛은 그늘이 남긴 배경이므로,
(시는 그늘과 부재, 아픔을 묘사한다.빛은 배경으로서 지향해야 대상으로 남는다.현실은 빛보다 그늘이 더 많다)
(색이 다 모이면 검정 색이 되고, 빛이 다 모이면 투명한 색이 된다.빛이 있어야 그늘이 있고,그늘이 있어야 빛도 있다. 빛은 그늘의 배경이다)
명백한 저녁을 그린 화가는 없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명백하게 묘사한 화가는 없다.한 시의 세계에 빛과 어둠, 즉 아픔과 그 치유된 상태를 동시에 그린 화가는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저녁을 묘사한 시인은 없다.
.이것도 하나의 그림자다)
실패한 비닐 창문의 구도 사이로
(시는 항상 실패한다.누구도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 와부세계에서 들어오는 감각을 지각하는 인간의 감각기관(5감)은 불완전해서 실패한 비닐 창문으로 묘사)
바람의 궁극을 윤문하는 한 마리 새
(불완전한 감각기관의 구도 사이로 시의 궁극이 빛이 나도록 시를 매 만지는 자유로운 정신의 시인)
날개는 결국 장식적이고 현학적이다
(시는 몸통만 있으면 된다. 군더더기는 다 제거한다)
그는 쓸데없는 안부를 생략한다
(꼭 필요한 언어만 사용한다)
공장 굴뚝은 비약하는 고체의 빗줄기
(공장의 굴뚝은 상승하고자하는 욕망이 강하다. )
안개의 기록은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구체적 객관적 상관물을 쓰고 추상어는 그만 쓴다. 모더니즘의 일종임 이미지즘의 원칙에 충실히 따른다.이미지즘은 건조한 견고성(dry hardness)을 기본으로 한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이 세계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대시의 세계)
어떤 그림은 도저한 패국을 완성한다
(어떤 시는 심오함 묘사의 실패를 완성한다. 심오함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심오한 것이다)
우체국 직원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시를 배달하는 화자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혹은 심오한 시를 묘사하는데 실패하더라도 슬프지 않다. 이것이 시인의 운명이므로)
퇴근 무렵의 종이박스는 딱딱한 표정이다
(퇴고 막바지 시는 감정이 다 빠지고 건조한 견고성을 완성한다)
몰락을 그리는 화가는 흔해빠졌다
(현대시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시는 클리셰이고 몰락한 시인데 아직도 이렇게 감정에 치우친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 혹은 궁극의 시 즉 호랑이를 그리고자 하지만 고양이를 그리는 시인이 많다)
(현대시는 이미지가 주를 이루므로 시인은 화가라고 할 수 있다)
---------------------------------------------------------
현대시 / 김산
무언가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공기는 잠시 가던 길을 멈췄고
인파 속에서 고갤 갸웃거렸다
그는 불행히 발견되지 않았다
고로, 어떤 발생도 하지 않았다
모든 빛은 그늘이 남긴 배경이므로,
명백한 저녁을 그린 화가는 없다
실패한 비닐 창문의 구도 사이로
바람의 궁극을 윤문하는 한 마리 새
날개는 결국 장식적이고 현학적이다
그는 쓸데없는 안부를 생략한다
공장 굴뚝은 비약하는 고체의 빗줄기
안개의 기록은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이 세계에서
어떤 그림은 도저한 패국을 완성한다
우체국 직원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퇴근 무렵의 종이박스는 딱딱한 표정이다
몰락을 그리는 화가는 흔해빠졌다
대표적인 메타시(시론시)
시법詩法」 부분/ 아치볼드 맥클리쉬(Archibald MacLeish)
시는 구형의 과일처럼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은 낡은 훈장처럼
말을 못해야 한다
이끼 자라는 창턱의
소매 스쳐 닳은 돌처럼 침묵이어야 한다
시는 새의 비상과 같이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시는 시간 안에서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달이 올라올 때
마치 그 달이 밤에 얽힌 나무들에서
가지를 하나하나 놓아주듯이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시는 동등할 것이지
진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온갖 슬픔의 사연에 대하여는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
사랑에 대하여는
기울어진 풀들과 바다 위의 두 불빛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다만 존재하여야 한다.
시클(하린) 해설
아치볼드 맥클리쉬는 「시법(詩法)」을 통해 구체성 안에 암시성을 가져야 함을 확고하게 제시하고 있다.
"시는 구형(球形)의 과일처럼/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라고 말한 첫 연부터 그것이 강조된다. 시는 추상과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이다. 일차적으로 구체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시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암시성이다. "묵묵해야" 함은 바로 암시성의 다른 말이다. 사과는 구체적이지만 단순한 물질로서의 사과가 아니라 정서와 태도를 내포한 상태에서 시 속에 놓인다.
이러한 시의 시의 근본 속성을 맥클리쉬는 비유를 통해 여러 번 강조한다.
"엄지손가락에 닿은 낡은 훈장처럼/ 말을 못해야한다", "이끼 자라는 창턱의/ 소매 스쳐 닳은 돌처럼 침묵이어야 한다"고 말한 구절이 그것이다. 맥클리쉬가 비유를 통해 말한 것들은 모두 선명한 이미지들
이다. 그런 선명한 이미지 안에 암시성이 자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구체성은 묘사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데 암시성은 어떻게 표현하나요?" 맞다. 그것이 어렵다. 방법을 간단하게 말해주겠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구체적인 형상이 태도나 정서를 간접적으로 담고 있도록 그려내면 된다. 화자의 괴로운 심사를 구체적인 대상 안에 넣고 싶다면 "술 취해 비틀거리는 달"이라고 표현하면 될 거고, 아픈 사람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려면, "그 집을 바라보던 목련의 병색이 완연하다"라고 표현하면 된
다. 그런 식으로 구체성 안에 암시성을 담아낼수 있는 자신만의 표현방법을 연구해서 찾아야 한다.
맥클리쉬가 두 번째로 강조한 시의 특징은 바로 움직임이 없이 보여주는 '존재성'이다. 시는 의미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의 속성과 정서를 암시하며 존재해야 한다. 의미를 지향하는 시는 설명을 자꾸 끌어당긴다. 총체적으로, 의지적으로 더 많은 의미를 표출하려고 한다. 시는 종합선물 세트가 아니다. 시는 하나의 정서나 하나의 심리 상태를 내포한 채 움직임없이 존재하는 형상일 뿐이다.
자꾸 많은 얘기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시는 하나의 시공간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갖는다.
그래서 맥클리쉬는
"시는 시간 안에서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고 충고한다.
"달이 올라올 때/마치 그 달이 밤에 얽힌 나무들에서 / 가지를 하나하나 놓아주듯이 / 겨울 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 기억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라고 강조한다. 시에서 움직임이란 아주 미세한 것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미세한 움직임도 구체적인 이미지로 툭 던져놓아야 한다. 던지기만 해야 하는데, 욕심을 부려 자꾸 던져진 그림을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기억 하나하나가 "마음에서 떠나"지 못하고 의미로서 남으려는 태도를 취한다.
"온갖 슬픔의 사연에 대하여는" "빈 문간과단풍잎 하나"로 그려내면 족하고, "사랑에 대하여는/ 기울어진 풀들과 바다 위의 두 불빛"으로 그려내면 족하다.
맥클리쉬의 시에서 가장 쉽게 와 닿지 않은 구절은 "시는 동등할 것이지/ 진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구절이다. 내가 강조하든 타자가 강조하든 진실을 누군가가 강조하면 그 순간 진실한 자와 덜 진실한 자로 구별된다. 그리고 시는 윤리성이나 도덕을 지향하지 않는다. 시 속의 존재들은 독립성을 가지고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들은 시 속에서 이미지로 동등하다. '있음'을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있음'은 그 자체로 우위를 가릴 수 없는 동등한 형식이다. 시는 그렇게 '있음'을 추
구하면서 관념, 의식, 사상, 윤리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첫댓글 https://youtu.be/qi00xPDC4jM
PLAY
모더니즘=주지주의, 이미지즘, 초현실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