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提供제공.
《역사의 의미- 인류의 역사는 지선至善을 향한 장도長途》
* 출처: 신동기 저 《어른의 인성 공부》(생각여행, 2024년 4월 출간) p324-331
대승불교의 지선至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대승불교에서는 교도들을 ‘보살菩薩’이라 부릅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이라는 의미입니다. ‘보살 菩薩 ’은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약어이고, ‘보리살타 菩提薩埵 는 ’고대 인도어
‘Bhodhi-Sattva’의 한자 음역어입니다. ‘Bhodhi’는 ‘지혜’, ‘깨달음’을 의미하고 ‘Sattva’는 ‘중생’을 의미하니 둘이 합해진 ‘Bhodhi-Sattva’, 즉 보리살타 또는 보살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이 됩니다.
대승불교에서의 보살의 삶은 한마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위로는 불교의 지혜인 보리 菩薩 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고통받는 중생衆生들을 교화해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보살은 두 가지를 추구합니다. 자신의 깨달음과 다른 이들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두 가지입니다. 전자는 ‘스스로 깨달음이라는 이익을 추구하는’ ‘자리自利’를 하는 것이고, 후자는 ‘다른 이들도 깨달음이라는 이익을 갖도록 도와주는’ ‘이타利他’를 하는 것입니다. ‘자리自利’를 하는 것은 ‘지혜智慧’를 추구하는 것이고, ‘이타利他’를 하는 것은 ‘자비慈悲’를 베푸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보살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기치 아래, ‘자리自利’를 통해 자신의 ‘지혜智慧’를 추구하고 ‘이타利他’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자비慈悲’를 행함으로써, 탐욕의 사바세계를 부정잡예가 사라진 청정의 불국토로 만들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독립 선언서〉와 프랑스 〈프랑스 인권 선언〉의 지선至善,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오늘날 민주주의의 본격적인 역사는 1776년 미국의 건국과 1789년 프랑스의 대혁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774년 봄, 영국 의회가 식민지였던 북미의 보스톤 항구 폐쇄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을 통과시키자 북미 13개 주는 1차 대륙회의를 엽니다. 그리고 이듬해 무력 투쟁에 들어가고 다시 1년 뒤인 1776년 7월 4일 마침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독립 선언서〉를 발표합니다.
〈독립 선언서〉는 선언 이유를 밝힌 후, 이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인간에게 부여했으며, 생명권과 자유권과 행복 추구권은 이러한 권리에 속한다’라고 말합니다. 일찍이 인류사에 존재한 적 없었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고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신세계를 선언합니다.
프랑스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시민의 바스티유 감옥 공격으로 본격적으로 불타오릅니다. 한 달여가 지난 1789년 8월 26일 국민의회는 〈프랑스 인권 선언〉을 발표합니다.
‘제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 사회적 차별은 오로지 공공이익에 근거할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떤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다’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북미에 이어 이번에는 구대륙의 프랑스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신세계를 선언합니다. 모두,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선언입니다.
토머스 모어의 지선至善, ‘유토피아’
르네상스 영향을 크게 받은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유토피아》를 썼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하루 6시간 일하고 8시간 잠을 잡니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에는 오락을 하면서 쉽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시장의 창고에 가서 들고 옵니다. 돈을 지불할 필요 없이 그냥 가져오면 됩니다. 모든 것이 공유이기 때문입니다.
금·은으로는 오줌 누는 요강을 만들거나 노예를 묶는 사슬과 족쇄를 만들어 사람들이 금·은을 경멸하도록 합니다. 국가는 꼭 필요한 일 말고는 시민들이 육체적 봉사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와 교양의 함양에 전념하도록 합니다. 거기에 삶의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쓴 이유는 당시 영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악폐들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남의 등에 올라타 빈둥빈둥 살아가는 유한계급들, 전쟁을 즐기는 군주, 수백 년간 대를 이어 농사지어 왔던 농노들의 공유지에 대한 영주들의 사유화 시도 즉, 인클로져(Enclosure) 같은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존재하지 않는(U)’ ‘땅(topia)’이지만, 중세 끝자락을 곤고히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가난한 이들이 꿈꾸는 염원의 이상향, ‘좋은(U)’ ‘땅(Topia)’ ‘유토피아(Utopia)’였습니다.
공자의 지선至善, ‘대동사회’
유토피아는 동양 고대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예기》에서 공자가 말한 대동사회가 그것입니다. 《예기》 〈제9예운〉 편에서 공자가 말합니다.
“큰 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만인의 것이 된다. 어진 이와 능력 있는 이를 선발해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을 닦게 하니 사람들이 제 부모만을 부모로 여기지 않고 제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노인들이 편안하게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며, 장정들에게는 할 일이 주어지고, 아이들은 마음껏 자라게 한다.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노인 그리고 병든 이들이 모두 먹고 살 수 있도록 하고 남자들은 모두 직업이 있고 여자들은 모두 시집을 간다. 재물은 헛되이 낭비되는 것을 싫어하니 사람이 혼자 움켜쥐고 있을 수 없고, 힘은 사람의 몸 안에 갇혀있기를 싫어하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자기 개인 이익만 꾀하는 생각이 사라지게 되어 도둑과 반란이 사라지고 사립문을 잠글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런 세상을 일러 대동大同이라 한다.”
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脩睦 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 男有分 女有歸 貨惡其棄於地也 不必藏於己 力惡其不出於身也 不必爲己 是故謀閉而不興 盜竊亂賊而不作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대도지행야 천하위공 선현여능 강신수목 고인부독친기친 부독자기자 사로유소종 장유소용 유유소장 긍과고독폐질자 개유소양 남유분 여유귀 화오기기어지야 불필장어기 역오기불출어신야 불필위기 시고모폐이불흥 도절란적이부작 고외호이불폐 시위대동
대동은 동양의 유토피아였습니다. 사유재산이 사라진 사회, 그것이 공자에게는 지상천국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지선至善, ‘공산사회’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와 《고타강령 초안 비판》에서 각각 이렇게 공산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그대로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를 치며 저녁 식사 후에는 비판하는 것”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차적인 생활 욕구로 된 후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넘치고 난 후에 - 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마르크스는 19c 산업자본주의 단계 상황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운동법칙을 밝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할 목적으로 《자본론》을 집필했습니다. 비판은 대안을 동반합니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17살 때 김나지움을 졸업하면서 쓴 졸업 에세이에서 자신의 일생이 인류의 행복과 해방을 향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온 힘을 다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택한다면 –중략- 우리는 초라하고 제한된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수백만명의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자로서 마르크스는 만인이 행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를 내놨습니다.
종교·혁명·문학·사상이 지향한 궁극, ‘지선至善’
인류의 역사는 ‘지선至善’을 찾아가는 장도長途입니다. 종교, 혁명, 문학, 사상이 지향한 궁극이 모두 ‘지극히 좋은 세상’, ‘지선至善’의 지상실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선 至善 으로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요? 지선 至善 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하는 것일까요? 아니,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이 상황이 혹시 인류사 내내 그렇게도 갈구해온 지선 至善 인 것은 아닐까요? 이상 아닌 현실에서의 ‘지선 至善 ’.
* 출처: 신동기 저 《어른의 인성 공부》(생각여행, 2024년 4월 출간) p324-331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