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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4.04 주일 낮 예배
- 말씀: 막 8:34-35
- 제목: 참 사랑의 길 - 제자의 길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말씀봉독 - 다 함께(막 8:34-35)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은혜찬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by Anvely (youtube.com)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평소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김형석교수님의 100년의 지혜라는 말씀을 잠깐만 들어보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 특히 군대에 있을 때, 교수님의 말씀(작가가 창작을 상실했을 때, 실로 죽음의 세계가 온다)을 기억한다.
105년 살아보니 깨달았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40분부터 약 5분간)
히브리서 4: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안식'은 바로 그런 완전한 휴식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수고와 고생과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 있는 진짜 휴식이며 영원한 안식입니다.
그러니 기독신자는 바로 그 '완전한 안식'에 들어가게 될 날, 즉 이 고난의 인생을 끝내고 저 천국에서 영원토록 평안히 쉬게 될 그 행복한 시간을 훈련병이 10분간 휴식을 기다리고 사병이 첫 휴가나 제대 날짜를 기다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학수고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그처럼 완벽하고도 또한 영광스러운 하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이 시간에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의제자만이 영광의 하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자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렇습니다. 방금 김형석교수님께서 교수는 제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예수선생님 말고는 진정한 선생 또는 교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 이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거의 주님의 사랑에 버급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같은 온전하 자기 희생의 사랑에는 못미치는 것입니다. 그나마 인간으로서 어머니는 태중에서 낳았기 때문에 태의 즉, 모태의 사랑 이외에는 절대 주님의 사랑에는 버금할 수 없습니다. 이타심과 이기심이 혼합된 사랑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신자는 많으나 제자가 적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님의 제자 곧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적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자의 길은 때론 고난이 따르고 희생이 따르는 길이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요, 영광의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돼야 합니다.
아들을 키울 때, 어릴때는 품안의 사랑입니다. 그 품을 떠나가 되면 그 사랑은 변덕을 부립니다. 잘해주면 서로 좋고 그렇지 않으면 웬쑤가 되지요 그렇습니까??? 노맨입니다. 아멘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 노맨은 영어로 no man 사람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요? 우리 만나인은 모두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1.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걷는 자만이 참된 안식, 즉 휴식에 들어갈 수 있다.
몸과 마음의 평화를 말합니다.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그림에 나오는 레스트레스는 그냥 안식- 휴식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편히 쉬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레스트레스에 더 라는 정관사가 붙는 것은 휴식이 없는 특정한 자, 즉 믿음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물론 나도 조직신학에서 폴 틸리히를 모르는 목회자는 없습니다.
폴 틸리히(Paul J. Tillich)교수는 인간의 세 가지 불안을 말합니다. 존재의 불안, 양심의 불안, 죽음의 불안입니다.
인간은 장래에 대한 불안과 지난날에 대한 끝없는 후회의 짐으로 마음이 가벼울 날이 없습니다. 때로는 힘겨운 질병의 짐을 지고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억척같은 마음의 짐을 지고, 젊은이들은 성공에 대한 야망으로 몸과 마음을 쉼 없이 혹사시킵니다. 그러기에 현대인들은 한결같이 ‘쉬고 싶다’ 고 말합니다. 삶의 무게에 지쳐 힘들어 하는 인생을 향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쉼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가난한 자들의 뒤에는 쪽빡만이 남습니다. 가난할 때가 좋을 때도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짐진 자들에게는 주님의 분깃을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본문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 결과 피곤하고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무거운 짐 진 자’ 는 ‘포르티조’ 로서 수동형으로 쓰였으며 타의에 의해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부담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율법의 짐, 유대 전통의 짐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거운 짐” 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넒은 범위를 의미합니다. 예수 당시의 백성들이 지고 있던 로마정부로부터 부과된 각종 세금의 짐, 가난의 짐, 인생이기에 질 수밖에 없는 죄의 짐, 병의 짐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짐들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예수 당시의 사람들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던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현대인들은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갑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을 하거나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억지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평안이 없습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어 감사와 기쁨을 잃고 힘들게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인생들을 향해 예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초대하시며 진정한 쉼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주님께서는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셔라 했습니다. 이 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요한복음 7:37∼38
이사야 55:1-5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콜시카의 촌놈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 영웅이 되어 한때 세계를 제패했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한 후 세인트 헤레나 섬에 유배됩니다. 한 기자가 어렵사리 그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지나온 생애 가운데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습니다. 잠시 전투가 그친 어느 주일 아침이었는데,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왔습니다.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당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며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안식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영혼의 안식은 더 나아가 육신의 건강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지친 영혼은 주님의 안식을 소망하고 또 소망합니다. 아멘
2. 제자의 길을 걷겠거든 자기의 길을 부인하라
자기 부인하고... -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솔직히 지금 이 시대에 자기를 부인해서 살아가기에는 불가능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과 경쟁하는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해서 이겨야 합니다. 남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내가 얼마나 자신이 넘쳐나는지, 생명력이 있는지, 남과 특별히 다른 점은 무엇인지,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자기 부인이 아니라 자신만만, 기세등등해야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까 김형석교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정에서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 라고 묻습니다.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딸 그리고 많은 형제들끼리 자기를 부인하고 서로를 위해서 배려하고 보듬어 주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가정이 천국이라는 말을 합니다.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 인간을 만드시고 너무 기뻐하셨고 특별히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하나 되어 가정을 이뤘을 때 가장 크게 기뻐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되 가정을 통해 복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래저래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가정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세상 그 어디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3. 제자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세상에서의 천국이다.
- 이 말씀은 우리가 성도님뜰 결혼할 때, 목사님들이 흔히 하시는 축복말씀을 드릴 때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 가정을 위한 3일의 사랑 - 3일만에 깨어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느 날, 한 부인이 가정 생활을 비관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나님!
빨리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어요.
정말 힘들어요.”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
사랑 가득한 인자하신 목소리로 말씀했습니다.
“그래, 살기 힘들지?
네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으니
그 전에 몇 가지 내 말대로 해보겠니?”
그 부인이 '예!' 하고 대답하자,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얘야!
네 집안이 너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
마지막 정리를 잘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 청소 한번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할래?”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3일 후에 하나님이 와서 말씀했습니다.
“얘야! 애들이 맘에 걸리지?
네가 죽은 후 애들이
'엄마는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게
3일 동안 네 태에서 나온 네 자식들을 한번 최대한 사랑을 줘 볼래?”
그 후 3일 동안에 그녀는
애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었으며,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에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이제 갈 때가 됐다.
마지막 부탁을 하나만 더 하자.
너, 남편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고 미웠지?
장례식 때 죽은 너를 붙들고 눈물을 흘릴 네 남편 입에서 '참 좋은 아내였는데.'
라는 말이 나오도록
3일 동안에
남편에게
최대한의 사랑을 베풀어 주어 봐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
그녀는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의 사랑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에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그 전에 너의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시키는대로 집을 돌아보니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천국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고,
결혼 후에 처음으로
'내 집이 바로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 갑자기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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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것이란다.”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여기서
천국을 만들어가며 살아 볼래요.
행복은 오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었네요.”
- 지금껏 부인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오직 나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어떻게든지 나의 결함은 없고 남의 결합만 보였습니다. 내 눈에 대들보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눈에 티들어가는 것만 보았던 것입니다. 이제 9일 동안 전진, 전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전진하였던 것이 결국 나의 눈에 대들보를 빼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고 여호와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 한다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라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겔18:32,33:11.딤전2:4.벧후3:9)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의 기쁜 소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傳)하도록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고 세례를 받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게 된다.(마28:18,19)
- 맺는 말씀
세례(구약의 할례)는 자기를 부인하는 첫번째 하나님에 대하여 순종하는 것으로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베푸시는 할례를 말했고 신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주님과 연합해 함께 죄의 몸(육신)이 죽는 것을 말하며 그 결과 사망에서 옮겨 생명(그
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된것 입니다.(신30:6.골1:13,2:11)
복음으로 구원 얻으려면 마음에 할례를 받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즉 복음은 단순히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세례(할례)를 받고 자기 목숨을 부인해야하며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義)가 되는 것이다.(롬6:6,7.고5:21.갈2:20,5:24.빌3:9)
이에 세례는 죄인이 죄(육신의 목숨)를 벗어버리기 위해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고 할례는 육신에 행하는 할례의식이고 또 하나님께서 마음에 베푸시는 할례(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가 있다.(신30:6.렘4:4)
즉 복음을 전해 듣고 말씀이 유익(有益)이 되지 못한 자들은 마음에 할례(세례)를 받지 못해 죄과(罪過)를 떠나지 못해 불순종한 결과로 사도바울은 이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죄를 떠나지 못해 사람 속에 있는 죄가 죄를 범한다고 말했다.(롬6:23,7:17,20)
. 서로 사랑해서 자신을 부인한 자는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셨고(아가페 사랑)제자들에게도 내 계명을 지켜 네 목숨을 부인해 아가페 사랑을 함으로 서로 사랑하여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가라 명하셨다.(요13:34,35,15:10,12,롬4:25.)
주 안에서 승리하라; 우리 만나인 모두는 이 시간 이후, 주 안에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빌립보서 4장 4~7절 말씀을 가슴팍에 새기겠습니다. - 할렐루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아멘
믿음으로 화합치 못한 자들은 자기를 부인치 않아 성령을 받지 못해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한 자이고 계명의 말씀을 불순종 한 자들이며 믿음으로 화합한 자는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안식(그리스도 안) 안에서 쉼을 얻게 되며 모든 것에서 자유케 된 자들이다.
롬1:17 "복음(福音)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記錄)된 바 오직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만나성도님들은 믿음의 의가 나타나사 전하는 주님의 말씀이 듣는 여러분의 귀에 복에 복을 더하사 은혜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을 위해서 주신 말씀
살전 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