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4월 12일(금) 잠언 17:1-9 찬송 283장
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2.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4.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7. 지나친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8.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개역 개정)
-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삶을 대조 제시하는
총 375개의 금언들의 연속(17:1-28) -
17장도 375개의 여러 주제를 담고 있는 짧은 경구로 이루어진
솔로몬 잠언이 수록된 10:1-22:16의 일련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생활 태도가 대칭적 구조로
비교 서술되어 지혜로운 자로 하여금 악한 행위를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17장도 크게는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비교로 일관되나
작게는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삶의 모습과 관련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므로
장 전체를 단락별로 묶어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부분은 저자, 문장 형식, 사상 등
그 어떤 측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9절)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여기서 ‘사랑을 구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간한다’는 것은 ‘서로 멀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9절을 다시 말하면 ‘허물을 덮어주게 되면 사랑을 받게 되지만
허물을 자꾸 들추어내게 되면 친한 친구로부터도 멀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은
잘못을 보고도 못 본체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웃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친구와의 의가 상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들의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절에서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의 말이 아니다.
여기서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은 지적하고 책망하되
그의 허물을 이해하고 용서하여 준다는 의미이다.
즉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관용의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이에 반해 자꾸만 이웃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자들이 있다.
이 경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의가 상하게 되어
결국 두 사람 사이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하는 것은
비단 원만한 인간 관계를 위해서만 요청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다 죄인으로서 누구나 허물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며
타인과 마찬가지로 나(우리) 역시도
용납받고 용서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허물이 없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성인 군자라 할지라도 허물은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벗겨놓고 보면 다 똑같다.
인간은 허물 많은 존재라는 점에서 모두 똑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다 허물이 있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성경은 서로 허물을 용납하고 감싸줄 것을 권고한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라는 표현이 있다.
즉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허물의 사함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 역시 형제의 죄, 이웃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
나(우리)는 이웃의 허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나?
혹 허물을 들추어내고 지적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지는 않았는가?
나(우리)의 삶의 태도를 재점검해 보자
그리하여 관용의 삶, 용서의 삶, 허물을 감싸주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만이 온전하신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죄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