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보고 싶고 만나면 추억과 현재와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친구 아닐까? 자주 만날 수 없는 친구일수록 더 보고 싶다.
친구란 가깝고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운 사람이란 뜻이다.
영어권의 친구는 동년배든 나이 차이가 열 살 이상이든 가족 및 친·인척을 제외하고는 친한 사람을 Friend라 한다.
한국의 친구는 동갑 또는 동급생인 친한 사람이다. 유교 사회에 존재했던 ‘장유유서’ 때문에 나이 차이가 엄격하게 다루어진다는 설도 있지만 근거가 없다. 전통 유교 문화에서는 나이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더라도 친구로 지내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성과 한음, 류성룡과 이순신, 송시열과 윤휴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좁은 의미로 친구를 해석하는 것은 유교 문화보다 병영국가였던 일본제국의 서열과 기수 문화 유입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일본군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 국군의 수직적 군대문화가 군인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설도 있다. 주민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전 국민이 서로 나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결과 생겨난 한국의 친구 문화이기도 하다.
“민증까자!”라는 말은 지금도 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모임은 같은 마을에 살았던 초등학교 동기 상포계, 맏이들이 모여 만든 중학교 동기 모임, 시와 문학을 좋아했던 고등학교 동기 모임, 같은 직업을 가진 학번이 같은 친구 모임이다. 모두가 동기이거나 나이가 같다.
골프를 좋아하는 교원 모임,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모임은 있지만 친구 모임은 아니다. 나의 친구 개념도 좁은 것 같다.
7번 국도가 마을을 관통하는 고향마을은 텃세가 심하고 선후배를 많이 따졌다. 초등학교가 있는 큰 마을로 동기생이 30명이 넘었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친구의 사랑방에 다섯 명이 모여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시고 놀았다. 학교가 달라 방학 때가 되어야 만날 수 있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한 해 후배 두 명이 와서 같이 놀자고 했다. 상태를 보니 술에 취해있었고 우리 역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어서 곤란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거부하는 후배들과 싸움이 일어나 후배 한 명이 많이 다쳤다. 동래 어른이 중재하여 치료비를 변상하고 일은 일단락되었다. 반년이 지난 후에 경찰에서 소환통지가 날아왔다. 친구 중 한 명이 사건의 처리가 억울하다며 청와대에 민원을 넣어서 사건화되었다고 했다. “나는 같이 있었지만 때리지 않았고 도리어 피해를 봤다.”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다섯 명 모두 약식 기소되어 벌금 이십만 원 선고를 받았다. 부모님과 동래 어른을 뵐 면목이 없어서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졸업 후 세 명은 교직, 두 명은 대기업에 입사했다.
친구 중 한 명은 고인이 되었고 두 명의 친구와는 상포계를 중심으로 자주 만난다. 민원을 넣었던 친구와는 40년이 지나도록 만난 적이 없다. 그 친구가 피하는지 우리가 피하는지는 모르지만, 고향 어귀에 들어설 때면 잊었던 기억들이 비집고 들어와 마음이 무겁다.
고향에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이제 풀 것은 풀어야지”라고 한다.
결혼 전의 친구와 결혼 후의 친구는 다르다. 우선순위가 다르고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로라 카스텐스 교수는 친한 친구를 만들기 위한 조건으로 접근성, 지속적인 만남과 계획하지 않은 교류 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조건들은 나이가 들면 모두 만족시키기 힘들며 조건을 충족하는 친구는 대부분 학창 시절에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 친구가 더 그리워지나 보다.
나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진짜 친구가 두어 명 있다. 말하면 날아갈 것 같고, 글을 쓰면 사라질 것 같아 하지 않는다.
가슴에 뭉친 실타래를 풀 듯 다시 만나 풀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가 평생을 생각해 왔다면 상대도 비슷하리라. 추억을 가지고 학창 시절을 같이 했던 사람이기에 더하다. 이제 시간을 가지고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보고 싶다.
2024.6.9. 김주희
첫댓글 진솔한 글입니다. 좀 더 다듬으면 좋은 글이 됩니다. 친구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조금 다르지만 허심탄회 하게 만날 수 있다면 좋은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