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45) 조조의 대패(하편)
조홍은 등허리를 들이대고 조조에게 말했다.
"형님! 그만한 상처를 가지고 무슨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제가 업고 갈테니, 어서 업히십시오. 이 조홍이는 죽어도 좋지만, 이 난세에 형님 같은 분은 반드시 살아나셔야 합니다. 적병이 다시 오기 전에 어서 이 자리를 떠나십시다."
조홍은 조조를 등에 업고 무작정 산기슭을 달려 내려왔다.
바로 그때, 서영의 군사들이 조조를 찾아 헤매는 소리가 들린다.
조홍은 조조를 업고,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숨죽여 산기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정작 산기슭에 내려와 보니 눈앞에는 커다란 강이 가로막혀 있었다.
앞에는 강이 가로막혔고, 뒤에서는 자신들을 찾는 수색이 다가 오고, 게다가 몸에난 상처가 심하여 운신을 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유곡이었다.
"아아, 나의 운명은 이제 그만인 것 같다. 홍아! 적에게 죽어서 천추에 한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깨끗이 자결(自決)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내려놓아 다오!"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애걸하듯 중얼거렸다.
"안 됩니다 형님! 자결을 하시다니 형님답지 않게 그게 무슨말씀입니까?"
"앞은 강으로 가로 막혔고, 뒤에는 추격대가 있으니,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살아난단 말이냐?"
"궁즉통(窮卽通)이라 하였으니 살아날 길이 있겠지요.... 이 강을 헤엄쳐 건너기로 하겠습니다."
조홍은 조조를 일단 땅에 내려놓고 갑옷을 벗어 버리더니 칼 한자루만을 입에 물고, 다시 조조를 등에 업고 강물속으로 들어갔다.
달빛에 번득이는 강물은 유유히 흘렀다.
두 사람은 물결따라 흘러가면서 한 덩어리로 헤엄을 쳤다.
그리고는 서서히 반대편 기슭으로 접근해 갔다.
그리하여 건너편 기슭에 거진 다가와 보니, 강 언덕 위에서는 갑자기 횃불을 든 병사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서영의 병사들이었다.
"앗, 저게 뭐야? 귀신인가, 사람인가?"
그들은 헤엄쳐 오고 있는 조홍과 그에게 업혀있는 조조를 보자, 자기들 대장에게 보고한다.
"지금 이 시간에 강을 건너오는 놈이라면 조조의 패잔병이 분명하다. 저놈들을 잡아라!"
대장인 듯한 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설마하니, 그들도 적의 대장 조조가 그꼴로 강을 건너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또다시 화살이 연방 날라왔다.
조홍은 조조를 업은 채 죽을 힘을 다해 적들을 피해서 어둠에 뭍힌 강 기슭에 닿았다.
그러나 점점 다가오는 적을 피할 도리가 없어서 절망에 잠겨 있노라니까, 바로 그때 한떼의 군사가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앗! 저건 또 뭐냐?"
조조와 조홍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살펴보니, 그들은 어젯밤부터 대장의 행방을 찾고 있던 하후돈, 하후연과 그들의 군졸이었다.
"오, 대장님이 여기 계셨구나!"
그들은 조조를 발견하자 크게 기뻐하면서 조조를 추격해 오던 적병들과 한바탕 싸워서 물리쳤다.
그리고 나서 조조를 둘러싸고 숲속으로 피신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백여 기의 군마가 웅성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저건 또 누구냐?"
그들은 숲속에서 숨죽이고 나타난 군마의 행색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적이 아니라 조조의 가신인 조인,이전, 악진 세 사람과 쫓겨온 그들의 병사들이었다.
"오오, 그대들도 살아 있었는가?"
"대장님 무사하셨습니까?"
조조와 부장들은 손을 마주잡고 감격의 소리를 외쳤다.
싸움은 참패에 참패를 했지만, 살아 남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서로가 그지없이 감격하였던 것이다.
조조는 부하들과의 만남을 한없이 기뻐하면서,
"내가 오늘 새벽에 적에게 궁지에 몰려 자결을 하려고 하였는데, 큰 잘못을 저지를 뻔 하였소. 적어도 한 군대의 우두머리 되는 사람은 죽음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오. 나는 비록 싸움에는 졌지만, 이번 싸움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소. 내가 만약 새벽에 자결을 했더라면 여러 장수들을 못 만났을 것이 아니오?"
하고 감탄하였다.
"대장께서 자결을 하시려 하였다니, 그게 웬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말이오. 싸움에는 지면 지는 대로 깨닫는 일이 많은가 보오."
조조는 참패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로 그렇게 생각되었다.
돌아보니 일만 여명을 거느리고 떠났던 군대가 지금은 고작 오백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조조는 재기의 희망을 결코 잃지 않았다.
"일단 하내(河內)로 돌아가서 재기를 노리기로 합시다."
조조가 부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언젠가는 설욕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후돈과 조인 등도 조조의 말에 용기를 내어 대답 하였다.
오백여 명의 패잔병들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처량한 행군을 시작하였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조차 구슬프게 들리는 그들의 신세였다.
양가에 태어나서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조조도 이번만은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일찍이 어떤 예언자는 나를 난세(亂世)의 간웅(姦雄)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다! 간웅이면 간웅 답게 한번 일어난 이상 백난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 보자!)
조조는 새벽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며 묵묵히 걸어가면서 속으로는 그런 다짐을 곱씹고 있었다.
...
첫댓글 조조는 전쟁에서 패하여도
아주 드라마틱하게 패하네요.